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879화 (978/1,000)

1879화. 천지개벽

얼마나 지났을까, 원강이 돌연 영패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뗐다.

“도야, 변화가 있습니다.”

원강은 감각이 아주 날카로웠다. 그런 원강이 뭔가를 감지한 것이다.

우유도가 손을 들어 원강의 말을 막았다. 그 또한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석대 내부에서 천지 원기가 천천히 뭔가를 정화하고 있었다.

천지 원기가 정화하는 건 바로 성신령이었다.

원기가 더 많이 움직일수록 변화는 더 선명해졌다. 주위에 바람이 일어 구름을 몰아냈고, 광풍이 두 사람의 옷을 휘날렸다.

둘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저 아득한 하늘 위에, 다시금 뭔가가 나타났다. 새로이 생겨난 회백색 운무는 점점 더 색이 짙어지더니, 서서히 검은색 비구름처럼 바뀌었고 천둥소리가 들렸다.

우르릉!

하늘이 금세 어두워졌다. 먹구름 속에서 천지를 울리는 뇌성은 천천히 그 크기를 키워나갔고, 안에서 번쩍이는 벼락도 볼 수 있었다.

쾅!

갑자기 한줄기 벼락이 허공을 가르고 석대 정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또? 우유도가 대경실색했다. 그는 과거 벼락 맛을 호되게 본 적이 있었다.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우유도와 원강은 즉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석대 정상에서 뛰어내려 벼락을 피하려 했다.

쾅!

아직 땅에 채 내딛지도 못했을 때, 두 사람이 뒤를 돌았다. 벼락은 정확히 석대의 정상을 타격하고 있었다.

벼락은 두 사람을 뒤쫓지 않았다. 비로소 안도한 둘은 동작을 멈췄다.

원강은 석대 중간쯤 내려서 고개를 들었고, 우유도는 그야말로 저만치 도망쳐 사막에 내려선 후에야 위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둘을 데려다준 사갈은 깜짝 놀라 사막 바닥을 파고 도망쳐 버렸다.

쾅! 쾅!

한줄기 벼락이 떨어진 이후로 정광 가득한 벼락이 계속해서 석대를 때렸다. 전기를 탑 안으로 주입하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웅웅-

이내 석대가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다.

석대를 때리는 벼락이 더욱 많아지면서, 석대는 더욱 격렬하게 진동했다. 그 떨림의 세기가 얼마나 강한지, 석대는 굉음을 내며 당장이라도 땅을 파고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대지가 진동하고, 사막이 진동했다. 사람을 질리게 할 듯한 기세였다.

석대 중간쯤에 있던 원강은 좌우를 한번 살핀 후, 그대로 사막으로 뛰어내려 한 바퀴 구른 후에야 일어났다. 그렇게 우유도 곁으로 달려온 그는 우유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가라앉는 석대를 바라보았다.

이 장면을 보고, 우유도는 이향이 수찰에 적어둔 성신령에 대한 기록이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눈앞의 결과가 어떠할진 알 수가 없었다.

사막은 체에 올려놓은 모래알처럼 하릴없이 진동하고, 그 위의 두 사람도 함께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유도는 법력으로 모래 위에 서 있을 수 있었지만, 원강은 계속 다리를 움직여야 버틸 수 있었다.

석대 전체가 천천히 지하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모든 게 가라앉고 석대 정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 남았을 때, 홀연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 굉음이 사라지고, 땅이 고요해졌다. 진동이 멈춘 것이었다.

벼락도 이 부드러운 빛에 즉시 조용해졌다. 지금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먹구름만이 여전히 굉음을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부드러운 빛이 느긋한 부채처럼 펼쳐졌다. 그러다 석대 끝에서 무언가 천천히 떠올랐다. 성신령이었다.

우유도와 원강 모두 매우 놀라 잠시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다시 성신령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1장(丈) 정도 떠오른 성신령이 홀연 빛을 발하며 어떤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이었다. 눈을 감은 여인의 상반신이 떠올랐다. 머리는 다소 소박했지만, 차마 눈을 뗄 수도 없는 경국지색의 미인이었다.

그 순간, 원강은 너무도 놀라 냅다 소리를 질렀다.

“군주!”

우유도 또한 멍해졌다. 머릿속, 마지막 남은 이성만이 저 여인은 상숙청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이를 뭐라고 형언할 수 있을까. 갑자기 상숙청과 똑같이 생긴 여인의 환상이 눈을 떴다. 영롱한 그 눈망울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윽한 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로 구름 위에 있는 듯한 넘치는 기품의 소유자였다.

원강도 이젠 상숙청과 닮은 여인일 뿐,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았다.

그때,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던 여인의 환상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군요? 누가 경중인이지요?”

목소리는 현실 같지 않았다. 메아리치듯 울리는 것이 사막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천지 사이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접니다.”

우유도가 답했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우유도는 잠시 고민하다 운을 뗐다.

“한 고분에서, 오래된 동경을 발견했습니다.”

우유도는 법안으로, 여인의 가슴 부위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성신령을 보았다. 눈앞의 환상은 바로 저 성신령으로 인해 나타난 것 같았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없어요. 이렇게 절 만나러 온 것을 보면, 제게 물을 것이 있겠지요?”

당연히 있었다. 우유도는 즉시 마음에 품고 있던 첫 번째 질문을 꺼냈다. 어떻게 이토록 상숙청과 닮을 수 있을까.

“당신이 이향입니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요. 여기 있는 건 이향의 의식을 조금 분리해 성신령에 봉인해 놓은 것이에요. 지금처럼 당신과 만나 경중인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지요.”

