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화. 오상과 만나다
“직접 가서 오상과 만나겠다는 말인가요? 너무 위험해요. 안돼요!”
여무쌍도 매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 중 누가 가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 일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상이 정말 손을 쓰려고 했다면, 여태까지만큼 공을 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정말 더 시간을 끌 수 없는 듯합니다.
지금 오상의 심복지환과 주요 목표는 남도림과 독무허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린 그의 손바닥 안에 있지요. 오상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는 개개인을 죽여가며 타초경사 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도야보다 오상을 더 잘 알아요! 오상은 변덕스러운 사람이에요. 어떤 일이라도 생길 가능성이 있어요! 안 돼요, 도야는 절대 가면 안 돼요. 일단 도야에게 문제가 생기면, 지금 우리 쪽 세력의 신뢰에 금이 갈 거예요.
다른 사람이 간다면, 설령 문제가 생긴다 해도 판이 엎어지지는 않겠지요. 이제 와 공든 탑을 무너뜨릴 정도로 도박할 가치는 없어요. 가장 중요한 키잡이가 직접 위험을 감수하는 건 이성적이지 않은 일이에요!”
그때, 제갈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겠습니다. 오상과 직접 만나 봤으니, 제가 다시 그와 소통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겠지요. 만약 저를 죽일 거였다면, 지금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었을 겁니다. 당부할 일이 있다면, 저한테 알려주십시오.”
제갈지는 직접 겪었기 때문에, 우유도의 판단을 믿었다. 일전에 우유도는 생명의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했고,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이번에도 우유도는 문제가 없을 거라 했으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우유도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내가 직접 갑니다. 이미 그렇게 정했습니다.”
여무쌍은 그 즉시 두말하지 않고 뒤돌아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우유도는 뒤돌아 다시 관방의를 보며 말을 전했다.
“왕야가 전방으로 갈 예정이야. 지금 왕야의 신분은 온 연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진국은 아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홍랑은 준비하고 왕야와 같이 움직여줘. 왕야를 보호하고, 왕야와 몽 사령관을 지켜줘.”
관방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건 어려울 것 없지만, 도야가 직접 오상을 만나러 간다니……. 여무쌍 말이 맞아, 너무 위험해.”
“그 이야긴 그만하자. 이미 결정된 일이야.”
이내 우유도가 다시 뒤돌아 제갈지에게 물었다.
“부상은 어떻습니까?”
“가볍지는 않지만, 큰 상처는 아닙니다. 문제없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오상을 만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대로 다른 사람의 신분을 밝힌다면, 오상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 신분이 들통난다 해도, 오상은 날 건들지 않을 겁니다.”
그때, 밀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원강이었다. 그 뒤로 여무쌍이 보이는 걸 보니, 그녀가 원강을 부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말이 통하지 않으니 원강을 끌어들인 듯했다.
곧이어 원강이 우유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꼭 가야 하나요?”
“상황을 가장 확실히 아는 사람은 나야. 현장에서 결정 내릴 수 있는 것도, 오상의 태도가 진짜인지 판단하는 것도 나 외엔 불가능해.”
“좋아요. 그럼 나도 같이 갈게요.”
순간 여무쌍은 눈을 부릅떴다. 원강에게 우유도를 설득하라고 데려왔더니, 설득은커녕 같이 위험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우유도의 목소리도 굳어졌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무 위험도 없다면서요.”
“…….”
우유도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위험이 없는데 내가 못 갈 이유도 없잖아요? 운희도 같이 데려가세요. 일단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오상의 발목을 잡을게요. 운희가 도야를 데리고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겠어요.
도야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돼요. 도야가 잘못되면 누가 지금 상황을 주관할까요. 우리 중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 오상에게 붙잡힐 거예요.
나 한 사람이면, 오상이 날 붙잡는다고 해도 바로 죽이진 않을 거예요. 분명 나와 여무쌍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 할 테니, 나중에 기회를 봐서 날 구해주세요. 그러면 되잖아요.”
다들 원강의 실력을 직접 목도했다. 단 한 번의 칼질로 원색을 죽인 인물이었다. 오상도 분명 그 실력에 놀랄 테고, 운희가 우유도를 데리고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여무쌍은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당신을 구하라고요? 뭘 어떻게 구해요! 이제 오상에게 붙잡히면 누가 당신을 구할 수 있는데요!”
원강은 여무쌍을 힐끗 보곤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 반응에 여무쌍은 더 화가 났다.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다니, 솔직한 마음으론 그냥 칼로 찔러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면서 이번 일의 이해득실을 따져보았다. 한참이 지나, 그가 다시 원강을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제수씨 말이 맞아. 정말 문제가 생기면, 다시 널 구하긴 힘들거야.”
“그럼 대신 복수해 주세요. 그게 다 같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우유도는 이내 뒤돌아 운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도 단호했다.
“원숭이 말대로 하지요. 누님도 갑시다. 아마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만약을 대비하는 것일 뿐이지요.”
“알았어.”
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강의 말대로면, 가장 위험한 건 오히려 원강이었다. 운희도 원강에 대해 나름 잘 아는 편이었다.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원강은 분명 목숨을 걸고 자신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사람이었다.
