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화. 당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
“긴장?”
오상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은 홀로 왔는데, 상대는 이 많은 인원을 데려왔다. 대체 지금 누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오상은 괜히 상대와 말싸움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번 일 책임자가 누구더냐?”
우유도가 대답했다.
“저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애매한 대답이 아니다. 너는 그럼 너희 그쪽을 대표할 수 있느냐?”
“명령을 받고 온 이상, 당연히 어느 정도 권한이 있습니다. 최소한 당신과 소통할 자격은 있지요.”
자격? 오상은 상대방의 대응이 같잖았다. 그런데도 상대방을 조롱하지는 않았다. 그가 다시 직접적으로 말했다.
“너희도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너희가 뭘 하려는지 안다. 우린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이제부터 함께 협력할 수 있겠지.”
“어떻게 협력합니까?”
“남도림과 독무허, 우리의 목표는 같다. 그러니 일단 그들을 처리하고 우리끼리 승부를 가리는 것은 어떠하냐.”
“듣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협력합니까?”
현재 우유도의 옆을 지키는 운희는 한쪽으론 대화를 들으며, 한쪽으론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무려 구성을 마주했다는 것에 매우 긴장한 것이다.
결국 내내 두 사람을 관찰하던 오상은 자신과 대화하는 우유도는 담담한 반면, 그 곁에 운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실 복잡할 것 없다. 아주 간단하지. 때론 간단할수록 그 효과는 더 뛰어난 법이다. 결과도 아주 간단할 것이다. 우리가 같이 협력해서, 그 두 늙은이를 죽이면 되는 것이다.”
오상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리 간단하단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구성이 있을 때 나머지 여덟이 한 명을 상대한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죽이지 못했지요.”
오상은 지금처럼 누군가가 자신과 협상하려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얕잡아 보는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만약 이들이 원색 등을 죽여 그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면, 오상은 이처럼 인내심을 갖고 대화하고 있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오상은 꺼리는 상황이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전에는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내가 제어하는 무변마역의 술법이 이미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전의 내 무변마역은 오직 사람만 묶어 둘 수 있기에, 큰 조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너희 인원 중 한 사람이 황택사지에서 나와 연합해 설파파를 죽였다. 그는 내 조력이 얼마나 큰지 느껴보았을 것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그에게 물어봐도 된다.”
우유도는 오상의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공들여 여기 나올 일도 없었다. 협상을 위해 여기 나왔다는 건, 서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우유도는 의문을 거둘 수 없었다.
“황택사지에서 협력한 일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당신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겠지요. 다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정말 당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남도림이라 독무허 중 한 사람을 이용해 한 사람을 죽이고 그후 나머지 한 사람을 죽이면 그만 아닙니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군. 정말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두 늙은이가 나와 협력할 거라 보느냐? 당연히 저 둘이 손을 잡고 날 상대하려 하겠지.”
우유도가 또 다른 의문을 제시했다.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일단 저들을 묶어두고, 수하들이 손을 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왜 반드시 저희와 협력해야 한다는 겁니까?”
“무변마역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일망무제한 공간으로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그러나 무변마역을 시전하는 동안엔 땅에 내려설 수 없다. 무변마역은 땅속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없어, 결국 아래쪽이 허점이 되지. 두 노괴라면 그대로 땅을 파고 도망칠 수도 있다.
너는 다른 수행자들에게 허공을 날아다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또 다른 수행자들이 협력한다고 해도, 그들의 능력으로 두 늙은이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더냐? 아마 어려울 것이다.
나도 무변마역을 끝없이 계속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싸우다 보면 두 늙은이는 결국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후로는 두 사람을 제대로 가두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제갈지를 풀어주어 너희와 협력하려 했다. 너희에게는 원영기 고수가 꽤 있지 않더냐. 우리가 손을 잡으면 너희는 공격을 책임지고, 난 무변마역으로 너희를 숨겨 주고. 결국 두 늙은이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유도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우리 쪽에서 원영기 수행자 몇을 투입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원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성공 확률도 높아지지. 그 이치를 내 따로 또 설명해야 하느냐?”
“우리 쪽 사람들이 모두 나서 싸운다면, 우리 쪽 인원의 능력이 당신에게 다 들키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계획인 것 같군요.”
“그걸 어찌 숨길지는 너희들 일이다.”
“만약 그 일로 우릴 보자고 한 것이라면, 이건 제가 결정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 보고해야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흘, 사흘 후 지금 이 시각에 여기서 만나기로 하시지요.”
“좋다, 사흘. 기다리겠다.”
오상은 그대로 뒤돌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깔끔하게 떠나버렸다.
양측 모두 상대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법이었다.
3일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전쟁이 그렇게 빨리 일어나진 않을 터였다. 설령 전쟁이 발발한다 해도, 겨우 며칠쯤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오상이 떠난 것을 보고 운희는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이내 우유도가 운희를 돌아보았다.
“가시죠.”
두 사람은 그 즉시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원강이 바로 날짐승을 움직여 두 사람을 태운 뒤 그곳을 떠나갔다.
* * *
운희는 주변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다, 결국 궁금한 것을 물었다.
