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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29화 (928/1,000)

1829화. 대연 섭정왕

한편, 경성을 떠나 각지로 가던 경기 수비군 네 부대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첩보사와 군정 체계 쪽엔 여전히 상건웅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겉으론 통제를 받아들였어도, 암중에 네 부대에 소식을 전해 급히 경성으로 가 황제를 구하라 전했다.

하지만 상영충이 이미 가짜 황명을 내려 사군(四軍)의 지휘관을 비롯한 지휘부를 갈아치워 버렸다. 새로운 지휘관은 당연히 주저했다. 상건웅을 구했다가 자신들도 이번 일에 가담했다고 의심하면 어쩐단 말인가?

다만 상건웅이 이 네 부대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아서, 상건웅이 위험하단 소식이 들통난 후엔 새 지휘부는 더 이상 부대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 네 부대가 경성을 벗어날 당시, 워낙 다급히 움직인 까닭에 가진 군량이 많지 않았다. 보급도 마찬가지였다. 상영충이 말한 전방의 보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인가?

또 자금동, 소요궁, 영검산 일파의 병력이 제일 빨리 움직여 각기 네 부대의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결국 배고픔에 지쳐가던 네 부대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무장 해제 후 항복했다. 그리고 상건웅에 충성했던 자들은 다시 또 피의 숙청을 당했다.

숙청이 끝난 후, 네 부대는 갈기갈기 찢어져 그들을 막으러 달려온 각 부대에 흡수되었다.

이는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계획된 정변이었다. 상건웅의 직속 측근들이 처리되면, 이미 대세는 기운 것이었다.

드디어 연국 조정은 상건웅의 이름으로 상조종을 연국 군정 사무를 총괄하는 섭정왕으로 삼는다는 황명을 내렸다.

연국 각지는 별 동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소란은 있었다. 다시 각지마다 숙청이 진행됐다. 각지에 상건웅이 파견한 감군 같은 자들이 모두 다 숙청된 것이었다.

동시에 상조종을 위한 밑밥도 깔렸다. 조정 관원들은 본인들이 정변에 참여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공식적인 폐위의 명분이 생겼다. 상건웅이 영왕을 죽인 건 황위를 노린 것이었으며, 진정한 황좌의 주인은 영왕으로 상건웅이 암중에 그 자리를 강제로 빼앗은 것이라 공표했다. 한마디로 영왕의 아들인 상조종이야말로 진정한 연국의 군주라는 이야기였다.

이 조정의 인물들은 이런 수작에 아주 뛰어났다. 끝내 그들은 상건웅을 배척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껏 그들의 주군이었던 자에게 똥물을 끼얹었다.

* * *

상영충을 선두로 한 일행이 쉬지 않고 달려 남주부성에 도착했다. 다들 먼지를 뒤집어쓰고, 매우 지친 모습에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성문 밖에 말을 세운 상영충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 유독 선명하게 비치는 성명(城名)이 있었다.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영충의 불안함은 아직 가시질 않았다.

* * *

새롭게 지어진 왕부에 귀빈이 도착했다.

총총걸음으로 들어선 상영충은 상석에 우뚝 서 있는 상조종을 보고 두말하지 않고 달려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격동에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듯 연신 흐느꼈다. 지금 상영충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눈에 핏발도 서려 좀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또 웃통을 벗은 등에 가시나무를 지고 있어, 등은 긁힌 상처로 말이 아니었다. 전형적인 부형청죄(*負荊請罪: 죄를 인정하고 처분을 청함)의 모습이었다.

상조종 좌우의 몽산명, 남약정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영충이 정말로 이런 염치없는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모습이었다.

상영충은 그렇게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직접 가져온 긴 상자에서 고동색 금속 지팡이를 꺼냈다. 그리곤 황명을 꺼내 두 손으로 정중히 바쳤다.

“폐하께서 섭정왕으로 세우시겠다는 황명입니다. 이건 진국신기 복선장입니다. 죄신(罪臣)이 직접 가져왔나이다. 죄신은 폐하께 속았습니다. 그 죄는 죽어 마땅하기에 죄를 청하기 위해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도 경성의 일을 당연히 잘 알았다. 상영충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또 상영충이 섭정왕으로 봉하는 황명을 직접 가지고 올 것이라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사실 직접 오려는 이가 적지 않았다. 결국 이 상영충이 그 기회를 쥐었으니, 세 사람은 이것이 바로 고견성의 뜻임을 알았다. 상영충이 공을 세워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이는 고견성의 깊은 뜻이었다. 상조종 쪽도 그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상조종이 상영충조차 용서한다면, 다른 이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터였다.

고견성 같은 경우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굳이 이런 공로를 가지고 다툴 필요도 없었다. 고견성은 자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상조종은 절대 그를 건들지 못할 것이었다. 또 고견성은 지금 경성에서 상황을 통제할 필요도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상조종이 걸어가 상영충을 직접 부축해 일으켰다.

“황숙,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지요. 다 잊었습니다. 황숙은 여전히 연국의 대사마일 것입니다. 본왕이 약속합니다!”

몽산명은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감개무량했다. 예전의 상조종에겐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는 희로애락을 숨길 수 있는 심계를 얻었다. 상조종도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상영충은 급히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는 이제야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를 내려놓았다. 목숨 걸고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자, 상영충은 결국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황숙!”

상조종 등은 대경실색하며, 즉시 수행자들을 불러 살펴보게 했다.

