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화. 모두 잡아들여!
이 모든 상황 앞에, 우유도는 화가 났다. 이유는 오로지 원강 때문이었다. 만약 이번 일이 실패했다면……. 차마 그 끝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원강이 죽고 오상이 살았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을 터였다. 탐천환은 오상의 손에 있었다. 우유도의 손에 산하정이 있다고 한들 제5 영역엔 갈 수 없었다. 오상을 제5 영역에 봉인하는 건 아예 불가능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또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에 숨어 살아야 오상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감당해야 하는 대가만 해도, 남주 일판의 피가 강처럼 흐르는 것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었다. 오상은 온 천하를 더욱 잔인하게 대할 것이고, 그 시절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상상하면 할수록 끔찍하고 두려운 생각만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일은 이렇게 끝났다. 원강은 또 목숨을 걸고 오상을 잡아냈다. 그 무엇도 고려하지 않고서. 그리고 원강은 이처럼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와 우유도가 어찌 원강을 책망할 수 있을까. 탓한다고 해도, 이제 원강은 그의 말을 들을 수도 없었다.
쾅!!!
갑작스럽게 폭음이 울렸다. 우유도는 고개를 돌렸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 뒤를 돌았다. 진동을 느낀 원강 역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돌아본 곳에, 구덩이 정중앙에서 땅을 뚫고 튀어나온 누군가가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그는 머리를 강하게 털었다. 조웅가였다.
우유도는 살짝 눈이 커다래졌다. 얼핏 보기에 조웅가는 조금의 상처도 없어 보였다. 부상의 흔적도 없었다. 지금처럼 허공에 날아오를 수 있는 것만 보아도 현재 상태가 아주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쪽 팔이 잘린 관방의도, 고개를 든 상숙청도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이내 조웅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의 산맥조차 사라져버렸다면, 조웅가는 현재 자신이 다른 곳에 있다고 오해했을지도 몰랐다.
과거 마을이었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거대한 구덩이가 오상의 자폭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웅가는 천천히 양손을 내려다보고, 몸을 한번 훑어보았다. 살았다, 분명 자신은 살아있었다.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만 상황을 돌이켜보아도 등골이 오싹했다. 오상의 선택이 믿어지질 않았다.
곧이어 조웅가는 우유도와 원강을 돌아보다, 몸을 날려 두 사람 곁에 내려섰다. 원강의 참담한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였다. 조웅가 자신조차 살아남았는데, 원강처럼 강한 사람이 살아있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괜찮나?”
조웅가의 질문은 원강을 향한 것이었지만, 답은 우유도가 대신했다.
“눈도 멀고, 귀도 먹었습니다. 안 들릴 겁니다.”
조웅가가 탄식했다.
“회복할 수 있을 거다.”
“모르지요.”
우유도는 짧게 답한 뒤, 조웅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오상이 자폭하던 곳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는데, 별문제 없어 보이는군요. 어찌 된 겁니까?”
조웅가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난 검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검을 내리꽂고 있었다. 그저 폭발이 검을 따라 흘러가던 느낌만 기억나는구나. 나중에 그 폭발력에 검은 부서졌지. 난 그대로 흐름에 따라 아래로 내리꽂혀 지하를 파고 들어갔다. 지하의 거대한 진동이 고통스러웠다. 하마터면 생매장 당할 뻔했어. 다행히 진동이 빠르게 지나가서 내상만 조금 입었지, 별문제는 없다.”
우유도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웅가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느냐?”
“모릅니다.”
주변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까마귀 장군들이 구덩이 주위를 뒤지고 있었다. 어떤 까마귀 장군은 검은 연기로 변해 지하로 들어가 샅샅이 살피기도 했다.
이윽고 운희가 돌아왔다. 그녀는 먼지를 뒤집어쓴 상조종 일행을 데리고 있었다. 다행히 거리가 있었고, 오노이와 허노육이 옆에서 보호했던 덕에 살아남았다. 지층이 무너져 생매장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상조종 일행은 셀 수도 없는 까마귀 군단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러다 몽산명을 업고 있던 허노육과 오노이가 한쪽 팔이 없어진 관방의를 보고 대경실색하더니 빠르게 달려가 관방의의 안위를 살폈다.
조웅가는 원강의 팔을 잡고 우유도와 같이 구덩이 가로 향했다.
“도야.”
몽산명과 상조종이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운희도 이제야 멀쩡한 조웅가를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당연히 조웅가가 오상의 그 거대한 폭발에 정면으로 휘말리고도 아직 살아있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원강이라면 그 강한 육신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조웅가는 그런 원강보다 훨씬 더 멀쩡해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그때, 관방의의 한쪽 팔이 사라진 것에 크게 슬퍼하던 오노이와 허노육이 ‘도야’라는 호칭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유도의 얼굴을 마주했다.
“도야!”
두 사람은 너무 놀란 나머지 넋을 잃었다. 잘못 본 건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볐지만, 그가 맞았다. 눈을 뜨고도 꿈을 꿀 수 있는 건가?
우유도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였다.
“또 만났군.”
