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841화 (940/1,000)

1841화.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네가 바로 제갈지란 말이냐?”

맞았다. 지금 오상에게 붙잡힌 사람은 바로 제갈지였다. 그러나 제갈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 오상이 돌연 제갈지의 어깨를 살짝 치며 그를 풀어주었다.

제갈지는 비틀거리며 뒤로 두 발짝 물러나 의아한 얼굴로 오상을 바라보았다. 지금 오상은 그에게 걸려있던 금제도 풀어주었다.

이내 오상이 제갈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내 주위에 숨어 수작을 부리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너 한 사람이 부린 수작질이 아니라는 걸 안다. 네놈 배후엔 아직 수많은 사람이 있겠지. 너희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안다. 너를 죽이지 않는 것으로 내 성의는 충분히 증명되겠지.

넌 내 말을 가지고 돌아가 동료들에게 전하고 의논해 보아라. 내게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일 방법이 있다. 하지만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누군가 남아 너희의 대답을 기다릴 것이니, 너희끼리 의논한 후에 다시 나와 이야기 할 사람을 보내라.”

흑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오상의 의중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곧 제갈지는 오상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오상이 정말로 자신을 풀어준 것임을 확인하곤 그 즉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제갈지가 사라진 후 흑석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성존, 저들이 정말 다시 사람을 보내겠습니까?”

오상이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보낼 것이다. 저들의 야심이 작지 않다. 설령 협력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 의도를 알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보낼 것이다.”

말을 마친 뒤, 오상은 그대로 날아올랐다.

이제 현장에 남은 건 흑석과 조발, 두 사람뿐이었다.

쾅!!!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흑석이 갑자기 소매를 휘두르더니, 곧바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로 조발을 향한 공격이었다.

당연히 대비하지 못한 조발은 그대로 멀리 날아갔고, 잠시 후 바닥에 떨어진 조발의 얼굴은 이미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사람은, 늘 헛된 기대를 하기 마련이지.”

흑석은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다 곧 잠잠해진 시신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호수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 물빛을 보고 있노라니 흑석은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상대방은 조발과 접선을 위해 원영기 고수를 보냈다. 이번엔 오상이 직접 나섰기에 망정이지, 만약 흑석이 나섰다면 지금 그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진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사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흑석은 초려산장이 이토록 신중히 움직이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그러나 상대도 오상이 직접 나설 줄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설혹 조발이 들통난다 해도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터였다.

* * *

남주부성, 왕부 밀실.

상조종, 몽산명, 남약정이 다시 우유도와 만났다.

전쟁이 코앞이었다. 병력과 물자를 움직이는 것 외에 사령관도 직접 출진해야 했다. 이는 상조종의 의견이기도 했다. 그와 몽산명이 직접 전선으로 나가 군을 지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연국 조정에선 반대를 표했다. 좋은 의도든, 본인들 충심을 표현하는 것이든, 신하들은 상조종이 섭정왕 신분으로 전쟁에 나서는 건 옳지 않다고 표명했다. 일단 상조종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온 연국이 흔들릴 테니 몽산명을 사령관으로 하여 전선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껏 우유도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상조종 결정에 간섭할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중요한 것이고, 혹시 우유도에게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으니, 상조종은 그의 의견을 구하려 했다.

우유도는 잠시 상조종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조정 신하들 의견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연국 내부에서도 누군가 자리 잡고 있어야지요. 혹시 몽 사령관이 홀로 가는 건 어려운 것입니까?”

우유도는 몽산명의 능력이 상조종보다 강하면 강했지, 떨어진다고 보진 않았다. 하지만 몽산명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도야, 노부는 늙었습니다. 체력이 과거 같지 않습니다. 문득문득 졸기도 합니다. 이젠 밤새우며 전쟁을 수행하는 게 어려울 듯합니다. 비록 중임을 맡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나, 더는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전쟁의 정세는 시시각각 변합니다. 혹시 제 체력으로 인해 큰 실수를 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니 왕야 곁에서 왕야를 돕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또 지금 모인 병력은 연국 각 세력을 한데 모은 병력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저들을 호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고려하자면, 왕야께서 직접 병력을 이끄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우유도는 절로 몽산명의 얼굴로 시선이 향했다. 그는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꽤 나이가 들었다. 하얀 머리칼에 검은빛은 찾기 어려웠고, 눈빛은 여전히 강인했지만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역시 정기신은 과거와 비교할 순 없었다.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은 왕야와 몽 사령관이 사전에 얘기가 된 것이군요?”

상조종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만약 전방의 전쟁이 순조롭지 않으면, 제가 국내에 자리 잡고 있다 한들, 여기저기 혼란이 일 것입니다. 하지만 전방의 전쟁이 순조롭다면, 민심이 안정될 것입니다.

