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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70화 (969/1,000)

1870화. 천하가 혼란스러워지다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온 것이다. 그러나 관방의는 차마 고개 한번 돌리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강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천무방은 잠시 상숙청을 한번 바라봤다가, 관방의 앞에 시선을 고정했다. 목표를 찾은 그의 눈빛에 서서히 파동이 일었다.

“군주, 잠시 들어오세요.”

창고 안에서 우유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문으로 이들을 한번 보고, 상숙청도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남천무방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빠르게 창고로 들어가 우유도 곁에 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외부의 상황에 집중했다.

부두는 아주 조용했다. 수면이 출렁이고, 갈대밭이 물결쳤다.

결국은 남천무방이 정적을 깨트렸다. 그가 씁쓸한 얼굴로 운을 뗐다.

“방의…….”

“당신 누군데?”

관방의가 홀연히 뒤돌아 서슴없이 말을 끊었다.

남천무방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천근은 나갈 것 같은 손을 들어 천천히 가면을 벗어, 원래 얼굴을 드러냈다.

얼굴을 확인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어도, 기억 속 그 얼굴이 맞았다. 관방의는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짝!

관방의가 바로 걸음을 옮겨 그의 따귀를 때렸다.

남천무방은 그대로 휘청이며 입가에 피를 흘렸다. 그래도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거친 숨을 내쉬는 여인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방의…….”

짝!

하지만 이번에도 관방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따귀를 날렸다.

“네놈이 뭐라고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불러!”

짝!

“날 알아?”

때릴수록 손속이 매워졌다. 때릴수록 관방의는 감정도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연신 따귀를 날렸지만, 남천무방은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쾅!!!

끝내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관방의는 남천무방을 즉각 갈대밭으로 날려 버렸다. 하지만 관방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몸을 날리더니, 다시 또 그를 끄집어내 후려치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지켜보던 조웅가는 더는 참지 못하고 관방의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움직이자마자 원강이 바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조웅가도 나름 힘을 썼지만, 원강을 이기긴 역부족이었다. 성나찰과 힘겨루기를 한 사내였다. 원강은 당연히 조웅가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 손 놓아라!”

조웅가가 진노했다.

챙!

원강은 돌연 칼을 뽑아, 삼후도로 조웅가의 목을 겨냥했다.

“시도해 보시오.”

“네놈……!”

미치기 일보 직전의 조웅가가 우유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런 짓을 하려고 데려오라고 했더냐! 이게 다 무슨 일이냐!”

대답이 없자, 다시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홍랑, 당신은 여태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오. 죽이더라도, 말은 들어봐야 할 것 아니오?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죽인다면 후회할 것이오!”

관방의는 손을 멈췄다. 법력을 이용해 물 위에 서서, 이미 움직임이 없는 그가 천천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관방의의 발아래, 붉은 핏물이 눈물처럼 번지고 있었다.

우유도는 즉각 원강에게 신호를 보냈다. 원강은 조웅가를 겨냥한 칼을 치워주었고, 조웅가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하지만 남천무방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관방의 곁으로 다가가니, 그녀의 발밑에 핏물이 가득했다. 대경실색한 그는 빠르게 물속으로 파고들었다.

확!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물 밖으로 튀어나온 조웅가의 품에, 남천무방이 안겨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었다.

조웅가는 빠르게 창고로 돌아와 평평한 곳에 남천무방을 내려두고, 천제단을 먹인 후 법력으로 치료에 나섰다.

우유도도 뒤돌아 다급한 조웅가의 모습을 보았다. 남천무방은 죽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 중상은 입은 게 확실해 보였다.

창고 안에서 몽산명과 상조종도 그 현장을 목도했다. 다만 그들도 무슨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관방의는 마치 혼이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녀는 다시 부두로 돌아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과거 수많은 일이 떠올랐다. 제국 도성에서 겪은 그 수많은 일…….

결국 관방의는 바보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종국엔 아예 부두에 엎드려 억장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했다.

상숙청은 나가서 그녀를 위로하려 했지만, 우유도가 살짝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상숙청은 어쩔 수 없이 그냥 관방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원강이 창고를 빠져나갔다.

가슴이 다 미어질 듯 우는 소리에, 여무쌍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우유도는 여무쌍을 한번 보고, 다시 상숙청을 돌아보고 물었다.

“알고 싶나요?”

상숙청도 까닭을 알고 싶었지만, 물어도 좋은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우유도 역시 상숙청을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 다친 사람은 마교의 좌사 남천무방으로, 홍랑의 첫 번째 사내지요. 당시 실종됐고, 홍랑은 그를 찾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가 제국 도성으로 흘러가 원치 않게 제경 홍랑이 됐습니다.

당시 남천무방은 아직 마교의 좌사가 아니었고, 비밀리에 마교 성녀에게 후임 마교 성녀를 찾는 임무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마교 성녀가 그처럼 안배한 건 당시 오상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끝내 결과도 그렇게 됐고요.

결국, 남천무방은 홍랑을 찾았어요. 당시 홍랑은 성녀를 계승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남천무방은 그녀를 연모하게 됐고, 홍랑도 그를 연모하게 됐습니다. 당시 남천무방은 홍랑이 마교의 성녀가 되면 오상에게서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과거의 일 모두, 차분히 설명했다. 두 여인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경악했다. 제경 홍랑이 본래 마교의 성녀가 돼야 했었다고?

잠시 침묵하던 여무쌍이 말했다.