이내 한쪽에 있던 상영충의 심복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왕야께서는 7, 8일을 주무시지도 못하고 쉬지 않고 남주로 달려오셨습니다. 아마 많이 지치셨을 겁니다.”

수행자들도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지쳐 쓰러졌을 뿐이었다.

상조종 측은 상영충이 정말 살고자 최선을 다한다며 남몰래 혀를 차고는, 사람을 시켜 데려가 잘 돌보도록 했다.

상영충도 이제야 비로소 세상모르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현장이 조용해진 후, 상조종은 연국의 진국신기를 놓고 잘 살펴보았다. 또 황명을 펼쳐보기도 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자신은 집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연국 대권이 떨어져 내렸다.

이게 누구의 공로인지 모를 수 없었다. 몽산명과 남약정도 두 물건을 살펴보고 탄식했다. 과연 도야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상조종에게 연국을 주겠다 하더니, 아주 간단하게 그 약속을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여봐라! 군영에서 황명을 낭독해, 전군에게 알려라!”

상조종이 수하를 불러 황명을 전했다. 군의 사기를 올리려는 조처였다.

“알겠습니다!”

수하는 두 손으로 황명을 건네받았다.

* * *

왕부 내택.

두 여인이 나란히 앉아 새롭게 지은 집을 돌아보며, 어찌 단장할지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 하인이 다급히 달려와 소리쳤다.

“왕비님, 왕비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봉약남이 바로 뒤돌아 호통을 쳤다.

“무슨 소란이냐. 버릇이 없구나. 무슨 일이기에 이 추태를 부리느냐?”

하인은 활짝 웃으며 손발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왕비님, 군주님! 조정에서 황명을 내렸습니다. 폐하께서 와병하시어 나라를 돌볼 수 없으니, 왕야를 대연의 섭정왕으로 세우고 대연의 군정 사무를 총괄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봉약남과 상숙청은 그야말로 넋을 잃었다. 정말 믿기지 않아 의심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오늘날 남주는 과거의 군현이 아니었다. 어떤 소식이든 쉽게 손에 쥘 수 있었다. 다만 이제 남주가 얽힌 일들의 규모가 서서히 커지다 보니, 두 여인은 서서히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고, 상조종 쪽도 서서히 두 사람에겐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남주부성 내부 일이나 남주 영역 일은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지만, 저 멀리 있는 경성 일은 두 사람의 영역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이번에 남주에서는 경성 쪽에 딱히 손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 움직임도 없이, 갑자기 상조종이 대연의 섭정왕이 되었다고?

매우 놀란 봉약남은 급기야 하인을 질책했다.

“얘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하인은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왕비님! 사실입니다. 대사마 상영충이 직접 황명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진국신기까지 왕야께 진상했다고 합니다. 왕야께선 이미 전군 앞에 황명을 낭독하도록 하셨습니다. 더는 무슨 비밀도 아닙니다. 이미 남주 부성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진국신기까지 보내왔다고? 두 여인은 정말 매우 놀랐다. 이미 진국신기까지 손에 넣었는데, 그게 무슨 섭정왕인가. 진국신기를 내놓았다는 건 황권을 아예 내놓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더 이상 내택을 꾸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둘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급히 상조종을 찾아갔다.

하지만 상조종은 일이 있어 외출한 상태였고, 남약정도 왕부에 없었다. 그래도 몽산명은 남아, 그가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상건웅은 이미 연국 대권을 빼앗기고 연금됐고, 3대 문파에서 상조종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했다.

봉약남은 정말 정신이 아득해졌다. 경악과 기쁨이 어지럽게 섞여들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대연국 섭정왕비가 됐다. 지금 자신이 연국 여인 중 지존이 되었단 말인가?

과거 전마를 타고 창을 들고 전장을 전전할 당시만 해도 오늘 같은 날을 상상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피부로 와닿지 않는 현실이었다.

상건웅은 이미 장식에 불과했다. 상조종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연국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럼 당연하게도 봉약남이 연국의 황후가 되고, 아들은 장차 연국의 황태자가 될 것이었다.

황후……? 자신이 연국의 황후가 된다? 순식간에 과거 수많은 일이 눈앞을 스쳐 지났다. 여전히 불가사의한 느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곁에서 상숙청은 새언니가 당분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자리를 뜨기로 했다.

상숙청은 왕부 정원을 서성이며, 가끔 초려별원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만약 우유도가 살아 있는 걸 몰랐다면, 아마 그녀도 영문을 몰랐을 터였다. 하지만 우유도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뭔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지금 상조종의 권세론 아직 정변을 일으킬 수 없었다. 자금동의 도움은 받을 수 있다고 쳐도, 연국 3대 문파의 지지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건 바로 도야의 능력이었다.

상숙청은 당장이라도 우유도를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폭로돼선 안 되는 사람이기에, 쉽게 방해해선 안 됐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상숙청은 매일매일 이 힘겨운 기분과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 * *

밀실 내부.

운희가 들어와 우유도 앞에 동경을 내려놓았다. 시간과 위치를 정해, 드디어 상경을 가져온 것이다. 이걸 위해 제갈지를 직접 움직였을 정도였다.

우유도는 제갈지가 상경을 가지고 도망칠 부분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현재 제갈지는 우유도와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제갈지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고,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이제는 해무극을 향한 태도조차 과거와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

한마디로 우유도가 승리하기만 하면, 제갈지도, 해무극도 안전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는 숨어다닐 필요도 없고, 어쩌면 해무극이 다시 나라를 되찾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므로 제갈지는 최선을 다해 우유도를 돕고, 최선을 다해 명령을 완수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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