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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03화 (902/1,000)

1803화. 자업자득

휙-!

나방비를 멀리 밀어낸 남도림은 그대로 몸을 날려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방비는 즉시 뒤를 쫓으려 했지만, 승산이 없어 보였다. 단거리에선 나방비가 남도림보다 빠르나, 장거리에선 실력 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허공에 서서 도망치는 남도림을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나방비는 다시 사여래의 시신 곁으로 돌아왔다. 얼굴은 고통에 흠뻑 젖은 채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 흑운이 은희를 안고 나타났다. 은희는 매우 허약해 보였고, 코와 입에선 수시로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운의 얼굴에도 비통함이 가득했다. 왠지 예감이 불길했다.

원래 흑운은 은희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은희가 딸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대로 나방비가 다른 곳으로 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나방비를 그들의 마을로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곧이어 얼굴에 색을 칠한 곤림수도 나타나 조용히 옆에 섰다. 오풍도 다가왔지만, 주변에 있는 가장 높은 나무 위에 내려선 그는 다소 수상쩍을만큼 극도로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비야……, 비야…….”

쇠약한 은희의 부름에, 나방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기억 속에 은희는 없었다.

그때였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던 오풍이 갑자기 소리쳤다.

“여긴 오래 머물 곳이 아니오! 빨리 처리하시오!”

은희는 최대한 분명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비야, 모래덩이에게 너와 관련된 일을 매번 받아보고 있었다. 그는 너와 관련된 일을 수시로 알려주었지. 내가 지내는 곳에 그가 보낸 서신이 있단다. 그 아이를 데리고 같이 가자꾸나, 네게 서신을 보여주마.”

모래덩이, 그게 누구의 외호(外號)인지 모를 리 없었다. 어릴 적, 사여래의 성을 따서 부르던 별명이었다.

나방비의 머릿속에 그 옛날 사형의 등에 업혀 모래덩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스쳐 지났다. 나방비의 눈에선 거짓말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 * *

남도림은 빠르게 날아가며 계속 주위를 관찰했다. 그러다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싸움은 이미 끝나있었다. 독무허가 허공에서 나추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나추는 결국 도망치지 못했다. 부상이 너무 커서, 결국 독무허의 손에 패배하고 만 것이었다.

나추의 가슴엔 피가 흥건했다. 딸이 입힌 상처에선 붉은 피가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도 이젠 세상과 하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마지막 표정은 그다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자업자……, 득이지…….”

꺼져가는 나추의 목소리를 들으며, 남도림은 고개를 내저었다. 입가에선 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 오래도록 싸워왔던 나추를 드디어 쓰러트린 것이다.

그때, 독무허가 너덜너덜한 남도림의 의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물었다.

“넌 무슨 상황이지?”

남도림이 재수 없다는 듯 답했다.

“그 요마로 변한 사랑꾼 여인의 신법이 보통이 아니더군. 너무 빨라. 손톱도 아주 날카로워서 이리되었다.”

독무허는 여전히 놀란 눈이었다.

“그 잡종이 그리도 대단하다고?”

“대단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암중에 그녀를 도와 기습하는 사람이 있어 떼어내는 게 쉽지 않았어.”

“그래서 처리했나?”

남도림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나추를 돌아보았다. 딸이 무사하다는 이야기에 이제야 그 표정이 조금 풀어진 듯했다.

“은희는 붙잡았나? 왜 텅 빈 손으로 온 건가?”

사실 남도림은 도망치는 와중에 문득 의심이 들었었지만, 이제 와 성나찰이란 소리에 놀라 도망쳤다고 할 순 없었다.

“그 잡종이 끼어들어 산 채로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공격에 정통으로 맞았으니 아마 살아남기는 어려울 거야.”

다시 나추의 얼굴에 비통한 빛이 어렸다.

독무허는 남도림이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기에 그렇게 대답했다고 생각하고, 목을 움켜쥔 나추를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너희 부부는 동년, 동월, 동일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동년, 동월, 동일에 죽게 됐군. 그 정도면 참으로 의리 있는 부부 사이라 할 수 있지 않나?”

나추는 반항할 힘도, 길게 말할 힘도 없어 그저 짧게만 툭, 뱉었다.

“우린 곧 만날 것이다.”

당연히 좋은 말이 아니었다. 대놓고 저승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이었다.

독무허는 냉소를 지으며, 몸의 법력을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남도림이 한숨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오랫동안 보아온 사이인데. 시신은 남겨줘야지.”

독무허는 잠시 침묵하더니, 법력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나추의 눈을 물끄러미 보더니, 손에 힘을 주어 비틀었다.

우두둑-

독무허가 손을 놓자, 나추는 그대로 늪지를 향해 빠져들어 갔다.

퍽…….

남도림은 잠깐 그 모습을 지켜보다 한숨을 쉬었다.

“가지,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가보지.”

두 사람은 빠르게 원래 전장으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늪지에서 고개를 내민 요호 몇 마리가 나추가 떨어진 곳에 도착해, 천천히 늪지 속으로 침몰하는 그를 지켜보았다.

* * *

지궁.

나방비는 사여래의 시신 옆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두 손으로 그의 서신을 살피고 있었다.