“그러니까, 조웅가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마교의 성녀가, 사실은 홍랑을 대신해 죽으러 간 거였단 말인가요?”

우유도는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확실하지 않았다. 만약 홍랑이 마교의 성녀가 됐다고 해도 전임 성녀의 전철을 밟았을 거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사람마다 운명이 다르니,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천무방 때문에 관방의가 속세에 떨어져 힘든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남천무방의 행동은 모두 관방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지……. 과연 이 문제를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 내릴 수 있을까.

“세상사 옳고 그르다 쉽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건 당사자가 어찌 생각하느냐에 달린 거지요. 내려놓을 수 있으면 옳은 것이고, 내려놓지 못하면 그른 것 아니겠습니까.

나보단 여인들끼리 조금 더 말이 통할 겁니다. 만약 남천무방이 살아난다면 이 일을 홍랑에게 알려주세요. 이대로 죽는다면, 이 이야기는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홍랑에게 알려주지 마시고요.”

우유도가 한창 치료를 받는 남천무방을 턱짓하며 말했다.

여무쌍은 어이가 없었다.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왜 홍랑에게 알려주지 않은 거죠? 홍랑에게 얻어맞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지경에 와서야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요?”

“만약 홍랑에게 정이 남아있다면, 당연히 죽을 정도로 손을 쓰진 않았겠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살지 않겠습니까? 또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했다면, 굳이 이 일을 홍랑에게 알려 괴롭게 할 필요 없겠지요.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끌어온 일입니까. 슬슬 결론을 내야지요. 아니면 이 일을 가지고 홍랑이 계속 고민했으면 좋겠습니까? 끊을 때 끊지 못하면 오히려 난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예전 일을 바람과 같이 흘려보내던지, 아니면 두 사람을 이어주어야지요. 나는 지금 홍랑을 도와주는 겁니다.”

우유도는 그렇게 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를 벗어났다.

여무쌍은 기가 막힌 듯 떠나는 우유도를 보다, 천천히 상숙청을 돌아봤다.

“군주, 저런 사람을 정말로 따를지 말지,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상숙청은 눈만 깜빡였다. 갑자기 왜 이야기가 자신에게 튀는 것이지?

이윽고 둘은 밖에서 울고 있는 관방의는 두고, 조웅가 쪽으로 향했다. 사경을 헤매는 남천무방이 어찌 될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유도의 의중도 이해가 갔다. 만약 이 사람이 살아난다면, 관방의가 이 사내를 잊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 모든 게 결국 관방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단 걸 알면, 어쩌면 두 사람은 다시 또 이어질 수도 있었다.

이제 두 여인은 진정으로 남천무방이 살아나길 기도했다.

* * *

결국, 올 것이 왔다.

숨어있던 궁임책, 문화, 서해당, 안돈천이 연락을 받고 하나둘 창고로 모여들었다. 다들 모여 한참을 의논한 끝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헛고생할까 봐 걱정이군, 정말 오상이 직접 찾아오겠는가?”

궁임책이 다소 우려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난 오히려 오지 않고 이대로 시간을 끌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다음 날,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일행은 모두 사병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마차 행렬을 따라 출발했다.

* * *

천하의 수많은 세력이 들고일어났다. 우유도 쪽의 호소 아래, 흩어진 한국 병력이 다시 집결해 싸울 준비를 했다. 흩어진 연국 병력도 다시 집결하기 시작했다. 송국은 대대적으로 병력을 모아 서쪽으로 진격했다.

반면 진국의 공세는 느려졌다. 후방이 크게 혼란스러워진 까닭이었다.

진국의 새로운 도성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게 공격받았다. 진국 조정 대신들이 계속해서 습격을 받자, 조정 백관들은 두려움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아무리 대비해도 진군의 후방 보급선은 계속 습격을 받았다.

표묘각엔 아직 천마성지의 인원이 남아있었지만, 그들은 또 분분히 진국의 대군에 합류했다.

오상은 사실상 성경에 대한 장악을 포기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악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성경에 숨어있는 반대 세력은 이제 오상의 세력보다 더 커졌다. 철수를 서두르지 않으면 아주 곤란해질 수 있었다.

또 천하에 분포된 천하 전장 수행자들이 모두 진국의 병영에 모여 전투를 준비했다. 오상이 가진 세력 대부분이 진국 대군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천하 전장의 연락망도 붕괴하고, 이는 이미 민생에 영향을 주어 온 천하가 크게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 * *

진군 군영 내부, 한 군막 입구.

어두운 얼굴의 태숙웅 곁에, 기운종 장문인 태숙비화가 있었다. 그의 얼굴빛도 딱히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저 멀리 초소 위에 있는 한 사람을 빤히 보고 있었다.

태숙웅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 방식으로 금작을 죽이다니, 그야말로 우둔하기 그지없는 행동입니다! 일을 망쳤습니다. 이제 온 수행계가 힘을 합쳐 분분히 이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또 사방에서 매복하고 저희를 노리고 있고요.

저쪽 사람들은 여기 거북이처럼 숨어있을 뿐 감히 나설 생각도 못 합니다. 나갔다가 신분이 폭로되면 바로 죽임당할 테니까요. 이대로 가다간 결국 저쪽은 혼자만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적들은 어둠 속에 숨어 한국, 연국, 송국의 병력을 겁도 없이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상조차 쉽게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가 이곳을 떠나면, 적들의 원영기 고수들이 여길 급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쪽에서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천하는 완벽히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오상은 천하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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