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화. 원숭아, 앞에 구덩이가 있다.
관전하던 우유도 일행은 흠칫했다. 오상 하나가 저 많은 사람과 동시에 법력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과연 천마성존의 위명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때, 우유도는 자신이 잠시 재워둔 은아를 한 번 보고, 다시 주위에 있는 까마귀 장군을 보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방법을 짜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관방의가 몸을 날렸다. 그녀는 바닥에 무수히 떨어져 있는 검 한 자루만 쥐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본인이 가진 힘을 모두 다 끌어모아, 오상을 베러 간 것이다.
동시에 시선이 돌아간 우유도와 운희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힘들게 공격하던 오상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관방의를 인지한 것이다. 그녀를 빤히 보던 오상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그는 돌연 하늘을 향해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으악!!!”
장발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렇게 관방의의 일검이 오상에게 떨어지려던 찰나, 오상의 몸에서 굵고 단단해 보이는 마조가 뿜어져 나와 관방의를 향해 마주 쏘아져 나갔다.
원종 등은 한창 상대하던 오상의 법력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관방의가 아주 위험해졌음을 깨달았다. 이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최대한 힘을 쥐어짜며 오상을 압박했다.
대경실색한 관방의는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벼락처럼 빠른 오상의 마조는 이미 관방의의 팔을 삼킬 듯 꽉 휘어잡았다. 마조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맹한 위력은 그녀가 감히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조는 관방의의 팔을 붙잡자마자 그대로 비틀었다.
으드득-
관방의의 얼굴에 고통이 피어올랐다.
검을 쥔 관방의의 팔을 비틀어댄 마조는 관방의의 공격력을 그대로 살려 그 검으로 관방의를 베어갔다.
다행히 원종 등이 동시에 힘을 발휘한 덕분에, 마조의 속도는 처음보다 많이 느려졌다. 관방의는 그 틈을 이용해 몸을 돌려 급소를 피했다.
그러나 마조에 붙들린 팔은 검을 피하지 못했다.
검광이 관방의의 몸을 스친 그 순간, 한쪽 팔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웅가는 지금 오상의 법력이 약해진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열 손가락을 연이어 튕기며 여마지(厲魔指) 수십 가닥을 날려 보냈다. 기회를 만든 조웅가는 마조의 감옥을 수려하게 탈출했다.
탈출 즉시, 조웅가가 크게 소리쳤다.
“오상의 법력을 억제해!”
다들 고개를 들고 조웅가가 저 먼 하늘 검은 점이 되어가는 걸 보았다.
이내 몸을 날려 바닥에 내려선 관방의는 붉은 피가 솟구치는 텅 빈 어깨를 쥐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눈빛은 너무도 애처로웠지만, 그 눈은 여전히 오상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투지를 꺾지 않은 것이었다.
계속해서 관방의를 주시하던 우유도는 갑자기 손을 뻗었다. 막 곁에서 뛰쳐나가려는 운희를 붙잡은 것이었다.
운희는 우유도를 한번 보고, 우유도가 보는 곳을 돌아보았다.
오상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줄기 혈광이 벼락같은 기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상은 즉시 마조를 회수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원종 등도 하늘을 보고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오상을 죽일 기회가 왔다. 다들 전력으로 협공했던 저항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10여 명이 협력해, 결국 각양각색의 법력으로 오상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으아악!”
오상이 미친 듯 발버둥 쳤다. 꼭 미친 마물이 된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까지 격렬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원강의 두 다리가 자유로워졌다. 원강은 비록 지금 눈도, 귀도 먹어버렸지만 즉각 빠르게 움직여 다리로 오상을 후려쳤다.
쾅!!!
오상이 원강의 얼굴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거기에 사람들이 법력으로 압박을 가하자, 오상은 거의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오상은 재빨리 법력으로 원강을 내리눌렀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도 오상이 중상을 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온 힘을 다해 법력을 뿜어냈다.
