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화. 내가 직접 움직이겠다
지궁.
늪지 안 지궁에 들어간 귀의는 수많은 요호족을 만나게 되었다. 귀의는 이를 갈았다. 구성에 대항하는 세력이 요호족까지 결탁을 맺었다고?
족장 흑운은 귀의를 아주 귀하게 환대했다. 그도 귀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우유도가 귀의를 보내준단 말에, 흑운도 몹시 기대하고 있었다.
일단 흑운은 사전에 준비한 약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선생님, 이 정도면 충분할지 한번 봐주십시오. 만약 부족하면 저희가 더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에게 무슨 약물을 마련할 방법이 있겠는가. 결국은 우유도의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귀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것보다, 환자를 좀 보여주시오.”
“아, 그럼요! 이쪽으로 가시죠. 이쪽입니다.”
흑운은 연신 굽실거렸다. 지금 그의 모습에서 요호족 족장이란 당당한 권위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흑운의 모습은 초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은희의 죽음에 크게 자책했고, 사정을 알게 된 우유도에게 귀에 피가 나도록 욕을 들어먹었다. 심지어 우유도에게 나중에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소리까지 들은 차였다.
흑운은 우유도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날로 무거워지는 자책감은 도무지 떨치지 못했다.
노 족장이 죽었다. 만약 여기서 노 족장 딸에게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흑운은 이대로 벽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 * *
다른 방에 도착해 환자를 확인한 그 순간, 귀의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빠르게 좌우에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방비 각주?”
흑운을 포함한 요호족 장로들과 오풍 등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귀의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환자가 나방비 각주란 말이오?”
다시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보고, 귀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는 우선 고개를 숙이고 나방비의 모습을 가늠해 보았다. 안색은 정상이었다.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그대로 돌 침상 가에 앉아 나방비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은 채 법력으로 진찰했다. 한참이 지나 다시 눈을 뜬 그가 나방비의 손바닥을 살펴보고, 손끝을 살짝 눌러 보기도 했다.
이내 손을 놓은 그가 다시 일어나, 나방비의 눈꺼풀을 올리고, 나방비의 입을 한번 열어보았다. 또 사람을 시켜 나방비의 족의(*足衣: 양말)를 벗기고 손톱으로 발바닥을 누르며 살펴보았다. 동시에 안색에 변화가 있는지 살피며, 다시 발가락 끝을 눌러 보았다.
다시 발을 내려놓은 귀의는 젖은 천으로 손을 닦으며 나방비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았다. 나방비는 겉보기엔 그저 깊이 잠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잠시 망설이던 귀의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 정상이오. 혈색도 좋고 아무 문제가 없소!”
흑운이 다가왔다.
“얼마 전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혹시 그 부상이 원인은 아닙니까?”
귀의가 물었다.
“음? 얼마나 심각한 부상이었소?”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만…….”
흑운은 당시 나방비가 다쳤던 상황을 설명하고, 당시 곧바로 천제단을 복용했지만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귀의가 고개를 저었다.
“부상은 이미 전에 다 치유됐소. 아마 부상이 문제는 아닌 것 같소. 지금 상태를 보면, 아마도……. 혹시 정서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소?”
사람들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희망적인 빛이었다. 귀의는 과연 귀의였다. 이렇게 얼핏 보고도 나방비가 충격을 받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 병증을 찾았으니, 분명 치료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흑운의 간청에 이어, 귀의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혹시 대나성존의 죽음이오? 그럴 리가. 이분도 수행자가 아니오. 생사를 적지 않게 접했을 터인데, 당당한 수행자가 겨우 그 일 때문에 이토록 쉽게 쓰러진단 말이오?”
“나추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흑운이 한숨을 쉬며 당시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나추가 사여래를 죽였고, 나방비가 나추를 습격했으며, 은희가 죽고, 나추가 죽은 일까지.
이건 우유도의 뜻이기도 했다. 사전에 우유도는 흑운에게 나방비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숨김없이 귀의에게 다 알려주라 당부했었다.
사실 우유도가 직접 귀의에게 알려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귀의가 정말 자신의 말에 따르는 걸 확인하기 전엔 너무 많은 걸 알려줄 순 없었다. 방비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 때문에 우유도는 이 역할을 흑운에게 넘겼다.
귀의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방비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재수도 없지 않은가. 아버지가 그녀 부부를 인질로 붙잡고, 그녀 앞에서 남편을 죽여버렸다. 크게 분노한 그녀는 아버지에게 중상을 입혔고, 처음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요호족 족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영원한 이별을 했고,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가 요괴로 변한 후 중상을 입힌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대단한 나추의 능력으로 이처럼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추는 나방비가 죽인 것과 다름이 없을 터였다.
저 높은 곳에서 천하를 오시하던 공주 같은 인물이, 한순간 남편과 부모를 다 잃어버렸다. 한날한시에 그녀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귀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그녀의 병은 고칠 수 없을 것 같소.”
전에 나방비의 독을 치유할 때 그녀가 인간과 요괴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었다. 나방비가 나추와 요호족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었다니.
이내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흑운은 다시 급히 간청해왔다.
“선생님 의술은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수행자와 범인을 불문하고 고치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귀수와 요수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고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선생님, 만약 다른 조건이 있다면 얼마든 말씀해 보십시오.”
귀의가 손사래를 쳤다.
