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화. 약속
“오상의 말을 어찌 쉽게 믿는단 말이오. 만약 함정이면 어찌하려고?”
오풍의 물음에, 우유도가 차분히 답했다.
“오상의 심복대환은 남도림과 독무허라 할 수 있지. 오상의 눈에 우린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오.”
그래도 오풍은 우려를 그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설령 오상과 협력한다 해도 효과가 있느냐는 말이오. 우리 실력으로는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일 수 없소.”
우유도는 곧 원강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기 이 자를 데려왔지 않소. 원색이 바로 이 칼에 목숨을 잃었소. 제갈지도 그곳에 있었소.”
곧장 모두의 눈이 원강에게 쏠렸다.
제갈지도 금세 우유도의 말에 힘을 실었다.
“그렇소, 단 한칼에 목숨을 취했소!”
일도에 원색을 죽였다고? 모두가 대경실색했다.
이내 우유도는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원강은 수행자가 아니라 날 수 없소. 그러니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하오. 오상이 무변마역으로 남도림과 독무허를 묶어두면, 나머지는 엄호하고 정면에서 싸우는 일은 원강에게 맡기면 될 것이오.”
이번엔 곤림수가 나섰다.
“오상과 연합해 설파파를 상대할 때 겪어 보았소. 그의 무변마역은 확실히 현묘하오. 그가 진심으로 우릴 돕는다면 문제없을 것이오.”
이제 다들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하지만 오풍은 여전히 예외였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오상이 우릴 내버려 두겠소? 맞소, 만약 우리가 사방팔방으로 도망친다면, 오상 혼자의 힘으로 우릴 모두를 추격해 죽일 수는 없겠지. 하지만 하나둘 정도를 죽이는 건 아무 문제 없을 것이오.”
우유도는 곧 한쪽 나무 아래서 간식을 먹고 있는 은아를 가리켰다.
“그래서 성나찰을 데려왔소. 일단 문제가 생기면, 성나찰이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뒤를 맞을 것이오…….”
그 후로 한참 주절거리는 것을 듣고 나서, 우유도는 이들이 뭘 걱정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일행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할 것인지 확실히 설명하기로 했다.
결국 어느 정도 확신이 들고 나서야 오풍의 반론도 그쳤다.
일행은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상세한 의논을 끝낸 후, 오상이 지정한 접선지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운희는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탄복해마지 않았다. 천하에 이들 앞에서 이 정도 권위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은 우유도뿐일 터였다.
모두가 우유도의 말을 믿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결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우유도가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그가 가장 선두에서 위험을 감수하는데, 이보다 더 큰 설득이 어디 있겠는가. 이게 바로 우유도가 직접 나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 * *
산중 호숫가 숲속.
“장로님, 왔습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무리를 발견하고 말했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흑석은 즉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날짐승이 사람들 한 무리를 태우고 날아왔다. 날짐승들은 이번에 꽤 많은 인원을 태워서인지 조금 거동이 버거워 보였다.
흑석은 즉시 몸을 날려 호숫가에 있는 큰 바위 옆에 내려섰다. 그리고 9명이 땅에 내려서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번득였다. 분명 사전엔 여섯이라 했었는데, 어찌 아홉이 온 거지?
이내 우유도가 일행 사이에서 나와 흑석을 향해 말했다.
“흑석 장로님,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설마 다들 원영기 수행자인가? 9명을 한번 훑어본 흑석의 눈이 좀 서글퍼 보였다. 그래도 흑석은 쓰린 속을 삼키고, 겉으론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여섯이 온다고 하지 않았소?”
“천마성존께서 너무 적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원이 좀 더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저는 중간에서 소통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럼 계속 여기서 기다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달리 뭘 해야 합니까?”
우유도는 자신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며 제외하고 질문을 던졌다.