한쪽 팔을 잃어버린 관방의도 다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남은 팔로 웅혼한 법력을 뿜어내 오상을 억제하는 것을 도왔다.
오상은 분노 가득한 눈으로 원강을 바라보았다. 그 눈 속엔 원강을 이대로 삼켜버리고 싶다는 울분이 가득했다.
오상은 원강에게 단 3번을 정통으로 걷어차이고 중상을 입었다. 심각하게 다친 오상은 이 오합지졸들의 연합에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돌연 오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에 혈색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두 눈이 온통 붉게 변했고, 피부 아래 점차 지네 같은 문신이 나타났다. 마치 작은 뱀이 피부 아래서 빠르게 기어 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흉악한 얼굴과 앙천대소한 그 눈, 오상은 지금 미친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순간, 법안으로 관전하고 있던 우유도가 대경실색했다. 오상 저 개자식이 마전에 기록된 폭체술을 수련했을 줄이야! 저 미친놈이 결국 자살의 법술을 수련한 것이다. 우유도는 재빨리 법력으로 크게 소리쳤다.
“빨리, 물러나!!!”
지금? 다들 동시에 뒤돌아보며 의중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유일하게 관방의만 우유도의 말에 따랐다. 그는 오랜 시간 우유도를 따르며 이미 그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우유도가 경고했다면,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관방의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오상 곁에서 빠르게 물러났다.
마침 하늘의 유성이 되다시피 한 조웅가도 대경실색하고 있었다. 오상과 가까워진 찰나, 그의 얼굴을 정확히 본 것이다. 조웅가 역시 오상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거리는 너무 가깝고, 속도도 너무 빨랐다. 이미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경고성을 들은 관방의가 두말하지 않고 움직이는 걸 보고, 경각심이 생겨 순간 사방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그 순간, 오상이 사분오열했다. 하늘에서 추락하던 혈색 호박 거검이 찰나의 순간 붕괴해버린 것이다.
쾅!!!
터져나간 충격파와 연기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집어삼켰다.
운희는 즉시 법력을 이용해 우유도의 앞을 막아섰다. 우유도는 또 빠르게 뒤돌아 상숙청을 끌어안고, 법력으로 그녀와 은아를 보호했다.
온 마을이 순간 평지가 되어버렸다. 하늘 곳곳을 날아다니던 까마귀 장군들은 순간 강풍에 밀려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후웅~
바람 소리가 지나고, 먼지가 가라앉았다. 거대한 정적이 도래했다.
운희는 뒤돌아 소매를 떨쳐냈다가, 순간 눈앞의 천지가 먼지에 뒤덮인 줄로 착각할 뻔했다.
“괜찮아요?”
날아오른 먼지는 아직 다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우유도는 빠르게 품에 안긴 상숙청의 상태부터 살폈다.
상숙청은 두려움 가득한 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우유도가 아주 단단하게 보호해주었기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우유도는 그제야 뒤돌아섰다. 마을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땅에 남은 거대한 구덩이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없이 황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구덩이 한편에서 누군가 먼지를 뚫고 비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앞서 가장 먼저 도망쳤던 관방의였다.
운희는 즉시 몸을 날려 관방의를 부축했다.
우유도는 여전히 혼절한 은아를 땅에 내려두고, 천천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그렇게 구덩이 경계선으로 걸음을 옮겨, 주위를 살펴보았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우유도의 깊은 눈 속엔 비통함이 가득했다.
곧이어 상숙청이 우유도 곁으로 다가왔다. 상숙청 역시도 믿을 수가 없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이윽고 운희가 관방의를 부축해 돌아왔다.
“도야.”
우유도는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홍랑, 괜찮아?”
관방의는 여전히 등골이 오싹한 듯 살짝 몸을 떨었다.
“살았지, 내가 반응이 빨랐으니 망정이지, 오상이 방금 사용한 건…….”
