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화. 복수
세 사람이 우유도를 찾아와 효월각을 몰살시킨 소식을 전했을 때, 우유도는 그저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우유도는 이미 사전에 다른 경로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금 서탁 위에 올려진 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유도도 방금 막 다 읽은 참이었다.
이렇듯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는 우유도를 보고, 다소 흥분했던 상조종도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도야, 상경은 중간에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금시로 옮기기 어렵습니다. 또 지금은 표묘각 때문에 날짐승을 운용할 수도 없으니…….”
“추후 운 누님이 왕야께 연락을 드릴 겁니다. 왕야는 그저 나대안에게 물건을 전할 방법만 잘 전하면 됩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가져오겠습니다.”
상조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유도 곁에 있는 운희를 바라보자, 운희는 나중에 상조종에게 연락을 취하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섭정왕의 일은 이미 처리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보름 안에 뭔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왕야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유도는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듯 손을 뻗었다.
상조종, 몽산명, 남약정은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좀 의외였다. 까닭은 모르지만, 오늘 도야의 기분이 다소 저조해 보였다.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작별을 고했고, 남약정이 륜의를 밀고 움직였다.
그런데 몇 걸음 움직이기 전, 우유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왕야의 아버님 영왕은 바로 효월각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멈춰 섰다. 상조종은 멀거니 커진 눈으로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남약정과 몽산명 역시 뒤돌아 멍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운희도 의외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쪽과 관련된 정보를 접한 적이 없어서, 당연히 우유도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야, 혹시 당시 참변에 대해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남약정이 약간 흥분한 모습으로 물었다. 남약정의 사부 낙소부 역시 그때의 참변으로 목숨을 잃었었다. 줄곧 진상을 몰랐지만, 이제 그 진실이 밝혀지려 하니 세 사람이 어찌 차분할 수 있겠는가.
우유도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대략 어찌 된 일인지 알아냈습니다. 효월각 전임 각주 옥창이 직접 손을 썼고, 영왕께선 옥창의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배후엔 연국 황제 상건웅의 수작질이 있었지요. 옥창은 효월각 수행자들을 이끌고 암살을 시도했고, 상건웅은 경기사대통령 중 한 명인 왕횡을 보내 매복하게 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왕횡의 휘하 병력은 모두 살인 멸구 당했습니다. 영 왕비와 왕야의 형님 낙소부 또한 다 그때 목숨을 잃었지요. 그 일의 배후에 천마성존 오상도 끼어들었습니다. 그 후 동곽호연과 당목을 포함한 상청종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모두 오상의 수하들에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세 사람은 진정할 수 없었다. 줄곧 힘들게 밝히려 했던 진상이었다.
한참이 지나, 몽산명이 물었다.
“도야, 천마성존도 영왕을 박해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말입니까?”
“사실 그 모든 일은 오상이 배후에서 획책한 것입니다.”
상조종이 비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대단한 천마성존이 어째서 부왕을 죽인단 말입니까!”
부모, 형이 모두 살해당했고, 상조종은 뇌옥에 갇혀 고통을 받았다. 그 나날들을 단순히 비통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시 영왕은 오상이 목표로 삼을 만큼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오상은 그저 각 세력의 갈등을 이용해 판을 만들고, 파악한 각 세력의 상황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상경을 미끼로 그 참변을 촉발시킨 겁니다.
그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 얽혀있습니다. 배후엔 단순히 영왕에 대한 상건웅의 두려움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시 영왕, 낙소부, 내 사부 동곽호연과 상청종 장문인 당목이 거의 동시에 목숨을 잃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영왕 등은 자중해야 함에도 암중에 뭔가 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세상엔 잘잘못을 가리기 어려운 일이 있지요. 그 일에 얽힌 사람들 배후엔 각자 추구하는 이익과 바라는 것이 있고, 그로 인해 서로 얽혀들었을 뿐입니다.
지금 당장은 왕야께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도 꼭 좋은 건 아닙니다. 흉수가 누구인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너무 많이 알아도 쓸모가 없습니다.
오상과 관련된 일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는 묻지 말고 내게 맡기십시오. 때가 되면 따로 알려드릴 것입니다.”
확실히 알려주기 쉽지 않았다. 오상이 마전 때문에 조웅가를 자극하려 그 사건을 일으켰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조웅가 또한 영왕 등에게 이용당했다. 영왕 쪽은 조웅가에게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는 비법을 알아내고, 10만 까마귀 장군을 만들어 냈다. 지금 저들에게 까마귀 장군에 대한 일을 알려줄 순 없었다.
우유도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세 사람도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하는 건, 효월각을 멸문시킨 일은 곧 천하를 술렁이게 할 테고, 남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주는 천하 사람들에게 합당한 변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국 3대 문파는 모두 왕야를 꺼리게 될 것입니다!”
