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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37화 (936/1,000)

1837화. 폭풍전야

그렇게 남주부성 중심부는 계속 부귀한 자들이 차지했고, 가난한 자들은 끊임없이 외곽으로 밀려났다.

남주부성 여기저기서 공사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오래된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귀한 자들이 다 무너져 가는 집에서 살 리가 없었다. 당연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건물을 새로이 올리려 했다.

이 현상에 사방의 장인들이 상당한 일당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분분히 남주부성으로 달려왔다. 이젠 남주부성에 있는 장인들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아무리 비싼 값을 치러도 장인을 찾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객잔들은 손님으로 가득 찼고, 일부는 객잔을 통째 빌리기도 했다.

지금 남주는 사지가 온전하기만 하면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으니, 대연 섭정왕에 이끌려 각지 자원이 끊임없이 남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연국 도성은 날이 갈수록 한산해져 파리가 날리는 지경이었다.

* * *

누각 위.

고견성과 남약정은 북적이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연국 황제 상건웅이 연금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유를 잃어버린 상건웅은 매일 화를 내고 저주를 퍼붓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 슬픈 것은 권력을 잃자, 어린 환관들조차 상건웅에게 대놓고 짜증을 내고, 후궁들도 더는 상건웅을 떠받들지 않았다. 심지어 후궁들 상당수가 암중에 호위들과 외로운 밤을 달래기도 했다.

상조종이 상건웅을 먼저 언급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고견성이 상조종에게 나서서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니, 결국 남약정을 찾은 것이다. 고견성은 남약정과 말하면, 그가 알아서 상조종에게 알릴 것이라 믿었다.

고견성의 관직은 여전히 연국의 대사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매우 낮추며, 모든 일을 남약정에게 보고하고 의견을 구했다.

중요한 이야기가 끝나자 남약정은 사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대사공의 공자 고소명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견성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탄식을 했다.

“드디어 얼굴을 드러낼 수 있게 됐지요. 더는 숨어 살지 않아도 됩니다.”

남약정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대사공은 왕야를 위해 참으로 오랜 시간 치욕을 참아 오셨습니다. 공자께서도 참으로 큰 희생을 하셨지요. 요즘 남주에 일이 너무 많아, 일손이 매우 부족합니다. 괜찮으시면 제가 고 공자에게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합니다만?”

여기는 연국 도성이 아니었다. 모든 게 새로이 세워지는 중이고, 과거 연국처럼 부패하지도 않았다. 특히 지금 고견성이 만약 사적으로 아들에게 한자리씩 주게 되면, 아래 있는 수많은 사람이 고견성을 따라 할 테고, 결국 상조종의 진노를 초래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약정이 직접 그를 찾아와 입을 열었으니, 이건 지금까지 고견성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었다.

고견성은 그 즉시 포권을 하며 답례했다.

“사정대인(司政大人)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의 복이라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사정은 바로 남약정의 관직이었다. 보통은 대사공과 비교할 수도 없는 위치이지만, 지금은 뭐. 딱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지 않은가.

곧이어 남약정이 말했다.

“대사공 일가족이 아직 객잔에서 지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야께선 이미 오래전 소신에게 대사공을 위한 적당한 거처를 마련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야 적당한 곳을 찾았지요. 아마 연국 도성만큼 넓고 편하진 않을 겁니다. 대사공, 부디 이를 너무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남약정은 내심 고견성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견성은 아들에게 한자리 주는 것도 없고, 가족들의 거처를 마련하지도 않았다.

고견성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리는 없었다. 상영충은 벌써 제일 먼저 큰 저택을 사 가족들을 부르기까지 한 상태였다.

일국의 대사공과 그 가족이 어찌 계속 객잔에서 지낼 수 있겠는가. 결국 상조종이 더는 두고 보지 못하고 거처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고견성은 성은이 망극하단 얼굴을 했지만, 사양하지는 않았다.

“섭정왕께서 이처럼 노신을 위해주시니, 어찌 감히 사양하겠습니까. 그저 섭정왕의 은혜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내 고견성은 남약정과 헤어지고 객잔으로 가, 가족들과 이사를 준비했다.

* * *

고견성의 가족은 새 저택에 둥지를 틀었다.

이사를 끝낸 뒤엔, 고견성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지는 바로 초려별원이었다.

남주에 온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을 적당히 처리한 후 드디어 초려별원을 찾는 것이었다.

본디 고견성은 초려별원과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당연히 방문 전 미리 초려별원 주인 관방의와 인사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연락해뒀었다.

관방의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마주한 두 사람은 예의를 차리며 안부를 묻고, 관방의는 고견성에게 안으로 들기를 청했다.

그렇게 다른 이목을 물린 후, 관방의는 고견성을 밀도로 안내했다.

* * *

밀실 내부.

우유도 역시 이미 미소 띤 얼굴로 고견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발견하고, 고견성은 빠르게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도야를 뵙습니다.”

우유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고 대인, 드디어 다시 뵙는군요.”

그리고 손을 뻗어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오랜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다. 당연히 할 말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상조종을 언제쯤 황제라 칭하면 좋을지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 말을 듣고, 우유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그런 것들은 고 대인 같은 조정 대신들이 고민할 일이지요. 내게 물어볼 필요 없습니다.”