흑석이 곧 뒤돌아 손짓했다. 그러자 즉시 숲속에서 누군가 큰 봇짐을 짊어지고 튀어나와 모두의 앞에 봇짐을 내려놓았다. 다시 흑석의 손짓에 그 사람이 물러가고, 흑석은 바닥에 있는 봇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는 기운종으로 들어갈 수 없소. 기운종에 있는 표묘각 인원 중엔 남도림과 독무허의 사람도 있기 때문이오. 여기 표묘각 인원의 복식이 들어있소. 각자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갈아입으시오. 그렇게 변장하면 우리 쪽 사람이 당신들을 안내해줄 것이오.”
“남도림과 독무허는 언제 도착합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모든 건 계획 대로요. 성존께서는 시간을 다 계산해서 연락을 취했으니, 아마도 두 사람 모두 내일이면 도착할 것이오.”
일부 내용은 이미 사전에 의논이 다 되어있었다. 만약 시간을 쉽게 바꾼다면, 초려산장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오상 쪽도 당연히 계획대로 엄격히 진행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이 다른데, 내일 동시에 도착하는 게 확실합니까?”
“그들은 지금 아주 조심하고 있소. 당연히 두 사람 모두 홀로 기운종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둘은 반드시 동시에 도착할 것이오.”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더니 뒤돌아 손짓했다. 운희가 즉시 다가와 봇짐을 열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안에 들어있는 의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검사를 마치고, 운희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우유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우유도는 그 눈빛을 확인한 후, 흑석에게 말했다.
“다들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흑석 장로님은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십시오.”
굳이 자리까지 피해야 하나? 흑석은 내심 우스웠지만, 숲으로 들어갔다.
그 후에 우유도는 일행을 불러 표묘각 복식으로 갈아입도록 했다.
우유도는 옷을 다 갈아입고, 은아의 옷도 갈아입혀 주었다.
이것이 흑석의 시선을 끌었다. 여인의 옷을 갈아 입혀준다고? 그러다 흑석은 은아가 계속 뭔가를 먹고 있는 걸 유심히 보다, 돌연 눈이 커다래졌다.
흑석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무기를 감싼 천을 등에 멘 거대한 덩치의 원강을 본 순간, 다시 한번 눈이 굳었다.
이윽고 모두 다 옷을 다 갈아입은 것을 보고, 우유도가 손짓을 했다.
흑석은 다시 나와 기운종으로 들어가기 위한 세세한 부분을 설명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 흑석이 정식으로 우유도 일행을 이끌고 움직였다. 10여 명은 그대로 날짐승 몇 마리에 나눠탔다. 흑석이 원래 우유도 일행을 마중하려 날짐승을 준비해두어서, 이번에 날짐승 숫자는 충분했다.
* * *
기운종 하늘에 도착했다. 초려산장 사람들은 생각 없는 은아를 제외하고 다들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일전에 표묘각이 천하 각 문파의 날짐승을 다 회수했었지만, 기운종은 예외였다. 누군가 날짐승을 타고 하늘 위를 순찰 중이었다. 물론 흑석은 어느 구역으로 들어가야 적당한지 잘 알아서, 곧장 기운종 내부로 진입했다.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안착한 뒤, 흑석은 일행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했다.
* * *
산 정상 누각에 있는 오상도 무리가 도착하는 걸 직접 보았다. 상세한 보고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흑석이 빠르게 올라왔다.
“성존, 도착했습니다. 총 9명입니다.”
먼 곳을 보던 오상이 뒤를 돌았다.
“아홉이라? 뭔가 이상한 것이 있더냐?”
“우리 쪽과 소통을 책임지는 사람을 제하곤 의심스러운 자는 둘이었습니다. 한 명은 등에 커다란 보따리를 메고 있는데, 아마 원강이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여인으로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듯했습니다. 또 계속 뭔가 끊임없이 먹고 있는 것이, 아마도 성나찰로 보였습니다.”
