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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16화 (915/1,000)

1816화. 세상만사 확실한 것이 있으랴

그렇게 여무쌍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강이 다시 찾아왔다. 그는 우유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야, 오상이 약곡에 있는 안보여를 통해서 우리 쪽이 사용하는 밀문(密文)의 암호 해독문을 요구했어요.”

해당 내용은 여무쌍이 방금 우유도에게 전해준 밀서에 실려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원강은 여무쌍에게 전해줄 때 밀서의 내용을 모두 번역하지 않았고, 절반만 번역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렇게 원강이 직접 와서 구두로 전하고 있었다.

우유도가 천천히 입을 뗐다.

“우리가 주고받는 서신을 눈여겨보는 것 같네. 그걸 통해서 전체적인 줄기를 찾아내려는 거겠지.”

원강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오상의 세력이라면, 곧 우리 쪽 비밀을 모두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우리 쪽과 서신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의 신분이 폭로될 거고요. 정말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우유도가 얼굴을 굳히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비하지 말아야 해. 알아낼 수 있으면 알아내라지.”

원강은 크게 걱정했다. 우유도에게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야, 만약 문제가 생기면 단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할 거에요. 이건 정말 위험한 짓이에요!”

우유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강을 바라보았다.

“오상은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않을 거야. 이건 오상의 의심을 지울 가장 좋은 방법이지. 이렇게 해야 확실히 그의 신임을 얻을 수 있어. 오상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진심으로 안심할 수 있을 거야.

오상이 안심하기만 하면,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이건 그에게도 절호의 기회야. 걱정하지 마. 오상은 남도림과 독무허를 처리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어쩌면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 차도 살인을 하고 싶을 가능성이 아주 크지.

오상은 남도림과 독무허가 처리된 후에야 우리에게 손을 쓸 거야.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오상도 그 둘을 처리할 기회를 얻기 어려울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방법으로는 남도림과 독무허를 처리하긴 어려워. 오상의 도움이 있어야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어.

이건 홀로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내가 오상에게 제시한 유혹은 너무 커서,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야!”

원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매우 걱정이 됐다. 판이 너무 컸다. 모든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우리 쪽을 감시하며, 또 사방팔방을 둘러싸고 이쪽을 교차 감시할 거야. 그러나 감시한다고 해도 이쪽에서 나가는 전서를 가로채지, 이쪽으로 오는 걸 가로채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야. 앞으로 오상에게 알리면 안 되는 전서는 운희를 통해 부성을 나가 밖에서 날리도록 하자.”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바로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원강은 빠르게 상반신을 세웠다.

곧 운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큰 상자를 들고 있었다.

쾅!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은희를 보고, 우유도와 원강 모두 의아해했다.

“네가 원하는 사람을 잡아 왔어.”

운희가 원강에게 턱짓한 후, 상자 뚜껑을 열었다. 안엔 잔뜩 구겨져 담긴 한 사람이 있었다.

운희는 바로 그 사람을 깨웠다. 원강도 상자 앞에 다가가 누군가 천천히 깨어나는 걸 내려다봤고, 우유도는 의자에 기대앉아 그쪽을 주시했다. 또 마침 여무쌍도 나타나 서탁에 소식을 내려두고, 한쪽에 합류했다.

상자 속 사람은 초안루였다. 채홍객잔에서 오랫동안 지배인으로 있던 사람으로 원강의 요구에 얼마 전 운희가 무조행에게 잡아 오도록 지시한 자였다.

곧이어 초안루가 상자 모서리를 붙잡고, 아주 찌뿌둥한 모습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내젓다가 본인이 처한 환경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그는 첫째로 원강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왠지 어디서 본 얼굴 같았다. 그 이후 운희를 보고, 곁의 여무쌍을 확인했을 땐 경악했다. 누가 봐도 여무쌍의 얼굴을 아는 모습이었다.

끝으로 우유도에게 시선이 닿았을 때, 초안루는 거의 경악을 했다.

“우유도? 너는…….”

초안루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자신이 죽은 후 저승에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우유도는 의자에 기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잡아 오다니, 이내 우유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초안루, 오랜만이야.”

오랫동안 상자에 구겨져 있다 보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초안루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이 끊기기 전, 누군가에게 습격당했다는 것도 생생히 떠올랐다.

아니, 자신을 왜 납치한 거지? 초안루는 다시 미소 띤 우유도를 바라보다, 불현듯 잡혀 온 이유를 깨달았다. 긴장감이 극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내 초안루는 법력도 금제 당한 것을 알아차렸다.

우유도는 현재 상석에, 여무쌍조차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초안루는 상자를 나와 우유도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포권을 했다.

“도야를 뵙습니다.”

참으로 비굴한 어투였고, 자신을 한없이 낮춘 모습이었다. 지금 초안루가 우유도를 도야라 칭한 건, 예전 우유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 우유도를 도야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초안루는 우유도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당연히 과거 자신이 우유도를 모욕한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후 우유도가 빠르게 세력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보며 매우 놀라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초안루가 있는 곳은 저 높은 곳이었다. 중생을 벌레 보듯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서, 우유도가 아무리 높게 뛰어오른다 한들 그를 위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유도를 다시 만난 초안루는 세상만사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유도가 자신을 붙잡아 온 것만 봐도, 우유도의 세력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우유도가 말했다.

