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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18화 (917/1,000)

1818화. 지붕 밑

곧이어 상숙청이 마차에 오르고, 전방에 길을 막아서고 있던 왕부 호위들도 물러났다. 이에 흑석도 주렴을 내리고 마차 벽을 두드렸다. 오상과 흑석의 마차는 천천히 움직이며 상숙청의 마차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은아를 발견한 후, 집중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저 은아가 처음 나타났을 때가 바로 몇 년 전 만수문이 첫 번째 영수대회를 열었을 때였습니다. 접몽환계가 닫히지 않게 된 그때 말입니다.

그때 우유도가 은아를 데리고 초려산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천도비경이 열린 후, 은아는 갑자기 다시 또 사라졌지요. 그리고 이번에 성나찰이 인간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후, 저 은아가 다시 초려산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상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성존, 여러 가지 사건들을 종합해 판단을 내리자면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란 것입니다. 흑리의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상이 느리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만수문 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구나.”

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마차가 임시 왕부를 지날 무렵, 흑석이 마차 주렴을 살짝 들췄다.

“이곳이 초려산장의 임시 거처입니다. 여기서 획득한 전서를 해독했습니다. 흑리가 배후 세력과 주고받으며 사용한 암호 해독문으로 지금까지 얻어낸 전서들을 모두 해독했습니다. 흑리가 한 말은 다 사실이었습니다.”

“쓸모있는 정보가 있더냐?”

“번역된 소식이 포괄하는 범위를 보면, 초려산장의 물이 정말로 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암중에 사통팔달로 통하며, 아주 넓은 곳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다만 발송하는 전서는 대부분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아직 쓸모있는 정보를 발견하지 못해서, 여태 성존께 보고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금시를 한 마리씩 추적해서 누구와 연락하는지 파악하도록 해라.”

흑석이 잠시 머뭇거렸다.

“성존께서 한 달의 기한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마리씩 뒤를 쫓다가는 시간을 넘기게 될 것입니다.”

“기한은 취소한다. 지금은 초려산장과 연락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아보는 게 최우선이다. 잊지 마라. 느릴지언정, 절대 타초경사 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흑석이 대답했다.

마차는 왕부 앞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성문을 떠나 저 멀리 사라져갔다.

* * *

작은 마을.

일전에 일어난 전쟁의 영향으로 황폐해진 곳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마을 내부에선 일부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주변 정리 중이었다.

잠시 후, 6천여 명의 효월각 인원이 여정에 지친 모습으로 들어왔다. 이 마을은 상조종 쪽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이었다.

“나 장군님께선 처리할 일이 있으셔서 미처 도착하지 못하셨습니다. 이곳 주변은 휴식을 취할만한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각주님께서는 일단 여기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각주님께서는 일단 제자들에게 짐을 풀라고 명하시지요. 마을은 저희가 일단 정리해뒀습니다. 각주님께서도 허름하다 탓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에 먼저 도착해 청소를 책임진 백부장이 우렁차고 힘 있게 말했다. 겨우 백부장이었다. 평소라면 노연이 안중에 둘리도 없는 인물이지만, 지금 그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겠네. 수고했네.”

노연이 뒤돌아 손짓하자 즉시 한 사람이 나와 품에서 금 1백 냥의 전표를 꺼내 들었다. 백부장도 사양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였다.

“따로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여기 있던 백성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효월각은 각자 원하는 곳에 머물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마을에서 가작 큰 장원은 장군을 위해 준비한 곳입니다.”

이는 효월각에게 그곳을 건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노연은 내심 불만이 있었지만, 그래도 미소로 화답했다.

“나 장군은 행군의 중추이니 당연히 가장 넓은 곳을 사용해야지.”

백부장이 물러가고, 노연은 짧게 손짓을 했다. 그 손짓 하나에 즉시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져 마을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한 마차가 마을에 들어섰다. 곧이어 하영패와 장홍이 내려서 황량한 마을을 한번 둘러보았다. 왠지 보고 있는 이의 마음도 황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 모자를 적당한 곳에 안배했을 때 한 기마가 달려왔다. 효월각 수행자로, 연락망을 담당한 제자였다. 그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보고했다.

“각주님, 나대안이 오고 있습니다. 반 시진 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노연이 장로들에게 손짓했다.

“이제 우리가 저들 지붕 밑으로 들어가게 됐으니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소. 일단 저들의 체면을 세워줘야지. 갑시다. 같이 배웅하러 가십시다.”

그렇게 한 무리가 마을 정문 입구로 이동했다.

* * *

저 멀리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리고,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렇게 바람처럼 달리는 한 기병 부대가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며, 효월각 한 장로가 탄식을 했다.

“영양무열위가 왔나 봅니다. 기세가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해 보입니다!”

3천 기병이 마을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다 선두를 이끄는 장수가 장창을 높이 치켜들자, 벼락처럼 움직이던 기병들이 잔잔한 물결처럼 우뚝 멈췄다.

여기저기 전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기병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효월각 사람들을 향해 밀려들었다.

흙먼지가 서서히 옅어진 후엔 ‘나(羅)’라고 적힌 깃발 아래, 갑주를 입은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지만, 한 손엔 오철(烏鐵)로 만든 장창을 들고 흑색 윤기가 흐르는 전마 위에 오연히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나대안이었다.

전쟁터를 전전한 장수로서 당연히 그 조건이 좋을 리 없었다. 나대안의 얼굴도 과거보다 많이 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활력만큼은 흘러넘쳐서,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짧은 수염을 기른 나대안은 얼핏 보기엔 젊어 보여도 이미 50만 대군을 이끄는 사령관이 됐다. 이번 후진국을 점령할 때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그를 얕잡아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몽산명의 수제자이기까지 했다. 몽산명의 지지와 교육 아래 단련할 기회도 있었기에, 나대안이 오늘날은 아버지 나안이 이룬 성취를 크게 넘어서고 있었다.

