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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63화 (962/1,000)

1863화. 휴식

상숙청의 지휘 아래 10만 까마귀 장군이 일행을 따랐다.

까마귀 장군들은 다시 까마귀 모습으로 변했다. 입고 있는 갑주와 손에 든 무기도 모두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 날아서 일행의 뒤를 따랐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하지만 운희의 표정은 왠지 좀 마뜩잖아 보였다. 뭔가 거슬리는 걸 본 눈빛이었다.

운희의 시선 끝에, 우유도와 상숙청이 있었다.

돌아가는 여정에서 우유도는 더 이상 홀로 고고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내내 운희에게 맡겼던 상숙청을 직접 허리를 부축해 걷고 있었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상숙청의 미모 때문이겠지, 운희는 우유도를 보며 남몰래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상숙청은 이제 다른 이들처럼 반점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이 됐다. 그러나 본인은 본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우유도의 부축을 받는 내내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우유도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생각이 다 멈춰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 * *

일행이 폭포 뒤에서 나와 원래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그 뒤에 수많은 까마귀가 폭포를 뚫고 튀어나왔다. 한순간 지하수로는 붉은 안광으로 가득 찼다.

출발지점에 도착한 후, 운희는 숨겨놓은 은아를 끄집어내 깨웠다.

깨어난 은아는 바로 입에 든 음식을 씹으며 우유도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음식을 다 삼킨 후엔 상숙청에게 달려가 그녀의 소매를 꼭 움켜쥐었다.

“청청.”

이를 본 일행은 아연실색했다. 참으로 경이로웠다. 지금 상숙청은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변하다시피 했건만, 은아는 단번에 그녀를 특정했다.

우유도조차 의심이 들었다. 설마 이 먹는 것 외에 다른 건 안중에도 없는 먹보야말로 진정한 혜안을 갖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건가?

그러나 은아와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긴 어려웠다. 은아는 정상적인 표현을 할 줄 몰랐다. 일단 이 일은 제쳐두고 급한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운희가 길을 열었다. 그렇게 동굴을 따라 산 중턱 길로 빠져나갔다.

* * *

일행이 동굴을 나온 후, 우유도는 상숙청에게 일단 뒤따라오는 까마귀 장군들을 이곳 주위에 숨어있게 하라고 말하곤 다시 운희에게 말했다.

“누님은 일단 산장으로 돌아가, 원종 일행에게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 격리하라고 전하세요. 절대 외부인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까마귀 장군을 폭로할 때가 아니었다. 운희는 곧 그곳을 떠나 빠르게 산장으로 향했고, 잠시 후 원종 일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종 일행은 빠르게 나와 주변 숲 수색에 나섰다.

그렇게 확실히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우유도는 일행을 이끌고 빠르게 산장으로 향했다.

이 방대한 까마귀 장군은 절대 어둠으로도 그 규모를 가릴 수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사기와 붉게 빛나는 두 눈이 너무도 눈에 띄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최대한 낮게 날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그 시각, 근처 숲에 숨어 주위를 경계하던 오풍은 흠칫했다. 그는 고개를 길게 빼고 전방을 날아 지나가는 무언가를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까……, 까마귀 장군?”

일부 사람들도 멍한 얼굴로 눈앞의 장관을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오풍은 무량원에서 실물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량원엔 단 3마리뿐이었지, 빌어먹을 이게 다 몇 마리인가!

파다닥-

숲에서 무리를 지은 까마귀가 한참을 지나갔다. 마치 같은 꿈을 계속 꾸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이를 본 사람들 모두가 넋을 놓았다. 다들 이게 현실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질 지경이었다.

* * *

500개 상자는 산장에 잘 놓여 있었다. 이미 덮개도 다 열린 채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우유도의 지시를 받은 상숙청이 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10만 까마귀 장군이 상자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대략 상자 하나에 200마리 정도, 500개 상자에 딱 들어맞았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산장 쪽에 미리 준비시킨 진음부(鎮陰符)를 꺼내 각자 법력으로 주술을 깨워 상자 안에 붙인 뒤, 빠르게 상자의 덮개를 닫았다.

진음부는 비싼 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돈이 좀 있다면, 집에 사기(邪氣)가 들어오는 걸 막고자 사용하는 부적이었다.

우유도는 혹시나 까마귀 장군이 들통날까, 그 진음부를 이용해 상자 속 까마귀 장군의 음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걸 막았다.

산에서 돌아온 원종 일행도 당연히 우유도를 도왔다. 아무리 보는 눈이 없다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500개 상자를 모두 봉인한 후, 일행이 모여들었다.

“이것이 전설의 까마귀 장군이더냐?”

원종도 더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우유도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원종이 깜짝 놀랐다.

“어디서 이 많은 까마귀 장군을 마련했느냐?”

우유도는 지금 일행이 있는 산장을 가리켰다.

“이곳 원래 주인이 준비한 겁니다. 다들 소문 한두 마디는 들어봤겠지요. 아마 영왕께서 이 일을 숨기기 위해 이 산장을 지은 것 같습니다.”

제갈지가 경악했다.

“영왕의 10만 까마귀 장군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우유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들 어느 정도 소문을 들어보았지만, 오풍은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지금껏 대부분 시간을 무량원에 갇혀 지냈기에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다급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이내 원종이 물었다.

“이걸로 오상을 상대할 생각이더냐?”

