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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62화 (961/1,000)

1862화. 각성

아직 허공에 떠서 회전하고 있는 상숙청은 매우 어지러웠다. 분명 멀미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장면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장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수많은 얼굴이 그녀의 눈앞을 스치며,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자면, 이는 까마귀 장군과 관련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까악~!”

중앙 불길 근처에 있던 그 까마귀가 깨어났다.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검은 안개가 모여들더니, 아래쪽 거무스름한 갑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꼭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갑주를 지탱하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투구 아래, 분명한 윤곽을 가진 거무스름한 얼굴이 나타났다. 기묘한 핏빛 눈을 뜬 자가 땅에 있는 보검을 뽑아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보아도 장군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유도 일행도 절로 그를 눈여겨보았다.

곧이어 다른 까마귀 장군들도 하나하나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위는 결국 사람으로 가득 찼고,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눈이 번득이고 있었다. 정말 이 광경에 간담이 다 서늘할 지경이었다.

이젠 중간에 불어오던 바람도 천천히 약해지며, 공중을 맴돌던 상숙청도 회전을 멈추고 다시 바닥으로 서서히 하강했다.

더 이상 일행이 알던 상숙청은 없었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긴 머리칼 아래, 두 눈을 감은 낯선 여인이 있었다. 정말 밤하늘 별빛도, 대지에 피어난 꽃도 부끄러워 숨어들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얼굴의 반점은 씻은 듯 사라지고, 희고 고운 피부가 반짝였다. 이물질이 떼어지니, 그 이물질로 인한 부종도 사라졌다.

반점이 있다면 그 피부색의 격차로 부종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 않던가. 피부색이 균일해지니, 상숙청의 얼굴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정말 미운 오리가 눈부신 백조로 자라난 것처럼, 선녀처럼 아리따운 여인이 모두의 앞에 첫인사를 건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과연 회복했군.”

제일 먼저 조웅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어, 원강의 등에 기대고 있던 여무쌍도 고개를 들고 더는 참지 못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상 씨 핏줄은 모두 미인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군. 저 군주의 진짜 얼굴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그야말로 화용월태(*花容月態: 꽃처럼 아리따운 얼굴과 고운 자태)의 미인이야…….”

그러다 여무쌍이 고개 숙여 원강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원강은 얼이 빠진 듯 고개는 아예 하늘에서 하강하는 상숙청에게 멈춰 있었고, 무의식중에 여무쌍의 다리를 꼭 움켜잡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여무쌍이 더더욱 의아하게 여기는 건, 지금 원강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무쌍은 지금 원강이 어떤 표정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 그는 거의 경악한 얼굴로 상숙청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원강의 입에서 잠꼬대하듯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옥(玉) 누님…….”

옥 누님? 낯선 이름에 모두가 원강을 돌아보았다.

다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우유도 한 사람만 유일하게 굳은 얼굴로 천천히 떨어지는 여인을 보고 있었다. 손잡이를 꽉 쥔 그의 손도 은은하게 떨리는 듯했다.

원강 역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상숙청이 추락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주변 음기도 다시금 몰려들고 있었다.

운희는 상숙청을 보호하기 위해 잽싸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녀보다 빠른 이가 있었다.

우유도는 운희보다 더 빨리, 빛처럼 움직여 상숙청을 받아냈다. 우유도는 상숙청을 안고, 고개 숙여 품에 반쯤 누운 상숙청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유도의 두 눈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운희는 낯선 우유도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털썩…….

검이 쓰러졌다.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다들 그제야 우유도가 상숙청을 받아내기 위해 검도 내팽개친 것을 깨달았다.

이윽고 우유도가 상숙청의 얼굴을 가린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아직도 어지러운지 꼭 감은 두 눈 아래 짙고 긴 속눈썹이 눈에 띄었다.

우유도는 그 눈부터 코, 입술, 피부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눈에 담았다. 살펴보고, 또 살펴보고, 시선은 좀처럼 상숙청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나머지, 조웅가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 문제가 있느냐? 문제가 생겼느냐?”

우유도가 고개를 돌렸다.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우유도의 눈빛은 조금 무서울 지경이었다.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 홀로 밝혀진 등불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내 그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괜찮을 겁니다.”

우유도를 보는 원강의 눈빛도 다소 복잡했다. 여무쌍은 방금 원강의 반응을 통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때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위, 긴 속눈썹이 천천히 떠올랐다. 상숙청은 여전히 눈앞에 잔상이 남아 아직도 돌고 있는 듯 어지러웠다. 그래도 시야에 흐릿하게 비친 우유도를 보고,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야, 되었나요?”

우유도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됐습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운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어째 우유도의 말투나 모습이 좀 느끼해진 듯했다. 과거의 우유도를 떠올려보면, 그도 결국 일반 사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미인을 보자마자 바로 태도가 바뀌다니.

“어지럽고 힘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봉인을 해제할 때 몸속의 정혈과 양분이 뽑혀 나갔기 때문입니다. 군주의 정기신과 심혈을 일부 소모한 것이지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우유도는 곧바로 허리춤에서 천제단을 꺼내 납환을 으깨선, 안에서 나온 천제단을 다시 으깨 아주 조금만 남긴 후, 상숙청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그런 뒤 약효가 잘 스며들 수 있게 법력으로 도와주었다.

