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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36화 (935/1,000)

1836화. 기다리는 자, 시간을 끄는 자

오상이 잠시 침묵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만약 상대가 정말 무량과로 유혹하려 했다면, 넌 날 배신했을 것이냐?”

흑석이 긴장했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 그도 잠시 침묵하다 입을 뗐다.

“확실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일 것입니다. 하지만 감히 어찌 성존을 배신하겠나이까.”

“원래 네게 약조했듯, 무량과를 손에 넣기만 하면 네게 1개를 주려 했다. 하지만 무량과는 도둑맞고, 무량과수는 파괴됐지. 정말 저들에게 무량과가 남아 있다면, 걱정할 것 없다. 우리 손에 넣기만 하면 반드시 네게 주마!”

흑석이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성존! 그 약조를 거둬 주십시오.”

오상이 다소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러느냐? 원하지 않느냐?”

“어찌 무량과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구성이 모두 있었다면, 분명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존께선 곧 지존이 되실 것인데 제가 어찌 무량과를 얻을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저 계속 성존을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상도 흑석의 뜻을 이해했다. 구성이 아직 있다면 모르겠지만, 천하에 오상만이 남았을 때 무량과를 얻는다는 건 죽여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오상은 흑석의 안색을 한참 살피다 천천히 이야기했다.

“네 뜻은 알겠으니 일단 그 일은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흑석은 속으로 초려산장에게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하필 이런 일을 벌여 그를 죽이려 하고 있는데, 어찌 분이 터지지 않을까. 오상이 자신의 말을 믿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흑석이 무량과를 위해 암중에 초려산장과 결탁하는 걸 의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계획이 오상에게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식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오상은 이제 흑석을 제대로 방비할 것이었다. 절대 문제가 생기도록 그냥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주고받는 서신을 계속 주목해라. 어디 어떻게 움직이는지 두고 보자. 만약 무량과로 너를 끌어들이려 한다면, 그냥 승낙하도록 해라.”

“어…….”

흑석은 말문이 막혔다.

* * *

밀실 내부.

여무쌍이 걸어들어와 우유도 앞에 서신을 내려놓았다.

“조웅가는 남천무방과 의논하지 않고, 바로 답장을 보내왔어요.”

남천무방을 언급할 때, 우유도는 저도 모르게 곁에서 고운 자태로 앉아 있는 관방의를 바라보았다. 만일 나중에 남천무방을 보게 되면, 관방의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신을 들어 내용을 확인할 때 관방의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용을 보면, 조웅가는 남천무방과 의논조차 하지 않은 게 확실해 보였다. 어쨌든 조웅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견을 전달했다.

조웅가는 만약 정말 그 물건이면 흑석은 반드시 배신할 테지만, 흑석의 효용 가치가 얼마만큼인진 알 수 없고, 흑석에게 수작을 부릴 기회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우유도는 서신을 내려놓고 담담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안돈천과 문화의 서신이 오면 다시 이야기하지요.”

관방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야?”

하지만 그녀는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 * *

기운종. 산 중턱, 감시가 삼엄한 한 건물.

흑석이 안으로 들어가 곧장 한 밀실로 향했다.

밀실엔 여자 수행자 3명이 있었다. 그들은 남주에서 보내오는 밀서를 전문적으로 해독하는 인력이었다. 세 사람의 생활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고, 그 누구와 만나거나 대화할 수도 없었다. 물론 이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들은 흑석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다만 오늘은 흑석을 바라보는 시선에 다소 괴이한 빛이 숨겨져 있었다.

“내용이 나왔느냐?”

“나왔습니다.”

한 여인이 두 손으로 서신을 진상했다.

내용을 살피는 흑석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그는 속으로 조웅가의 18대 조상에게까지 쌍욕을 퍼붓고 있었다.

흑석은 오상에 대해 어떠한 충심도 없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이 따르고 있을 뿐, 남천무방과 의논하고 말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또 그 물건만 있다면 흑석은 반드시 배신할 것이라면서, 흑석을 끌어들인다 해도 오상을 처리할 기회를 포착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 잡스러운 내용을 오상에게 어찌 전하란 말인가!

흑석도 오늘 세 여인의 눈빛이 기묘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내 흑석은 별 말없이 뒤돌았다. 전에도 감히 내용을 숨기지 못했다. 심지어 이젠 오상에게 이미 다 보고한 상태였다. 어쩌면 오상은 이미 그를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었다.

암실에서 보고받은 오상은 무표정한 얼굴로 흑석을 위로했다.

“이미 내가 상황을 알고 통제하고 있으니, 너는 걱정할 필요 없다. 설령 이익을 위해서라도 네가 날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현명하십니다.”

흑석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 * *

안돈천과 문화에게서도 하나둘 답장이 왔다. 내용은 조웅가의 답장과 비슷했다. 청구든, 사소동이든 관찰하고 말 것도 없이, 무량과만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배신할 것이라 단언했다.

밀실에서 서신을 확인한 우유도는, 곧 서탁 한쪽에 뒤집혀 있던 서신을 여무쌍에게 건넸다.

