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화. 오상의 분노
흑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웠지만, 보고를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성존, 남주부성 내부에 갑작스러운 소탕 작전이 있었고, 그 주위에 심어둔 우리 인원이 대부분 쓸려나갔습니다. 요행으로 목숨을 건진 이들은 부근의 천하 전장을 찾아 그곳 연락 수단을 통해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또…….”
“말해라!”
오상이 분노했다.
“계속해서 소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영종, 천행종, 만수문도 거의 동시에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저들이 그곳에 주둔한 표묘각 인원을 모두 죽이고 그대로 숨어들었습니다. 또한 마교도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저들이 성지 인원을 모두 죽였고, 지금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오상은 흑석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어째서 좀 더 일찍 보고하지 않은 것이냐?”
“너무 중대한 일이다 보니,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일까 봐 거듭 확인했습니다. 다방면으로 확인한 결과 내용은 대동소이했습니다. 그제야 확실한 정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는 개뿔, 오상은 그대로 흑석을 밀어내고 빠르게 하늘 저편으로 날아갔다. 사라지는 오상을 보며, 흑석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소매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홀로 중얼거렸다.
“함정이다. 이용당한 것이다. 이건 모두 함정이다. 이 모든 게 함정이었다니. 참으로 악독한 수법이다. 남도림과 독무허가 죽었다. 다음은…….”
흑석은 자신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천하의 하늘이 바뀌려는가…….
멍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흑석이 뒤돌아 다 무너진 누각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엔 그날 그자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오늘 내가 호의로 당부의 말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나중에 갈 곳이 없을 때, 탐천환을 우리 쪽으로 가져오기만 하면 살길을 마련해 주겠습니다.’
그때는 그냥 듣고 흘린 말이었다. 오상 측이 상대의 모든 걸 파악하고 있기에, 오상이 언제든 그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이제 누가 누굴 쓸어버릴지 알 수가 없었다.
“탐천환…….”
흑석이 홀로 중얼거리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이내 흑석은 혹시 들은 이가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탐천환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분주히 고민하고 있었다.
* * *
누군가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약곡으로 날아왔다.
“누구냐!”
이곳을 지키는 수행자들은 쏜살같이 나타나 대응하다가, 방문객을 확인하자마자 다급히 예를 갖췄다.
“성존을 뵙습니다!”
방문객은 오상이었다. 주변을 쓸어본 그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리는 어디 있느냐?”
다들 시선을 한번 교환한 뒤, 한 사람이 나섰다.
“흑리 사제는 이틀 전 유람을 떠났습니다.”
“유람?”
화를 내는 오상을 보고, 대답한 사람이 전전긍긍했다.
“네……. 그렇습니다.”
오상은 그대로 몸을 날려 약방으로 향했다.
곧 약방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다시 나온 오상은 흑리 등이 평소 생활하는 거처로 들어갔다. 당연히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또 한 건물이 강대한 법력에 파괴되었다. 울분을 뿜어내는 오상의 분노에 약곡의 수행자들은 그야말로 대경실색했다.
* * *
한참을 파괴하던 오상이 날아올라 약곡 가장 높은 곳에 내려섰다. 유황 냄새가 가득한 화산 입구였다. 그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두운 얼굴에도 분노의 빛은 가려질 줄 몰랐다.
기운종에서 보고를 받을 때부터 속았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려 가장 먼저 이곳으로 왔다. 결과가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 속았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계획된 사기극이었다.
황택사지에서 곤림수가 싸우는 걸 본 순간부터 오상을 대상으로 설계된 사기극이었다. 오상이 알아서 뛰어들길 바라는 의도가 명확했다.
초려산장이 폭로된 것이 미끼였다. 귀의 흑리가 제공한 정보는 그 미끼를 더욱 먹음직스럽게 만들었다.
함정까지 판 자는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른 모든 사람의 목숨을 오상의 손에 넘기면서도 끝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이 사기극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다. 그야말로 악독한 설계자는 다른 모든 이들의 목숨을 오상에게 넘기고 마음대로 처분하게끔 했다. 모든 건 오상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오상의 모든 생각이 상대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그는 오상의 야심을 정확히 알고, 목숨까지 건 대결을 펼친 것이다.
쾅!!!
산의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 오상은 당장이라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해버리고 싶었다. 오상은 그대로 날아올라 저 멀리 사라져갔다.
약곡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했다. 지금껏 저토록 분노한 오상의 모습에 무슨 일인지도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만 있어야 했다.
* * *
남주부성, 초려별원.
오상이 하늘에서 날아왔다. 주위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누구냐!”
당직을 서던 호위가 뛰어 들어왔다.
오상은 팔을 휘둘러 그대로 호위들을 날려 버렸다. 호위들은 즉각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오상이 허공을 움켜쥐자, 한 사람이 그대로 그 손안에 빨려들었다. 오상은 호위의 목을 부여잡고 초려별원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캐물었다.
하지만 이틀 전에 떠났다는 대답뿐, 그도 향방은 알지 못했다.
쾅!!!
새로 지은 초려별원이 오상의 분노에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 * *
쾅!!!
새로 지은 왕부도 힘없이 쓰러졌다.
오상은 바로 이곳을 찾았지만, 역시 텅 빈 광경만 목도했다.
봉약남과 상조종의 아들조차 도망쳤다. 딱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볼 필요 있겠는가.
* * *
남주부성 내 천하전장도 절반쯤 무너져 내렸다. 역시 오상의 짓이었다.
