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화. 오상의 반대
이제 남은 건 일가족 상봉이었다. 소삼성은 눈물을 흘리며 소유아에게 인사를 올렸고, 태숙환아를 소개해 주었다.
호진의 두 아들은 소평파를 ‘외숙’이라 불렀다. 소평파를 보는 소년들의 눈엔 존경심이 가득했다. 방금 소평파의 단호한 처분에 속이 다 시원했었다.
이들은 과거 소평파가 소유아의 앞날을 위해 자신들을 죽이려 했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유아의 친아들은 이미 여기저기 뛰어다닐 정도로 자라있었다. 소평파도 그를 당연히 보았었다.
한편, 호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묻는 말에만 겨우 한두 마디 대답할 뿐이었다.
다시 떠날 때, 소유아는 호진의 두 아들을 데리고 입구까지 배웅했다.
“앞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면 조용히 있지 말고, 노소에게 연락하거라.”
소평파의 당부에, 소유아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평파는 또 태숙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도 시간이 있으면 자주 찾아와 친하게 지내시오.”
태숙환아는 소유아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
“네, 한 가족이잖아요. 당연히 자주 만나야지요.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부부가 떠난 후, 소유아는 멀어지는 마차를 멀거니 지켜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
어쨌든 소평파 덕에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벗어났다. 소유아는 비로소 가족이 진국에서 편히 살아가려면 오라버니의 비호가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 * *
마차에 있는 소평파도 마음이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소유아는 몇 번이나 그를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또 아들이 조금이라도 소평파와 친해질 수 있게 유도하기도 했다.
남매 관계가 개선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도 바라던 일이었다. 그래서 호계와 호운승의 만행을 알면서도 모른 척 도움을 주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소평파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누이는 더 이상 과거의 그 누이가 아니었다. 과거 좋고 싫음이 확실하고, 한 사내를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던 동생은 이미 다 사라졌다.
소유아는 이제 삶의 고난에 모난 부분이 깎여나가고, 현실 앞에 굴복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소평파의 호의를 사려고까지 했다.
좋은 일이지만, 이는 끝내 소평파가 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면, 태숙환아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소유아는 그리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유아가 자신에게 친근히 대하는 걸 보고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태숙환아는 앞으로 언제 소유아에게 가서 무엇무엇을 하며 친분을 다질 것이라며 끊임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 * *
진국이 천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연국 조정도 섭정왕이 천도할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정작 상조종은 경성으로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연국의 대사마 상영충은 그대로 남주부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종일 떠날 생각도 없이 상조종 주위를 맴돌았고, 몽산명과 남약정 곁에서도 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연국 대사마든, 뭐든 손에 병권을 쥐지 않은 대사마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조종이 허락이 있어야만 진정한 대사마일 수 있었다. 상조종은 그 지위를 언제든 가져갈 수 있었으니, 현재 상영충의 위치는 몽산명이나 남약정과 감히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몽산명은 더더욱 그러했다. 상조종이 섭정왕이 되었다. 연국 군부에서 몽산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람 아니던가. 그 때문에 상영충은 수시로 몽산명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물론 그는 연국 도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바로 자금동, 소요궁, 영검산의 이익을 조정 중인 시기였다. 그래서 연국의 병력이 대대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명목상 대사마로 별다른 실권은 없었지만, 상영충은 많은 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내 참고용으로 남주에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남주가 각주의 군령을 하달하는 것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남주에 남아, 한동안 상조종 곁에 머물던 상영충은 드디어 상조종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다.
상조종은 처음부터 경성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우선은 상건웅이 경성에서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연국 도성으로 가려면 대량의 측근과 병력을 이끌고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병력 배치를 변경해야만 했다.
또한 현재 남주가 바로 핵심 위치에 있었다. 연국과 후진국 점령지의 중앙이라, 지금은 경성보다 더 중요한 위치였다. 거기에 남주 일대를 오래 경영한 상조종으로선 이곳이 제일 편하고, 진국의 동벌에 대응하기도 편했다.