“전 접몽환계에 들어가 오상 일행이 접몽환계에서 싸우는 걸 봤습니다. 오상 일행은 나찰조에게 포위 공격당했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10만 까마귀 장군이 어쩌면 오상의 발목을 붙잡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도망치는 속도는 늦출 수 있겠지요. 거기에 우리 쪽 사람이 가세한다면, 그를 묶어둘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원강에게도 기회가 생깁니다.

이 까마귀 장군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됩니다. 들통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원종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가 지키겠다.”

그러다 사람들 시선이 돌연 한 곳으로 쏠렸다. 화용월태의 절세미인을 향한 것이었다. 다들 상숙청의 옷을 한번 보고, 그녀와 은아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또 그 목소리를 들었다. 상숙청의 언행은 그대로였다.

“저 사람은 군주입니까?”

제갈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우유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하게 말을 둘러댔다.

“영왕이 까마귀 장군을 제련한 곳에 해약을 남겨뒀습니다. 덕분에 원래 용모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상숙청은 10만 까마귀 장군을 통제하는 핵심이었다. 우유도는 이 사실을 아직 너무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엔 신중하고, 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내 사람들은 탄식했다. 그 얼굴이 저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는 건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듯 하루아침에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상숙청도 차츰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자신의 용모가 바뀌었다는 걸 깨닫고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어색해졌다. 자신을 보는 시선들에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시로 우유도를 힐끗 훔쳐보기도 했다. 아마도 그의 반응이 제일 궁금했기 때문이겠지.

그때, 우유도가 운희를 불러 말했다.

“군주를 방으로 데려가 좀 쉬게 하세요.”

운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목적을 달성하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어?”

“군주의 정기신과 혈기가 소모됐어요. 이대로 장거리를 움직이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일단 하룻밤 쉬게 하지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됩니다. 오늘 밤은 누님이 직접 군주의 방에서 군주를 지켜주세요. 군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됩니다. 아시지요?”

운희는 자신도 모르게 상숙청을 바라보았다. 딱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운희는 다시 우유도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째 지금까지의 우유도와 행동이 좀 다른 것 같았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상숙청의 정기신이 안 좋은 것을 신경 쓰고 있다고? 정기신이 좀 안 좋은 게 무슨 큰일이었나?

우유도가 사전에 계획을 세울 때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우유도라면 분명 모든 걸 고려했을 터였다. 운희는 우유도에게 혹시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순간, 우유도가 다시 또 말을 이었다.

“방금 용모를 회복해서 쉽게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누님이 손을 좀 써서 편히 쉬게 해주세요.”

운희는 고개를 끄덕인 후, 걸어가 상숙청을 데리고 나섰다.

상숙청은 은아의 손을 잡고 한번 걸을 때마다 3번은 고개를 돌려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양손으로 검을 짚고서 묵묵히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곳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우유도는 검을 짚고 뒤돌아 상숙청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운희가 빠르게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연 사람이 우유도인 걸 보고, 운희가 일어나 문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우유도가 방 안쪽을 살짝 턱짓했다.

“잘 자고 있나요?”

“응, 혼혈을 짚었어.”

우유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밖을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되네요. 누님이 나가서 한번 살펴보세요. 여긴 제가 있으면 돼요.”

“다 큰 사내가 여인이 자는 방에 들어간다고? 그래도 되겠어?”

우유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설마 제가 잠든 여인을 건드릴 파렴치한으로 보이나요?”

운희는 잠시 우유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거야 모르지, 지금 군주가 아름다워지니까 군주를 보는 네 눈빛도 바뀌었잖아. 당연히 방비해야지.”

물론 운희도 그냥 해보는 말에 불과했다. 우유도를 하루 이틀 안 것도 아니고, 최소한 지금 같은 상황에 다른데 정신을 팔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운희가 밖으로 나서고, 우유도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늘진 한편에 우유도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원강은 화단을 가득 메운 나무들 뒤에서 상숙청의 방으로 들어가는 우유도를 지켜보았다.

* * *

방 안.

우유도는 침상 앞에 조용히 섰다. 눈앞엔 단잠에 취한 아름다운 상숙청이 있었다. 그 옆엔 상숙청을 반쯤 껴안고 잠든 은아라는 불청객도 있었지만.

이내 우유도는 은아 몸의 혈을 짚어 그녀를 더 깊이 재우고, 잠든 은아를 한편으로 살짝 옮겼다.

우유도의 손이 상숙청의 옷으로 향했다. 손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몇 번이나 뻗었다 내리길 반복했다.

오랜 시간 후, 결국 우유도의 손끝이 상숙청의 옷깃에 닿았다. 우유도는 상숙청의 희고 고운 목에서부터 옷깃을 잡고 천천히 옷을 끌어 내렸다.

우유도의 눈앞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점점 그 면적을 넓혔다.

우유도도 선을 넘진 않았다. 그저 가슴 중앙 위치가 보일 정도까지만 옷을 내렸다. 상숙청의 피부는 우유도처럼 희고 고왔다.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우유도는 한참이나 생각하다 그 위치에 손을 대고 살며시 만져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우유도의 눈에 언뜻 실망이 비친 것도 같았다. 그는 다시 상숙청의 옷을 끌어 조심스럽게 다시 입혀주었다.

손을 뗀 우유도가 다시 또 상숙청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러다 천천히 그녀의 뺨을 한번 조심히 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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