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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32화 (931/1,000)

1832화. 갈취

안락왕부.

그 입구는 조용해 보였지만, 안쪽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불청객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바로 제국 금왕이었던 호계와 서원대왕 호운승이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찾아와 재물을 갈취하고 있었다.

뻔뻔스러운 호계 앞에, 호진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가족을 위해 분을 참고 있었다. 바닥엔 이미 얻어맞고 쓰러진 나이 든 하인 2명이 있었다. 이들은 제국에서부터 데려온 자들이었다. 하인들은 쳐들어온 자들에게 몇 마디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었다.

호진의 두 아들은 분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소유아는 그런 두 아들을 꽉 붙잡고 있었다.

영락한 봉황은 닭보다 못한 법 아니겠는가. 한때 황좌에 올랐던 부부의 처지가 참으로 참담했다. 자유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호진과 소유아의 처지는 호계와 호운승보다 못했다.

일단 진국은 인심을 사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또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항복을 권고하는 사례 용도로, 부부의 왕위를 그대로 두었다. 당분간 진국 귀족들도 부부를 어찌할 순 없었고, 진국 조정도 벌써 약속을 어겨가며 부부를 어찌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본래 한 가족이었던 사람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갖은 방법으로 고난을 주고, 계속 찾아와 갖가지 수작으로 재물을 갈취했다.

지금 호계와 호운승도 진국 조정에서 주는 녹봉을 타 먹으며 살고 있었다. 본래 그들도 그냥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던가.

늘 돈이 문제였다. 두 사람은 이 진국 도성에서 의지할 배경과 권력이 없어, 자유롭게 살고자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이는 당연히 누군가의 암묵적인 허락하에 이루어진 조처였다. 투항한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처하게 되는지, 분명한 경고로 삼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현재 호진 부부를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첫째는 돈을 위해서였지만, 이 부부를 괴롭혀 충심을 증명하려는 뜻도 있었다.

호진 부부는 제국에서 어느 정도 재물을 가지고 진국 도성으로 왔지만, 이제 호계와 호운승에게 대부분 다 뺏기고 말았다. 고발도 소용이 없었다. 호계와 호운승은 그저 집안일이고, 가산을 나누는 것이라 억지를 부렸다.

본디 타인이 집안일은 관여하긴 어렵지 않던가. 서로 얘기가 다르니, 시비를 가리기 어렵게 됐다. 물론 그 배후엔 사람들의 방관이 있기도 했다.

결국 호계와 호운승이 데려온 수하들이 온 집안을 헤집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소유아의 장신구까지 끄집어냈으나 겨우 작은 상자를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수하는 호계와 호운승에 다가가 아무것도 없다고 속삭였다. 이에 호계는 눈을 치켜뜨고 호진에게 다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어디 숨겼지?”

호진의 분노도 폭발했다.

“욕심이 너무 과하군. 이미 다 뺏어 가놓고 뭘 더 내놓으라는 것이냐?”

물론 숨겨놓은 재물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물도 이런 식으로 갈취당한다면, 그야말로 채울 수도 없는 무저갱(*無低坑: 벌을 받아 떨어지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끝도 없이 깊은 구덩이)이었다.

이들도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애초에 호진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망국의 군주였다. 황궁의 재물은 당연히 진국에게 몰수당했으니 호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분노한 호계가 호진의 팔을 붙잡았다. 호진이 혹여 소매에 재물을 숨겨두지 않았는지 손을 뻗어 뒤지려는 것이었다.

본래 호계는 호진이 싫었다. 이 녀석이 뭐라고 제국의 황제가 되었단 말인가? 제국을 멸망시켜놓고 제국의 재물을 사용하려 한다니!

마찬가지로 분노한 호진도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았다. 그렇게 뒤엉켜 싸움이 시작되자, 호운승도 눈을 치켜뜨고 앞으로 나와 호계를 도왔다. 호운승은 심지어 무장 출신인데, 호진이 홀로 둘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멈추세요! 멈춰요!”

소유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한 두 소년을 꽉 붙들었다. 혹시라도 저들이 아이들을 다치게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호계와 호운승은 한직이라도 관직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을 따르는 무사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호진 쪽보다 수가 훨씬 많았다. 그에 반해 호진은 일을 돕는 하인 몇 명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 저들이 데려온 무사들은 차가운 눈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진의 왕부를 지키는 진국 수행자들도 무심히 방관할 따름이었다.

호진은 진국에 투항했다. 만약 호진이 가산을 탐낸 형제들에게 맞아 죽는다고 해도, 그건 진국의 잘못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들려온 한 목소리에, 모두가 뒤를 돌았다.

한 무리가 천천히 왕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 무표정한 얼굴로 기품을 빛내는 소평파가 있었다. 뒤로는 태숙환아와 호위들이 따랐다.

그 순간, 누군가 급히 달려들어 호계와 호운승을 잡아당겼다.

“소 도독이십니다.”

두 사람은 뒤돌아보더니 일제히 손을 내리고 물러났다. 이내 둘은 다소 민망한 얼굴로 다가가 예를 올렸다.

“공주님과 소 대인을 뵙습니다.”

두 사람도 걱정이 되었다. 물론 처음 소란을 피울 때 소평파를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소평파는 아무 반응도 없었기에, 의심받을 일을 피하려는 줄로 알았다. 그 후로 같은 짓을 반복하며 간덩이가 부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소평파의 등장에 두 사람도 잊고 있던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이내 태숙환아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평파는 묵묵부답이었다.

소평파의 눈은 그저 옷이 찢어지고, 얻어맞아 얼굴에 멍이 든 호진에게 한번 닿았다가, 다시 소유아에게로 옮겨갔다. 소유아는 젖은 눈으로도 울지 않으려 끝끝내 버티고 있었다.

