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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10화 (909/1,000)

1810화. 운명을 다 하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후진군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상당량의 전마를 도축했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제공하지 못하면, 효월각과 나조조차 병력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가 되면 그들도 아래에서 올라오는 압박에 제군을 상대로 군량을 빼앗으려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더군다나 주변 지역은 이미 제군과 후진군에게 약탈당해, 더는 빼앗을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유일하게 빼앗을 수 있고, 지금 이 위기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넘길 수 있는 건 제군의 군량뿐이었다.

100만 후진군과 전투를 벌이든, 군량을 제공하든, 제군에게 남은 선택지는 2가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100만 후진군과 전쟁을 벌이는 건 그 대가가 너무 컸으니, 결국 갈 길은 하나였다.

고품의 계략에 호연무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끝내 그는 후진군에게 닷새 분량의 군량을 단발성으로 주고, 그 후론 매일 먹을 수 있는 하루치 군량을 제공했다.

한 번에 많은 군량을 줄 수 없었다. 군량을 절반으로 나눠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제군의 병력이 더 많았고, 여전히 잔명을 이어가고 있는 제국 조정도 유지해야 했다.

후진군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호연무한이 군량으로 자신들을 통제하고 있고, 일단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군량 공급을 끊어 버릴 수도 있었다.

고품은 다시 이 임시적이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파고들었다. 절대적인 병력 우위로 이미 승기를 쥐다시피 했지만, 그는 최대한 정면충돌은 피하고 싶었다. 호연무한에게 통렬한 반격을 받으면 분명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이제 와 불필요하게 전투 손실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 고품은 후진군에 적극적으로 투항을 받아 주겠다며 사람을 보냈다. 후진군은 당연히 크게 분노했다. 일전에 투항은 거절하더니, 상황을 이런 식으로 만들고 이제 와 투항하라니, 자신들을 뭐고 생각하는 것인가?

고품도 이들의 반응을 당연히 예상했지만, 굳이 움직인 것엔 어느 정도 믿는 바가 있었다. 가망이 없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움직이지도 않았을 터였다.

이간계였다. 지금 제군이 군량에 인색한 것으로 이간질하며, 만약 지금 전투가 벌어지면 제군은 분명 후진군을 화살 받이로 쓸 것이라고, 진군이 총공격하면 후진군이 과연 자신들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또 효월각엔 지금 투항하면 제국을 멸한 후 3개주의 영역을 할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투항하지 않으면, 진국은 조금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후진국을 쓸어 버릴 테고, 결국 효월각은 무엇도 얻지 못할 것이라 했다. 결국 승기를 누가 쥘지 모르지 않을 테니, 결정을 잘 내리라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효월각은 망설였다. 일단 진국이 총공격하면, 한두 번은 몰라도 그 이상은 방어도 힘들 것이다. 다만 위국 3대 문파의 일이 있어, 혹시 그냥 이용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애초 고원달이 제국 경성을 공격할 당시 고품은 지원군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단 한 명의 병력도 움직이지 않아 고원달과 위국 3대 문파가 끝장나는 걸 보았다. 그야말로 이용만 당하고 끝난 것이었다.

고품은 다시 장담하며, 만약 후진군이 못 믿겠다면 일단 진군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일어난 상황에 후진군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진군이 정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방어선을 포기하고 출병했고, 기세등등하게 제군을 향해 진격했다.

반면, 호연무한은 크나큰 오판을 했다. 다들 천군만마를 이끄는 사령관이었다. 호연무한은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상황에, 고품이 미치지 않고서야 큰 대가를 치를 리 없다고 단정했다. 거기에 고품이 수작질을 부려, 제군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해, 제군의 세력소모를 유도하려 한다고 여겼다.

호연무한은 불변으로 만변에 대응하는 책략을 세웠으나 결국 그 때문에 전략에 큰 허점이 생겼다.

그는 후진군의 갑작스러운 기습을 받고 나서야,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후진군이 이런 시기에 이런 식으로 움직인 건, 진군의 계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군은 정말로 총공격을 시작했다.

후진군의 공격은 호연무한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다. 전에 후진군 병력이 왕성할 땐 가만히 있다가, 이제 병력이 절반쯤 떨어져 나가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이용하는 건 또 무슨 이치인가.

나조는 과연 명장이란 평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호연무한의 눈앞에서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수작질을 부리고도 들키지 않았다. 제군이 제공해 준 5일 치 군량을 몰래 한 곳에 모두 쏟아 버리고, 제군 몰래 토목공사를 진행했다. 군량을 담은 포대에 흙을 실어 나르며 땅속에 갱도를 만든 것이었다.

나조는 일단 후진군이 공격하면, 제군의 기병이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들어올지 추측했고, 그 방향에서 제군의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갱도를 팠다. 이건 고품이 후진군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고품은 호연무한의 효기군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단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면, 효기군은 진군에게 큰 손실을 줄 것이 분명하니, 후진군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효기군에 타격을 주라 요구한 것이었다.

후진군이 공격을 감행한 후, 호연무한은 당연히 곁에 후진군 같은 큰 위협을 내버려 두고, 진군과 싸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당연히 빠르게 후환을 없애고자, 대군을 모아 반격을 명령했다.

그렇게 지금, 천지가 무너질듯한 참담한 현실에 이르게 되었다.

“후퇴하라!”

공격을 담당한 제군의 장군이 크게 소리쳤다.

