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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69화 (968/1,000)

1869화. 태풍

금작이 오상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오상은 금작 정도 되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어떠한 변명 하나 없이, 그냥 죽이고 싶다고 죽여버렸다. 당연히 동요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 일은 천마성존이 거침없이 자신을 과시한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자기 일처럼 슬퍼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틈타 오상이 진국의 세력으로 천하를 평정하려 한다는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연국, 송국, 한국을 멸하고, 천하 각 대 문파의 힘을 빼고 이익을 빼앗아 천하의 질서를 다시 세우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거기에 각 대 문파의 고위층을 살해하고, 송국과 한국의 황제를 죽이고, 진군에 대항하는 각국 고위 무장들을 죽인다는 소문도 있었다. 눈앞에 예시가 있었다. 금작과 그 휘하 장수가 살해당했다.

결국 오상은 제 발등을 찍은 것이다. 막무가내로 한 분풀이 때문에, 진국으로 천하를 평정하려 한 야심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더욱이 자금동이 도망치고, 연군 장수들이 먼저 숨어들었다. 앞서 숨어든 문파들도 소문이 진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천하 각 세력이 어찌 이를 믿지 않을 수 있으랴. 한순간, 각국 조정과 각 문파 고위층들이 혹시라도 살해당할 것을 걱정해 어딘가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암중에 연합해 오상에게 저항하고자 하는 흐름이 일어났다. 다들 구성에 대항하는 미지의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들을 호령해주길 고대했다.

* * *

진군 군영 부근, 산 정상.

오상은 무표정한 얼굴로 석양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 역시 소문을 들었다. 전에 몇몇 성존이 살아있을 당시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자 했던 상황이 결국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하지만 오상은 딱히 소문에 관해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배후의 누군가가 수작을 부릴 건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당연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하루빨리 그들을 끄집어내 처리할 수만 있다면, 문제도 그 즉시 불식될 것이다. 세상은 본디 모든 걸 빠르게 잊어가기 마련이었다.

* * *

작은 마을 바깥, 농가 안.

소평파는 지붕 밑에서 서신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잠시 기다리던 소삼성이 운을 뗐다.

“대 공자님, 어찌합니까?”

소평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무군이 그에게 이런 짓을 시키다니. 일단 시작하면, 그는 철저하게 진국 내부에 심어진 첩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가무군은 언제든 진국에서 그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 소평파가 탄식을 내뱉었다.

“가무군의 수법이 참으로 악독하구나. 이건 내 퇴로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나를 철저히 저들 편에 서게 하려는 것이다!”

소삼성의 목소리도 비통해졌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대 공자님이 그를 고발할까 두렵지 않단 말입니까?”

“지금 그게 소용이 있겠느냐? 이미 진즉에 숨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오상에게 달려가 고발한들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 왜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고 오상은 분명 크게 화를 낼 것이다. 그 마두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제 무덤을 팔 일이 있느냐?”

* * *

창고 뒤편, 강 쪽에 작은 목조 부두가 있었다.

관방의는 그 위를 서성이며, 저 멀리 갈대밭 옆에서 뱃놀이하는 남녀를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우유도는 바쁜 와중에 어디선가 작은 배를 구해와선, 상숙청을 태우고 직접 노를 저으며 뱃놀이에 심취했다.

처음에 상숙청은 부끄러워 거절했으나 갑자기 뱃놀이에 흥미가 동한 우유도를 끝내 이기진 못했다. 그렇게 마지못해 배에 올랐지만, 지금 상숙청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부끄러운 순간의 주인공이 돼 있었다.

그런데 주위를 한 바퀴 채 돌기도 전, 원강이 부두에 나타나 우유도를 향해 손짓했다. 우유도도 급한 일임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으면 원숭이가 이런 식으로 그를 방해할 리도 없었다. 우유도는 즉가 배를 뭍으로 몰았다.

먼저 뭍에 오른 우유도가 손을 내밀자, 역시 상숙청은 손사래를 쳤다. 이에 우유도는 그냥 상숙청의 손을 잡고 뭍에 편히 오르도록 부축해주었다.

상숙청의 눈 속엔 숨길 수 없는 수줍음이 가득했다. 그 눈빛을 보고, 관방의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그 뒤에서 활짝 웃었다.

“무슨 일이야?”

우유도가 뒤돌아 물었다.

원강는 관방의를 힐끗 보곤 우유도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도야가 부른 남천무방이 도착했어요.”

남천무방? 마교의 좌사? 관방의는 원강의 말을 훔쳐 들었다. 사실 그녀는 원강이 우유도에게 몰래 속삭일 때마다 매번 훔쳐 듣고 싶었다. 마침 이번엔 두 사람과 가까이 있던 터라 도저히 훔쳐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왔다는 소식에 우유도가 관방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관방의는 못 들은 척 상숙청의 손을 잡고 자리를 옮겨 그녀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상숙청은 부끄러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유도는 잠시 침묵하다 원강에게 신호를 보냈고, 원강은 조용히 떠났다.

“무슨 이야기 중인데?”

우유도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관방의는 우유도를 아래위로 한번 깔보듯 훑었다.

“다 큰 사내가 여인 일에 왜 관심을 가지나?”

상숙청은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우유도는 보검을 지팡이 삼아 물결치는 갈대밭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홍랑에게 해줄 말이 있어. 근데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네.”

“아이고, 그게 무슨 말이야? 말하고 싶으면 말하는 거고, 말하기 싫어도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

말은 그렇게 했어도, 타고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특히 지금처럼 보기 드문 우유도의 태도 앞에선 더더욱 호기심이 폭발하기 마련이었다.