“군주, 모든 까마귀 장군을 동원해 사람들을 찾아주십시오. 살았으면 사람을,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말입니다.”
우유도가 돌연 관방의의 말을 끊고 상숙청에게 말했다.
“네.”
상숙청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구덩이 한편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유도 일행은 동시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이 먼지 속에서 기어 나왔다. 너덜너덜한 옷에, 머리도 산발이 되었지만, 우뚝 선 그 사람을 몰라볼 순 없었다. 원강이었다.
“원숭아!”
운희가 크게 기뻐하며 그를 불렀다. 오상과 그렇게 엉켜있었으면서, 폭발의 중심지에 있던 원강이 보이지 않는 사람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다니.
반면, 우유도는 내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왕야는 괜찮으신지, 가서 한번 확인해 주세요.”
운희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 대폭발 속에서 지하에 숨어있던 상조종 일행도 화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운희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곧이어 우유도는 몸을 날려 구덩이 앞에 내려섰다. 그는 느긋하게 걸어가, 원강 앞에 멈춰 섰다.
가까워지니 원강의 모습도 더 선명해졌다. 원강의 육신은 만신창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까닭에 그 처참함이 한눈에 다 담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원강은 누군가 다가온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앞으로 걸으며,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시야를 잃은 것이다.
아니, 시야라고 표현할 것도 없었다. 원강의 눈이 있던 자리는 그냥 너덜너덜하게 움푹 파여버렸다. 귀에도 붉은 피가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그렇게 원강은 주변을 더듬으며 우유도의 옆을 지나쳤다.
“…….”
우유도의 눈빛엔 많은 감정이 출렁이고 있었다. 시각도, 청각도 잃어버린 원강은 깊은 구덩이로 향하고 있었다.
“원숭아, 앞에 구덩이가 있다.”
우유도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원강은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으니 계속 앞만 더듬으며 구덩이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우유도는 천천히 원강 앞으로 가 구덩이를 막아섰다. 그리곤 검을 앞으로 해, 손잡이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이내 원강은 손끝에 사람을 느꼈다. 순간 멈칫한 그는 자신의 발 앞에 있는 물건도 만져 보았다. 누군가 양손을 검 손잡이 위에 올린 채 지팡이 삼아 서 있었다. 원강은 비로소 잔뜩 갈라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도야.”
우유도는 원강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람도, 귀신도 아닌, 겨우 목숨만 건지고 돌아온 참담한 그를.
원강도 우유도라는 건 알아보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다.
“도야, 안 들려요. 보이지도 않아요.”
“안 들린다는 거 알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근데 들리고, 보였다고 한들 뭐가 다를까? 내가 이 앞에 구덩이가 있다고 해도, 넌 늘 구덩이로만 가려 했었지. 지금처럼 눈도, 귀도 먹지 않았을 때도. 원숭아, 누군가 영원히 네 앞을 막아줄 수 없어. 언젠가는 미쳐 신경 쓰지 못할 때도 있는 법이야.”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원강은 그저 어둠 속의 우유도에게 말을 붙였다.
“도야, 오상이 죽었어요.”
“그래, 오상이 죽었다. 네가 한 일이야. 어쩌면 늘 너의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야. 매번 수많은 일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풀 필요는 없어. 방법을 바꿔 해결할 수도 있는 거야. 넌 왜 항상 너 자신에겐 여지도 남기지 않지? 난 오상보다 이런 네가 더 두렵다.”
이는 분명 우유도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는 본래 여러 가지 방법을 준비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오상을 제5 영역에 봉인하는 방법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오상의 결말은 그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이었다.
원강이 죽음을 불사하고 희생했기에, 다른 사람들도 협공하게 되었고, 결국 오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오상은 자폭을 하며 본인의 일기를 끝내버렸다. 사전에 어떠한 징조도 없는 깔끔한 종결이었다. 이는 더더욱 생각지 못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