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화.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위충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다시 원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면 안 되는 말은 하지 마라. 그러지 않으면 상청종을 다 죽여버릴 것이다!”
상청종을 언급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 있는가? 가무군은 뒤돌아 위충을 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게 고깃배는 저 멀리로 사라져갔다.
그들이 떠난 강 위, 한 나무판자 위에 두 사람이 있었다. 오상과 흑석이었다. 두 사람은 고깃배가 사라져간 방향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간산월은 역시 원영기 고수였습니다!”
흑석이 갑자기 뒤돌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흑석은 간산월이 매우 부러웠다. 이번 습격은 바로 흑석이 계획한 일이었다. 원종이라 불리는 간산월을 제외하고, 원영기라 의심되는 자들을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지네는 몸통이 잘려도 꿈틀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목탁진의 잔당이 복수하기 위해 공격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내 오상이 코웃음을 쳤다.
“저놈을 보니, 다른 사람은 십중팔구 원영기가 분명하다. 그 정도 이득이 없었다면, 그들도 굳이 모험을 감수하고 표묘각에 대항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산월, 문화, 안돈천, 서해당, 궁임책, 곤림수, 오풍, 제갈지, 이렇게만 해도 벌써 여덟이다. 조웅가는 일단 보류하고.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초려산장에도 최소한 한 명은 숨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최소한 아홉은 이미 그 행방을 찾은 것이다. 계속 감시해라. 나머지도 알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저들 신분을 알아내기만 하면, 성존께서도 곧 천하를 차지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흑석은 아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오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었다. 저 원영기 수행자들의 신분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저들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성나찰도 변신하기 전에 처리하면 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령 저들 신분을 모두 확인한다 해도, 오상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오상은 저들을 이용해 남도림과 독무허를 처리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 둘을 처리하고, 다시 저들을 처리한다면, 이 천하는 오상의 천하가 되는 것이다. 그때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으니, 너는 저들이 주고받는 서신을 계속 감시하도록 해라. 결국 언젠가는 실마리를 드러낼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표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으니, 서로 주고받는 서신을 중간에 어렵지 않게 가로챌 수 있습니다.”
“방심하지 말아라. 또 이번 일에 참여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남도림과 독무허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나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저들이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예! 확실히 단속하고 있으니, 소식은 절대 흘러나가지 않을 겁니다.”
흑석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 *
밀실 내부.
밀서를 들고 서성이던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리며 담담히 말했다.
“습격? 오상이 손을 쓴 것이군. 원종의 능력이 들통났어요.”
운희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쪽에서 심문한 바론 목탁진의 잔당이 복수하기 위해 움직인 게 확실했어. 다른 의심스러운 정황도 없는데 어찌 오상이라고 확신하는 거야?”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여무쌍이 끼어들었다.
“서로 대국을 둘 땐 상대가 어디에 둘지 다 알고 있지요. 알맞을 때 알맞은 곳에 바둑알이 놓이면 그건 틀림이 없죠. 증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에요. 도야가 그리 말했다면 틀림없을 겁니다. 오상이 이렇게 빨리 원종을 알아차렸다는 건 오상이 초려산장에서 오가는 서신을 이미 해독했다는…….”
순간 여무쌍은 말을 하는 도중에 뭔가를 깨달았다. 그녀는 곧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도한 거군요! 초려산장을 미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미끼로 이용했어요. 미친 건가요?”
운희의 두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우유도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오상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그가 진실을 알아 알아냈다는 확신과 모든 의문을 풀어줘야만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진심으로 믿을 겁니다. 자신은 숨어 있고 우리는 노출돼 있다고 믿기만 하면, 또 우리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믿어야만 마음을 놓고 인내심을 발휘할 겁니다.
초려산장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를 수 없습니다. 남주가 연국을 집어삼킨 것이 바로 오상을 시험한 것입니다. 알다시피 오상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요. 오히려 원종의 능력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 같습니까? 오상이 미끼를 물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물었지요. 이제 오상은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못할 겁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우유도를 보고, 여무쌍이 이를 악물었다.
“사지에 들어가야만 살길을 찾는다고 해도, 그러다 진짜 죽을 수 있어요!”
“만약 제수씨가 오상의 입장이었다면, 이제 어찌할 것 같습니까?”
여무쌍이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오상의 야심이라면, 아마도 우선 우리 쪽을 이용해 남도림과 독무허를 없애려 하겠지요. 그러고 나서 이쪽을 일망타진하려 할 거예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오상이 살아 있는 한, 도야가 가진 모든 힘을 모은다고 해도, 그를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요. 최소한 오상이 도망치려 하면, 그를 막지 못할 거에요!
그리되면 이미 신분이 들킨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할 테니 지금 상황과 다를 것이 없겠지요. 어쩌면 더 나쁠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남주의 사람들은 절대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요!”
우유도는 여무쌍을 한참 말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어찌합니까. 이대로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여무쌍은 어이가 없었다. 이미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들켜선 안 되는 건 다 폭로해놓고, 이제 와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그러다 순간, 여무쌍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상하네요. 혹시 오상을 상대할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요?”