“무슨 일인데? 말해봐.”

“그게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모르고 일단 저질렀어. 우리가 곧 마주할 일은 마지막에 어찌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야. 내게 문제가 생겼을 때 홍랑이 여한을 남기지 않았으면 해서, 일단 저지르고 본 거지. 홍랑은 참 오랫동안 나를 따랐으니, 어찌 보면 홍랑에게 주는 대가라고 할 수도 있어.”

관방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의미심장해? 무슨 일이야? 여한? 나한테 무슨 여한이 있어?”

상숙청도 점점 우유도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만약 과거 홍랑을 버리고, 홍랑을 수행계의 길로 이끌고, 홍랑을 속세로 떨어뜨린 그 사내를 찾을 수 있다면, 홍랑은 그자를 만나고 싶어?”

관방의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멍청한 얼굴로 조용히 우유도만 바라보았다. 심지어 그 눈엔 두려운 빛도 어렸다. 부채 역시 관방의의 손끝에서 몸을 가볍게 떨고 있었다. 또한 현재 가면을 쓰고 있어 누구도 몰랐겠지만, 그 안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상숙청은 까닭을 몰라 의아해했다. 우유도의 말이 쉬운듯하면서도 어려웠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잡고 있는 관방의의 손이 떨리고, 몸이 떨리고, 호흡도 점점 거칠어져 간다는 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내 우유도가 관방의를 바라보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 사람을 찾았어. 그리고 지금 여기 도착했어. 바로 창고 밖에 있어. 만나든 말든, 홍랑이 결정해!”

관방의가 우물쭈물했다. 머릿속엔 과거의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상숙청의 손을 놓고는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천……, 남천무방? 정말 그 사람이야?”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에서의 신분은 오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이지. 어쩌면 마교에서 그의 지위는 오히려 오상보다 조금 더 높을 거야. 마교의 좌사, 남천무방이 바로 그 사람이야!”

“말도 안 돼! 그 사람일 리가 없어. 불가능해!”

조금 감정이 격해진 관방의를 보고,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남천무방의 본명은 관홍화(管紅花)야. 그가 홍랑의 이름을 관방의로 개명해 주었지!”

관방의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비틀거렸다. 주춤주춤 물러난 그녀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 거친 숨을 내뱉었다.

상숙청도 함께 놀랐다. 이 대화만으론 과거의 일을 알 순 없지만, 관방의의 반응을 보면 그녀에겐 절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바로밖에 있어. 만나겠다면 데리고 들어올게. 만나지 않겠다면 안 만나면 그만이야. 그냥 가라고 할 거야. 앞으로도 영원히 홍랑 앞에 나타나지 않겠지.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야. 원한다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

콰직-

결국 관방의의 부채가 가루가 되어 땅에 떨어져 내렸다. 관방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꺼지라 해! 가서 죽어버리라고 해!”

“알았어.”

우유도가 몸을 돌렸다.

그런데 우유도가 막 입구에 도착했을 때 관방의가 다시 소리쳤다.

“멈춰!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해야겠어.”

우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곧이어 창고로 들어간 우유도가 원강에게 손짓했다. 원강은 즉각 한 사람을 데리고 다가왔다. 조웅가였다. 그가 바로 남천무방을 데려온 사람이었다.

“데리고 들어와.”

원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창고 밖으로 나갔다.

조웅가가 창고 뒤편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지금 남천무방은 그녀의 상대가 아니다. 문제없겠느냐?”

“문제가 있으면 또 어떻습니까?”

조웅가가 눈을 부라렸다.

“만약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마교에 뭐라고 변명한단 말이냐.”

“이건 마교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들 사이의 사적인 일이지요. 언젠가는 결론을 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는 끼어들면 안 됩니다. 저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게 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홍랑이 정말 그를 어쩌고자 한다면, 사숙이 몇 번이나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설마 남천무방을 평생 끼고 다닐 겁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사람이지만, 죽고 사는 건 운명이지요.”

조웅가가 다시 눈에 힘을 줬다.

“왜 일찍 알리지 않고, 홍랑에게 복수할 능력이 생긴 지금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 이건 누가 봐도 너무 편파적이지 않더냐?”

우유도는 무시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였다. 지금 상대의 생사를 결정지을 주도권은 홍랑에게 있었다. 홍랑에게 편파적이라 한들, 뭐 어쩌라고? 어차피 우유도는 스스로 단 한 번도 정인군자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 * *

부두에 남아있던 상숙청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관방의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관방의는 아직도 넋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원강은 창고 밖에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곤 남천무방에게 향했다.

“들어갑시다. 따라오시오.”

원강이 먼저 몸을 돌리는데, 남천무방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

“원 형제. 바……, 반응이 어땠는가?”

원강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어떤 반응을 원하시오?”

“나는…….”

남천무방은 말문이 막혔다.

“나도 반응은 못 봤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피할 수도 없소. 갑시다.”

남천무방은 차마 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이에 원강이 그를 도와주었다. 그냥 남천무방의 팔을 잡고 당긴 것이다.

그렇게 남천무방은 드디어 창고로 들어갔다. 시선은 좀 바쁘게 움직였다. 아무리 주변을 훑어도 보려고 온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우유도는 조용히 턱짓만 했다. 원강은 바로 남천무방을 창고 뒷문으로 데려가, 그대로 문을 열고 남천무방을 뒤편 부두 쪽으로 밀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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