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7화. 큰 변화의 시작 (2)
요마령, 마궁 내부.
풍관아가 자물쇠로 잠긴 상자를 들고 와, 서탁에 앉아 있는 남천무방 앞에 내려놓고 두 걸음 물러났다.
남천무방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무엇인가?”
“이건 조 선생님께서 폐관하시기 전에 제게 맡기신 것으로, 오늘 이 시간 좌사께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여전히 의아해하는 남천무방을 두고, 풍관아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릅니다. 열어 보시면 분명 한눈에 알아보실 거라 하셨습니다.”
남천무방은 상자를 잠시 살펴본 후, 법력으로 자물쇠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서신이 한 통 들어 있었다.
이내 내용을 본 그의 얼굴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남천무방의 얼굴이 참으로 볼만했다. 그는 그 즉시 풍관아를 내버려 두고 몸을 날렸다.
풍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어찌할 줄 몰랐다.
* * *
남천무방은 다급히 뒷산 어딘가로 향했다.
“조웅가, 조웅가, 당장 튀어나와라!”
석문을 열며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동굴 안 역시 텅 비어 있었다.
남천무방은 다시 서신을 살피다 얼굴이 새파래졌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웅가는 처음부터 폐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떠난 것이다.
“개자식, 노부 뒤에서 이런 큰일을 벌이고 있었다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개자식! 나조차 속여! 사전에 귀띔은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서신은 매우 긴급했다.
남천무방이 마궁에 돌아가 잠시 준비한 후, 마교 내부는 그야말로 큰 혼란에 휩싸였다. 상잔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보기엔 상잔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천무방은 마교 인원들을 이끌고 내부 첩자들을 숙청하고, 동시에 천마성지에서 파견한 인원들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정식으로 오상에게 반기를 드는 행동이었다.
사실 남천무방도 첩자들을 깔끔히 쓸어 버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마 분명 다 죽이지 못할 공산이 컸다. 어쨌든 마교는 오상의 출신지가 아닌가. 처음부터 표묘각이 함부로 마교에 손을 뻗지 못하도록 해 두었다.
그러니 당연히 일전에 각 문파가 표묘각 인원의 명단을 받고 숙청한 것처럼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없었다. 마교 내부 이목은 표묘각이 아닌 천마성지가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파악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버린 뒤였다.
마궁이 혼란스러워지자, 수행계 시장인 요마령도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큰 변고가 지난 후, 남천무방은 마궁 꼭대기에서 저 먼 곳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토록 긴 세월을 버티고 버텨 드디어 속박을 벗어났다.
이제 마교는 뿔뿔이 흩어져 숨어들 터였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상이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약속된 장소로 향해, 조웅가가 보낸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눈앞의 속박은 벗어났지만, 앞으로는 어찌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남천무방은 안절부절못했다. 이제 그녀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남천무방은 차마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
남주부성.
가사를 입은 원방이 흉신악살 같은 얼굴로 대문을 걷어차고 뛰어들었다. 공격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그의 뒤론 유선종, 영수산, 부운종의 수행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장원 안에서 몇 사람들이 뛰쳐나왔지만, 그 즉시 사방에 숨어있던 사람들에게 사로잡혔다.
누군가 땅에 쓰러지자, 계도를 든 원방이 뛰어가 그대로 베어버렸다.
남주부성 내부, 초려별원을 중심으로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원방이 주도하는 소탕 작전이었다. 바로 오상이 주변에 심어 놓은 이목들을 쓸어 버리는 일이었다.
단호와 오삼양 등 초려별원 사람들은 각자 사람들을 이끌고 움직이고 있었다. 또 각지 수행자들은 성 밖 각지로 이동하며 평소 초려별원의 밀서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람들을 추격했다.
이 결과 모두 사로잡지는 못하고, 놓친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일을 다 처리한 후, 원방은 변장한 승려 무리를 이끌고 급히 도망쳤다.
남약정과 봉약남 모자는 이미 언제 도망쳤는지 사라져 있었다. 그들의 행방을 아는 이도 없었다. 또한 남주부성 안의 일부 요원은 남약정이 시간에 맞춰 보낸 밀서를 보고 다급히 남주부성을 떠나고 있었다.
* * *
만수문 의사대전.
“장문인, 농담이시지요?”
서해당이 전하는 놀라운 소식에 장로들이 대경실색했다.
서해당은 입 아프게 말을 더 잇지 않고, 그대로 의사대전을 빠져나갔다. 그는 나머지 장로들이 모두 나온 걸 확인하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하늘을 날며, 그는 그야말로 원영기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서해당이 다시 하늘에서 내려와 천천히 장로들 앞에 내려섰을 때, 그 주위는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해졌다.
서해당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구성이 쓰러지지 않으면, 만수문은 영원히 개돼지로 살게 될 것이오. 내가 한 이 모든 것은 만수문을 위해서요. 이제 내가 폭로되었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밝히지 않았을 것이오. 이미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소!”
곧 만수문의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움직여, 그곳에 머무는 표묘각 인원들을 다 쓸어 버렸다. 그 후, 만수문은 빠르게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와 동시에 영종, 천행종도 표묘각 인원을 모두 죽이고 뿔뿔이 흩어졌다. 자금동 장문인 궁임책 역시 문파의 제자들을 해산시키고 숨어들게 했다.
* * *
약곡, 해변.