우유도는 조용히 서탁으로 돌아가 손에든 밀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 정도 우유도와 지내다 보니, 여무쌍도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우유도가 입을 다물면 더는 물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무쌍은 질문을 바꿨다.
“그 원종은 누구지요? 간산월인가요?”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누군가요?”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돈천에게 연락을 보내야겠습니다. 남도림의 제자 청구를 잘 지켜보라고 하세요. 혹시 그 물건을 이용해 배신하게 할 수 있는지 보지요.
또 문화에게 연락해, 독무허의 제자 사소동을 주목하라고 하세요. 마찬가지로 그 물건을 이용해 배신하게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요.
조웅가에게도 연락을 취해, 남천무방과 의논해 그 물건으로 오상의 심복 흑석을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알아보도록 하세요.”
운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물건? 무량과 말이야?”
“무량과라고 말하지 마세요. 서신을 확인한 이들이 알아서 추측할 겁니다.”
여무쌍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뭘 할 생각이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릴 겁니다!”
기다려? 운희와 여무쌍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아무리 고민해도 우유도가 당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 *
기운종.
누각 암실 입구에 선 흑석은 뭔가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손에든 밀서를 한번 보고는 그야말로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는 초려산장에서 보낸 밀서를 중간에 가로채 필사한 것이었다. 당연히 내용도 다 확인이 끝난 상태였다.
자신을 끌어들인다니? 그리고 ‘그 물건’이라고? 그 물건이 대체 무엇인가? 설마 무량과? 만약 정말 무량과라면 정신이 나갈지도 몰랐다.
서신의 내용을 알고부터 흑석은 정말 애가 타 죽을 것 같았다. 초려산장의 손에 무량과가 남아 있다는 말인가? 흑석은 이대로 초려산장을 찾아가 정말 확실하게 묻고 싶었다. 진정 무량과가 있다면, 반란이 대수일까.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이 밀서의 내용을 오상에게 전달해야 하는 걸까, 숨겨야 하는 걸까. 전하지 않는다면, 밀서를 필사한 사람들과 해독한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대로 그냥 직접 찾아가 모든 사실을 알리고 무량과를 얻어내야 할까?
저들이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건 삼성을 상대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저들 손에 정말 무량과가 있다 한들, 자신이 별 이용 가치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결국 살아선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할 터였다.
일단 흑석이 나서게 되면, 설혹 초려산장에서 그에게 무량과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시켜 초려산장과 연락을 취하거나, 암중에 서신을 보낼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을 어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있단 말인가.
아마 초려산장의 사람들은 그 즉시 놀라 도망쳐 버릴 게 뻔했다. 현재 있는 그곳에 남아 여유롭게 의논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만약 초려산장이 도망쳐 버리면, 오상도 즉시 알게 될 것은 자명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적절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흑석의 가슴은 실로 숯처럼 검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더 어이없는 건, 이 밀서는 그 물건으로 흑석을 끌어들여 배신을 유도하려 하고 있었다. 만약 오상이 이 서신을 확인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흑석은 그것이 더 두려웠다.
결국 흑석은 이 일을 원활히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모험할 배짱이 있을 리도 없었다. 오상이 암중에 얼마나 많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으니, 그가 가야 할 곳도 하나밖에 없었다.
* * *
흑석은 암실 앞에서 깊은숨을 한번 들이쉰 후, 문을 두드렸다.
“성존.”
“들어와라.”
안에서 오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흑석은 그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 침상 가까이 다가간 흑석은 두 손으로 서신을 진상했다.
“성존, 초려산장에 움직임이 있습니다.”
오상은 두 눈을 감고 흑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오상은 흑석의 손 위에 올려진 서신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살폈다.
이런 일은 대부분 흑석이 그에게 직접 말로 보고했다. 이런 식으로 오상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오상은 서신을 들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왜 흑석이 이처럼 난처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보고했다는 의심을 줄 수 있으므로, 확실히 흑석이 직접 보고하기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오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 물건? 그 물건이 무엇이냐? 설마 무량과를 말하는 것이냐?”
“안돈천, 문화, 조웅가에게 보내는 밀서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정확한 지칭 없이 ‘그 물건’이라고만 돼 있습니다. 아마도 무량과인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저희 세 사람을 배반하게 할 수 있는 물건이 뭐가 있겠습니까?”
“세 사람? 아직도 무량과가 3개나 남았더냐? 터무니없군! 우리가 계산한 것만 해도 아홉인데, 아직 3개나 남겨놓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내용을 보면, 그저 뭔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세 사람을 놓고 배신할 가능성을 관찰하려는 것일 뿐, 꼭 무량과가 3개 있다는 말은 아닌 듯합니다.
여러 가지 단서를 근거로 보면, 제갈지가 사용한 무량과는 아마 꽤 오래전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30년 전 무량과가 도둑맞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문화와 간산월도 은퇴한 지 오래지요. 하지만 곤림수와 오풍은 원영기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
제갈지와 곤림수가 무량과를 쓴 시간 간격을 보면, 저들 손에 정말 무량과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예비용을 남겨뒀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