우유도는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준비하세요. 며칠 안에 적당한 시간을 보고 출발하도록 하지요.”
여무쌍은 화가 났다. 정말 화가 나서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 * *
어두운 밤, 남녀가 한 침상에 각자 절반을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바깥쪽엔 여인을 등지고 누운 사내가, 한쪽엔 똑바로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바로 원강과 여무쌍이었다.
문득 여무쌍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설득하면, 안 갈 건가요?”
“안되오. 그래도 가야하오.”
“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전 어떡하죠?”
원강은 입을 다물었다.
여무쌍이 갑자기 몸을 돌려, 갑작스럽게 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원강은 등 뒤로 자신을 꼭 안은 여무쌍의 손을 풀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여무쌍은 원강의 옷을 더 힘주어 잡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요. 이제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세요. 제가 당신에게 어찌 대했나요? 싫다면 처음에 거절했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살아 있을 땐 날 생과부로 만들더니, 이제 죽어서 저를 진짜 과부로 만들 생각인가요? 어찌 사람이 제게 이리 박정할 수 있는 건가요?”
그래도 원강은 여전히 침묵했다. 결국 분노한 여무쌍이 일어나 원강의 위에 올라타고,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 * *
흑석이 빠르게 절벽으로 달려와 오상에게 다가왔다.
“성존! 초려산장에서 청구와 사소동 곁에 있는 사람들을 신속하게 철수시켰습니다. 이쪽에서 제갈지를 건든 것이 저들에게 경각심을 준 듯합니다!”
오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쉽군. 시간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아 아쉬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흑석도 오상이 뭘 아쉬워하는지 잘 알았다. 이쪽에 제갈지를 배치했다는 건, 다른 두 곳에도 원영기 고수를 배치했음을 뜻했다. 만약 적당한 시기에 손을 썼다면,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터였다. 아마 아직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숨겨진 원영기 고수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쪽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다. 반드시 조발을 통해 연락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만약 동시에 다른 두 곳도 문제가 생긴다면, 초려산장도 자신들이 들통났다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럼 신분을 숨긴 원영기 수행자들은 그 즉시 숨어들지 않겠는가.
흑석이 곧 오상에게 위로를 건넸다.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기만 하면, 그들을 해결하기만 하면, 분명 누군가는 입을 열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남겨진 몇 명은 걱정거리도 아닙니다.”
“그쪽 호수에 초려산장의 사람이 왔느냐?”
“아직입니다. 이미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으니, 일단 누가 오면 즉시 이쪽에 연락이 올 것입니다.”
“계속 기다려라. 그들의 야심이라면, 분명 큰 유혹을 느낄 것이고, 분명 사람을 보낼 것이다. 저들은 내가 두 늙은이와 상쟁을 벌이는 걸 꿈에서조차 바라고 있을 것이다.”
과연 오상의 판단을 틀리지 않았다. 초려산장은 사람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우유도가 직접 움직이기까지 했다.
오상은 이번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 움직였고, 우유도 또한 이번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 * *
오가는 구름이 비춰 흐르는 호숫가에 한 인영이 어렸다. 우유도와 운희였다. 남장한 두 사람은 수면을 차고 날아와 뭍에 있는 바위 곁에 착지했다.
이들의 등장에, 숲속에서 즉시 누군가 날아와 그들을 경계하며 섰다.
“누구냐?”
“오상의 초대를 받고 온 사람이오.”
우유도가 답했다.
숲에서 나타난 사람은 우유도를 가볍게 살펴보곤 숲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숲속에서 금시 한 마리가 날아올라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가 다시 우유도를 향해 말했다.
“두 분은 여기사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성존께서 기운종에서 이곳까지 오시려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우유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오상을 기다렸다.
* * *
대략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장발을 휘날리는 인영이 허공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상이 드디어 온 것이다.
오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는 혹시나 초려산장 사람들이 너무 신중한 나머지, 전과 같이 계속해서 시간을 끌까 봐 걱정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시간을 질질 끌었다면 오상도 부담스러운 나머지 초려산장을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우유도와 운희 역시 고개를 들어 오상을 바라보고, 경계심을 세웠다.
휙-
오상이 바닥에 착지해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앞서 우유도와 만난 이에게 물러가라 손짓하자, 사내는 오상에게 포권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양측이 정식으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 모두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오상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거대한 날짐승 한 마리가 호수 위를 날아오고 있었다. 그 날짐승에 변장한 원강이 타고 있었다.
그는 먼 곳에서 이곳 상황을 지켜보다가 오상의 등장에 급히 날아왔다. 하지만 체형이 워낙 눈에 띄는 까닭에 삼후도는 날짐승 위에 내려두고, 원강은 아예 몸을 납작 숙이고 있었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원강은 자신의 실제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홀로 날짐승을 타고 날아온 원강은 일행이 있는 하늘 위를 맴돌았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손을 쓰기 위해서였다.
운희가 오상보다 약하다곤 해도, 원강이 올 때까지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원강도 이미 운희와 따로 얘기를 나눴고, 운희도 동의한 바였다. 일단 무슨 일이 생기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유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내 우유도가 하늘만 빤히 응시하는 오상을 향해 말했다.
“긴장할 것 없습니다. 저희를 데려가려고 온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