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화. 궁지에 몰리다 (1)
오상은 천하가 혼란스러워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천하 각 문파가 상대에게 넘어가 이쪽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영종 등의 문파가 이미 대놓고 반란을 일으켰다. 더군다나 원래 구성 휘하의 세력도 이미 많이 도망쳤다. 이대로 공격을 감행하면 분명 이쪽을 막아서는 힘이 나타날 터였다.
전에는 그런 상황이 생기는 걸 걱정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뒤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싸워야 했다. 이기지 못해도 싸워야 했다. 전쟁이 길어진다 해도, 각지 세력을 무너뜨리고, 굴복시킬 때까지 싸워야 했다.
그렇게 오상은 천하의 질서를 다시 세울 때까지 끈질기게 싸우고 나서야 비로소 이 폭주를 멈출 생각이었다.
고품은 얼굴을 씰룩거렸다. 대체 오상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뭐라도 신호를 달라며 옆에 있는 기운종 장로만 돌아볼 뿐이었다.
그러자 오상이 그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설마 본존의 법지를 따르지 않을 참이냐? 기운종은 항명하려는 건가?”
“저희가 감히 어찌!”
기운종 장로가 다급히 나서며, 연신 고품에게 눈짓을 보냈다.
고품은 어쩔 수 없이 포권하며 명령을 받았다.
“소장, 성존의 법지를 받듭니다!”
“이미 너희에게 반년의 시간을 주었다. 그 정도면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니 더는 지체하지 말고 공격하라, 명령이다!”
오상은 이 말만 남긴 채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이대로 떠난다고?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고품이 바로 기운종 장로에게 다가갔다.
“장로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기운종의 장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물어보면, 나는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이오. 일단 시키는 대로 합시다. 내가 종문에 연락하겠소.”
고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곧 장수들을 소집해 공격할 준비를 시작했다.
* * *
한군 주둔지, 중군 군막.
하늘에서 누군가 날아왔다.
“누구냐!”
일단의 수행자들이 나와 침입자를 막아섰다. 하지만 다들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의 속도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딱 봐도 그 능력이 자신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오, 상!”
오상이 무표정한 얼굴로 두 글자를 뱉어냈다. 마치 종이 울리듯, 주변을 휘몰아치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헉!”
다들 대경실색해 예를 올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성존을 뵙습니다.”
오상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금작은 어디 있느냐?”
곧이어 금작이 소식을 듣고 빠르게 나와 예를 갖췄다.
오상은 지금 즉시 각 부대의 장군을 소집하라는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금작도 감히 그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바로 지시를 내렸다.
곧이어 각 부대의 장군들이 하나둘 빠르게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모였을 때, 오상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휙-
바람처럼 날아간 오상은 돌연 금작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매우 충격적인 광경이 벌어졌다.
오상이 그대로 금작의 목을 베어버렸다.
뜨거운 피와 함께, 목과 몸이 분리돼 나뒹굴었다.
쓰러져 꿈틀거리는 가여운 몸짓을 보고, 현장에 있는 모두가 넋을 잃었다.
꿈에라도 생각해 본 적 있던 일인가. 금작이 죽었다. 그것도 황당하리만큼 허망한 죽음을 맞았다.
금작의 눈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부릅뜬 눈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그 스스로도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상이 죽인 건 금작 하나만이 아니었다. 몸에선 곧 법력이 요동치더니, 홀연히 나타난 먹구름이 마귀의 발톱처럼 현장에 있는 장수들을 그러쥐었다.
오상은 그대로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 순간, 10여 명이 동시에 머리가 잘려선 그대로 오상의 눈앞까지 향했다.
다시금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주위 수행자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 누구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감히 나서서 오상을 막겠는가?
오상이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국 수행자들은 대경실색하며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황급히 도망칠 뿐, 감히 누구도 오상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상이 너무 대단했다. 그런 자가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 그냥 죽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도는 해봐야 했다.
다행히 오상은 하릴없이 그들을 뒤쫓아 모두 죽이진 않았다.
오히려 장수들의 심복들이 크게 슬퍼하며 칼을 뽑고 오상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쾅!!!
사람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오상을 향해 달려든 사람들은 줄이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땅 곳곳에 처박혔다. 그렇게 또 무고한 목숨이 끊겼다.
오상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도 없었으니, 오상과 목숨 걸고 싸운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위 병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무기를 들곤 있어도 군령이 없어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공격해야 하는지, 물러가야 하는지, 심지어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상은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대로 수급을 수습해 저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이제야 숨어있던 수행자들이 천천히 나타나 오상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다들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오상은 왜 갑자기 찾아와 장수들을 무참히 살해했나. 설마 금작 등이 오상에게 무슨 죄를 범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 한들, 천마성존이 어떤 사람인가. 정녕 천마성존이 직접 나서서 손을 쓸 필요까지 있었나? 천마성존은 한마디만 하면 그만이었다.
역시 이는 오상의 현재 처지를 모르는 이들의 생각이었다.
지금 오상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명령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오상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터였다.