은희의 말은 틀림없었다. 내용은 대나성지에서 나방비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니, 거짓일 수는 없었다. 필적은 사여래의 것이 아니었지만, 표현방식은 나방비에게도 아주 익숙한 말투였다. 아마도 이는 사여래가 보낸 밀서를 해석한 종이인 듯했다.

사여래는 진작부터 나방비의 비밀을 알고, 사라진 모친과 연락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나방비에게 단 한 번도 이를 밝힌 적이 없었다.

서신을 보는 나방비의 얼굴은 이미 눈물에 뒤덮여 있었다. 그녀는 자꾸만 흐릿해지는 시야에 연신 소매로 눈물을 닦아가며 서신을 살폈다.

은희는 곁에서 조용히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보아도 부족하다는 듯, 오래오래, 애틋하게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렇듯 은희가 딸을 지켜볼 수 있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곤림수와 오풍이 은희의 좌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녀의 등에 손을 하나씩 대고 법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무려 원영기 고수 둘이나 동시에 법력을 운용해야 할 정도니, 은희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흑운과 지궁에 있는 요호족 장로들은 모두 은희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은희의 상세를 확인한 후였다. 천제단을 복용하긴 했지만, 오장육부는 이미 가루가 돼 있었고, 지금은 그저 본인 요력과 원영기 수행자 둘의 법력으로 버티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들 쓸모없는 짓인 걸 알고 있었다. 이는 그저 은희가 저승으로 가는 시간만 늦추고 있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현장엔 화봉황, 진관, 가정걸도 있었다. 세 사람은 무릎은 꿇지 않고 멀리서 조용히 슬픈 눈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외부 정세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다. 화봉황은 물론, 진관과 가정걸도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구성 중 무려 오성을 처리하다니, 그런 대단한 우 장로를 모셨던 시간이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당시에도 그가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과연 그때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일부 사실을 알려준 건, 둘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혹시라도 도망치려는 생각을 접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우유도를 일정 시간 따랐던 사람이니, 우유도도 두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법력을 주입하던 곤림수와 오풍이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은희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비야……, 비야…….”

나방비는 이미 모든 서신을 확인하고, 그 서신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서신에 섞인 일부 내용을 보면, 사형은 줄곧 대나성지의 정보를 이쪽으로 넘기고 있었던 듯했다. 사형은 진작부터 아버지를 배신한 것이다. 가뜩이나 괴로운 심정은 더욱더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여린 손길에 나방비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 가득한 시야에 서서히 꺼져가는 은희가 보였다.

“비야, 어미가 네게 정말 미안하구나.”

나방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은희의 눈에선 갑자기 생기가 비치고 있었다. 죽기 전,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현상이었다. 말투도 한결 또렷해져 있었다.

“우리 일족은 줄곧 요호족 족장을 맡아 요호족을 지키는 사명을 이어왔단다. 나와 네 아비의 일은 지금 내가 다 설명해줄 시간이 없어…….”

은희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앞으로 궁금한 게 있다면 요호족 아이들에게 물어보거라. 네 아비와 나 사이에 누가 옳고 그르단 말을 하고 싶진 않구나. 다만 네게 알려주고 싶은 건, 과거 내가 원해서 널 떠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난 깊은 부상을 입고 오랜 잠에 빠져있다가 바로 얼마 전에 깨어났다. 비야……. 어미도 평생 네가 그리웠단다.

이제 내가 없어도 넌 요호족에 머물 수 있다. 모두 믿을 만한 이들이고, 넌 내 딸이니 분명 널 돌봐줄 거야. 하지만 이곳이 싫다면, 강요는 하지 않으마. 넌 이들의 도움을 받아 우유도에게 연락하면 될 것이다. 그럼 우유도가 널 도와줄 테니. 우유도도 믿을 만한 사람이다.”

우유도? 왠지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 아니던가? 이 순간, 나방비는 자신은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어미는 네가 요호족에 남았으면 한다. 외부 사람들은 서로 공격하고 속이며 분쟁이 끊이질 않아. 너무 복잡한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 요호족은 단순하지. 우리 모녀는 단순하다. 저 인간들의 복잡함을 배우지 못해. 그 때문에 어미는 네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너무 걱정이구나.”

결국 은희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코에서도 선혈이 흘러나왔다. 은희는 그 여린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딸을 한번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손끝 하나 만져보지 못했던가.

하지만 나방비는 그곳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은희의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지만, 눈빛엔 아직도 갈망과 기대가 가득했다. 이별은 너무 어릴 때 일어났다. 당시 나방비는 말을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어서, 은희는 딸에게 단 한 번도 엄마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 마지막으로 딸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은 말이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은희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아차렸다. 모두가 나방비를 돌아보았다. 나방비 역시 은희의 희망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방비도 당장 엄마라고 불러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생각과 따로 노는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모르고, 눈에선 눈물만 흘러 내렸다.

끝내 은희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마지막 얼굴엔 흐릿한 여한이 어린 듯했다. 그렇게 힘없이 꺾인 고개와 함께 입과 코에서 핏물이 떨어져 내렸다.

곤림수와 오풍은 시선을 교환했다. 둘 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감과 무력감으로 괴로운 빛이 가득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두 사람은 은희 몸속의 요력이 철저하게 통제를 잃은 것을 감지했다. 은희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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