조웅가 등은 이가 아리는 느낌이었다. 정기신을 조금 소모한 정도로 천제단을 쓸 필요가 있나? 그것도 천제단의 약효가 너무 강한 것을 고려해, 아주 조금만 먹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대부분은 그냥 낭비해 버린 것이다.

여무쌍은 우유도의 반응을 한번 보고, 다시 원강의 반응을 살폈다. 원강의 침묵이 그냥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저 깊이 숨겨진 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효와 법력 덕분에 상숙청은 몸을 추슬렀다. 서서히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드디어 시야에 잔상이 담기지 않았다.

그리고 상숙청은 이제야 자신이 우유도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녀는 한순간 얼굴이 뜨거워진 나머지, 깜짝 놀라 두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작은 사슴처럼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 시각, 주위에 깨어난 까마귀 장군들도 점차 몸 상태에 적응했는지, 이 현장에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챙!

보검이 뽑혀 나왔다. 중앙 불구덩이 근처에 있는 까마귀 장군들 수장이 검을 뽑아 들고 일행을 가리키며 입술을 움직였다.

“우우~”

하지만 그냥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들려왔다. 일행은 당연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느낌으론 알 수 있었다. 장군은 일행을 꾸짖고 있었다.

챙! 챙!

연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 거대한 병기고 안의 무기가 모두 뽑혀 나온 것이다.

주위를 가득 채운 대군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거무스름한 무기의 예리한 빛줄기는 우유도 일행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중 한 까마귀 장군이 홀연 안개로 바뀌더니 그대로 날아올라 중앙에 꽂힌 금속 깃대 왕기를 뜯어냈다.

검은 안개는 그대로 날아 검을 뽑아 든 수장 뒤로 향했다. 왕기는 검은 안개 속에서 끊임없이 펄럭이고, 그 붉은 눈빛도 여전히 형형하게 번득였다.

그때, 상숙청이 돌연 눈을 뜨고 일어나 수장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꾸짖음을 들은 것이다. 우유도는 바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겁니다.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상숙청이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았다. 정말로 못 알아듣는 거냐며, 눈으로 묻고 있었다. 그러다 상숙청이 즉시 설명을 이었다.

“우리에게 누군지, 왜 이곳에 난입했는지 묻고 있어요.”

조웅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군주, 그 신분을 밝히면 이들 군대를 넘겨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숙청이 의아한 듯 눈을 깜빡이자, 우유도가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대장군 여기 있소!’라고 크게 소리치면 됩니다.”

상숙청의 표정이 더 의아하게 변했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되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우우~”

검을 뽑아 든 수장이 갑자기 또 분노 가득한 얼굴로 소리를 냈다. 이에, 무리를 지은 까마귀 장군들이 무기를 들고 일행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상숙청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들이 그 호령을 들을 겁니다.”

주위에 대군이 밀려들고 있었다. 상숙청도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대장군 여기 있소!”

그 어마어마한 군대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온 지하를 울리던 소리도 멈췄다. 하지만 동시에 핏빛 눈동자의 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까마귀 장군 수장은 눈의 붉은 빛을 수습한 후, 보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내 그가 상숙청 앞에서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하며 외쳤다.

“소장 용보(龍保), 대장군을 뵙습니다!”

우르르-

대군도 연달아 한쪽엔 무기를, 한쪽은 무릎을 꿇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대장군을 뵙습니다!”

순간 그 기세가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 듯 휘몰아쳤다.

“우우~”

그러나 줄곧 우유도 일행에게 들리는 소리는 이것뿐이었다. 상숙청을 제외한 모두는 저 까마귀 장군들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을 보면, 10만 까마귀 장군은 이미 상숙청에게 복속된 것 같았다. 사방팔방 무수한 까마귀 장군이 검은 안개를 뿜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상숙청은 제 앞에 무릎을 꿇은 수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용보? 당신이 용 숙부신가요?”

곧 그가 고개를 들고 눈을 붉게 번쩍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유도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상숙청이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도야, 이자가 자신을 용보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몽 어르신이 과거 부장에 관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 이름이 바로 용보셨어요. 영양무열위의 첫 번째 지휘관이었지요.

한번은 조국의 기습을 받고, 부왕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홀로 뒤에 남아 적군을 막아섰고, 전사하셨다고 들었어요.

몽 어르신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분노해 도성에서 바로 전장으로 달려가셨어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조국으로 밀고 들어가 투항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조국의 20만 대군을 도륙하셨지요. 그 때문에 조국의 대도독 방해(龐海)가 죽었어요. 그건 바로 이분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어요.”

우유도도 비로소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에게 일어나라고 하세요.”

상숙청은 나름 군에 익숙한 여인이라, 어찌 답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상숙청은 양손으로 사람을 부축하듯이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어서 일어나세요.”

“우우~”

까마귀 장군 수장이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어둑히 뒤덮은 까마귀 장군들도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무기를 들고 우뚝 섰다.

한차례 위기는 그렇게 해소되었다. 운희가 신기하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좋은 경험이라 할만했다.

이제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유도는 일행을 이끌고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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