이어진 우유도의 말에, 세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효월각을 멸문시킨 건 바로 영왕의 복수란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가문의 복수라면, 천하 사람들도 충분히 설득할 만한 이유였다.
“알겠습니다.”
상조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도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상건웅도 왕야의 가족을 죽인 흉수 중 한 명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에게 복수할 건지, 계속 그 섭정왕을 추진할 건지 알아서 결정하십시오. 결정을 내린 후엔 운 누님에게 최대한 빨리 알려 주십시오. 그럼 3대 문파에 연락을 취할 것이고, 연경에서도 사전에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상조종이 대답했다.
이윽고 우유도의 손짓에 세 사람이 포권을 하며 떠나고, 우유도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뭔가 계속 쓸쓸한 기운이 그를 감돌고 있었다.
운희 역시 우유도가 효월각을 멸문시킨 후부터 기분이 저조하다는 걸 느꼈다. 단 한마디 명령으로 6천이 넘는 목숨을 죽였기 때문일까.
* * *
소통이 필요하면 소통을 해야 했다. 운희는 밖에 모습을 드러내 상조종을 방문하고 상경을 가져오는 일의 일정을 조율했다.
동시에 상조종의 결정을 가지고 돌아왔다. 상조종 일행은 이성을 잃어 상건웅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대국을 위해 여전히 황위에 오르는 것을 미루고 섭정왕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일단 대권을 손에 쥐고 있기만 하면, 상건웅을 손에 쥐고 통제할 수만 있다면, 죽이든 살리든 결국 상조종의 마음이었다.
효월각을 몰살시키기 위해 그야말로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당연히 비밀로 할 수 없었고, 비밀로 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소식이 퍼지고, 예상대로 천하가 술렁거렸다. 특히 수행계 각 세력에 거대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 대단한 효월각이 한 시진도 못돼 속세의 대군에게 도살당했다. 일단 선례가 있고 누군가 시작했으니 어느 수행계 문파가 꺼리지 않겠는가? 자신들이 통제하는 속세의 대군을 바라보는 눈빛조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면 나대안은 이번 일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속세든, 수행계든 다들 나대안이 직접 대군을 지휘해 효월각을 쓸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
“뭐라? 상조종이 효월각을 몰살시켰다고?”
서재에 있던 소평파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처 죽이지 못한 잔 물고기들이 있긴 하겠지만, 앞으로는 효월각 소속이라는 건 깊게 숨기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상조종의 태도를 보면 아마 그 잔 물고기들은 감히 신분을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소평파가 놀란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는 서재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상조종이 어째서 그랬을까? 진국에서 효월각을 빼낸 게 도살하기 위해서라고? 이번 일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설마 연국 3대 문파가 그를 꺼려도 상관없단 말인가? 효월각을 몰살시킨 게 꼭 화풀이하려는 것 같군!”
그 순간, 소평파가 갑자기 발걸음을 우뚝 세웠다.
“우유도!”
소삼성이 아연실색했다.
“우유도 말입니까?”
소평파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상조종이 효월각에 무슨 대단한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이처럼 득보다 실이 많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남주에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우유도 정도는 되어야 상조종에게 그런 짓을 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지…….”
그는 과거 제국의 일을 떠올렸다. 효월각이 우유도를 추격했고, 소조는 그 일에 개입했었다. 그러니 소평파가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소평파는 이를 악물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우유도는 죽지 않았어!”
소삼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우유도는 추후 효월각과 화해하지 않았습니까? 양측은 아주 유쾌하게 협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옥창과 호형호제하기도 했지요. 후진국을 세울 때도 우유도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평파가 돌연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도움? 내가 볼 땐 그저 경거망동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효월각은 암중에 숨어 있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옥창을 죽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연히 쉽게 건들 수 없다. 그랬다간 효월각은 뼈에 기생하는 구더기처럼 더 깊이 숨어들 테고, 초려산장은 영원히 평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유도의 행동 양식을 보면, 낚싯줄을 길게 풀어 큰 물고기를 낚으려 한다. 효월각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효월각을 물 밖으로 끄집어낸 후, 기회를 봐서 일망타진하는 것이지!”
소삼성은 곤란한 얼굴이었다. 일단 우유도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일이 생기면, 소평파는 그 즉시 심병(心病)이 발작해 이것저것 모든 것을 의심하곤 했다. 성경에서조차 우유도가 죽었다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 우유도가 살아 있다니. 소삼성은 다시 소평파 설득에 나섰다.
“공자님, 확실히 효월각이 우유도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효월각을 멸문시킬 정도의 큰 원한입니까?”
소평파는 멈칫하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부분은 소평파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이 모든 게 우유도의 계획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번 일에 앞뒤로 이어진 수법이, 우유도의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
소평파의 중얼거림에 소삼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소평파는 어떻게든 이 일을 우유도와 얽어보려 하고 있었다. 이에 소삼성도 그냥 소평파가 실컷 고민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렇게 집사로서 처리할 일들을 위해 그대로 서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