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화. 큰 변화의 시작 (1)
독무허의 죽음을 확인한 오상이 시신을 무변마역 밖으로 던져버리고, 꿈틀거리는 먹구름을 갈랐다. 그의 눈초리가 원강 일행을 매섭게 훑었다.
마침 곤림수가 법술을 펼치던 차였다. 그의 힘으로, 변고는 속도를 재촉했다. 주변에 화염이 가득 차며 먹구름을 아예 다 불태우고 있었다.
무변마역이 한순간에 깨어져 나갔다. 이내 오상의 두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 그는 곤림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즉각 곤림수에게로 몸을 날렸다.
마치 불로 만들어진 것 같은 세계였다. 어느 정도는 곤림수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곤림수는 불길을 조종하며, 그 불길 안에 있는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오상이 무변마역에 있는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곤림수는 오상의 흔적을 바로 찾아내고, 즉각 소리쳤다.
“먼저 가십시오!”
그리고 그는 온몸으로 불길을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주위는 불꽃으로 가득 찼다. 주변 불꽃은 한순간 수많은 곤림수로 태어났다. 곤림수를 그대로 복사한 듯,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천화무극술의 화매둔영, 드디어 그 경지가 펼쳐진 것이었다.
일행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즉시 아래로 쏘아져 하강했다. 원강은 곤림수만 홀로 저 위험 속에 남겨두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지만, 날 수 없는 그가 공중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결국 제갈지에게 붙잡혀 그대로 끌려갔다.
우유도는 제갈지에게 반드시 원강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제갈지도 그와의 약속을 절대 잊지 않았다.
이내 순식간에 곤림수가 있는 곳에 도착한 오상은 처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곤림수를 향해 장력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그건 불꽃으로 만든 가짜였고, 오상의 장력에 의해 불길만 터져나갔다.
분노한 오상은 빠르게 날아다니며 주변에 있는 곤림수를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설혹 사람을 잘못 죽이는 한이 있어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 안에 진짜는 하나도 없었다.
* * *
허공에 불 구름이 막 만들어졌을 무렵, 그 안에서 몇몇이 튀어나와 우유도 곁에 착지했다. 원종 일행이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즉각 곤림수의 부재를 발견했다.
“곤림수는 어디 있습니까!”
대답은 누군가의 등장으로 대신했다. 일행이 채 답하기도 전, 하늘에서 곤림수가 내려온 것이었다.
우유도는 그제야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곤림수가 다시 긴장의 고삐를 쥐게 했다.
“오상이 공격했습니다!”
우유도는 생각하지도 않고 곧장 재촉했다.
“갑시다!”
운희를 포함한 모두가 우유도, 은아, 원강을 잡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때, 불 구름 속에서 모든 곤림수를 쓸어 내고도 진짜를 발견하지 못한 오상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침 도망치고 있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오상은 그사이에 섞인 곤림수를 노려보았다가, 다시 은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방금 그를 죽이지 못한 건, 이미 기회를 잃은 것이었다.
이대로 뒤를 쫓을 수는 있지만, 만약 성나찰이 변신한다면 오상은 그녀를 빠르게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성나찰에게 발목이 잡히면, 마교 성자가 공격할 기회를 줄 수도 있고, 결국 그가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우유도가 원강이 삼후도로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이기만 하면 바로 도망칠 수 있다고 확언한 이유이기도 했다.
우유도는 오상이 분명 이쪽을 경계할 것이고, 자신들을 가볍게 처리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한편, 남도림과 독무허의 죽음을 목도한 기운종 제자들은 전전긍긍하며 오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부터 이 천하에 구성은 오직 오상만 남았다.
이들은 어째서 오상이 저들을 쫓지 않는지 의아했지만, 곧 오상이 입은 상처를 보고는 부상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동시에 그들은 삼후도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오상에겐 없었다. 그 말인즉슨,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인 이는 오상이 아니란 뜻이었다.
태숙비화 일행은 더욱더 후회했다. 이로써 기운종이 보물을 잃어버렸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들은 지금 도망치는 자들의 경지가 절대 오상보다 높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도망치겠는가?
그런데 오상조차 어쩌지 못한 남도림과 독무허를, 오상보다 약한 누군가가 죽였다. 태숙비화 일행은 당연히 이를 삼후도의 위력이라 여겼다. 이들은 삼후도에 본인들이 모르는 어떤 힘이 숨겨져 있다 여겼고, 그래서 그 보물을 잃어버린 자신들에게 더욱 화가 나고 후회가 밀려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운종은 다신 삼후도를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란 것이었다. 지금 도망친 자들의 힘이 오상보다는 약할지라도, 감히 자신들이 어쩔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윽고 오상이 천천히 산 정상에 내려섰다. 그는 주위에 있는 시신을 훑어보고는 다시 우유도 일행이 도망치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이것만 보면, 처음 우유도에게 약속한 것처럼 전혀 토사구팽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내 흑석이 즉시 날아와 오상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다.”
흑석이 오상이 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남도림과 독무허가 삼후도 아래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원강이 가지고 있는 보도(*寶刀: 보배로운 칼)는 추후 분명 후환이 될 것입니다. 성존께서는 어찌 지금 저들을 처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오상이 뒤돌아 흑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몹시 굳어 있었다.
“원강은 걱정할 것 없다. 그를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진정한 후환은 바로 곤림수다.”
곤림수는 연달아 오상의 무변마역을 가볍게 파훼했다. 오상은 더 이상 곤림수를 살려둘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도 도망치는 모든 이를 무시하고 오직 곤림수만을 공격했다.
