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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40화 (939/1,000)

1840화. 한계

반면 한국 쪽은 송국 사신의 말에 격분했다. 어떻게든 한 여인을 나라 간의 원한이란 경지까지 끌어 올려, 반드시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굳이 외국 여인을 위해 문제를 일으킬 필요까진 없었다. 섭진정도 아작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신하들의 압박에 결국은 손을 놓았다.

사실 그는 목탁진이나 상건웅만큼 아작을 아끼진 않았다. 아작이 입궁한 이후로 늘 골치가 아팠다. 대사마 금작부터 만조백관들까지 아작을 두고 어떤 이는 공적으로, 또 어떤 이는 후궁의 이익 투쟁으로 아작이 불길한 여인이라 끊임없이 주청했으며, 매일 그녀를 죽이라는 간청이 쌓여갔었다.

나중에 상건웅도 정변으로 황권에서 멀어지고, 목탁진의 전철을 밟으면서 불길하다는 말에 더욱더 힘이 실렸다.

마침 이런 시기에 송국에서 아작을 보내라 하니, 섭진정도 더는 그녀를 지킬 수가 없었다. 체면을 구기고, 수모를 겪는 것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천하가 요동치는 판국이면, 사내들은 대부분 여인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익에 반하면 아무 망설임도, 죄의식도 없이 여인의 손부터 놓아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 사내들의 졸렬하고 알량한 본성이었다.

* * *

기운종.

전쟁이 코앞이었다. 더 이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남도림과 독무허가 다시금 같이 오상을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비로소 느긋이 나오는 오상과 마주했다.

오상은 두 사람을 조금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일전에 두 사람이 만나고 싶다는 전언을 전했을 때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 다만 이번에는 두 사람이 직접 찾아왔기에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자, 남도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상, 설마 지금 의도적으로 우릴 피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오상이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남도림을 빤히 바라보았다.

“피해? 내가 왜? 내가 정말 피하려 했다면, 나를 찾을 수나 있었을까?”

그때, 독무허가 쓸데없는 말싸움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오상, 상조종이 네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상이 다시 그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뭘 하려는 거지?”

“내가 뭘 하려는 게 아니다. 진국이 곧 동벌을 시작하려 하는 시기에, 상조종은 지금 대대적으로 군을 모아 대항하려 하고 있지 않나. 이제 우리에게 뭔가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겨우 그것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건가?”

이번엔 다시 남도림이 말했다.

“상조종이 연국 병력을 모으고 있어. 그냥 보여주기식도 아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뭘 설명하라는 거지? 만약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연국 3대 문파에 상조종이 뭐라고 변명한단 말인가? 내가 말했다시피, 연국은 반드시 패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움직이면, 연국 3대 문파가 상조종에게 대군을 지휘할 작전권을 남겨둘 것 같나? 패하는 것도 그에 맞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조차 모른단 말인가?”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라, 네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네 행동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니까! 절대 함부로 수작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오상도 지지 않고 우렁찬 소리로 남도림의 말에 반박했다.

“내가 수작을 부리면 어쩌려고?”

순간 남도림의 얼굴이 스산해졌다. 오상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한판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번엔 독무허도 조용히 방관했다. 그저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태도로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도 결국은 서로 독한 말을 내뱉을 뿐, 진짜 싸우지는 않았다. 안 싸워 본 것도 아니고, 정말 손을 쓴다 해도 상대방을 어쩌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싸워봤자 아무 의미도 없음을, 이미 잘 알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뻔뻔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더는 기운종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남도림이 먼저 코웃음을 치고는 뒤돌아섰다. 어디 얼마든 수작을 부려 보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을 돌려보낸 오상은 곁에 있는 흑석을 바라보았다.

흑석이 조용히 다가와 명을 기다리자, 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조발이라는 놈은 아직도 다음 행동이 없느냐?”

흑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그 후에 소인과 다시는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오상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혹시 전에 만났을 때,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건 아니더냐?”

흑석이 다급히 말했다.

“성존! 부디 굽어살펴 주십시오. 신중히 행동하고 있으니, 해선 안 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초려산장과 조발의 관계는 이미 우리 손에 있습니다. 양측이 줄곧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니, 타초경사한 것 같진 않았습니다. 초려산장이 너무 신중한 태도라, 소인을 좀 더 관찰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리 오래도록 관찰한단 말이냐? 신중해도 너무 신중한 것 아니냐!”

“확신 없는 일이니 신중히 접근하는 것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닙니다.”

“사소동과 청구 쪽은 어떻지?”

“이쪽과 대동소이합니다. 더는 어떤 반응도 없으니, 여전히 신중하게 관찰하는 듯합니다. 초려산장의 이 신중한 태도를 보면, 아마 또 다른 시험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절대적인 확신 없인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오상은 장발을 휘날리며 먼 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이쪽은 더 이상 시간을 끌기 어렵구나. 저 두 노귀(老鬼)가 여길 직접 찾아왔다. 더욱이 지금 상조종에게 반항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니더냐. 그렇다고 진국의 공격을 멈추게 한다면, 저 두 노귀의 의심을 살 터, 그리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젠 움직여야겠다!”