“과거 네놈이 호가호위하며 우리를 모욕했다.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니 감상이 어떠하냐?”

과연 그때의 일 때문이었다. 초안루는 난감한 빛으로 다급히 포권했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대인.”

원강이 호통쳤다.

“만약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남지 못했다면, 네놈의 사과를 어찌 듣고, 호가호위하는 너 같은 놈이 ‘소인’이라 칭하는 걸 어찌 들을 수 있었겠느냐?”

초안루는 다시 변명하려 했지만, 원강은 처음부터 초안루와 말을 길게 섞을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손을 뻗은 원강은 초안루의 목을 부여잡았다.

“원숭아!”

우유도가 다급히 저지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우두둑-

원강은 초안루의 목을 휘감아 아예 부러뜨려 버렸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돌아간 초안루는 눈을 부릅뜨고 입가론 붉은 피를 흘렸다.

잠시 몸을 일으켰던 우유도는 한숨과 함께 다시 자리에 앉더니, 원강을 빤히 노려보며 탄식했다.

“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어? 그럴 정도는 아니었어!”

원강은 그대로 초안루를 붙잡고 다시 상자에 집어넣으며 별말 하지 않고 빈손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저 은원을 해결했으니 피 묻은 칼은 더는 필요 없다는 모습 같았다.

운희는 그렇게 멀어져 가는 원강을 보며 어이가 없어졌다. 무조행 일행이 먼 길을 떠나 어렵게 잡아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도 몇 마디 나누지 않고 한순간에 목을 분질러 버린단 말인가?

우유도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다들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지요? 원숭이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끔은 나보다 더 잔인한 면모가 있어요.”

“이게 다 도야를 대신해 원한을 갚은 것 아니겠습니까?”

여무쌍은 곧바로 원강의 편을 들었다. 우유도는 여무쌍을 힐끗 보며 또 한 번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과연 한 가족이 아니면 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틀린 것 하나 없군요. 벌써 편을 드는 겁니까?”

여무쌍은 빵끗 웃으며 그대로 뒤돌아 그곳을 떠나갔다.

사실 여무쌍의 변화도 적지 않았다. 최근 그녀는 웃음이 많아졌다. 여무쌍 스스로도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온 이후, 여무쌍은 더는 이것저것 방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더는 의도적으로 위엄을 보일 필요도 없으니, 웃고 싶으면 웃고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냈다.

저 높은 곳에 군림하던 시절엔 사람도 많았지만, 늘 외롭고 쓸쓸했었다.

지금 여무쌍은 처음 원강과 혼인을 계획하고 마주하려 했던 미래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환경도 사람을 바꿀 수 있었다.

이윽고 우유도는 엉망진창으로 상자에 널브러진 초안루를 힐끗 보고, 가지고 나가라며 운희에게 손짓을 했다.

결국 운희는 상자째로 초안루를 끌고 나갔다.

사실 운희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도운산 산주로 있을 당시 그녀는 별로 웃음이 없었다. 심지어 말조차 별로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모두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었다.

* * *

후진군 중군 군막.

전투가 잠시 멈췄을 때, 효월각 각주 노연이 장로들을 이끌고 왔다.

마침 휘하 장수들과 전략을 상의하던 나조는 멈칫했다.

노연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려달라 손짓했다. 이에 나조는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지만, 무슨 문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곧이어 주위 사람들이 물러가자 노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나조에게 통보했다. 상조종 쪽에서 성의를 보여 자신들을 포섭하고자 했고, 효월각이 이미 승낙했으며 곧 제국 경내에서 철수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나조는 크게 동요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상조종이 갑자기 왜 효월각을 포섭한단 말입니까?”

“진국의 야심을 모르는 사람이 없소. 언젠가 동벌에 나설 것이오. 상조종은 당연히 진국의 동벌을 저지하기 위한 힘을 모으려 하지 않겠소? 상조종은 영역을 너무 빠르게 확장했소. 마침 천하 수행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오.”

나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먼 길입니다. 우리 쪽 군량이 부족하니, 진국의 군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떠난다면 멀리 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 후진군의 100만 장병이 서병관을 어찌 지납니까?”

노연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나조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조는 뭔가를 깨달았다.

“지금 효월각은 100만 병력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말입니까?”

“진국은 분명 우리 후진군을 전투의 선봉에 내세워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할 것이오. 100만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를 일이지. 아마 우리 효월각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오. 또 나중에 진국은 우리 효월각이 독자적인 병권을 가진 걸 두고 보지 않을 테니 후진국 병력을 해산시킬 것이오.

진국의 기세가 참으로 거만하오. 앞으로도 우리는 진국의 눈치를 보아야겠지. 반면에 상조종은 인재에 목말라 있소. 또한 우리를 후대하겠다고 약속을 했소. 둘을 비교하면 어디를 골라야 할지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지.”

나조는 속으로 상조종이 인재에 목말라 있는 건 맞지만, 효월각이 과연 인재라 할 수 있느냐고 중얼거렸다. 가봤자 결국 또 그쪽의 눈치를 봐야 하지 않나? 설마 그곳에 가면 효월각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라도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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