귀의와 두 제자, 안보여, 곽만이 짐을 챙겨 약곡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렇게 떠나기 전, 흑리는 끝내 약곡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평생을 여기서 지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안보여가 말했다.
“푸른 산이 있는 한, 땔나무 걱정은 없을 겁니다. 이미 들통났습니다. 빨리 움직이시지요. 지체하다 오상과 마주치면, 누구도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나머지 넷은 불쾌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보여는 곽만을 힐끗 노려보았다.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분명히 이 내용은 그녀가 전해준 내용이었다. 그런데 악인의 역할은 모두 안보여에게 떨어졌고, 곽만은 무고한 피해자인 척 굴고 있었다.
귀의는 한숨을 내쉬고는 소매를 휘둘러, 일행을 이끌고 바다로 향했다.
* * *
서병관 밖 연국 전선, 중군 군막.
관방의가 두리번거리며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호위들은 그녀를 막아서지 않고 그대로 들여보냈다.
이건 상조종이 특별히 허가한 것이었다. 관방의는 그의 군막에 들어가기 위해 따로 기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입구에 있는 호위들은 그저 안쪽을 향해 관방의가 도착했음을 알릴 뿐이었다.
“관 당가께서 오셨습니다.”
군막 내부에선 상조종이 지도를 앞에 두고 장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상조종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장수들과 매일 반복해서 의논하며, 어떻게 협조하고 대응해야 할지 상의를 하고 있었다.
곧 밖의 통보를 들은 상조종 일행이 고개를 들었다. 다들 군막에 들어오는 관방의를 웃으며 반겼다. 매일 같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만날 때마다 따로 예를 차리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관방의는 장수들을 한번 훑어보고, 상조종에게 잠시 따로 이야기하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조종은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에게 걸음을 옮겼다.
곧 관방의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상조종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이더니, 다시 천연덕스럽게 부채질을 했다.
상조종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녀의 요청대로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일단 다들 물러가라. 또 본왕의 명령 없이 대 군막 10장(丈) 가까이론 그 누구도 다가오지 마라.”
“알겠습니다.”
장수들은 명령을 받고 군막을 빠져나갔다.
상조종은 몽산명의 륜의 뒤에 서 있는 나대안에게도 나가라고 손짓했다.
이제 군막엔 상조종과 몽산명, 관방의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군막 바깥으로 10장(丈)까지 깨끗이 비어졌을 때, 상조종이 돌아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홍랑, 무슨 일이길래 이리 조심하는 겁니까?”
관방의가 말했다.
“도야의 법지입니다. 왕야, 몽 사령관님, 당장 비밀리에 철수하십시오.”
“비밀리에 철수?”
상조종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뒤돌아 몽산명과 눈빛을 교환했다.
몽산명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군 규모가 방대합니다. 철수한다면 더는 비밀로 할 수 없을 겁니다.”
“그 뜻이 아니고, 왕야와 몽 사령관님만 비밀리에 철수하셔야 합니다.”
상조종이 깜짝 놀랐다.
“이유가 뭐지요? 지금 전투가 코앞입니다. 사령관이 이런 시기에 철수한다면, 분명 큰 혼란이 일 것입니다.”
관방의는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지 않으면 정말 큰 혼란이 생길 겁니다. 어쩌면 왕야와 몽 사령관님의 목숨도 장담하지 못할 겁니다.
도야께서 거짓으로 오상과 손을 잡고 남도림과 독무허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도야는 일행을 이끌고 기운종으로 쳐들어갔겠지요. 성공 여부는 저도 잘 모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상은 자신이 도야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정신을 차린 오상은 즉각 이곳으로 달려오겠지요. 그리곤 연군의 지휘 중추를 쓸어 버릴 겁니다. 그때가 되면 아무도 오상을 막지 못합니다.”
상조종과 몽산명이 대경실색했다. 도야가 오상과 손을 잡았다고? 그게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도야가 일행을 이끌고 기운종으로 쳐들어갔다니, 위풍당당한 천마성존이 직접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 누추한 곳으로 찾아올 것이라니, 직접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 얘기였다.
몽산명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홍랑,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혹시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습니까? 그래야 우리도 대군의 일을 잘 안배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많은 병력과 형제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도야가 대군은 공개적으로 철수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해야 오상이 두 분을 찾아오는 걸 막을 수 있는지, 대군을 어찌 철수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는 따로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두 분이 알아서 잘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지요. 대군의 움직임도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몽 사령관님, 그 이상 자세한 사정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도야의 행사는 그야말로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대략적인 상황만 알뿐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는 도야의 명령입니다. 그분이 기운종에서 목적을 달성하든, 달성하지 못하든 여러분은 일단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두 분도 잠시만 피해 계시면 됩니다. 추후 도야가 일행을 이끌고 두 분과 합류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오상은 도야가 알아서 상대하겠지요.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아무튼 도야는 이번에 이미 오상과 정면 대결을 했고, 이미 그 칼에 피가 잔뜩 묻어 있을 겁니다. 이젠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것이지요. 둘 중에 한쪽이 죽어야만 멈출 겁니다. 그러니 빨리 움직이십시오! 더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두 분이 몸을 숨길 곳은 이미 준비해뒀습니다.”
우유도는 일행을 이끌고 기운종으로 출발한 순간부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번 일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오상은 분명 다음 수단을 시행할 테니, 일부 요원들과 신분이 들통난 이들은 반드시 소나기를 피해야 했다.
관방의가 이렇게까지 우유도의 당부를 전하는데, 상조종과 몽산명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