순간 경계심이 어린 오상은 한참을 고민 끝에 대답했다.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 내가 저들과 대놓고 만나는 건 좋지 않다.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마련해 보거라, 내 직접 만나봐야겠다.”
“알겠습니다.”
흑석이 대답했다.
* * *
서병관.
석양 지는 하늘 아래, 이곳을 지키는 진수장군(鎭守將軍) 윤여가 서 있었다. 그는 고품 곁에서 저 멀리 한국, 연국의 대 군영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사전에 탐문한 적군 상황을 설명한 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적의 방어가 아주 굳건합니다. 이대로 공격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걸 내 모르겠소. 하지만 상부에서는 계속 공격하라 압박을 가하고 있잖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쪽에 우리 쪽 내통자가 있다는 모양이오.”
“호오, 사실이면 참으로 좋은 일 아닙니까? 그 내통자와 연락되십니까?”
고품이 고개를 젓자, 윤여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또 물었다.
“그럼 그 내통자의 상황을 아십니까?”
고품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윤여의 마음도 조급해졌다.
“사령관님, 연락도 안 되는 이가 무슨 내통자란 말입니까?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공격이 가능합니까? 적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공격해 들어간다면, 형제들이 헛되이 죽게 될 겁니다.”
고품은 좌우를 둘러 보더니, 그를 수행하는 장수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윤여에게 조용히 말했다.
“윤 형, 일전에 내가 어째서 조급히 제군을 공격하다 수십만 병력 손실을 봤는지 아시오? 나도 처음엔 공격을 거절했었소. 하지만 나중에 폐하께서 밀사를 보내 나와 연락을 취한 뒤 한 말씀이 있소. 지금 기운종은 이미 표묘각에 장악당했고, 내게 그런 무리한 공격 명령을 내린 건 모두 표묘각이 배후에서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라 했소.”
윤여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 개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차치하고, 폐하께서도 지금 버티기 어려워하시오. 우리는 반드시 뭔가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오. 수많은 일에 윤 형과 난 선택의 여지가 없소. 그저 그사이에 균형을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오.”
“사령관님 말씀은?”
“공격은 반드시 해야 할 것이오. 하지만 만약 실패하면 상부에 변명하기도 좋고, 상부에서도 다시 마음대로 압박을 가하기 어려울 것이오.”
윤여는 고품의 의도를 깨닫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윤여는 표묘각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표묘각 뜻이라면, 어째서 연국과 한국을 직접 치지 않고 우리의 손을 빌린단 말입니까?”
“직접 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남몰래 움직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오. 이렇게 한다는 건 분명 저들 나름의 의도가 있겠지요.”
고품은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뒤, 끝없이 펼쳐진 적군 군영을 보며 조용히 화제를 돌렸다.
“몽산명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그렇습니다. 그건 더 이상 무슨 비밀도 아니지요. 상조종과 몽산명이 대놓고 이곳에 입성했습니다. 밀정이 보내온 소식으론, 상조종과 몽산명은 바로 저 언덕에 있다고 합니다.”
윤여가 멀리 있는 한 곳을 가리켰다.
고품은 그곳으로 잠시 눈길을 돌렸다가 한탄을 뱉었다.
“상조종은 두려울 게 없는데, 몽산명은 참으로 까다로운 상대요. 그 늙은이가 있는 이상, 연군은 어려운 상대가 될 것이오.”
윤여가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연산명, 제무한이라고 하지요. 몽산명과 같은 반열에 있는 호연무한이 이미 사령관님 손에 패배했습니다. 그러니 몽산명도 당연히 사령관님 손에 쓰러질 것입니다.”
고품이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윤 형은 아니라면 아닌 사람이오. 감히 폐하의 사람이 내린 명도 거역하고, 공주의 사내까지도 죽이던 그런 분이 어쩌다 아부를 다 하게 됐소?”
공주의 사내를 죽였다는 건, 바로 이곳에서 죽은 진장공의 일을 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