흑석이 깜짝 놀랐다. 오상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움직이다니요?”

“한계가 왔다. 더는 시간을 끌기 어렵게 됐어. 초려산장이 상조종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연국과 한국이 연합하면 진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그러니 저들은 지금 느긋할 것이다. 나와 저 두 늙은이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모르고 있겠지.

더는 이대로 시간을 끌 수 없다. 초려산장의 움직임에 맞춰 저들이 두 노괴를 칠 때까지 기다린다면, 대체 어느 세월까지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구나. 지금 당장 조발을 비밀리에 잡아들여라.”

뒤돌아 자신을 빤히 보는 오상을 두고, 흑석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성존, 조발을 잡아들이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말대로 해라. 내게 다 계획이 있다.”

그래도 오상은 단호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흑석이라고 선택의 여지가 있겠는가. 흑석은 결국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협곡.

조발은 술 냄새를 따라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예상대로 소나무 아래, 홀로 술을 마시는 흑석이 있었다.

그러나 조발은 가까이 다가가 잠시 관찰할 뿐, 흑석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냥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흑석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뒤돌아 한껏 술에 취한 듯 입을 열었다.

“이리 와라.”

조발은 멈칫하며 뒤돌아보았다. 흑석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발은 곧장 다가가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따라와라.”

흑석은 그 말만 남기곤, 그 즉시 협곡 아래로 몸을 날렸다.

조발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렇다고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 역시 흑석을 따라 몸을 날렸다.

* * *

달빛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협곡에, 흑석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또 한 인영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다. 등 뒤로 장발을 휘날리며 웃통까지 벗고 위풍당당한 태도로 서 있는 사내, 누가 봐도 오상이 분명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조발은 재빨리 그의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렸다.

“성존을 뵙습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발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힐끗 바라보자, 마침 오상도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발은 다시 또 놀라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흑석이 왜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것인지,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얼굴은 점점 공포에 질려갔다.

흑석도 마찬가지로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 역시 아무리 고민해도, 오상이 직접 나서서 조발을 만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침묵하던 오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누가 너를 보내 흑석을 떠보게 했느냐?”

그 말을 들은 조발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오상을 바라보았다.

* * *

산속, 붉은 석양이 유유히 노니는 호숫가가 있었다. 이곳에 간편한 옷차림에 변장한 조발이 내려와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렸다.

조발은 곧 한편에 있는 큰 바위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풀을 좀 뽑아, 바위의 갈라진 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바위 곁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사실 지금 그가 실제로 얼마나 공포에 질려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터였다.

한참을 기다리자, 호수 수면에 물결이 치며 한사람이 나타났다. 천천히 뭍으로 걸어 나오는 그에게 조발은 손가락으로 어떤 신호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러자 상대도 손가락을 교차하며 신호를 만들어 보였다. 두 사람은 그제야 안심하고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전해야 할 일이 있으면, 지정된 곳에 서신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지 않았소. 무슨 일이길래 이처럼 직접 만나려 한단 말이오?”

호수에서 나타난 사람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조발은 마치 뭔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그 사내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는 순간 경계심이 들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사내가 뒤돌아본 순간 조발은 그대로 몸을 날려 빠르게 도망쳐 버렸다.

곧 사내가 뒤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본 순간, 이미 멀리 도망치고 있는 조발을 보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사내는 조발을 뒤쫓는 게 아니라 홀연 호수로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숲속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와 사내를 따라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상이었다.

반면 조발은 숲속에 내려선 후, 느긋이 나타난 흑석에게 향했다. 정말 온 힘을 다 쏟은 듯 비틀거리던 조발이 간절한 눈으로 이야기했다.

“장로님, 해약을 주십시오.”

흑석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어떤 수작도 부리지 않았단 걸 확인하면 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호수 안에서 굉음이 울리며 거대한 면적의 수면이 터져나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망자가 감히 성존과 겨룰 수 있을 만한 실력자였나?

호수는 태풍을 맞이한 바다처럼 출렁거렸고, 한동안 큰 소란이 있고서야 호수 안에서 나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뭍에 내려선 오상의 손에는 흠뻑 젖은 한 사람이 들려 있었다. 사내의 코와 입에선 계속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곧이어 오상이 그 사내가 쓴 가면을 뜯어내자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사내는 매우 분한 얼굴로 조발을 노려보고 있었다.

조발의 눈에도 침울한 빛이 고였다. 그에겐 본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원영기 수행자라니, 누구냐?”

누구에게 묻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오상과 손속을 겨룬 사람이었다. 흑석은 처음부터 상대방이 원영기 수행자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상이 그 의심을 사실로 확정 짓자, 흑석은 사내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제갈지? 마을 사람들이 묘사한 대로 그린 초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제갈지입니다.”

오상은 조금 의외란 얼굴이었다.

“네가 바로 제갈지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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