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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78화 (977/1,000)

1878화. 경중인

“울지 마시오. 그 팔은 누가 그런 것이오?”

관방의는 결국 소리내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다 늙었어요. 불구가 됐어요. 제가 제일 못났을 때 절 찾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죠? 어째서 평생 숨지 않은 건가요?”

남천무방도 비로소 깨달았다. 관방의가 진실을 알게된 것이다.

“늙지 않았소! 전보다 훨씬 보기 좋소. 전엔 참으로 풋풋했지, 하지만 세상을 겪고 노련해지니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았소? 내 눈엔 당신이 어떻게 변하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여인이오. 하늘에 맹세하건대, 만약 내가 한 말이 진심이 아니고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오!”

관방의가 웃었다.

“하하! 제가 아직도 그리 순진하게 보이나요? 사내가 하는 듣기 좋은 말을 어찌 쉽게 믿죠? 제가 사내를 한두 명 만나본 줄 아나요? 그리 꾀를 낼 필요 없어요. 안 죽일 거예요. 그러니 눈앞에서 사라져요. 가서 그 잘난 마교좌사나 하라고요. 앞으로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떠한 은원도 없는 거예요!”

“진실을 알았다면, 과거 내가 교규를 위반했다는 걸 알 것이오. 지금까지는 마교를 위해서 남아 있었지만, 이제 마교는 요마령을 벗어났으니 내가 무슨 낯짝으로 마교좌사 자리에 계속 앉아 있겠소? 여기 오기 전 이미 마교의 대권을 내려놓았소. 나는 이미 마교를 떠난 몸이오!”

“그건 당신의 일이지요. 나와 무슨 상관이죠?”

그대로 돌아서는 관방의를 보고, 남천무방이 소리쳤다.

“내게 사죄할 기회를 주시오. 당신 옆에서 말이 되라면 말이 되고, 소가 되라면 소가 되겠소!”

관방의는 뒤돌아보지 않았으나 그 자리에 멈췄다.

“오상이 이 팔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지금 우리 쪽은 수많은 사상자가 생겼지요. 이제 오상이 천하를 차지하게 됐고, 저를 추격하고 있어요. 행적이 이미 다 폭로됐으니 저하고는 얽히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예요.”

남천무방은 대경실색했지만, 곧바로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오상이 온다면, 내가 뒤에 남아 시간을 벌겠소! 죽어도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을 것이오!”

관방의는 엉엉 울며 또 웃었다. 그렇게 울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했다. 울고 싶은 것인지, 웃고 싶은 것인지 관방의 스스로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 * *

진국 황제의 군막.

“철수? 전부 말이냐?”

태숙웅과 태숙비화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쩍 벌렸다.

도략은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흑석 장로도 갑자기 수하들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인사도 없었습니다. 노신이 직접 가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성존 쪽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태숙웅과 태숙비화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둘은 그대로 군막 밖으로 나갔다. 직접 나서서 확인하는 게 좋을 듯했다.

확실했다. 틀림없었다. 흑석 일행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오상 쪽 사람도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졌다.

자유……. 분명 자유가 찾아왔건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했다.

* * *

청산군, 초려산장.

이곳은 초려산장이 처음 세워진 곳이었다. 하여 본래 초려산장에 속했던 사람들은 이곳을 제외한 외부 거주지 모두를 초려별원이라 칭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들만 그곳을 초려산장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물론 별원과 산장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도 별로 없었다. 그래봤자 명칭일 뿐 아닌가.

우유도는 산장 밖 봉분 앞에서 검을 짚고 조용히 서 있었다. 한쪽에 있는 나무는 더욱 크게 자라, 봉분을 위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산장 안팎은 다소 한산했다. 아직 초려산장의 사람들이 다 돌아온 것이 아니라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현재 관방의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러 떠났고, 상숙청은 상조종의 대군을 도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까마귀 장군을 이끌고 떠났다.

