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화. 직접 나서다
“누군가 청청을 죽였어.”
우유도가 방에서 은아의 가면을 벗기며 말했다.
은아는 순간 흠칫하더니, 곧 얼굴에 분노가 가득 피어오르고, 그 괴이한 은색 문양이 가파른 속도로 나타났다.
우유도는 즉시 은아의 어깨를 잡고, 체내에 빠르게 생겨난 이종 요기를 해소했다. 이후 그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닭 다리를 건넸다.
“아니야, 잘 못 들었어.”
은아가 즉시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청청이 아니야?”
“응, 아니야.”
우유도가 고개를 젓자, 은아도 즉시 안심하고 닭 다리를 빼앗듯 가져갔다.
체내의 이종 요력을 통제한 우유도는 이 방법이 여전히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유도는 기운종으로 오는 와중에 몇 번이고 시험한 상태였다. 상숙청도 벌써 얼마나 생사를 오간 건지 몰랐다.
일단 확실한 건 은아의 기억력은 정말로 좋지 않았다. 반복해서 여러 번 속여먹어도, 몇 번이나 같은 말에 넘어갔다.
이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될까, 그것이 우려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만약 원색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그때도 은아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상황은 아주 재밌어지겠지.
그때, 한편에 있던 운희가 매우 괴상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도 곧 그 시선을 눈치채고 남몰래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 은아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주었다.
은아가 한쪽에서 열심히 간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 운희는 조용히 우유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단순히 저 아이로 오상을 막아서는 계획은 좀 불안한 것 같아. 오상을 처리하는 건 고사하고, 오히려 오상을 도와 우리를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원종 등은 그저 성나찰이 있다는 말에 크게 안심했겠지만, 운희는 은아가 성나찰로 변하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잘 알았다.
오상 한 명만으로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거기에 성나찰까지 더해진다면……. 그냥 저승으로 직행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운희가 보기에 우유도는 성나찰을 이용해 원종 등을 속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듣기 좋은 말로 이야기하자면, 그냥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용도 같았다.
곧이어 우유도 역시 조용히 대답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은아는 나설 필요도 없을 거예요. 은아를 데려온 이유는 사실 오상에게 보여주려는 거예요. 오상이 성나찰이 왔다는 걸 아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은아를 습격하는 게 유리할까요. 아니면 성나찰과 정면으로 싸우는 게 유리할까요?”
운희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은아를 데려온 목적이 싸움에 내보내려는 게 아니라 오상을 겁주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다. 오상이 정말 약속을 지키기만 한다면, 일행은 순조롭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우유도는 오상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우유도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쪽에서 믿는 게 있다는 걸 보여줘야, 오상도 더더욱 안심하고 우리를 경계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이쪽에서 은아에게 제공하는 먹을 것들은 반드시 확인하도록 해주세요.”
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걱정하지 말아. 확실하게 확인하고 있어.”
* * *
다음날 오후, 독무허와 남도림이 날아와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내려섰다.
곧이어 흑석이 나타나 두 사람 앞에 공손히 예를 올렸다.
“두 분 성존을 뵙습니다.”
남도림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상은 어디 있느냐?”
그 순간, 근처 누각 창문이 열리더니 오상이 몸을 반쯤 드러냈다.
“들어와라.”
오상은 그 말만 남긴 채 다시 누각으로 사라졌다. 이에 남도림과 독무허는 잠시 시선을 교환하다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갔다.
* * *
텅텅 빈 누각에, 아래로 향하는 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오상이 보였다. 오상은 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독무허가 먼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딜 가는 것인가? 성나찰 행적이 또 어디서 발견됐지?”
오상은 성나찰의 행적을 발견했다는 빌미로 두 사람을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독무허가 막 입을 닫자마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법력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남도림도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창밖으로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가 보였다. 무변마역……! 두 사람은 대경실색하며 그대로 날아올랐다.
쾅!
두 사람은 아예 천장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장이 다 박살 나 수많은 나무 파편이 휘날리는 가운데,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들이 이미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혔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누각 아래,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던 오상의 발아래에 이미 먹구름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분명 실내에서 오상의 장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먹구름을 밟고 있는 그는 꼭 바람을 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오상이 갑자기 양팔을 활짝 펼쳤다.
쾅!!!
법력이 요동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그 힘에 누각이 다 터져나갔다. 다시 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렸고, 오상은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 속에서 양팔을 벌린 채 부유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무변마역은 오직 바닥이 없는 곳에서만 펼칠 수 있었다. 일단 바닥과 닿으면 무변마역이 땅을 파고들 수 없어, 잡힌 상대가 그대로 땅을 파고 도망칠 길을 열어 주었다.
* * *
그 시각, 누각 밖의 흑석도 이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독무허와 남도림이 창으로 들어간 직후, 누각 아래서부터 생겨난 검은 안개가 빠르게 누각을 뒤덮었다. 그러다 연달아 폭음이 울리고, 먹구름 속에서 사방으로 나무 파편이 쏘아져 나왔다.
흑석은 소매를 휘둘러 파편을 쳐내곤 다시 누각 쪽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팽창하며 하늘로 떠오르던 먹구름은 급기야 태양을 가려버렸다.
이 모든 걸 보고, 흑석은 말문이 막혔다. 그가 모시는 성존은 참으로 시원스러운 사람이었다. 남도림과 독무허를 보자마자 공격에 망설임도 없었다.