지금은 어차피 연국 황제도 아니라, 인력과 물자를 대량으로 움직여 굳이 경성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상조종의 의중을 깨달은 상영충은 즉시 사람을 시켜 남주에 자신의 저택을 준비하도록 했다. 가족들을 곧장 남주로 불러들였다.
그의 움직임에, 조당 관원들은 바로 뭔가를 깨닫고 모두 짐을 꾸려 가족을 이끌고 남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조당의 군정 체계가 점차 남주로 옮겨지고, 남주부성의 부동산도 끝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 * *
남도림과 독무허가 기운종을 찾아왔다.
오상은 그들을 마중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남도림이 난간이 있는 곳에 뒷짐을 지고 서서 물었다.
“너도 연국의 소란을 보았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이번엔 독무허가 말했다.
“지금 연국은 상조종이 군정대권을 쥐게 됐어. 그가 연국의 힘을 모으게 되면 진국의 동벌도 불리해지지, 정말 그걸 모르나?”
이어, 남도림이 나섰다.
“상조종은 병력을 지휘하는 능력이 발군이야. 진국 동벌에 불리하다고.”
오상이 대답했다.
“그렇지, 그래서?”
다시 남도림이 말했다.
“표묘각을 내세워 상조종을 포함한 요원들을 표묘각으로 불러 트집을 잡아 없애 버리는 게 좋겠어.”
“난 반대야.”
오상이 답했다.
“진국 힘을 빌려 천하를 쓸어 버리자 했던 사람은 너다. 그런데 지금 진국의 앞길을 막는 세력이 나타났는데 제거에 반대한다? 무슨 생각이지?”
독무허의 추궁에, 오상이 바로 말을 이었다.
“너희는 천하 사람들이 다 멍청이로 보이나? 그렇게 대놓고 움직일 거면, 그냥 한국과 송국의 주요 인사까지 모두 불러 단번에 죽여버리지? 그렇게 천하 각 세력에게 우리가 저들 이익을 빼앗으려 한다고 광고도 하고 말이야. 그럼 너희가 원하는 대로 저들이 서로 편을 먹고 진국에 대항하겠군.
그때 숨어있는 원영기 수행자들이 몰래 진국 군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방어할 수나 있을 것 같나? 그때가 되면 진국은 서서히 쓸려나갈 텐데, 그때 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정말 그럴 거면 그냥 바다에서 바늘 찾듯 적들을 직접 찾으면 그만이지,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움직이는 건가?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지금 대세는 적들에게 있어. 지금 각 세력은 음으로도, 양으로도 감히 태도를 확실히 밝히지 못하고 있지. 정말 천하 수행자들이 저들에게 이용당한다면, 그렇게 틈만 나면 표묘각 사람들이 암살당해 죽어 나가면, 우리에게 세력이 얼마나 남을 것 같아?
그렇다고 우리가 아랫사람들을 끼고돌며 종일 지키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결국은 우리 셋만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온종일 여기 가서 이들을 죽이고, 저기 가서 저들을 죽이는 생활을 하고 싶은 건가?
누군가 배후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상황에, 누구를 죽인다고 천하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나? 결국 우리 셋만 남으면, 진정 우리 셋으로 적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나?”
남도림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적들은 이미 우리 의도를 파악했을 수도 있다.”
오상이 말했다.
“그럼 어쩌자는 거지? 적들에게 아직 성나찰과 나방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또 원영기 수행자도 10명이 넘지. 우린 지금 아주 수동적인 상태라고. 지금은 아주 조심해야 할 때야.”
독무허가 말했다.
“지금 적의 목적은 아주 명확하지. 하나씩 격파하려는 것이야. 아마도 이미 우리 셋을 따로 죽이려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것도 우릴 죽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저들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저들에게 아직 확신이 없다는 뜻과 같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아 저들에게 이용할 기회를 주지만 않으면, 우릴 어쩌지도 못할 것이다.”
남도림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넌 정말 이용당하지 않을 자신 있나? 요괴 할망구가 어찌 죽었지?”