조웅가 또한 우유도의 뜻에 따라 종군하고 있었다. 그는 상조종 일행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우유도는 이런 때일수록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걸 막고 싶었다. 또한, 동시에 조웅가에게 보호만 할 뿐 전쟁엔 참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앞으로도 원영기 고수들의 참전은 막을 생각이었다.

물론 이토록 한산하긴 해도, 천하에 가장 강한 수행자들 대부분이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유도가 억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운희가 가볍게 날아와 봉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네가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는 걸 봤어야 했는데, 그게 아쉬워 이러고 있는 거야?”

“공은 세웠겠지만, 이름을 날리는 건 사양하지요. 그런데 홍랑은요.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우유도가 운희를 돌아보았다.

“네가 홍랑에게 마교까지 가서 풍관아를 데려오라고 했잖아?”

“벌써 며칠째잖아요. 풍관아 하나 데려오는 게 이리 오래 걸리나요?”

운희가 미소 지었다.

“서신을 보냈어. 남천무방을 도와 마교 쪽 일을 좀 처리하고 온다고 했어. 전에 남천무방이 너무 황급하게 마교를 떠넘기는 바람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나 봐. 남천무방의 인계업무를 돕고 오겠다고 했어.”

우유도는 어이가 없었다. 그에 따라 표정도 좀 요상해졌다.

“무슨 반응이 그래?”

우유도가 탄식을 뱉었다.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를 따라가 버린다고요?”

운희도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 네가 한 말이잖아. 홍랑은 원래부터 애정사에 관심이 많았어. 더군다나 이건 네가 엮어 준 인연이야.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겠어? 걱정하지 마. 돌아올 거야.”

우유도 역시 웃으며 고개를 내젓곤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참으로 오래 떠나있었어요.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운희도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운희도 홀가분하고 즐거웠다. 과거처럼 늘 걱정하며 숨어지낼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자유로웠다.

크기는 작아도 천하독존의 공간이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명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수라! 한때 산장에서 유행했던 그 말이 결국 현실이 되었다.

이젠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 없었다. 운희는 너무도 상쾌하고, 감개무량할 정도로 마음이 벅찼다.

“돌아오니 참으로 좋군!”

이 말과 동시에 둘의 시선이 산장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원강이 있었다. 원강 피부의 금빛은 어쩐지 전보다 더 짙어진 듯했다.

“다 나았어?”

우유도가 물었다.

“다 나았습니다.”

과연 말을 알아들었다. 원강 눈의 정기신도 뚜렷했다.

운희는 장탄식을 내뱉었다.

“이 원숭이는 정말로…….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다 나았으면 나랑 어디 좀 다녀오자.”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는 거야?”

운희가 호기심에 물었지만, 우유도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둥~

갑자기 산장에 타종 소리가 들려왔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밥종’이었다. 산장의 승려들이 타종한 것이었다.

곧이어 산장 입구에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덕이 높은 고승 같은 외모에 가사를 빼입은 익숙한 그는 바로 원방이었다.

원방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대다 우유도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야, 식사하시지요.”

한껏 굽실거리는 그를 보며 우유도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산장 안에서 타종하는 건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군. 원방, 네게 천하에서 가장 큰 사찰을 지어줄 생각이다. 세상에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얼마든 골라봐. 나중에 내게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우유도는 그대로 두 사람과 함께 성큼성큼 움직였다.

원방은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시야엔 멀어지는 우유도의 뒷모습이 담겼다. 그러다 원방이 갑자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흑…….”

원방은 그야말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그 얼마나 오래도록 품어왔던 소원이었나. 이제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소매로 눈물을 닦은 그가 하늘을 향해 합장했다. 원방은 그렇게 조용히 우유도의 장수를 빌었다. 그 후, 가사가 끌리지 않게 단단히 잡고, 허겁지겁 우유도 일행을 쫓아갔다. 오늘의 요리를 성심껏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 * *

끝없는 모래언덕 위, 한 곳이 둥그렇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안에서 거대한 사갈이 튀어나왔다.