이제 천하에 오상의 입지는 없었다. 금작에게 항복하라고 명했어도 당연히 오상의 지시를 따랐을 것이다. 오상이 명령을 내리면 금작이 아니라 한국조차도 항복했을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항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오상에게 한국의 항복이 필요한가? 한국은 원래부터 그를 성존으로 모셨다. 그런데 본디 오상의 신하를 자청하는 한국 3대 문파가 다시 또 항복한다? 지금 싸구려 촌극을 하자는 게 아니었다.
명목상으로 지금 천하는 오상의 것이었다. 그러니 항복이란 것 자체가 그에게 아무도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 * *
서병관.
고품은 여전히 지도 앞에서 휘하 장수들과 작전 계획에 한창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출현에 내부의 모든 이가 전전긍긍했다. 다시 또 오상이었다.
휙-
저벅저벅 걸어온 그가 뭔가를 바닥에 던졌다.
구르르…….
바닥에 피범벅이 된 수급이 굴러다녔다. 열몇 개에 달하는 머리였다.
장수들은 그야말로 영문도 모른 채 기함했다.
“금작과 그 휘하 장수들의 수급이다. 고품, 이제 안심하고 공격하라!”
오상이 차갑게 말을 뱉은 뒤, 그대로 무표정하게 돌아섰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고품과 휘하 장수들은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오상이 있던 공기마저 식었을 때, 고품이 먼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바닥에 있는 머리 중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금작의 머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수급엔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었다. 머리를 베어낸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장수들도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금작처럼 아직 온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꿀꺽…….
한편에 있던 기운종 장로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이미 바짝 메말라버린 입술과 두 눈은 공포에 질려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아…….”
고품은 금작의 머리를 감싸 안고 가볍게 탄식했다. 주위 사람들의 안색과 반응을 살펴보니, 그들 역시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사실 고품 자신도 크게 놀란 상태였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세상을 떠난 금작을 보고 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일세를 풍미한 명장이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다니……. 그 외에 바닥을 구르는 이들 모두가 적군이었지만 다들 비통한 빛을 숨길 수 없었다. 마치 본인 일처럼 참담하고 애통해했다.
오상이 떠난 지 겨우 얼마나 지났던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오상은 한군의 주요 장수들을 다 죽여버리고 그 머리를 가져왔다.
모두의 마음에 같은 공포가 피었다. 기운종 장로 역시 아무런 제약도 없는 힘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고 있었다.
곧이어 서병관이 열리고 진국 대군이 거센 파도처럼 한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고품 등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와 누가 감히 지체할 수 있겠는가. 적군의 침통한 죽음이 현실을 빠르게 일깨웠다.
다행히 공세는 아주 순조로웠다. 사실 순조롭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연군은 진작에 철수했고, 한군은 수장을 잃고 지휘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이미 난장판이 된 곳은 진군의 공세 한방에 파죽지세로 쓸려나갔다. 사실상 진군을 저지하는 힘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 * *
진국, 새로운 경성.
날짐승 10여 마리가 나타나 주위를 맴돌더니 황궁에 내려앉았다.
흑석이 일단의 사람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태숙웅은 그를 마중하고자 빠르게 밖으로 나와 예를 다했다.
흑석은 바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것 없다. 급한 일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지금 나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채비해라.”
태숙웅이 아연실색했다.
“어딜 가는 것입니까?”
“전방으로 간다! 진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황제가 직접 친정해야겠다. 아, 기운종 고위층은 이미 한발 먼저 움직였다. 이는 성존의 법지다!”
* * *
영종, 만수문, 천행종, 마교가 반란을 일으켰다.
서재 서탁에 앉아 소식을 살피던 소평파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무군이 암중에 준비한 세력이 이제 대놓고 오상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대놓고 의도를 보여준 이들 문파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건 오상과 끝까지 가겠다는 말이었다. 소평파의 눈빛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때, 소삼성이 밀서를 들고 다급히 뛰어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대 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표묘각 사람들이 폐하를 데려갔습니다!”
“뭐라?”
소평파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삼성의 나이도 적지 않아 체력이 예전 같진 않아 보였다. 소평파는 일단 그에게 제 찻잔을 건넸다.
“진정해라. 우선 숨부터 돌리고 천천히 말해보아라.”
“감……, 감사합니다.”
소삼성은 거친 호흡을 정리하며 잠시 밀서를 내려두고, 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잠시 후 겨우 호흡을 고른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폐하뿐만이 아니라, 조정 중신들도 데려갔습니다. 폐하의 친정을 직접 보좌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 기운종도 있습니다. 소인이 듣기에 표묘각은 기운종 고위층들을 모두 전방으로 데려간 것 같습니다. 이건 군의 사기를 올려, 전력을 올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 그리고 이것도 있습니다.”
소삼성이 찻잔을 내려두고, 가져온 밀서를 내밀었다.
“오상이 직접 움직였다는 소식입니다. 오상이 직접 한군 중추를 찾아가 한군 총사령관 금작과 장수 10여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고품에게 한군의 주요 장수들 머리가 보내졌습니다.
이제 고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군을 이끌고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적군이 난장판이라, 아군이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