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화. 윤여의 분노
윤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은 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아부라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진국은 강병과 준마를 가졌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지요. 호연무한이 막지 못했습니다. 몽산명도 사령관님을 막지 못할 겁니다.”
고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호연무한의 위명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오만, 그가 몽산명과 같은 반열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실제로 둘을 비교한다면 호연무한은 아마 몽산명보다 한 수 처질 것이오.”
“호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호연무한은 평생 위국과 손잡고 조국을 공격한 것 외엔 사실 우리 진국 하고만 싸운 사람이오.
반면, 몽산명은 어떻소. 윤 형도 알겠지만, 그 늙은이는 과거 서쪽으론 조국을 압박하고, 북쪽으로 한국을, 동쪽으로 송국을 내리눌렀소. 그렇게 삼국은 몽산명에게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얻어맞았지. 그 수많은 이와 겨뤘으니, 그야말로 백전으로 담금질한 장수가 아니오.
일전에 연국이 당장이라도 패망할 것 같을 때, 그 늙은이가 불구의 몸을 이끌고 저승 문턱에서 연국을 끄집어냈소. 그러나 승산이 높던 송국은 오히려 몽산명의 역습을 받고, 송국의 인심도 흉흉해졌소.
소문으론, 지금 송국은 몽산명의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멈춘다고 하오. 송국 황제 오공령조차 그 이름에 목소리를 줄인다지. 물론 소문이야 한낱 농이라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당시 몽산명의 전투는 그야말로 약한 군대로 강한 군대를 이긴, 참으로 대단한 전투였소.
윤 형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시 몽산명은 보급이 끊긴 상태에서 적군 깊숙이 들어가 승리했다는 것이오. 만약 본인이나 윤 형이 몽산명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리할 수 있었겠소? 비록 지금은 아군이 강하다곤 하나, 송국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소?”
윤여는 침묵했다. 그래도 고품은 한군이 있는 방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몽산명은 공격에 능한 장수요. 공격으로 수비까지 대신하지, 반면 한군의 사령관 금작은 그야말로 방어에 능한 장수요. 듣기로 상조종이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뛰어난 장수는 눈에 띄는 전과가 없는 법이라고. 이 말이 내게 참으로 많은 걸 시사했소.
금작은 바로 그런 사람이오. 명성은 몽산명보다 못하고, 전공은 더더욱 몽산명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오. 하지만 그런 금작이 바로 한국을 7국 가운데 우뚝 서게 했고, 시류가 어찌 변하든, 외적이 얼마나 강하든, 금작이 있는 한국은 줄곧 끄떡없이 그곳에 있었소.
윤 형, 몽산명의 두 다리를 못 쓰게 만든 이가 바로 금작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오! 이제 공격에 능하고, 수비에 능한 두 사람이 연합해 우리 진국을 상대하려 하고 있소. 윤 형, 장수란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하는 법이오. 이번 전쟁은 몹시 어려울 것이오!”
윤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개자식들이 무슨 생각인지, 왜 이처럼 조급히 움직이도록 하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고품의 두 눈이 깊게 번뜩였다.
“승리라……. 만약 그 사람이 직접 나서준다면, 어쩌면 이번 전쟁이 훨씬 더 수월해질 수도 있겠지.”
“누구 말입니까?”
“태학의 소 도독이오.”
윤여가 깜짝 놀랐다.
“소평파 말입니까?”
고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에겐 지금처럼 경직된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 있소. 비록 일전에 조정 신하들이 다 같이 연합해 그의 기세를 꺾고, 학당 선생이나 하도록 만들었으나, 결국 선생이란 역할조차 완벽히 해냈소. 끝내 조정에서의 역경도 이겨내고 제 입지를 되살렸지. 그야말로 당대에 견줄 자가 없는 인재요.
일전에 병력을 모으고 동벌을 준비할 때 난 눈앞의 고난을 예상하고 여러 번이나 그에게 도움을 부탁했소. 천도한 후엔 심지어 선물을 들고 3번이나 그를 찾아갔지만, 한마디 말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소.”
윤여의 흥미가 동했다.
“무슨 말입니까?”
“배후에 표묘각이 독전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지금은 동벌을 할 때가 아니라고 했소! 난 포기하지 않고 다시 폐하를 찾았지. 결국 폐하께서 나서도 소용이 없었소. 소 도독은 절대 나서지 않으려 하오.”
“설마 황명을 거역했단 말입니까?”
“그리 심각한 건 아니오. 아마 폐하께서도 그의 태학이 큰 성과를 거둔 걸 보고 과하게 압박하시진 않았소.
천하를 얻기는 쉬워도, 천하 경영은 어렵다는 말이 있지. 폐하는 폐하만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오.
다만 아직 천하를 얻은 것은 아니지 않소? 마침 그가 필요한 곳이 있건만, 소 도독은 뒤에 숨어 나설 생각이 없는 듯하오. 난 그게 매우 안타깝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평생 선생이나 할 사람이 아니오.”
태학을 언급하자, 윤여는 순간 뭔가가 떠올라 돌연 헛기침을 했다.
“사령관님, 소 도독 태학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우리 아내가 수시로 서신을 보내 어느 집안 누구가 태학에 들어갔단 말을 종종 합니다. 또 어느 집안의 누가 태학을 나와 곧장 조정 관리가 됐다고 이야기하고요.
한쪽은 아직 학생이고, 한쪽은 실습하러 간 것일 뿐인데, 아무것도 모르니 괜히 부러운 마음에 그러는 듯합니다. 하물며 집안에 작은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는 그 아이가 전쟁에 나가 싸우는 꼴을 못 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령관님 장손이 태학에 들어갔단 말을 들었습니다만?”