“지금 나방비 상황은 병이면서도, 병이 아니라 할 수 있소. 이런 상황은 노부도 인간계 속세에서 몇 번 본적이 있소. 사실 나방비의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소. 다만 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도망쳤을 뿐이오. 지금 이건 그녀 스스로가 원하는 상태요. 스스로 현실을 떠나 헤어나오길 원치 않는다면, 누구도 그녀를 깨울 수 없을 것이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흑운은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았다.
“선생님 의술이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귀의는 고개를 저었지만, 입으론 다른 말을 했다.
“은침을 준비해 주시오.”
사람들은 지금 귀의에게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저 요행을 바라며 뭔가를 시도해보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귀의가 뭔가를 시도하려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흑운은 즉시 한 장로에게 은침을 가져오게 했다.
곧 귀의의 앞에 크고 작은 은침이 가득 꽂힌 피혁이 놓였다. 귀의는 아주 익숙하게 은침을 다뤘다. 일단 나방비의 손과 발에 침을 놓으며, 신체 외부의 촉각을 건드리고, 그 후 나방비의 머리 여기저기에 침을 놓았다.
나방비의 머리에 수십 개의 은침을 놓아, 머리에 자극을 주는 방식이 통하길 바라며 법력으로 천천히 은침을 흔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아쉬웠다. 은침을 법력으로 모두 뽑아낸 귀의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방비는 자신을 아름다운 꿈속에 가둬놓고 깨어나길 거부하고 있으니, 노부도 어쩔 방법이 없소이다.”
다들 근심하고 있는데, 한편에 있던 오풍이 끼어들었다.
“그럼 나방비가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다시 간절한 시선들이 꽂히고, 귀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행자 중에 이런 상태는 노부도 처음 보았소. 어쩌면 노부의 견문이 좁은 것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 속세에서 보았던 환자 중 아직 깨어난 사람은 보지 못했소. 결국 대다수는 오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육신이 여위었고, 육신이 쇠약해지니, 나중엔 깨어날 힘도 잃어버렸소.
그래도 나방비는 범인과 분명 다를 것이오. 영단묘약이 있고, 수많은 수행자가 법력으로 혈기를 소통시켜줄 수 있으니, 이대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깨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없을 것이오.”
흑운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이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오풍은 흑운을 진정시키고, 다시 귀의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 정말 나방비를 깨울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귀의는 차분히 운을 뗐다.
“노부가 읽은 한 의서에 따르면 깨우는 방법이 있긴 했소. 만약 대수(大修)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가 있어, 그 경지가 몸에서 원신(元神)을 빼어낼 수 있다면, 원신으로 그녀의 세계에 들어가 그 세계에서 나방비와 직접 마주하고 설득해서 깨울 수 있다고 했소.
그것도 아니면, 정신통제술법에 정통한 사람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소. 그것도 아니면 불법(佛法)에 정통한 자가 있어, 마찬가지로 고해(苦海)에서 불러들일 수 있소. 다만 지금 세상에 불법이 진작에 몰락했으니, 그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오.”
다들 이를 갈았다. 대체 어떤 의서에 그런 방법이 적혀있는가. 원신을 빼낼 경지는 전설에서 원영(元嬰)이 깨어나 원영기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어야 가능했다. 또 세상에 정신통제술법에 정통한 사람, 불법에 정통해 고해에서 누군가를 불러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인물들을 어디가서 찾는가? 이게 말해주지 않은 것과 다를 것이 뭐지?
그때, 귀의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또 한 가지 좀 어리석은 방법이 있소. 이 방법은 같은 병력을 가진 환자의 가족에게 알려준 방법이기도 하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오.”
어쨌든 방법이 없는 것보단 나으니 흑운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말씀해 보십시오. 깊이 새겨듣고 반드시 따라 행할 것입니다.”
“스스로 육감을 무의식 속에 봉인했다곤 해도 육신은 여전히 건강한 상태요. 한마디로 육신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말이오. 사실 나방비는 지금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소.
그러니 수시로 귓가에 말을 걸고, 최대한 흥미 있어 할만한 이야기나 자극 받을 만한 이야기를 해주시오. 그럼 어쩌면 깨어날 수도 있소. 그 외에 다른 약물 같은 걸 사용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소. 설사 지금 나방비를 죽인다 해도, 죽기 전에 깨어난다고 장담할 수 없소.”
* * *
기운종.
흑석이 빠르게 누각 안 암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쪽 어두운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오상에게 보고했다.
“성존, 성경에서 보내온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확실합니다. 분명 황택사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위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황택사지 안에 요호족의 이목이 너무 많아 뒤를 쫓을 수 없었습니다.”
오상이 두 눈을 감고 물었다.
“남천무방이 언제 나오느냐?”
흑석도 의중을 파악했다. 남천무방 등이 줄곧 천마성지에 머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들어간 숫자대로 나와야 할 터였다. 한마디로, 남천무방이 나오면 그 사람도 나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오상도 처음부터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에, 황택사지로 향하는 사람을 붙잡지 않은 것이었다.
“내일이면 성경에서 나올 것입니다. 이미 확인했으니, 이대로 저들을 잡아들여야겠습니까?”
“타초경사 할 필요 없다. 그가 누군지 확인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자.”
흑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분명 마교의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마교로 같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중간에 헤어진다면,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뒤를 쫓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정말 타초경사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움직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