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872화 (971/1,000)

1872화. 무적

불길 속에 뛰어든 오상이 갑자기 양팔을 활짝 펼쳤다. 곧 그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수십 개의 마조(魔爪)가 동시에 수십 개의 곤림수들로 향했다.

곤림수가 아무리 많은 환상을 만들어도, 동시에 쓸면 문제가 없었다.

이 수법은 얼마 전 금작의 군영에서 동시에 십여 명의 장수들을 죽인 것과 같은 수법이었다.

관전하던 우유도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그는 일전에 여무쌍과 오상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여무쌍은 분명 오상이 저런 술법을 사용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갔다. 우유도는 즉시 상숙청을 찾았다.

“시작하세요.”

상숙청도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용 장군, 지금 군은 어디에 있나요?”

조웅가는 이미 하늘로 날아올랐다.

치직-

수십 개의 마조가 광폭한 불길 속에서 소리를 냈다. 분명 불길의 침식을 받는 듯했지만, 불길은 짧은 시간 안에 마조를 태워버리지 못했다.

환영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곤림수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오상의 수법에 대응하지 못하고, 황급히 쌍장을 뻗어 자신을 공격하는 마조와 마주쳤다.

그 순간, 곤림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쾅!!!

불빛이 흔들렸다. 곤림수는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불길 속에 있던 건물 십여 채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나무와 돌 파편도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양측의 경지 차이가 너무 분명했다. 한쪽은 오랫동안 천하의 수행 자원을 독차지한 자요, 한쪽은 원영기에 올라 선지 얼마 되지도 않은 풋내기였다.

심지어 곤림수가 상대한 건 오상이 아니었다.

비로소 진짜 곤림수를 찾은 오상이 즉시 몸을 날려 그 뒤를 쫓았다.

“만리한광 일검멸성!”

거대한 혈색 호박 거검이 거력을 그 속에 품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꼭 한줄기 붉은 유성이 바닥에 내리꽂힌 듯했다.

검 속에 조웅가가 이토록 우렁찬 소리를 낸 건, 오상의 주의력을 분산시켜 곤림수를 구해주기 위함이었다.

오상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쾅!!!

쌍장을 마주친 오상은 자신을 향해 내리꽂힌 거검의 검봉(劍鋒)을 잡았다. 그러나 하늘에서 떨어진 거검의 거력은 오상조차 밀려날 정도였다. 바닥까지 밀려난 오상은 급기야 땅속에 반쯤 파묻혔다. 땅도 사방으로 갈라졌다.

강대한 충격파가 마을의 불길을 꺼트렸고, 마을 절만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때, 칼을 눕혀 든 원강은 전신의 기운을 뿜으며 불길을 좌우로 가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길이 꺼지며 발아래 지붕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원강도 강풍에 무너진 건물과 같이 땅으로 추락했다.

거검은 팔 반개만 더 파고들었어도, 오상의 가슴을 갈라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오상에게 꽉 붙들린 상태였다.

혈색 호박 거검 속에 있는 조웅가는 흉악한 얼굴로, 다시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오상을 참살하고자 했다.

펑! 펑!

그 순간, 마을 밖 광야에선 사방팔방 지면이 터지며 수많은 동굴을 만들었다. 안에선 온몸에 붉은 반점을 가진 흑룡들이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군집을 이룬 갈까마귀는 마치 땅을 뚫고 승천하는 흑룡 같았다. 그렇게 까마귀 군단이 하늘을 떠받치는 10개의 기둥처럼 솟아올랐다.

오상도 자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했다.

“까마귀 장군!”

오상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높아졌다.

이윽고 원종과 제갈지는 오상이 조웅가에게 붙들린 것을 확인하고, 즉각 달려와 동시에 오상의 등을 노렸다.

“비켜!”

조웅가가 소리쳤다. 누구보다 그가 가장 잘 알았다. 그의 공격은 한치도 더 앞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조웅가는 자신이 지금 오상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니란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웅가는 오상의 입꼬리에 걸린 냉소를 보았다. 오상은 지금 그와 고의로 대치하고 있었다. 함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오상이 양손을 비틀었다. 혈색 호박 거검을 비틀어 깨트리려는 듯했다.

쾅!!!

거검이 터지며, 오상이 그대로 일장을 쏘아 보냈다.

“꺼져라!”

광폭한 기세 속, 균형을 살짝 잃었던 조웅가는 근거리에서 오상의 격공장을 얻어맞고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날아갔다.

반면, 오상은 가벼운 연기처럼 지면의 구덩이를 빠져나가더니 온몸에서 폭발하듯 검은 안개를 뿜어냈다.

찰나의 순간, 안개로 이뤄진 검은 금강 같은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났다.

원종과 제갈지는 급히 좌우로 몸을 피했지만, 역시 거대한 장력에 얻어맞고 동시에 멀리 날아갔다.

순식간에 11명 중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창문에서 관전하던 우유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들이 협공하기 전, 우유도는 분명 여무쌍에게 의견을 구했었다. 지금의 오상의 실력은 여무쌍의 예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관방의도 드디어 싸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관방의도, 운희도 실로 경악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다들 오상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상숙청 역시 천지가 무너지는 전투를 보며,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상조종과 몽산명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 한 지하 공간에서 여무쌍을 빤히 보고 있었다. 이들 역시 바깥의 거대한 소란을 다 느끼고 있었다.

