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화. 다시 방문한 밀지(密地)
물안개가 자욱했다. 거대한 낙차가 내는 폭포 소리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귀가 먹어 버릴 것 같은 진동이었다.
상숙청은 고개를 들고 지하세계의 장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이어 우유도가 조웅가를 보며 폭포를 가리켰다.
“저 뒤에 벽에 꽂힌 석주가 있습니다. 그걸 뽑아내면 바로 입구입니다.”
조웅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대로 날아올라 폭포의 급류를 뚫고 들어가 폭포 뒤편을 수색했다. 그는 바로 벽에 박힌 석주를 발견하고, 양손으로 뽑았다. 그렇게 폭포를 빠져나와 허공에 떠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석주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우유도는 아래 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연못을 가리켰다. 조웅가도 그의 신호를 알아듣고, 석주를 그곳에 던져 버렸다.
“갑시다.”
우유도가 먼저 몸을 날려 폭포 안으로 파고 들었다.
운희는 상숙청의 허리를 껴안고 몸을 날렸다. 폭포를 뚫고 그 뒤편 동굴로 향해도, 호체강기가 두 사람을 든든히 보호하고 있었다.
여무쌍을 업은 원강은 그대로 폭포를 강제로 뚫고 갈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그때, 허공에 떠 있던 조웅가가 이를 힐끗 보고 그대로 원강의 팔을 잡고 날아올랐다. 세 사람은 순식간에 폭포 뒤편으로 파고들었다.
우유도는 뒤돌아 모두 무사히 들어온 것을 보고, 바로 월접을 날려 길을 밝히고 앞에서 일행을 이끌었다.
* * *
바닥이 미끄러웠다. 그러나 일행에겐 당연히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움직이며 주변을 구경했다. 다들 한눈에 봐도 이곳이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곳임을 알았다.
곧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계단이 나타났다.
이곳은 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깊어지고, 고요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방에 땅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계속 나아가보니 낙차가 큰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일행은 월접의 빛을 빌려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공간 같았다. 좌우에서 쏟아지는 폭포도 보이지 않는 명계에서 흘러들어오는 강물처럼 느껴졌다.
상숙청은 고개를 들었다. 꼭 신이 도끼로 갈라놓은 듯한 기묘한 공간이었다. 그때 우유도는 이미 몸을 날려 끊긴 다리를 건너, 맞은편 동굴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도 운희의 힘을 빌려 그 뒤를 쫓았다.
조웅가는 이번에도 원강을 부축해 주려 했지만, 원강은 이미 여무쌍을 업은 채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끊긴 다리를 뛰어넘었다.
이에 조웅가는 뒤돌아 어둑한 길을 한번 보곤 바로 몸을 날렸다.
* * *
맞은편 동굴에 도착한 일행은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운희는 상숙청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상숙청은 눈에 띌 정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곳은 음기가 너무 강했다. 그녀가 차마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운희는 즉시 법력으로 상숙청을 감싸기 시작했다.
사실 상숙청은 한참 전부터 냉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홀로 모든 걸 감내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굳은 의지로 버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곧이어 상숙청의 몸 안으로 뜨거운 기운이 흘러들어와 음기를 몰아냈다. 상숙청은 운희에게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폐를 끼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숙청의 말엔 불안과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수시로 우유도를 힐끗거렸다. 그녀는 스스로 더욱 쓸모없다 여길 정도로 초라한 기분이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운희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론 이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운희도 이제 아무것도 모를 리 없었다. 상숙청이 바로 봉인을 푸는 핵심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굳이 이곳까지 데리고 올 이유가 없었다.
우유도는 출발하기 전에 은아와 여무쌍까지 두고 오려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챙긴 건 상숙청이었다. 그 이유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운희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여무쌍도 힘들어 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무쌍은 원강에게 업혀 아주 편안한 얼굴로,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운희는 법안을 이용해 원강을 살폈다.
원강의 육신은 환경의 자극을 받아 혈기가 크게 왕성해져 있었다. 사기는 감히 그에게 침입할 엄두도 못 내는 듯했다. 강대한 생기가 주위에 떠도는 음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런 원강 등에 딱 붙어 있으니, 여무쌍 역시 마찬가지로 생기에 보호받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운희가 감탄했다. 원강의 육신은 이미 상식을 벗어난 것 같았다.
무사하다면 운희도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하던대로 상숙청을 지키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여무쌍은 정말로 무사했다. 오히려 따뜻한 양탄자 위에 엎드려있는 것처럼 너무 안락했다. 심지어 걸을 필요도 없어, 그보다 편할 수 없었다.
* * *
뒤쪽 폭포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쯤, 월접조차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온도가 낮아졌다. 일행은 월접을 회수했고, 우유도는 품에서 야명주를 꺼냈다.
그렇게 빠르게 전진한 얼마 후, 일행은 한 석실에 도착했다. 이 앞은 거대한 구형 바위가 막고 있었다.
상숙청은 동굴 문미(*門楣: 문 위에 가로지른 나무)를 보며 중얼거렸다.
“벽혈단심…….”