고견성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황제로 칭하게 된 후의 일은 노부가 걱정할 일도 아닙니다. 처리할 일을 다 끝내면, 왕야를 위해 할 일을 다 마친 노부는 은퇴해야 마땅합니다.”

“호오, 고 대인께서 그처럼 소극적인 말씀을 하시다니, 혹시 배척을 받고 계신 겁니까? 아직 내 말이 왕야께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으니, 어디 한번 편안하게 말씀해 보시지요.”

고견성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더니, 허리를 숙이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도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노부의 자리에 앉아야 하는 제일 적당한 인물은 남약정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길게 가는 법이지요. 배척받거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마음이 식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이가 나이다 보니, 정말로 은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우유도도 그의 말을 이해하고, 고견성의 찻잔에 찻물을 따라주었다.

“조정 일은 고 대인이 나보다 더 잘 아실 것입니다. 고 대인의 결정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것이겠지요. 고 대인이 결정하신 것이라면 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십시오.”

* * *

정자 내부.

자평휴와 가무군이 마주 앉아 붓과 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이쪽도 줄곧 송국 황제 오공령과 대립 중이었다. 상건웅이 정변을 당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데다, 더욱이 목탁진의 일도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오공령의 반면교사가 됐다. 경각심이 생긴 오공령은 결국 자평휴의 권력을 하나둘 빼앗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평휴는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그 이유엔 가무군의 계획이 있었다. 그로 인해 오공령은 이대로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강하게 나갈 수도 없어, 줄곧 자평휴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경직된 국면에 대해, 가무군은 이렇게 평했다.

「국본보단 3대 문파의 이익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이 계책을 밀고 나간다면, 승상을 흔드는 건 3대 문파를 흔드는 것이니, 오씨는 감히 승상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자평휴는 가무군의 글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파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난단 말입니까!”

가무군이 다시 붓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갔다.

「폭풍전야입니다!」

자평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멀지 않았습니까?”

가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국의 천도가 끝났다. 소평파의 예상대로 태숙웅은 진국의 새로운 도성을 원 위국 도성으로 정했다.

어딘가 광활히 펼쳐진 논밭, 셀 수 없는 맥곡(麥穀)이 파도치는 곳에 한 마차 행렬이 멈춰 섰다.

제일 먼저 태숙환아가 소유아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고, 그 뒤로 두 사내아이와 그 뒤를 바짝 따르는 사내아이 한 명이 내렸다.

일행은 논두렁의 시내를 따라 걸으며, 곧 다가올 풍작을 감상했다.

“형아, 형아…….”

제일 조그만 아이는 짧은 다리로 열심히 제 형을 쫓았다.

앞에선 태숙환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녀는 연신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소유아에게 이 모든 것이 자신들 것이라 알려주고 있었다.

일행은 이미 소평파가 일찍이 사둔 도성의 부동산을 구경하고 오는 길이었다. 소유아에게도 당연히 큰 저택을 주었고, 태숙환아는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결국 태숙환아의 바람대로 그녀는 형제자매들의 부러움을 샀다. 거기에 다시금 이리도 광활한 논밭을 보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기분이 날 듯했다.

한편, 피풍의를 걸치고 천천히 논밭 옆의 초원을 걷던 소평파는 문득 저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노소, 자옥 등의 학생들에게 어디를 줄지 결정했느냐?”

곁에서 조용히 그를 수행하던 소삼성이 답했다.

“예. 준비는 됐지만, 너무 큰 것이다 보니 다들 부담스러워 합니다.”

“확실히 일러라. 이건 선물이 아니고, 그들을 대신해 미리 사둔 것뿐이다. 당시 구매했던 가격을 받을 테니,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해라.”

소삼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 말했습니다. 당시 구매했을 때 작성한 증서까지 보여줬음에도 부담스러워합니다. 아마도 대 공자님께 손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강제로 그들 손에 쥐여주다시피 했습니다.”

받았다니 되었다. 소평파는 더 이상 별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내 소평파는 허리 숙여, 보리를 조금 딴 뒤 손으로 비벼 날 알을 깠다. 그리곤 지푸라기를 입으로 불어 날려버리곤 날 알을 머금었다.

소평파는 다시 저 먼 곳을 응시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또 풍년이구나. 세상에 더는 전쟁도 없이, 이대로 천하 백성들이 안거낙업(*安居乐业: 평안히 살며 즐거이 일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부디 이 모습이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구나!”

“대 공자님께서도 기운종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이제 진국이 동벌하는 것은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그 전쟁은 또 얼마나 길어지겠습니까.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이, 이미 반년이 넘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보면 천하 각지가 더는 전쟁 없이 평온한 것 같습니다. 나라간에도 전쟁이 없고, 수행계 세력들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습니다. 속세가 소란을 피우지 않고, 수행계도 조용하니 그야말로 세상이 평온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먼 곳을 보는 소평파의 눈엔 우려가 가득했다.

“지금이 평온할 수 있는 세상이더냐? 본디 평온할수록, 비정상적인 것이다. 조용한 수면 아래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있다. 폭풍우가 몰아칠 징조구나!

천하대세를 살펴보면, 각 세력은 지금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단 하나의 계기를 기다리는 것이겠지. 진국 동벌의 시작이 바로 그 계기라 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폭풍은 끝끝내 온 천하를 뒤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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