저희끼리 의논해 본 결과, 전방의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직접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후방에 남아 지휘한다면, 명령이 오가는 시간이 길어 병력의 움직임이 둔해질 테고, 이는 전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우유도가 말했다.

“연국 내부에 문제만 없다면, 나머지는 여러분이 결정하십시오.”

“조정은 남 선생님과 고견성, 상영충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건 우유도와 삼성이지, 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연국은 우유도의 가장 큰 보호막이기 때문에 보여주기식으로라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했다. 우유도가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문제가 없다면, 걱정하지 말고 행하십시오. 이쪽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다만 조정 신하들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마 진국 쪽에서도 왕야만 처리하면 연국이 크게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당연히 진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왕야를 처리하려 하겠지요. 그러니 잘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조심할 겁니다. 3대 문파 쪽에서도 많은 인원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홍랑을 데려가세요.”

“홍랑?”

세 사람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때였다. 관방의의 이름이 나옴과 동시에 그녀가 나타나 우유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관방의는 우유도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보고를 올렸다.

“도야, 제갈지가 상처를 입고 돌아왔어.”

순간 우유도의 두 눈에 정광이 번쩍였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일행에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왕야, 지금 겉으로 보기에 홍랑은 초려산장 책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홍랑이 왕야를 따라가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을 겁니다. 또 하나, 홍랑을 데리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습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삼성이 직접 손을 쓰지 않는 이상, 홍랑이 곁에 있으면 왕야는 안전할 겁니다.”

관방의는 무슨 일인지 몰라 놀란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상조종, 몽산명, 남약정도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의외를 넘어, 심지어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관방의에게 그 정도 능력이 있었나?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듣기에 따라, 관방의가 삼성을 제하면 싸워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게 정녕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래도 우유도가 그리 말했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사람이 많아 나쁠 것도 없기에, 상조종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십시오. 그럼 난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으니,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유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그대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 뒤로 한쪽에 있던 운희와 관방의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도야, 살펴 가십시오.”

상조종, 몽산명, 남약정은 뒤에서 포권을 올렸다. 다들 우유도에게 급한 일이 생겼음을 눈치챘다.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롭기만 했던 우유도가 매우 드물게 조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 *

심각한 낯빛으로 의자에 앉아 있던 제갈지가 우유도를 보았다. 바로 의자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려는데, 우유도가 급히 손을 내리눌렀다. 우유도 역시 제갈지를 보자마자 그의 부상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을 알았다.

관방의가 곧바로 의자를 하나 가져와 우유도 뒤에 놓아 주었다. 우유도도 소리에 살짝 뒤를 돌았다가, 그대로 앉으며 제갈지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제갈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상이 직접 움직였습니다. 전 오상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겨우 십몇 초 만에 상처를 입고 붙잡혔습니다. 다만 도야의 예상대로, 저를 어떻게 하지 않고 곧바로 풀어주긴 했습니다.”

이번에 제갈지가 조발과 접선하는 일을 담당한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우유도 쪽은 오상이 자신들에 대해 다 파악하고 있단 걸 알았고, 그런 오상 앞에서 수작을 부리는 일이었으니, 위험하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우유도가 판단하기에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생명에 지장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아서 제갈지를 내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우유도라도 오상이 직접 손을 쓰리라곤 예상치도 못했다. 오상이 지금 얼마나 조급해하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예였다.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해보십시오.”

우유도의 물음에, 제갈지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조발이 먼저 만나자는 전언을 보냈습니다…….”

할 이야기가 길진 않았다. 과정은 너무 단순했고, 오상의 수법은 깔끔했다. 제갈지를 잡아 몇 마디 한 뒤 그대로 풀어줬고, 이 역시도 매우 간단했다.

이는 오상의 급박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상이 평소 일을 단호하게 처리한다는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 한쪽에 있던 여무쌍이 내용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

“이 마두놈은 분명 우리 소굴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 조발을 이용해 자신을 숨기고 우리와 접선하려 했군요.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군!”

다들 이제야 우유도가 조발이라는 연락선을 남겨둔 의도를 깨달았다. 오상이 본인을 숨기도록 도와준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오상도 이쪽과 연락할 좋은 수를 찾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내 우유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서성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잠시 후, 그가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았다.

“몇 달도 더 벌기 어려워졌어. 오상도 더는 시간을 끌지 못하겠군. 시간은 내 편이 아닙니다, 나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마 오상은 남도림과 독무허를 처리할 확실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내가 오상과 얘기해 봐야겠어요.”

“네가?”

관방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대경실색하긴 마찬가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