“왜 사흘을 기다려 달라 한 거야?”
당연히 우유도에게 보고할 윗사람 같은 건 없었다. 이건 그저 우유도가 알아서 결정 내리면 그만인 일이었다.
“만약 오상 앞에서 바로 결정 내렸다면 그가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운희도 이제야 우유도의 의중을 깨달았다.
사실 우유도도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 오상이 자신들을 부른 게 남도림과 독무허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그냥 같이 손을 잡고 둘을 죽여버리자는 것일 줄이야.
이로써 알 수 있는 건, 이제 오상에게 둘을 처리할 수 있는 더 좋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만남엔 어떠한 위험도 없었다. 오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적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우유도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보여준 모습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조심해야 했다. 최소한 그런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했다.
일행은 곧바로 초려별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리저리 한참을 돌아 움직였다. 혹시라도 오상이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양쪽은 모두 상대방을 이용할 생각뿐이라, 대놓고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 * *
다들 안전히 돌아온 걸 보고, 여무쌍은 비로소 안도하며 질문을 쏟았다.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우유도는 여무쌍과 원강 사이의 분위기가 평소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강을 보는 여무쌍의 시선이 과거와는 달라 보였다. 오매불망 남편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던 아내의 눈빛이었다. 지금 그녀에게서 과거의 그 무쌍성존의 모습은 아예 찾을 수도 없었다.
여무쌍을 대하는 원강의 태도 역시 과거처럼 거칠지 않았다. 더는 과거처럼 내내 꺼리기만 하고, 버럭버럭 화만 내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그저 그런가 보다 여기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우유도는 오상의 제안에 대해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오풍, 곤림수, 서해당, 궁임책, 안돈천, 문화, 종곡자, 조웅가, 왕존, 관방의, 제갈지, 운희. 이 12명의 이름을 종이에 나열하고, 내내 그것만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 *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행은 다시 오상과 만났던 호수로 돌아갔다.
오상도 우유도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빠르게 약속장소에 도착한 오상은 다시 하늘을 맴돌고 있는 날짐승을 한번 돌아보았다.
시선을 회수한 그가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잘 생각해 봤나?”
“협력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쪽에선 여섯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섯이면 좀 모자라지 않겠느냐? 너희에게 원영기 고수가 고작 여섯 밖에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당신이 말한 무변마역이 정말 그처럼 효과적이라면 여섯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더 많이 온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효과는 상당하다. 다만 너희 쪽에서 실수가 나오지 말아야겠지.”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제 어떻게 손을 쓸지 말씀해 보시지요.”
“아주 화끈하게 승낙하는구나. 너희는 그 기회에 내가 너희를 죽일까 봐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저희를 죽이려 한다 해도,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인 후에 손을 쓰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이왕 그 이야기를 했으니,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군요. 혹시 나중에 토사구팽하지는 않겠지요?”
“넌 어찌 생각하느냐?”
“약조가 필요합니다.”
“내가 약조한다 한들 너희가 믿을 순 있겠느냐? 믿는다면, 약조하마. 모든 일이 끝난 후 너희를 보내주고, 나중에 너희와 일전을 벌일 것이다.”
“약조, 꼭 지키길 바랍니다.”
“너희가 믿기만 한다면, 나도 식언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움직일 것입니까?”
“사흘이다. 사흘 후, 기운종에 그 두 늙은이를 불러들일 것이다. 내가 그 둘을 묶어두면 너희가 공격해라.”
“사흘은 너무 짧습니다. 우리 쪽은 준비를 위해 엿새는 필요합니다.”
“밤이 길면 꿈이 많은 법이다.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한가?”
“성경에서 세 사람을 꺼내 전투에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 두 늙은이의 시선을 피하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셋? 오상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건 어렵지 않다. 6일 안에, 성경에 나올 너희 사람들은 식지에 반지를 껴라, 그럼 누군가 너희를 성경 밖으로 안내할 것이다.”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6일 내로 우리 쪽 사람이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너희를 맞이할 사람은 따로 준비하겠다.”
말을 마치고 오상은 또 그대로 하늘을 날아 멀어져갔다.
“가지요!”
우유도 역시 운희와 같이 하늘로 날아올라 날짐승에 올라탔다. 원강은 그 즉시 주위를 경계하며 빠르게 날짐승을 몰았다.
* * *
일행이 남주로 돌아왔을 때, 관방의는 초려별원 일부 인원을 이끌고 상조종을 따라 전선으로 떠난 뒤였다.
원강은 밀실에 들어오자마자 행동을 개시했다. 오는 도중에 우유도가 내린 지시를 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곤림수, 오풍, 왕존에게 즉시 성경을 빠져나오라 전했고, 그 방법까지 자세히 적었다. 동시에 원종에게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자는 전서를 보냈다.
우유도는 서탁에 앉아 서신 5통을 썼다. 이 서신은 운희에게 직접 전하도록 했다. 서신은 서해당, 궁임책, 안돈천, 문화, 조웅가에 전하는 것이었다.
이내 운희가 서신을 들고 떠난 후, 우유도는 왕소의 얼굴로 떠났다.
바깥은 이미 해가 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