그리고 다시 우유도를 바라보다, 검에 적혀있던 글자를 떠올렸다.
그 검은 원강과 조웅가도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이내 우유도는 뒤돌아 상숙청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군주, 저 네 글자, 익숙하시지요?”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곽 선생님이 부왕께 주신 패검 중 손잡이 가까운 검신에 적혀있어요.”
우유도가 검을 손에 들었다.
“저번에 이 검에 대해서 언급한 것, 기억하십니까?”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해요.”
“당시 군주의 이야기를 듣고, 이 검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이곳을 찾아왔지요. 이곳은 동곽 늙은이와 군주의 부왕이 생전 비밀리에 마련한 곳입니다. 영왕이 생전에 이 검을 군주에게 언급한 의도가 바로 이곳에 있지요.”
상숙청은 멍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부왕이 생전 이런 비밀 공간을 만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여무쌍의 눈에도 의문이 가득했다.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견문이 넓다 한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우유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없습니까?”
상숙청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곳 음기가 매우 강한 것 같아요. 너무 춥네요. 운 당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아예 버티기도 어려웠을 거예요.”
그때, 조웅가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곳 환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군주의 몸에 뭔가 이상한 느낌은 없나?”
상숙청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졌다.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자신의 이 못생긴 얼굴이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었다. 혹시 어리광을 피운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하지만 우유도의 격려 가득한 눈빛에, 상숙청도 용기를 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얼굴이 뜨거워지고, 뭔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드네요. 도야, 혹시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유도와 조웅가가 눈빛을 교환했다. 둘은 마전 내용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내 우유도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이 돌문 뒤에 음기를 모으는 진법이 펼쳐져 있습니다. 당연히 군주의 몸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군주, 영왕께선 당시 이미 군주를 위해 얼굴 반점을 없앨 방법을 남겨뒀습니다. 바로 이 뒤편에 말입니다. 오늘 군주의 얼굴을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기쁜가요?”
모두가 깜짝 놀라 상숙청을 바라보았다.
상숙청은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그녀는 당연히 기뻤다. 그 누가 얼굴을 회복할 기회를 마다하고 꺼릴까.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정녕 평생을 같이한 이 반점을 없앨 수 있단 말이던가?
“물론, 그건 책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마 영왕께서 당시 군주의 얼굴에 반점을 심어둔 이유겠지요. 반점을 없앤 그 순간부터, 군주는 영왕께서 남겨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니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묻겠습니다. 이 문을 열길 원합니까?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강요하지 않는다는 건 개소리였다. 이미 여기에 데리고 왔다는 것은 반드시 행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제 와 상숙청의 거절을 허락할 리 없었다.
확실히 강요할 순 없었지만,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 전제가 바로 상숙청이 반드시 허락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의견을 구하는 건 상숙청의 주도적인 의견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만약 나중에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계획에 영향이 갈 수 있었다.
이곳에 봉인된 건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 큰 권력을 쥐고 나면,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몰랐다. 그러니 상숙청에게 이리저리 직접 명령을 내리는 건 옳지 않은 방법일 수 있었다. 혹시라도 반발심리가 생길 수도 있으니, 상숙청이 주도적으로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심각한 이야기에 상숙청은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순종적이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늘 어른들 말을 잘 따랐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섣부르게 승낙하는 일도 없었다. 우유도가 이런 식으로 압박하는 것에도, 감히 함부로 확답하기 어려웠다.
“도야, 이 봉인석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상숙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왕께서 남기신 천군만마입니다!”
우유도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상숙청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야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이런 저급한 장난을 칠 리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여무쌍의 눈에도 의문이 차올랐다.
“부왕이 여기에 천군만마를 남겨 놓았단 말인가요?”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 상숙청의 질문에,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영왕 생전의 수하들일 겁니다. 영왕께서 군주에게 남기신 거지요.”
상숙청이 승낙하기 전엔, 우유도는 안에 있는 저 10만 까마귀 장군의 정체를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끝까지 승낙하지 않는다면, 아마 영원히 알려줄 일은 없을 터였다.
상숙청은 의문만 더 커졌다. 설마 저 안에 어딘가로 통하는 선경이라도 있는 걸까? 순간 숲속에 숨겨진 그 비밀마을이 떠올랐다. 그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도야, 제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제가 그걸 온전히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이네요……. 군을 지휘하고 전쟁하는 건 제가 모르는 분야에요. 부왕께서 남겨주신 병력이라면, 오라버니가 이어받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새언니에게 넘겨주는 것도 제가 받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우유도는 고개를 저었다.
“왕야는 안 됩니다. 왕야는 이 부대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말했다시피, 이건 영왕께서 군주에게 남긴 겁니다. 영왕께서 군주의 얼굴에 반점을 남긴 그 순간부터 군주는 남겨진 이 부대를 지휘 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온 천하에, 군주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적합한 이가 없습니다.”
조웅가도 끼어들었다.
“오직 군주만이 군을 깨우고 명령을 내릴 수 있지!”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상숙청이 눈을 크게 떴다. 제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설마 얼굴 반점과 관련이 있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매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