천지를 울리는 전투 소리 속에, 제군의 병력은 빠르게 말머리를 돌려 후퇴를 시작했다.

그러자 제군이 후퇴하는 방향 지하에 잠복하던 후진군 수행자들은 명령을 전해 받고, 지하 갱도를 지탱하던 나무 기둥을 넘어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량의 병력이 그 위를 지나기 시작했을 때, 부하를 감당하지 못한 지면이 무너져 내려 긴 도랑을 만들어 냈다. 퇴로는 막히고, 진형은 무너지고, 누군가는 말에서 뛰어내려 도랑을 넘어 건너편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쏴라!”

명령과 함께 먼 곳에 후진군 궁수들이 나타나 활을 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도 후진군 병력이 밀려들어 제군을 도살하고 있었다.

고품에게도 소식은 빠르게 전달됐다. 후진군이 효기군에게 큰 타격을 입혀, 제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소식에 고품은 서탁을 치며 감탄했다.

“좋다! 나조의 명성이 과연 허명이 아니구나. 제군의 눈앞에서 이런 식의 계략을 꾸미다니, 과연 호연무한의 명이 다했구나!”

고품은 곧 전속으로 진격하라며 명하곤, 각지 군대에 제군과의 전투에서 가장 선두에 서는 장군에겐 큰 상을 내릴 것이라 말했다.

그는 후진군이 호연무한에게 전멸하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후진군을 살려 계속 제군의 측면에서 위협이 되도록해야 대량의 제군을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제군 중군 군막의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다. 사령관 자리에 선 호연무한은 매우 굳은 표정이었다. 세월에 물든 흰 머리칼까지도 몹시 고단해 보였다.

지금 한 무리가 서탁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평소 후진군 쪽에서 그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사람들이었다.

후진군이 제군의 눈앞에서 그토록 기다란 갱도를 팔 동안 이들은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때문에 효기군이 큰 피해를 보았으니, 이것이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비통한 목소리로 후진군의 간교함과 나조의 음모를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은 호연무한이 그들의 변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내 호연무한에게선 싸늘하고도 짧막한 명이 떨어졌다.

“참하라!”

용맹한 병사들이 바로 뛰어 들어와 무릎 꿇은 사람들을 끌고 나갔다.

“상장군……! 상장군……!!!”

호연무한의 심복인 한 수하가 크게 소리쳤지만, 그 외침은 호연무한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다.

순식간에 군막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이들을 포함해, 100여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제군을 뒤덮은 무거운 분위기를 걷지 못했다. 전쟁의 큰 손해로, 제국 조정도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 * *

기운종.

흑석이 빠르게 안에 들어와 오상에게 진군의 승전보를 전했다.

누각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오상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석상처럼 침묵할 뿐이었다.

그 후로도 흑석은 계속해서 다른 것들을 보고했다.

“마교 쪽의 조웅가에게서 반응이 왔습니다. 남천무방과 방에 숨어 반나절간 뭔가를 모의했습니다. 그 뒤, 남천무방이 암중에 뭔가를 준비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일부 흔적을 근거로 판단하면 아마도 누군가를 성경에 들여보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오상이 눈을 번쩍 떴다.

“사람을 들여보내?”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조웅가와 관련이 있느냐?”

“조웅가와 모의한 후 남천무방이 움직였으니, 아마 그럴 것입니다.”

“지금 성경 내부 상황을 고려하면 누군가를 들여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설령 성지를 공격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웅가……. 설마……? 설마 황택사지와 연관이 있는 것인가?”

다시금 오상의 두 눈이 번득였다.

흑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황택사지를 제외하고, 지금 같은 시기에 굳이 모험을 감수하고 누군가를 성경에 들여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물을 치고 잘 감시해라. 확인만 하고, 절대 타초경사 해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흑석은 대답 후, 성존의 정확한 예측 덕에 지금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오상이 아니었다면 무엇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 아부를 이어갔다.

* * *

밀실.

우유도는 밀서를 읽고 서서히 사색에 잠겼다.

가무군이 보내온 소식이었다. 그가 판단하기에 성존이 만수문, 천행종, 영종을 장악한 건 눈속임에 불과하며, 진정한 목적은 기운종을 장악하는 것이라 했다. 진국을 통해 천하를 평정하고, 천하를 재편하려는 것이었다.

여무쌍이 말했다.

“가무군의 판단이 맞을 거예요. 확실히 삼성에겐 좋은 방법이지요. 우리가 버틸지 여부는 차치하고, 이건 천하를 재편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에요.

우선 대량의 수행자를 소모하게 해, 각 세력의 힘을 줄일 수 있지요. 힘이 줄어든 세력은 확실히 말을 더 잘 듣게 되겠고요. 그 후에는 훨씬 더 쉽게 천하를 통치할 수 있을 거예요.

다음으로는 천하의 이익을 장악할 수 있겠고, 이익을 원하는 세력이 있다면 당연히 저들에게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우유도는 여무쌍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뭔가를 조용히 중얼거렸다.

“효월각이 다시 진국에게 기울었군…….”

여무쌍이 미소를 지었다.

“전장에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건 정상적인 일 아닌가요?”

우유도는 동문서답을 했다.

“진국이 그들을 모두 쓸어 버릴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 목숨줄이 참으로 긴 것 같습니다!”

여무쌍이 의아해했다.

“무슨 말이죠?”

우유도가 뒤를 돌았다.

“왕야에게 연락해, 한번 만나자고 전해주세요.”

운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속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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