우유도와 원강은 사갈 위에 섰다. 둘은 한참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야 제5 영역에 들어왔음을 확인했다.

곧이어 원강은 큰소리로 외쳤다. 사갈은 그 즉시 방향을 조정하더니 사막 위에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두 사람에게 낯설지 않은 석대가 보였다. 사갈은 석대 아래에서 질주를 멈췄다.

우유도는 석대의 정상을 한번 바라보았다. 원강은 일단 우유도의 말을 따라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여긴 왜 온 겁니까?”

“이향의 수찰(*手札: 손수 쓴 편지)을 본 적이 있어. 마전 말이야. 왠지 모르겠는데, 이향이 남긴 서신 말고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느낌인가요?”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마전을 보고도 별다른 의문이 들지 않겠지. 근데 난 마전에서 말하는 경중인이야. 너랑 같이 고분에서 찾은 그 동경 말이야.

다들 당연히 경중인이 이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이향이 안배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난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 누가 경중인이 되든 자기가 왜 이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거야.

거기에 하필 마전엔 경중인을 협박하거나 제약을 가하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지. 이런 상황에 누가 그 말만 믿고 목숨을 걸까? 그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도착한 경중인은 그녀의 말에 따라 다섯 세계의 통로를 끊어야 하고, 겨우 한 세계에 스스로를 가둬야 해. 만약 너라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

우유도가 원강을 돌아보았다.

원강도 차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뭔가 수상하네요.”

“이게 바로 이향이 똑똑한 부분이란 거지. 어떤 것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거야. 비밀로 지킬 수도 있고,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 테니. 수찰 뒷부분 내용이 있다고 한들 어차피 다른 사람은 봐도 모를 거잖아? 그렇지만 경중인이라면 그 내용을 보고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원강이 석대를 올려다보았다.

“도야는 이향이 남겨놓은 게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유도도 고개를 들었다.

“여긴 오역성신대진의 중심이야. 오역성신대진을 가동하기 위한 중추가 있는 곳. 또, 다섯 세계의 통로를 끊어내는 첫 번째 핵심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만약 여기 뭔가를 남겨놓지 않았다면, 경중인이 이 일을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왜 자신을 겨우 한 세계에 가둬둬야 하지? 만약 뭔가 남겨놓은 게 있다면 분명 이곳에 있을 거야.”

원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찾아요?”

우유도가 소매에서 영패를 꺼내 들었다. 성신령이었다!

곧 우유도는 그대로 몸을 날려 석대 정상에 내려섰다.

원강도 힘껏 뛰어올라 석대 중간쯤 착지했고, 다시 빠르게 석대를 기어 올라갔다. 그 속도는 가히 기가 막힐 정도로 빨랐다.

우유도가 석대 정상에 내려서고, 원강이 곧바로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 단상을 잠시 살피던 우유도는 법력을 이용해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위에 있던 모래들이 모두 쓸려나가고, 움푹 들어간 곳이 나타났다.

우유도는 성신령을 꺼내 그 움푹 들어간 곳에 넣고 살펴보았다. 크기가 딱 맞았다. 영패에 들어가고 튀어나온 곳 모두 단상과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우유도는 성신령을 안에 끼워 넣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원강은 우유도가 뭔가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무슨 고민을 하든, 원강은 우유도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을 믿었다.

결국 우유도가 심호흡을 한번 뱉은 후, 영패를 끼워 넣었다.

딸깍-

단상의 홈과 영패가 정확히 맞아들어갔다.

우유도는 천천히 손을 놓고 수시로 단상 안에 있는 영패 위치에 혹시 변화가 있는지 살폈다. 또한 주위에 다른 변화는 없는지도 계속 살폈다.

원강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주위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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