오상은 천하전장의 이목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이곳 천하전장엔 얼마 전 강도가 들어 재물을 다 빼앗겼다는 말만 들었다.
* * *
오상은 다시 거리에 있는 관아에 뛰어들었다. 역시 요인은 모두 도망친 후였다. 몇몇 주요 인물을 죽여 화를 풀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이곳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혼자의 힘으로 사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설마 이대로 이곳에서 느긋하게 소란이라도 피우란 말인가?
이미 남주부성을 파괴하고, 수백을 죽였다. 그로 인해 현재 남주부성 인심은 극도로 흉흉해졌다. 오상은 그대로 송국으로 향했다.
* * *
크게 분노한 오상은 그야말로 한시도 쉬지 않았다.
오상은 송국 승상부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 이미 늦었다는 사실만 확인받고야 말았다.
보고받은 내용에 송국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이곳도 이미 도망쳤다. 천하 모든 것이 상대의 계략에 당한 오상의 현실만 냉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승상부를 대충 무너뜨렸다. 오상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분풀이로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오상은 다시 또 성 밖 상청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상청종은 입구를 지키는 사람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살려달라는 애원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오상의 분노는 더 짙어졌다. 그는 상청종을 아예 평지로 만들어 버렸다.
무너지는 건물로 인해 먼지가 사방으로 일었다. 오상은 그 먼지바람을 뚫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만수문, 영종, 천행종은 갈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았다. 당연히 가봤자 아무 쓸모가 없었다. 헛고생이었다.
오상은 곧바로 서병관으로 향했다.
* * *
연군은 이미 흩어져 철수한 상태였다. 오상은 연군의 주둔지였던 곳에서 느리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드넓고 텅 빈 대지, 이것이 뜻하는 건 명확했다.
오상은 상조종을 잡아 화를 풀고 싶었다. 저항하는 대군의 중추를 파괴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이것까지 예상하고 모든 조처를 취했다.
오상이 분을 풀 기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오상의 숨결이 바람보다 더 거칠었다. 분노는 하늘 끝까지 닿을 기세였다.
오상의 얼굴에 냉소가 걸렸다. 이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상은 상대를 이용해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이려 했다. 상대도 자신을 이용해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이려 한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오상은 상대가 이미 제 손아귀에 단단히 잡혀있다고 생각했었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실상은 그가 상대에게 이용당한 것이었다.
이번 싸움은 양측의 계획이 얽혀있었다. 승부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이게 바로 상대가 진정으로 뛰어난 부분이었다. 선기(*先機: 중요한 시기)를 통찰하고, 오상보다 한발 앞서 움직였다. 그가 선수를 친 것이다.
오상은 그제야 과거 기운종에서 저들이 도망치는 것을 방관한 것을 떠올리고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었다.
분명 상대를 이용해 남도림과 독무허를 처리했지만,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오직 분노만 있었다. 현실에게 강한 따귀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평생 이렇게 누군가에게 놀아난 적이 없었다. 바보, 천치처럼 그자의 뜻대로 놀아났다. 천하의 오상이 누군가의 손바닥 위의 광대가 되었다.
“잡히지 마라! 내 손에 잡히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증오를 토해낸 오상이 저 멀리 우뚝 솟은 산맥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서병관, 산 정상 중지.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서며 그대로 부대 중지를 향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수행자가 그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기세가 너무 흉험한 나머지 감히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멈춰라!”
이후 나타난 기운종 장로가 포위당한 이가 오상인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장로는 황급히 다가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천마성존을 뵙습니다!”
나머지도 이제야 오상이 직접 친림했음을 알고 두려워 즉시 예를 갖췄다.
“성존을 뵙습니다!”
“고품은 어디 있느냐?”
오상이 소리쳤다.
곧 고품 등 주요 장수들이 다급히 뛰어왔다. 오상의 등장에 감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일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성존을 뵙습니다.”
다들 성존을 처음 보았고, 오늘 크게 안계를 넓힐 수 있었다.
이내 오상이 고품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바로 진국 동벌의 원수 고품이더냐?”
고품이 허리를 깊게 숙이고 포권하며 전전긍긍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바로 소장이옵니다!”
오상이 물었다.
“화살이 시위에 걸렸다. 적군이 바로 눈앞에 있다. 어째서 아직도 공격하지 않는 것이냐?”
이제 오상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 일단 손에 쥔 세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세상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했다.
오상도, 수하들도 이미 천하의 통제권을 잃었다. 이 상태로는 숨은 이를 찾을 수 없었다. 차라리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 더 빠를 터였다.
‘어디 숨어 보아라, 언제까지 숨을 수 있는지 두고 보마. 어디 평생 숨어 보아라! 천하의 질서를 다시 세울 때까지 평생 그리 숨어 보아라!’
“적군의 상황에 변화가 있습니다. 연군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소장이 지금 사람을 풀어 상황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고품은 두려움에 당황한 빛으로 대답했다.
“알아볼 필요 없다. 연군은 이미 철수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공격해 점령해야 할 것이다!”
고품이 눈 딱 감고 말했다.
“성존, 한군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연국 영토로 진격한다면 한군이 아군의 허리를 자르고 들어올 것입니다. 방비해야 합니다.”
“한군은 걱정할 필요 없다. 본존이 직접 나서서 너를 위해 장애물을 쓸어버리겠다. 그러니 너는 즉시 공격을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