나안은 과거 3만 병력도 지휘한 적 없는 인물이었다. 당연히 아들 나대안과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안은 충심이 남다른 인물이라, 본인 몸을 날려 몽산명의 화살을 막아섰고, 몽산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야말로 목숨으로 두 아들 출셋길의 활로를 튼 것이었다.

나안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종군을 하며 몽산명을 사부로 모시고, 하나는 관리가 되어 남약정을 사부로 모셨다. 아들들의 사부 모두가 남주 군정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출셋길은 탄탄대로나 다름없었다.

그로 인해 나안의 아내 역시 지금 남주 세력에서 한 손에 꼽는 귀부인이 되어, 남부럽지 않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두 형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몽산명도, 남약정도 두 형제를 억지로 등용할 순 없었을 것이었다.

곧이어 양측에서 수호 법사들이 말을 움직여 나대안을 좌우에서 보호했다. 그들은 효월각 인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대안은 가만히 앉아 사람들을 훑어보다, 박력 있게 운을 뗐다.

“나대안이오. 어느 분이 노 각주시오?”

노연은 앞으로 나와 크게 웃으며 포권을 했다.

“효월각의 노연이오.”

나대안은 들고 있던 창을 부장에게 건네고 말에서 뛰어내린 후, 성큼성큼 걸어와 정중히 포권을 했다.

“노 각주를 뵈오.”

“나 장군을 뵙소.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이루셨다고 명성이 자자하오!”

노연은 나대안 앞에 아주 예의 바르게 굴었다. 어쨌든 앞으로 자주 만나고 교류를 이어 가야 할 사이 아닌가.

곧이어 노연이 뒤편 장로들을 소개하자, 나대안도 예의 있게 인사를 나눴다. 장로들도 모두 예의를 차렸다. 최소한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나대안이 효월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효월각은 남주의 휘하로 들어가기로 했고, 아직 자리도 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알아서 주제 파악을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젊은 장군의 배경은 보통이 아니었다. 최소한 남주에서는 절대적인 상조종의 심복이고, 몽산명의 제자이기도 했다. 다른 건 차치하고, 나대안의 호위 병력이 상조종의 영양무열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노연이든, 다른 장로든 나대안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일단 이쪽이 확실히 자리를 잡은 후의 일이었다.

노연은 다시 종군하는 자금동 수행자 중 요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어찌 보면 배알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자금동의 세력 범위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양측은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로 들어갔다. 나대안이 이끌고 온 병력과 수행자들이 마을로 먼저 뛰어가 나대안이 머물 저택을 통제했다. 이제 마을은 사람으로 넘쳐나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 * *

나대안 등이 머물 곳에 도착했을 때, 선발대는 이미 저택을 샅샅이 살펴본 후였다. 양측은 마루에 앉아 다시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나대안이 갑작스러운 말을 던졌다.

“노 각주, 이번에 효월각과 같이 노산사주(魯山四州)로 가긴 어렵겠소.”

효월각 사람들은 멈칫했다.

노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왕야께서는 장군께 효월각과 같이 이번 일을 처리하라고 하지 않으셨소? 설마 책임자가 바뀌었소?”

나대안이 손사래를 쳤다.

“오해하셨소. 원래는 같이 움직이려 했지만, 중간에 백주에서 보내온 급보를 받았소. 일부 장수가 왕야의 명을 듣지 않고, 중간에 착복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오. 내가 직접 가서 처리할 일이오. 어쩌면 일부를 죽여 왕야의 위엄을 드러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소!

오래 끌어서는 안 되는 일이오. 그대로 뒀다가 사람들이 왕명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왕야께 뭐라 변명한단 말이오? 이건 아주 긴급한 일이니, 내 이곳에 머물 시간은 길어야 앞으로 세 시진이오. 후속 부대가 도착하는 대로 다시 움직여야 할 것 같소.”

노연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그럼 우리 효월각이 노산사주로 향하는 일이 뭔가 바뀌는 것이오?”

나대안이 손사래를 쳤다.

“걱정하실 것 없소. 4주를 효월각에 할양하는 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오. 얼마 후면 이곳에 새로 모집한 20만 대군이 도착할 것이오. 효월각은 그들과 합류해 감군 역할을 하며 노산사주로 향하면 될 것이오.”

그리고 손짓하자 부장이 한 영전을 꺼내 노연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노연은 물음을 구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나대안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건 내 감군영전(監軍令箭)이오. 새 부대가 도착하면 그 영전으로 대군을 호령할 수 있을 것이오. 만약 항명하는 자가 있다면, 선조치 후보고를 해도 좋소! 하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20만 대군에 내 사람이 있으니, 내 단단히 일러두겠소. 효월각 행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오.

노 각주, 백주 일을 지체할 수 없소. 반드시 빠르게 가서 처리해야 하오. 그러니 노산사주를 할양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이리 급히 처리할 수밖에 없소. 백주 일을 모두 마치면 다시 노 각주가 있는 곳을 방문하겠소. 만약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그러니 일단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해줬으면 좋겠소.”

노연은 한 손에 영전을 꽉 움켜쥐고 진지한 얼굴로 정색을 했다.

“아이고! 군무가 중요한 것 아니겠소? 장군은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당연히 지체해선 안 될 것이오. 정말로 우리 때문에 시기를 놓친다면, 우리가 왕야를 뵐 면목이 없소.”

지금 노연의 최대 관심사는 노산사주를 건네받는 것이었다. 그것만 문제없다면 다른 것은 대수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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