하지만 곤림수는 생각지도 못한 화매둔영이라는 절기로 몸을 빼냈다. 그 기술을 정면으로 상대한 오상조차 어떤 것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오상은 곤림수가 황택사지에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는 곤림수에게서 과거 자신의 그림자를 본 것일 수도 있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그 옛날이 똑같이 재현될지도 몰랐다. 팔성이 그 하나를 어쩌지 못하던 그 시절이…….
기껏 팔성을 다 죽였건만, 다시 오상에게 대적할만한 또 다른 일성이 탄생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상에게는 아직 곤림수를 없앨 기회가 있다. 곤림수의 경지가 아직 깊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를 찾기만 하면 된다. 지금 곤림수에겐 오상과 정면으로 상대할 힘이 없다.
일단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황이 오면 곤림수는 절대 도망칠 수 없다. 그의 경지론 오상의 힘이 빠질 때까지 버틸 수 없다. 환술이 대단하다고 도망치는 속도도 빠르다곤 할 수 없었다.
“제가 밖에서 지켜보니, 두 사람은 날카로운 무기에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저는 그게 원강의 공격이라 생각했사온데, 설마 곤림수였습니까?”
흑석은 당사자가 아니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오상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두 노귀는 원강이 죽인 게 맞다. 하지만 원강은 무술로 몸을 단련하는 자, 법력과는 인연이 없지. 홀로 날 수도 없다. 무조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비행할 수 있다. 그야말로 반쪽짜리 쓰레기라 할 수 있지!”
흑석은 법력이 없는 자가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였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혹시 실력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습니까?”
오상은 이제 흑석을 잠시 차갑게 바라볼 뿐,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원강에겐 숨긴 실력이나 법력이 없었다. 무변마역 안에 있을 때 이미 확실하게 확인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숨긴 것이 없었다.
원강은 오상의 무변마역을 절대 깨트릴 수 없다. 일단 무변마역으로 원강을 묶어두기만 하면, 오상은 마음껏 그를 짓밟을 수 있다. 오상에게 있어 원강은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진정한 후환은 오직 곤림수뿐이었다.
오상이 입을 다물자, 흑석도 분명 오상만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감히 더는 묻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성존, 제가 관찰한 바론 일전에 저쪽과 우리 쪽의 소통을 담당한 그 사람이 어쩌면 저들 중에 핵심 인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오상이 땅에 있는 시신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이 두 늙은이가 죽었으니, 더 이상 그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 남주부성 쪽에 그들이 돌아오면 즉시 보고하라 일러라. 내가 직접 움직일 것이다!”
서해당, 문화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목표만 있다면, 그는 하루 안에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 쓸어 버릴 수 있다. 팔성을 제거했으니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유령들을 쓸어 버리면, 비로소 오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흑석이 포권하며 대답했다. 그는 속으로 탐천환의 이야기를 보고해야 하는지 망설였지만, 결국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법력의 공급이 끊긴 하늘엔 이제 먹구름이 사라졌다. 잔운도 모두 불에 타고, 더는 태울 것이 없는 불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 꺼져버렸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 모든 것이 사라진 하늘엔, 다시 푸른 빛이 떠올랐다.
* * *
급히 기운종을 빠져나간 우유도 일행은 멀리 도망쳤다. 더는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아주 더 멀리 날아갔다.
직접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문제없이 도망쳤다. 그야말로 가슴 떨리는 과정이었다. 일부는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로소 숨을 돌린 곤림수는 우려를 드러냈다.
“도야, 천화교의 절기를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천화교가 위험합니다.”
우유도는 그를 한번 돌아보았다. 곤림수가 방금 성경에서 나와 이곳으로 몰래 움직인 후, 곧바로 전투에 나섰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이 천하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제국은 이미 멸망했어. 진국에 의해 병탄 됐지. 천화교도 이미 투항했고, 이미 진국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오상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천화교가 투항했단 말입니까?”
곤림수는 그야말로 대경실색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세한 상황을 알아볼 수 있겠지. 오상은 지금 천화교를 벌주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설령 그러고 싶다 한들, 그럴 기회가 있는지 봐야겠지. 일단 이번 화를 피한 후의 이야기일 것이다.”
일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우유도의 말을 들어보면, 다시 오상에게 손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오상을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오상이 원강의 칼을 그냥 지켜만 보겠는가? 팔성이 연합해도 죽이지 못한 오상을, 지금 그들이 연합한다고 처리할 수 있겠는가?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일 수 있었던 건 오상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이 연합해 공격한다 해도 절대 오상을 이길 수 없다. 만에 하나 이길 수 있다 해도, 오상이 그냥 앉아서 조용히 죽어줄 리 없었다. 오상이 도망치려 한다면, 우유도 쪽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해도 막을 수 없을 터였다.
설마 성나찰을 믿는 것인가? 모두의 시선이 한창 또 열심히 뭔가를 먹고 있는 은아에게 닿았다. 어찌 보면 참 대담한 여인이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그 시신이 눈앞에 떨어져 내려도 입맛이 떨어지지 않는다니.
운희도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은아를 앞으로 내세우려고? 아마 성나찰이 모습을 드러내면, 오상을 공격할지, 도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그리 된다면 다들 당황해 어쩔 줄도 모를테지.
은아는 아직 상황을 모르는 오상을 겁주고, 경계하게 하는 정도가 끝이었다. 운희는 자신이라면 감히 성나찰을 동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우유도 역시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닌 이상, 성나찰을 불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미안하지만, 이 먹보는 양날의 검이었고, 너무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