입은 옷을 보면, 그는 틀림없는 초려산장의 왕소였다. 오노이와 허노육은 서로를 돌아보다 불현듯 깨달았다. 우유도는 처음부터 죽은 적이 없었다. 이는 곧 지금까지 초려산장의 배후에 숨어있었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한마디로, 그 수많은 일을 배후에서 통제한 자가 바로 우유도였다.
두 사람은 정말로 매우 놀랐지만, 몽산명을 업은 그대로 일단 아주 공손하게 예부터 올렸다.
“도야를 뵙습니다.”
그때, 먼지를 뒤집어쓴 여무쌍이 천천히 원강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한참 원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여무쌍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당당한 무쌍성존이 한 사람으로 인해 울고 있었다.
여무쌍은 천천히 원강의 손목을 잡아보았다. 손목 역시 피부가 다 벗겨져 뼈가 다 보일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원강은 손의 미세한 감각도 거의 다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가까이서 풍기는 체향을 맡고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우유도는 곧 관방의에게 다가가, 그 곁에 있는 운희에게 물었다.
“왜, 제가 누님을 막았는지 아십니까?”
운희는 관방의를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내가 위험할까 봐.”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누님과 홍랑이 모두 다쳤다면, 오상이 죽고 나서 우린 어찌 됐을까요. 저들은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죽이려 했을 겁니다. 우리가 여길 살아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상을 죽인다 한들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천하엔 어쩌면 또 다른 구성이 탄생했겠지요.”
다들 우유도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름 하나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유도가 말한 저들이 바로 서해당을 포함한 이들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생각해 보면, 절대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다. 심지어 가능성도 큰 일이었다.
조웅가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그들을 다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관방의 역시 우유도의 뜻을 이해했다. 겉으론 운희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실은 그녀에게 들려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관방의의 눈빛이 모든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결국 우유도는 관방의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남천무방을 만나겠어? 다시 만났을 때, 홍랑은 분명 후회할 거야.”
관방의는 머리를 산발한 광인같은 모습으로 짧게 냉소를 지었다.
“내가 그 사내를 왜 다시 만난다는 거지?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은데!”
“애정사 때문에 공사를 그르칠 줄 알았다면, 출발하기 전에 알려줄 걸.”
우유도는 홍랑을 질책하곤, 상숙청을 돌아보았다.
“군주, 나중에 남천무방 이야기를 해주세요.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지요.”
상숙청은 고개를 끄덕이다, 관방의의 잘린 팔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관방의는 그의 이야기라는 한마디에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우유도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아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은아의 얼굴엔 은색 문양이 더 선명해져 있었다. 우유도는 은아의 몸에 손을 대고 법력을 이용해 몸속의 이종 요력을 해소해주었다.
허노육은 몽산명의 요구에 따라, 그를 땅에 앉혀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까마귀 장군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져 땅속에서 한 사람씩 끄집어냈다. 다들 아주 처참한 모습이었다.
“콜록, 콜록…….”
제갈지가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며 깨어났다.
그는 일단 누워서 좌우를 살펴보다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얼굴의 가면은 진작에 날아간 상태고, 입으론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웅가는 그 앞에 무릎을 살짝 굽혀 몸을 숙였다.
“과연 가장 먼저 원영기에 오른 고수군요. 부상이 가장 가볍습니다.”
제갈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 상관없네. 오상의 폭발력 속에 서로 배척하는 충돌이 있었어. 덕분에 폭발하는 과정에서 그 위력이 크게 줄었지. 만약 순수한 기운이었다면, 위력은 이것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고, 나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네.”
조웅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오상 몸속에는 각종 수행공법의 법력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순수하지 않았지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들 죽었겠습니다.”
조웅가의 시선이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있었다.
그 순간, 제갈지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조웅가를 올려다보았다.
“자네는 어째서 멀쩡한 건가?”
조웅가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가볍게 대꾸했다.
“제 실력이 여기서 가장 뛰어난가 봅니다.”
“호오. 과거 금단방 상위권에 있던 고수의 실력은 역시 보통이 아니군.”
하지만 제갈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지금 우유도는 또 걸음을 옮겨 한 시신 앞에 섰다. 이번 협공에 참여한 사람 중 유일한 사망자였다. 오풍……. 그는 끝내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몸은 형편없이 찢긴 상태에, 모자란 부분도 많았다. 어떤 부위는 이미 흙먼지와 섞여 찾기도 어려웠다.
오풍은 오상의 분노를 그대로 받은 까닭에 가장 큰 부상을 입었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였으니, 당연히 법력의 운용이라고 원활했을까. 그 때문에 이동할 수 없었던 그는 폭발과 동시에 죽어버렸다.
다들 오풍의 시신을 빤히 보는 우유도를 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운희는 먼저 그에게로 다가가 조용히 당부했다.
“지금 저들을 치료하면 모두 살릴 수 있다고 봐. 하지만 치료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죽겠지. 어찌할 거야?”
이는 우유도가 전에 이들의 배신 가능성을 언급했기에 묻는 것이었다. 우유도는 과연 이들을 살리고 싶은지, 죽이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우유도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을 돌아보며, 굳은 낯으로 말했다.
“당장 다 잡아들여!”
운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들이라는 건, 일단은 살리라는 뜻이었다.
이 말을 듣고, 제갈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토사구팽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