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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21화 (920/1,000)

1821화. 효월각의 종말

20만 대군의 수많은 궁수가 일정 간격으로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기고 돌아가며 화살을 쏘았다. 중간엔 불화살도 합류했다. 마을로 날아간 불화살 중 일부는 기름이 있는 곳에 추락하며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큰불이 일며 마을의 독연은 더 진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장애물 뒤에 몸을 숨긴 사람들을 더더욱 곤경에 빠트렸다.

이윽고 기마 부대가 나타났다. 땅을 울리며 나타난 군단은 바로 나대안이 이끄는 3천 영양무열위였다.

그들은 마을을 포위한 대군 뒤로 다가가, 싸늘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안장에 앉은 나대안의 얼굴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장홍과 하영패도 그 안에 속했다. 모자는 당연히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직접 보면서도 지금 이 참혹함을 믿을 수가 없어서, 두 사람 모두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 시각, 한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노연이 피를 토했다.

그는 정면에서 날아온 강철 창은 피했지만, 뒤에서 날아온 강철 창은 피하지 못했다. 중독으로 인해 반응이 느려졌고, 손발에 힘도 빠졌다. 결국 등을 관통당한 노연은 아예 나무에 박혀버렸다.

아직도 귓가엔 참담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선혈을 토한 노연은 비통한 비명까지 온 힘을 다해 토해냈다.

“상조종!!! 귀신이 되어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비명이었다. 이것이 함정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조종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자신들을 죽이려 할 줄이야…….

이내 노연은 천검부를 꺼내 기운을 개방해 눈앞의 나무를 가루로 만들고, 하늘을 뒤덮은 화살비를 막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천검강기는 사라지고, 노연이 뒤를 돌자 또 다른 창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이제 몸에 강철 창 2개가 박힌 노연은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뒤이어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비는 노연을 마치 고슴도치처럼 만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노연의 입가론 끊임없이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이제 공성노의 공격이 멈추고, 화살만 계속 쏟아졌다. 그렇다고 공성노가 공격을 멈춘 건 아니었다. 언제든 각도를 바꿔 쏠 준비를 끝냈다. 일단 누군가 마을을 벗어나려 하면 그 즉시 공성노를 교차 사격해 격살할 터였다.

대군 사이에 무기를 든 수행자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손에든 무기를 휘두를 기회조차 없었다.

사실 이건 모두 충분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사전에 몰래 독연을 일으켜, 마을에 있는 효월각 제자들을 굼뜨게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화살을 아끼지 않고 퍼부으니, 화살을 뚫고 나오는 이도 찾기 어려웠다. 설혹 운 좋게 몸을 빼내도, 공중에서 고슴도치가 되어 땅으로 추락했다.

일부는 장애물로 몸을 가리고 대군을 향해 돌진하기도 했지만, 진영을 이룬 병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적이 진영으로 파고들든 말든, 궁수들은 그저 돌아가며 화살을 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게 무슨 새로 만든 신설 부대란 말인가. 누가 봐도 오랫동안 훈련받은 정예병이 틀림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일에 신병을 보낼 수 있겠는가. 이건 우유도가 직접 지시한 중요한 일이었다. 상조종은 이번 일을 어설프게 처리했다가 섭정왕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의 성패에 연국의 군정 대권을 쥘 수 있는지 여부가 달린 건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상조종은 남주 병력 중 최고의 정예부대를 모으고, 대량의 공성노와 수없이 많은 활을 함께 보냈다. 20만 병력 가운데 7할이 활을 들고 있었다. 천하에 이런 규모로 무장을 한 부대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상조종은 나대안에게 목숨을 걸라는 명령을 내렸다. 몽산명 또한 실패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관없다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수없이 강조했다.

포위한 병력 사이를 파고든 효월각은 곧이어 종군 수행자들에게 하나둘 목숨을 잃어갔다. 원래부터 독연으로 움직임이 굼뜬 상태였다. 창과 화살을 뚫고 병력이 있는 곳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까지 몰아붙인 상태였다. 효월각은 결코 남주 수행자들과 싸워 이길 수 없었다.

* * *

공격 시간은 길지도 않았다. 대략 반 시진이 지나, 지휘관이 손을 휘둘렀다. 그 명령에 벼락같던 대군도 드디어 공격을 멈췄다.

포위된 마을은 이미 불바다로 이루어진 무덤이 됐다.

대군을 지휘하는 손 장군은 다시 손을 휘둘렀다. 1천 여에 달하는 수행자들은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마을로 날아올랐다. 불을 끄고 생존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땅을 파고 도망친 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일부 병력도 전진하기 시작했다. 도수(刀手), 장창수(長槍手), 궁수로 이뤄진 10명이 한 조가 되어, 한 걸음씩 움직여가며 마을을 소탕했다.

생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직 숨어 붙어있거나, 이미 죽은 시신에도 칼을 찔러 넣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행자가 있으면 궁수들이 즉시 활을 쐈고,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는 수행자에겐 수많은 장창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일어나려 발버둥 치면, 병사는 달려들어 그대로 머리를 베어 버렸다.