“원숭이에게 여기 적힌 내용대로 서신을 보내라고 하세요.”

여무쌍은 서신을 살펴보았다. 그건 각각 안돈천, 문화, 서해당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조웅가와는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거기엔 우유도가 선별한 3명의 표묘각 인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지금 각각 기운종, 영종, 천행종에 있는 사람으로 세 문파를 통제하고 있는 표묘각 인원 중 한 사람이었다.

서신에는 세 사람의 약점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고, 안돈천, 문화, 서해당에겐 암중에 이 약점을 이용해 표묘각 인원을 끌어들이라고 되어 있었다.

반드시 신분이 들통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암중에 접촉하고, 통제해야 할 것이며 느리더라도 확신 없인 절대 움직이지 말란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여무쌍은 내용을 보자마자 알았다. 안돈천과 문화는 움직이는 게 어렵지 않지만, 기운종 쪽은 같은 편이 없으므로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웅가에게 시킬 수도 없는 것이 마교 쪽은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서해당에게 시킨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여무쌍이 고개를 들었다.

“이들 세 사람을 끌어들인 후, 이들을 통해 흑석, 사소동, 청구에게 접근하려는 건가요?”

우유도가 코웃음을 쳤다. 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흑석, 사소동, 청구가 배신한다 해도, 그걸로 오상, 남도림, 독무허를 죽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원비가 바로 반면교사이지요.”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여무쌍도 이미 답을 알았기에 더 의아했다.

“설마 저들 세 사람을 이용해 뭔가를 숨기려 하는 건가요?”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별달리 숨기는 것 없습니다. 쓸데없이 일을 벌이는 것일 뿐이지요. 그 전에 연달아 수작을 부리다가, 만약 갑자기 조용해지면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움직여야만 오상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지요. 그래야 독무허와 남도림이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억제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오래도록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우유도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었다. 지금 우유도는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였지만, 아직 절대적인 확신이 없어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절대 확신 없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우유도는 최대한 오상을 진정시키며, 가능한 한 시간을 끌고자 했다.

만약 그의 경지가 원영기에 오를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이었다. 무량과에 갑자기 꽃이 핀 바람에 우유도의 계획이 헝클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 우유도는 다른 방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했다.

“이대로 시간을 끄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가요?”

여무쌍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오상을 이용하려 하고, 오상은 우릴 이용하려 하지요. 지금은 양측 모두 서로 경거망동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독무허와 남도림을 처리할 좋은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은 경각심이 아주 높은 상태이지요. 쉽게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오상은 그들을 잘 압니다. 또 쉽게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우리에게 방법이 없다면, 오상에게 방법을 마련하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오상이 더는 버티지 못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오상이 알아서 방법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유도는 여무쌍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 * *

산봉우리.

오상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는 현재 초려산장이 다시금 손을 쓰는 것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흑석이 빠르게 다가와 보고했다.

“성존, 성경 쪽의 소식을 전하는 자의 윗선을 찾아냈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역용하고 있고, 경거망동할 수 없어 누군지 확인할 순 없었습니다. 그자는 성경 출입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성경 내부와 초려산장의 연락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오상이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기다려라.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다시 손을 쓸 것이다.”

* * *

오상은 기다리고, 우유도는 시간을 끌고. 그렇게 하루, 또 하루, 한 달, 그리고 또 한 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둠 속, 천하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결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는 분명 천하에서 가장 치명적인 대결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밝은 태양 아래, 천하 사람들은 그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 * *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번잡하게 오가고, 수많은 화물을 실은 마차가 도시 여기저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점포 안 점원은 활짝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노점에서는 한창 호객행위 중이었다.

막일로 먹고사는 일꾼들은 땀을 비처럼 흘리고, 아이들은 아무런 근심도 없다는 듯이 골목길을 우르르 몰려다녔다. 또 일부는 서로 부딪혔다는 등등의 자질구레한 일로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날 남주는 이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연국 조정의 틀이 남주로 옮겨진 후, 남주부성은 그야말로 크게 번성하기 시작했다. 단 한 뼘의 땅일지라도 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수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남주부성으로 오면서, 남주부성 거리와 골목 구석진 곳까지도 값이 크게 올랐으나, 너도나도 비싼 값에 사들이기 바빴다.

물론 남주부성 크기 자체는 연국 도성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되었다. 이곳은 한 나라의 도성이 아닌, 그저 상조종의 영역일 뿐이었다.

그에 따라 도성에서 온 외지인들은 아직 강제로 땅을 빼앗을 힘이 없어, 정중히 돈을 주고 구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덕분에 적지 않은 빈민들이 큰돈을 벌었다. 살 곳을 잃긴 했어도 그건 지금 당장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고민할 것이 아니었다.

설령 그걸 걱정한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미래를 보는 안목을 가리는 것이다. 본디 가난한 이의 안목은 그리 길어질 수가 없었다.

지금 이 같은 상황에, 정무를 보는 남약정도 참으로 난처했다. 그렇다고 백성들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집을 팔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남약정이 할 수 있는 건 남주부성에서도 특히 외진 곳에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안치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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