지금 소평파는 누군가 심장을 강하게 움켜쥐어 짜고 있는 것만 같았지만, 정작 얼굴엔 아무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소유아를 보는 소삼성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전에 이쪽 상황을 확인한 소삼성이 도움을 주려 했지만, 소평파가 저지했었다.

그렇게 동생을 한참 바라보던 소평파가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유아야.”

소유아는 우물쭈물하다 결국 눈앞의 상황에 굴복하고 말았다.

“오라버니!”

드디어 그 호칭을 듣게 되었다. 소평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형장을 한번 둘러본 후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누가 한번 말해 볼 텐가?”

물론 그도 지금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소평파는 내내 소유아가 자신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끝끝내 소유아는 그를 찾지 않았다. 여전히 동생의 마음엔 자신을 향한 원한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소평파는 계속 기다렸다. 소유아가 벼랑 끝으로 몰릴 때까지. 그렇게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야 나타났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침묵했다. 이 정적 속에서, 소평파는 손을 들어 소유아가 등 뒤에 숨긴 두 아이에게 손짓했다.

아이들은 진실에 솔직했다. 아이들 역시 소평파가 이곳의 모든 인물이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또 과거에 계모의 오라버니가 이곳에서 높은 사람이라는 걸, 전에 하인들을 통해 들은 적도 있었다.

두 아이는 바로 소유아를 뿌리치고 소평파에 다가가려 했다. 소유아도 딱히 아이들을 막진 않았다.

두 아이의 인사에, 소평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할 것 없다. 어찌 된 일인지 말해 보거라.”

“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물건을 빼앗아…….”

둘 중 한 아이가 곧바로 호계와 호운승을 가리키며 여러 차례 찾아와 재물을 갈취했다고 토로했다.

소평파는 싸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그는 사실 여부를 묻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할 말만 했다.

“아주 극악무도한 놈들이구나! 여봐라, 저 두 놈의 손발을 부러뜨리고 당장 여기서 내쫓아라. 감히 이를 저지하는 자가 있다면, 같이 부러뜨려라!”

소평파 뒤에 있던 호위들이 즉시 튀어 나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제압해 쓰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소 도독! 이건 저희 집안일입니다. 이건 저희 집안일입니다!”

휙휙-

그 순간, 어디선가 두 사람이 날아와 소평파의 호위를 저지했다. 바로 호진의 왕부를 관리하는 수행자였다. 둘 중 한 사람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 도독, 아무리 그래도 저들은 진국의 왕작(王爵)입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저희도 곤란하니, 이 정도로 끝마치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 정도로 끝내라? 소평파가 심드렁한 얼굴을 했다. 그가 직접 찾아온 일이었다. 어찌 대충 끝낼 수 있겠는가.

소평파는 바로 흑수대의 영패를 꺼냈다.

“흑수대 일이오. 상관없는 사람은 빠져줬으면 좋겠소만.”

흑수대는 소평파가 가진 영패를 회수하지 않아서, 소평파는 흑수대의 영패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건 줄곧 소평파가 좀 더 큰일을 하길 원하는 태숙웅의 뜻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지금 소 부엔 흑수대 인원이 거주하고 있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지금 소평파를 따라온 인원 중에도 흑수대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한 사람이 나섰다.

“소 도독, 이건 저들 집안일입니다. 만약 여기서 흑수대 신분을 동원한다면, 그건 흑수대를 사적인 복수에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소평파는 손에든 영패를 다시 회수했다.

“호오, 집안일이라? 좋소, 집안일이라고 하지. 여긴 내 동생의 집이오. 우리 집안일이니, 두 사람은 이제 좀 빠져줬으면 좋겠소.”

다른 한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 도독…….”

소평파가 곧장 그의 말을 끊었다.

“됐소. 문제가 생기면 내가 감당할 것이오. 추후 황궁에 계신 태숙 장로님께 합당한 설명을 드릴 것이오.”

그리고 턱을 들어 두 사람을 제압하고 있는 호위에게 말했다.

“뭘 더 기다리는 것인가?”

우두둑-

연이어 거친 소리가 울렸다. 호위는 호계와 호운승의 팔다리를 비틀었고, 아예 그대로 밟아 부러뜨려 버렸다.

“악!!!”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들을 수행한 사람 중 감히 섣불리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소평파가 이를 저지하는 자가 있으면 같이 부러뜨리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지할 능력이 없기도 했다. 소평파의 호위 중 수행자도 적지 않았다.

태숙환아는 차마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남편의 진면목임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드디어 고통에 발버둥 치던 두 사람이 풀려났다. 소평파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두 사람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하루 시간을 주마. 여태 갈취한 모든 걸 돌려놓아라. 아직 네놈들에게 원 위국 황비를 은닉한 죄를 묻지도 않았다. 만약 내일 이 시간까지 물건을 다 되돌려 놓지 않으면, 흑수대가 네놈들에게 이적죄를 물어 모두 잡아들일 것이다! 흑수대에 들어간다면, 네놈들은 절대 살아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당장 이놈들을 문밖으로 던져버려라!”

소평파는 두 사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한다 해도, 아무 일 없을 것이었다. 지금 소평파와 조정 신하들 관계라면, 아무 힘도 없는 두 사람을 위해 굳이 소평파와 원한을 맺을 사람은 없을 터였다.

또한 소평파는 두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도 줄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이 물건들을 모두 토해낸 후엔 곧 ‘제국 여당’에게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는 두 사람은 문밖으로 던져졌고, 두 사람을 따라왔던 수행원들도 조용히 도망쳤다.

진국에서 왕부를 보호하러 파견한 두 수행자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물러났다. 그들은 그저 지금 상황을 상부에 보고할 따름이고, 어찌할지는 상부가 결정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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