“이런 전투는 해 본 적도 없고, 저렇게 멍청한 적도 처음 본단 말이지. 적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한곳에 모여 포위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니. 정말로 희한하군!”

일개 병사로서 상부가 배후에서 어떤 계략을 꾸몄는지 알 순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포위해 죽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공격하는 병사로서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 포위 공격을 하는 장수들조차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이번에 효월각이 나조처럼 전투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데려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나조는 대군의 움직임과 보유한 화살을 보면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을 터였다. 또 이 마을 주위 환경이 포위 공격을 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라 틀림없이 그의 경각심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효월각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이상한 걸 감지하지 못했다. 포위 공격을 당하고서야 함정인 것을 알아채고 말았다.

* * *

장홍 모자는 멀리서 효월각의 씨를 말리는 장면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제 자신들을 기다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을에 불길은 다 잡혔지만, 대군은 마을을 반복해 수색하며 모든 시신에 칼을 박아 넣었다. 도살……. 단 한 명에게도 자비 없는 진정한 도살이었다.

전투에 참여한 장병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크게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전투가 있고, 사람이 죽는 건 극히 정상적인 일 아닌가?

그러나 전투에 참여한 수행자들은 땅에 가득한 시신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효월각 수천의 수행자들이었다. 수행자들이 이 짧은 시간에 겨우 속세의 대군에게 도살을 당했다.

남은 건 전장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화살과 강철 창을 회수하고, 부서진 건 기술자에게 가져가 수리하기도 했다.

수행자들과 의견을 나눈 손 장군은 도망친 자는 없다고 확신했고, 노연의 수급을 들고 나대안에게 달려갔다.

손 장군은 수급을 진상하며 작전 임무 완수를 정식으로 보고했다. 노연의 머리를 확인한 장홍 모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가 밀려들었다.

이내 나대안이 휘하의 병력을 재배치한 후, 그대로 말머리를 돌리려는데 하영패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나 장군! 초려산장 도야가 바로 제 사부입니다…….”

말을 하는 하영패 스스로도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굳이 용기를 낸 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우유도가 남주 세력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쓸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하려 했다.

곧이어 나대안이 말을 멈춰 세우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만약 도야가 아니었다면, 당신이 도야의 학생이 아니었다면, 당신들 모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누군가 당신들을 남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곳을 떠나갔다.

나대안은 이 일이 우유도의 뜻이란 걸 몰랐고, 우유도가 살아있다는 건 더더욱 알지 못했다.

모자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야 나대안이 자신들만 마을에서 데리고 나온 이유를 깨달았다. 도야의 학생이라는 명분이었다. 모자는 그제야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주로 출발하기 직전, 두 모자는 폐허가 된 마을을 한번 둘러보았다. 둘의 머릿속엔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났다.

효월각은 정말 이대로 종말을 맞았나?

만약 정말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지네는 몸통이 잘려도 꿈틀댄다는 말이 있었다. 천하 각지에 아직 효월각 이목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효월각에서도 신분이 낮은 그들이 어찌 큰일을 도모할까.

이젠 효월각이 수행계에서 철저하게 쓸려나갔다고 해도 무방했다.

후진국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깔끔히 사라진 옛 역사가 됐다.

* * *

남주, 영무당 내부.

“좋아! 대안이 이번 일을 아주 깔끔히 처리했소. 병력 배치가 주도면밀했고, 움직임은 대담하고 세심했지. 과연 몽 사령관님 제자요. 몽 사령관님 기풍이 그대로 묻어나니 본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소!”

상세한 승전보를 받아본 상조종은 나대안의 순조로운 임무 수행에 매우 기뻐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조마조마했던 마음도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

남약정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잘 처리했습니다. 이 일로 대안은 천하에 이름을 떨칠 겁니다!”

그러나 몽산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교만한 군은 패하게 되어있지요. 고수를 만나면 언젠가 크게 당할 겁니다! 전 그 아이가 크게 당하기 전에 실패를 좀 겪었으면 합니다.”

몽산명은 이번 나대안의 움직임 속에, 뼛속까지 가득한 오만함을 보았다. 여태 남주 고위층 곁에 너무 오래 머물렀었다. 남주에선 모두 나대안에게 양보했으며, 전쟁에서 패한 적 없는 그에게 겸손할 틈은 없었다.

몽산명이 보기에 후진국을 점령한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효월각을 몰살시킨 것도 적이 대비하지 못했을 때 기습한 것에 불과했다. 이미 나대안을 위해 대 전략을 세워놓은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는 진정한 전투라 하긴 어려웠다. 만약 이 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그로 인해 더 오만해진다면, 그건 나대안에게 좋을 게 없었다.

남약정도 몽산명이 뭘 걱정하는지 깨닫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상조종은 크게 기뻐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몽 사령관님 기준이 너무 높은 겁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능력만 해도 이미 매우 뛰어난 것이지요.”

몽산명은 더 이상 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왕야, 도야께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상조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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