* * *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 속, 남도림과 독무허는 섣불리 행동하지도 못한 채 서로를 등지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두 사람도 지금 어떤 환경에 빠져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변마역에 갇힌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화가 나는 동시에, 참 놀랍기도 했다. 오상이 자신들과 만나자마자 공격을 펼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미처 방비도 못 한 채 함정에 빠졌다. 오상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번에 뭔가 좀 다른 느낌인 것이, 이 무변마역이 자신들에게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오상이 모를 리 없었다. 그걸 분명히 알면서도 행한다는 건, 확실히 뭔가 수상한 일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보니 오상의 거대하고 웅장한 법상이 천신처럼 먹구름을 가르고 자리해 있었다.
“내… 마… 역… 에… 들… 어… 와… 라!”
“내…… 마…… 역…… 에…… 들…… 어…… 와…… 라!”
마치 천계에서 울리는 범음(梵音) 같은 웅장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독무허는 곧장 오상에게 삿대질을 했다.
“오상!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뻔한 걸 묻는군?”
오상의 도도한 답에, 남도림이 나섰다.
“이걸로는 우릴 어쩌지 못할 것이다!”
오상은 이제 아주 솔직하게, 조금도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나는 그들과 손을 잡았다.”
그들? 두 사람도 오상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아마도 무량과를 훔친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독무허는 같잖아 코웃음을 쳤다.
“각기 다른 꿍꿍이를 가진 너희 오합지졸이 우릴 상대한다고?”
“오합지졸인지 아닌지는 직접 시험해 보면 되겠지. 어디 이번에도 도망칠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저 개자식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굳이 시험해봐서 나쁠 게 있나? 죽일 수 있으면 죽이는 것이고, 죽이지 못한다 해도 두 사람 역시 오상을 어쩔 수 없었다.
한마디로 오상은 손해 볼 것이 없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때, 오상이 꿈틀거리는 먹구름을 빤히 응시했다. 그는 마치 그속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처럼, 먹구름의 깊은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뭘 더 기다리느냐?”
그 순간, 산 정상에서 하늘의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흑석 앞에 구름을 가르고 나타난 오상이 둥둥 떠올라 호통을 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흑석은 즉시 포권한 후, 그대로 몸을 날렸다.
* * *
지금 기운종 제자들은 갑자기 하늘에 나타나 종문을 뒤덮은 먹구름을 보고 대경실색하고 있었다. 태숙비화 등 기운종 고위층들도 분분히 나타나 모두 그곳을 바라보았다.
곧 한 제자가 빠르게 날아와 급히 보고했다.
“장문인, 세분 성존께서 서로 반목해 싸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태숙비화 등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삼성이 기운종에서 싸운다고? 그럼 어딜 도와야 하지? 어느 한쪽도 성급히 도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산 정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불어도 먹구름은 흩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저게 바로 원영기 고수의 능력인가?”
태숙비화가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껏 이 정도로 장관인 싸움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오상이 무변마역을 펼친 것도 처음 보았다. 지금 그는 마치 기적을 목도한 것 같은 심정이었다.
* * *
산속 거처에 머물던 우유도 일행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지금 싸움이 일어난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일행 또한 산 정상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보고, 우유도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시작됐나?”
대부분은 오상의 무변마역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처음 본다면, 크든 작든 당연히 두려움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내 곤림수가 입을 열었다.
“바로 오상의 무변마역입니다. 제가 들어가봤습니다. 얼핏 보기엔 환술처럼 보여도, 저건 허공을 통제하는 진법입니다. 만약 오상이 누군가를 저 안에 묶어두고자 한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꼭 안개로 이뤄진 일망무제의 바다에 있는 것과 같아서 결단코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원종이 물었다.
“오상이 약조한 대로 우리와 협력할 것 같나?”
얼마 전 오상이 몰래 그들을 찾아왔고, 양측은 직접 만나 어떻게 두 사람을 죽일지 의논한 바 있었다.
우유도가 대답했다.
“오상이 협력하든 하지 않든, 곤림수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곤림수는 저 안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만일 문제가 생겨도 곤림수가 진법을 파훼해 여러분과 함께 도망 나올 겁니다.”
그때였다. 흑석이 나타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때가 됐소. 남도림과 독무허가 무변마역에 갇혔소. 시작하면 될 듯하오!”
그러자 우유도가 손을 들어 싸움이 벌어지는 산 정상을 가리켰다. 흑석이 뒤돌아보니, 그곳으로 날아가는 표묘각 인원들이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흑석은 냉소를 지었다.
“남도림과 독무허의 사람들이오. 아마도 주인을 지키고자 움직이는 것이겠지. 주제를 모르는군.”
흑석은 다시 뒤돌아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설마 저 사람들도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저들은 우리를 막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방해를 받고 싶진 않군요.”
흑석은 다시금 재촉했다.
“아무렴 마음 놓고 가시오.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막겠소. 서두르시오. 성존도 무변마역을 무한으로 펼치실 수 없으니 빨리 움직여야 할 것이오!”
우유도가 뒤돌아보았다. 그곳의 은아는 빵빵한 가방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고, 한 손엔 닭 다리를 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하늘 위 괴이한 먹구름에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어쩌면 어디선가 본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우유도는 즉각 몸을 날려 은아의 팔을 잡고는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신호를 보냈다.
“움직이세요!”
운희는 즉시 원강의 팔을 잡았고, 일행은 바로 산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흑석은 어째 자신들과 소통만 한다던 사람이 수장으로서 명령을 내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움직이는 것이지,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문제였다.
흑석은 또 즉시 뒤돌아 천마성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