고품이 윤여를 힐끗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오?”
윤여가 양손을 살짝 비볐다.
“하아! 소인과 공주 사이 일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정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찾아가면 그건 공주님 상처를 후벼 파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후 소 도독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요. 소 도독은 절대 만만한 이가 아닙니다. 조정 대신들 식솔을 붙잡아 감옥에 넣은 사람입니다.”
고품이 멈칫하다, 뭔가를 떠올렸다. 화가 나기도, 참 우습기도 했다.
“염치가 없다는 건 아는 것 같소. 그때 그 일로 차마 입을 열지 못하겠다 하지 않았소? 나라고 뭐 다를까. 차라리 폐하를 찾아가지 그러오? 윤 장군의 전공이라면, 폐하가 힘을 써주실 것이오. 그러니 폐하를 찾아가시오.”
윤여가 얼씨구나 나섰다.
“7공주님 일과 연관된 일입니다. 제가 폐하께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정말 그리하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 아닙니까. 조정 누구도 제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부탁할 이를 못 찾겠습니다. 부인은 하루가 멀다고 재촉하니, 안심하고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시오. 계속 부인이 그런다면 헤어지고 다른 여인을 만나면 그만 아니오.”
윤여가 멍청한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
“제가 사령관님을 얼마나 오래 따랐는데, 이리도 정 없이 대하십니까?”
고품이 뒷짐을 지고 섰다.
“윤 형의 그 일은 누군들 쉽게 나설 수 있겠소. 다른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일은 정말 나도 돕기 어려울 것 같소.”
윤여는 고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령관님과 소 도독 관계가 보통이 아니란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혹시 중간에서 중재를 좀 해주실 순 없으십니까?”
“아니오, 확실히 그와 어느 정도 인연이 있지만, 깊은 인연이라고 할만한 건 아니오. 아직 그런 집안의 추문까지 건들 정도의 사이는 아니오.”
윤여가 눈을 부릅떴다.
“사령관님, 이러면 재미없습니다! 전에 두 분이 결탁하고 같이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 두 분이 위국 도성에 수많은 부동산을 사들였고, 그걸로 지금 아주 거액을 벌어들였다지요. 사적으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는 말을 그 누가 믿겠습니까?
그 때문에 제가 어렵게 집에 돌아갔을 때, 아내에게 그야말로 쌍욕을 먹었습니다. 다 같이 전쟁하면서, 누구는 떼돈을 벌고, 누구는 돈은커녕 다른 사람 원한만 사서 아들의 앞길을 막았다고 말입니다! 이 위풍당당한 7척 사내가 욕을 먹고 고개를 들고 다닐…….”
“헛소리,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요?”
고품이 분통을 터트렸다.
“헛소문이요? 그럼 두 분의 그 호화로운 저택은 어찌 된 일입니까? 무수한 논밭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성 밖의 한 부두까지 사령관님 것이라 앞으로 도성에 올 선박은 모두 사령관님께 돈을 내야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지금 사령관님은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부동산들이 지금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까?
사령관님은 지금 기름이 흘러나올 정도로 부자가 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가 침을 흘리며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런 좋은 일을 두고, 어찌 제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으신 겁니까? 덕분에 전 아내에게 욕만 진탕 얻어먹고 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고품은 어이가 없어 그에게 삿대질을 했지만, 윤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약 제 말이 틀렸다면 군법으로 처벌하십시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면 제 아들 일은 사령관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고품은 소매를 한번 떨쳐내고 참으로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윤 장군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오! 나도 처음엔 소평파가 위국 도성에서 그 많은 부동산을 사들였다는 걸 몰랐소. 나중에 아군이 위국 도성을 점령하고, 군의 관리하에 일부 부동산을 몰수할 때, 그의 서신을 받았소. 그제야 위국 도성에 그의 부동산이 있다는 걸 알았소.
사정을 알아보았고, 흑수대의 답장을 받고 나서야 소평파가 당시 위국 도성에서 움직이기 편하도록, 그의 신분을 숨기기 위하여 사적으로 그 많은 부동산을 구매했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오.
그건 그자가 본인 돈으로 구매한 것이오.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가 뭘 어쩐단 말이오? 그의 재산을 몰수하기라도 하란 말이오?
당시 소평파가 서신을 보내, 앞으로도 전쟁이 반복된다면 이 부동산들은 계속 자신의 움직임을 숨겨 줄 것이라 했소. 당시 난 그것들 몰수는커녕 심지어 보호해 주어야 했소.
물론 당시 그는 서신을 통해 내게도 부동산을 사 놓으란 당부를 남기기도 했소. 그러면서 내가 만약 위국 도성에 부동산을 산다면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더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소. 만약 내가 위국 도성에 부동산을 구매하고 재산을 축적한다면, 우리 진군이 위국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민심이 안정될 것이라 보았소.
그렇게 난 폐하께 주청을 드렸고, 폐하께서도 일리가 있다고 여기셨소. 그래서 아주 싼 가격에 조정이 몰수한 위국 도성 부동산 일부를 사들였지.
내가 당시 우리 진국이 위국 도성으로 천도할지 어찌 알았겠소? 그럼 당시 조정의 다른 사람들은 왜 구매하지 않았겠소? 호연무한의 공세에 그 누가 확신을 가질 수 있었겠느냔 말이오.
당시엔 그냥 돈을 물속에 던져버린다고 여길 공산이 아주 컸소. 그러니 잘 들으시오. 나는 당시 돈을 벌 생각이 없었소.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오히려 희생한 것이오. 난 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비열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