마을 하늘에선 검은 안개가 한쪽으로 말려들더니 한 사람의 몸속으로 다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오상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밤처럼 까만 하늘 속에서 오상은 차가운 눈으로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이윽고 까마귀 장군 수장이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오상을 가리키며, 입으로 소리를 냈다.

“우우~”

순간 무수한 까마귀 장군이 안개로 화해선, 먹구름을 탄 천군처럼 변했다. 마을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 이로 인해 하늘도 밤처럼 검게 물들었다.

어둠 속, 까마귀 장군들이 모여 허공을 음기로 가득 메우고, 수많은 핏빛 눈동자가 한 사람만을 노렸다.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겁을 먹었던 궁임책 등은 까마귀 군단의 출현으로 드디어 한줄기 위안을 얻었다. 이들은 방금 네 사람이 한순간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도 그나마 협공한 덕분에 진짜 오상의 일격을 맞지 않은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오상에게 얻어맞은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오상은 까마귀 장군을 제련할 수도, 또 제련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딱 봐도 이들 까마귀 장군의 실력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까마귀 장군의 눈에서 나오는 붉은 빛만 보아도 그 경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까마귀 장군들은 오상이 만들어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만들어진 지도 이미 꽤 오랜 기간이 지난 것 같았다.

까마귀 군단이 입고 있는 갑주만 봐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분명 음기 속에서 긴 시간을 보냈을 터였다. 갑주의 색조차 어둡게 바뀐 상태에, 발산하는 음기도 대단했다.

오상은 조웅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는 필시 조웅가의 작품이라고,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조웅가를 제외하고, 이 까마귀 장군의 제련법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걸 눈앞에 두고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하지만 또 이 까마귀 장군의 규모를 보면, 절대 조웅가 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이들 까마귀 장군은 병사의 모습을 하고,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군대의 모습이었다.

순간 오상의 머릿속에 과거 10만 까마귀 장군 전설이 스쳤다.

그때, 상숙청은 우유도의 부탁을 받고, 눈을 감은 채 뭔가를 중얼거렸다.

“우우~”

까마귀 장군 수장이 검을 휘두르며 오상을 가리켰다. 그 후로 이어진 수많은 까마귀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정말 온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기운이었다. 살기는 하늘 높이 치솟아 모든 걸 다 파괴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까마귀 장군이 소리 지르며 날아와 천군만마처럼 돌진했다. 소리만으로도 엄청나게 압도적인, 오상을 향한 거대한 해일이었다.

오상은 얼굴을 씰룩거리다 돌연 지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입가의 핏물을 닦아내는 곤림수가 있었다.

곧 한 사람이 곤림수 곁에 내려섰다. 원강이었다.

원강은 삼후도를 들며 공중에 있는 오상을 가리켰다.

본래 원강은 어느 정도 전술 식별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기운종에 있을 때부터 오상이 곤림수를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과연 오늘 오상이 먼저 공격한 대상도 곤림수였다.

원강은 오상이 곤림수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지체없이 도우러 왔다.

이내 원강이 오상을 보며 제 칼을 받아낼 배짱이 있냐는 듯 도발했다.

오상은 저들이 무변마역의 도움으로 남도림과 독무허를 죽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저들은 까마귀 장군의 힘을 빌려 오상이 도망칠 수 없게 발목을 잡고, 그사이 원강이 오상을 죽일 틈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간 오상은 줄곧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정녕 함정이라면, 왜 성나찰과 나방비는 보이지 않는가. 그들 도움 없이 이들이 무엇으로 자신을 죽인다는 거지? 그리고 오상은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저들이 믿는 건 바로 이 무수히 많은 까마귀 장군이었다.

이 때문에 오상은 성나찰과 나방비에게 문제가 있음을 더더욱 확신했다. 문제가 있으니 이곳에 없는 것이었다.

곧이어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온 까마귀 장군이 원강과 곤림수를 집어삼켰다. 오상은 아주 잠깐 멈칫했다. 상황을 분석하려는 행동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 원강과 곤림수가 오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까마귀 장군이 양쪽의 시야를 단절시킨 것이다.

그래도 오상은 급히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지 않았다. 몇 명도 죽이지 않고, 이 까마귀 장군의 실력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대로 도망칠 수 없었다.

이후 무수한 창칼이 풍절음을 일으키며 날아왔다. 오상은 연신 장력을 펼쳤다. 장력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까마귀 장군 수십 마리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까마귀 장군의 무기와 갑주도 속절없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번 겨뤄보니, 오상도 마음에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 오상의 능력이라면 이 까마귀 장군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 까마귀 장군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고 있다는 점이 변수였다. 그들은 조금도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오상은 계속 빠르게 사방으로 장력을 쏘며 지면으로 향했다.

땅에서도 여전히 주변에 수많은 까마귀 장군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주위에 사람의 모습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공격에 오상은 사방으로 미친 듯 공격을 퍼부었다. 그 어떤 까마귀 장군도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의 의도를 깨닫고, 오상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다 오상은 까마귀 장군 주위를 떠도는 음기를 보았다. 한창 사방의 까마귀 장군을 죽여나가던 오상의 두 눈이 번쩍였다.

곧 오상은 마기를 뿜어 주위 음기를 가리며 멀리멀리 퍼트리기 시작했다.

오상에게도 돌파구가 생겼다. 주변의 조그만 범위 안, 마기로 만든 안개 덕에 적이 접근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무변마역을 쓰긴 어려웠다. 까마귀 장군이 너무 많아서, 그들로 가득한 무변마역을 운용할 능력이 없었다.

이에 오상은 계속 한자리에서 싸우며 격렬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건 바로 원강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