“그때는 나방비가 튀어나올 줄 몰랐지. 하지만 이제는 나방비와 성나찰이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린 더더욱 내분을 일으키면 안 돼.”
남도림은 다시 독무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놈은 나방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추를 죽였다!”
독무허의 목소리도 싸늘해졌다.
“나방비가 네놈과 정면으로 싸울 정도의 능력이 있을지 어찌 알았겠느냐? 나방비가 정말 그 정도 능력이 있는지 난 직접 본 적도 없다. 모두 네 말뿐이니, 진위는 모르지. 네게 다른 의도가 있는지 아닌지는 너만 알겠지.”
현재, 한편에 흑석이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침 보고할 것이 있어 오상을 찾아왔다가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잠시 기다리던 차였다.
그렇게 대화 소리를 듣게 된 그는 남몰래 탄식했다. 지금까지도 세 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서로만을 후환이라 여기는 것이다.
흑석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처음부터 구성이 힘을 합쳤더라면, 천하에 감히 구성을 뒤흔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터였다.
황택사지에서도 힘을 합쳐 곤림수를 죽일 수 있었고, 나방비를 처리할 수 있었다. 서로를 믿었더라면 나추와 원색의 싸움에 이용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설파파도, 나추도, 원색도 서로를 믿지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
더 앞서, 구성만 협력했다면 애초에 장손미와 목연택이 죽을 일도 없었다. 다함께 접몽환계에 들어갔다면, 어쩌면 성나찰을 죽였을 수도 있었다. 여무쌍 역시 비밀을 밝히고 협력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구성이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한 건, 모두 서로를 반목한 결과였다.
“그만, 인제 와서 그런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지. 지금 문제는 적은 어두운 곳에 있고, 우리는 밝은 곳에 있다는 거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바로 그들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지. 목표가 있는 곳을 찾아내기만 하면, 다른 건 무엇도 문제 될 게 없다.”
오상이 말했다.
이는 남도림과 독무허도 당연히 다 알고 있는 이치였다. 만약 표묘각이 아직도 쓸모 있었다면, 여전히 천하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진국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상조종을 처리했으면 한다!”
남도림이 말했다.
오상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거냐, 아니면 머리에 물이라도 찬 거냐?”
이번엔 독무허가 나섰다.
“나와 남도림은 상조종에게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르게도, 늦게도 아닌 왜 하필 지금 연국 내부를 통일시킨단 말이냐.”
오상이 다시 답변했다.
“진국이 서삼국을 통일시켰다. 진국의 동벌에 대응하기 위해 지금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이지.”
그러자 남도림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건 적이 이미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 상조종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적일 가능성이 있어.”
독무허도 연이어 말을 붙였다.
“만약 상조종을 건드리면, 배후에 있는 자를 끄집어낼 수도 있을 거야.”
이에 오상은 짤막하게 답할 따름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이군.”
남도림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상, 어째 우리의 생각이 꼭 쓸데없는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난 네가 자꾸 상조종을 두둔하고 있는 것 같지?”
“맞다, 틀린 말은 아니지. 상조종의 배후에 있는 자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적이 아니다. 상조종이 연국을 통일한 사건의 배후엔 바로 내가 있다!”
휙- 휙-
약속이나 한 듯 독무허와 남도림의 고개가 돌아갔다.
“상조종 쪽은 너희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미 암중에 장악이 끝났다!”
흑석도 오상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궁지에 몰린 나머지, 상황을 모면하고자 저런 말까지 한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독무허가 물었다.
“진국이 방금 서삼국을 통일했다. 지금은 시간을 들여 내부를 안정화할 때지. 점령지가 불안한 상태에 너무 급히 병력을 움직여 동벌을 진행하면 내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당최 이 모든 게 끝나긴 할까? 그러니 사전 준비를 한 것이다. 일단 진국이 동벌을 시작하면, 상조종이 통일한 연국은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독무허와 남도림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대충 오상의 의도를 파악한 것이다. 상조종은 아마 오상의 사람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