우유도는 매우 놀랐다. 이향의 경지가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지금까지 의식을 보존하고, 생각하며 대답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인가!

우유도는 놀란 와중에도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지금 그 모습은 원래 당신의 얼굴인가요?”

“제가 굳이 다른 사람의 모습을 가장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같은 모습으론 일각(*一刻: 15분)밖에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런데도 지금 제 얼굴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요?”

여인은 시간이 짧은만큼 더 중요하고 궁금한 질문을 요구했다.

우유도는 이미 이향의 얼굴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역으로 물었다.

“제게 질문은 없습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했으면 충분하지요.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절 만나러 온 걸 보면, 그것만으로 제 본신은 이미 죽고 더는 돌아올 수 없음을 의미하지요. 저 같은 의식의 일부는 사정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유도가 또다시 크게 놀랐다.

“당신 같은 경지의 사람도 죽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말하자면 긴 이야기지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각의 시간에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진실을 알고 싶다면, 다섯 세계의 통로를 끊으세요. 오역성신대진이 붕괴할 때 그 여력이 이곳에 모이고,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가 허공을 가르고 나타날 거예요.

저는 저 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수많은 고분과 진법을 설치했고,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느 진법이 움직였느냐에 따라, 그 진법에 있는 세계와 연결이 될 거예요. 만약 돌아가길 원한다면, 오역성신대진의 여력이 만들어 낸 통로를 통해 돌아갈 수 있어요.”

우유도와 원강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정신이 살짝 멍해졌다. 돌아간다고?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기억하세요. 오역성신대진의 여력은 오래가기 어려워요. 통로가 열리는 시간도 일각을 넘지 않을 거예요. 그 시간을 넘기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요.

만약 조심경을 파훼했다면, 마찬가지로 고분의 동경도 파훼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동경을 찾으세요. 그 동경이 당신에게 답을 줄 거예요.

하늘의 별은 무한하지요. 마음이 편치 않으면 넋을 잃기 마련이에요. 동경이 당신에게 선택지를 줄 거예요. 전 뭘 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모든 건 당신 마음에 달렸어요. 할 말은 여기까지. 경중인, 몸조심하세요!”

이향이 떠나려는 걸 보고, 우유도가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 아직 다른 질문이…….”

여인은 미소를 짓곤, 빠르게 성신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공에 천천히 회전하던 성신령은 그대로 석대 꼭대기 움푹 들어간 곳으로 떨어졌다.

쾅!

허공에 크기를 불려가던 벼락이 떨어졌다. 떨어진 성신령을 향해 다시금 벼락이 내리친 것이다. 한번이 아니었다. 벼락은 연이어 빠르게 내리꽂혔다.

대지가 다시금 진동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석대가 땅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땅으로 파고들던 석대 꼭대기에 구멍이 생겼고, 성신령은 그 속으로 떨어졌다. 어찌 보면 석대가 성신령을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쾅!

석대는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지하에서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듯했다. 사막은 마치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뒤흔들렸고, 이에 따라 천지의 기상도 크게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거대한 사갈들도 사방으로 몰아치는 모래 바다를 버티지 못하고, 깜짝 놀라 지면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우유도와 원강은 순간, 풍랑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 사막은 다시 고요를 찾았다. 하늘의 벼락도, 꿈틀대던 먹구름도 흩어졌다. 잠시 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푸른 하늘도 다시 만났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엔 개미만한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

돌아갈 수 있나?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말이 없었다.

* * *

서병관.

막 서병관을 점령한 상조종 등은 천지가 요동치는 느낌을 받았다. 하늘에 무수한 까마귀 장군들도 놀라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닭 다리를 한입 베어 문 은아가 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마귀.”

소란은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갑작스럽게 멎었다. 소란이 멎고, 다들 놀란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연국 대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연군은 진군을 손쉽게 물리쳤고, 진군은 반격할 생각도 못 한 채 서병관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군에게 단박에 점령당했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10만 까마귀 장군은 10만 금단기 수행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금단기 수행자였다. 오상 정도의 힘을 가졌다면 모르겠지만, 진국 수행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까마귀 군단은 실재하는 육신도 없었다. 일반적인 도검이나 화살로는 상처를 입힐 수도 없는 것이었다. 화살이 까마귀 장군 육신을 뚫고 지나도, 까마귀 장군에겐 아무 영향이 없었다. 강대한 법력 외엔 무엇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까마귀 장군들은 진을 만들어 공격하니, 결국 비행이 가능한 10만 군대나 다름이 없었다. 감히 진군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연히 진군은 한 방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병관을 잃어버린 고품 등은 그대로 황급히 후퇴했다. 그들 역시 천지가 요동치는 변화를 느끼고, 더욱더 두려움에 떨었다.

* * *

서병관만이 위험을 느낀 게 아니었다. 온 천하가 그 순간 격렬한 진동을 느꼈다. 천도봉 위, 천도비경 입구에도 수십 년에 한 번 열리는 운무가 나타났지만, 표묘각은 이미 철수한 까닭에 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접몽환계, 상찬 행궁 뒤편의 산도 무너져 내렸다. 그곳에 석대가 흙을 뚫고 나타난 것이다. 천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가지각색의 접나찰들은 깜짝 놀라 사방으로 날아오르기 바빴다.

황택사지에서도 일단의 요호들이 늪지 위에 서 있었다. 흑운 등 요호의 고위층도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황택사지에 있는 섬을 뚫고 튀어나온 석대……. 모두가 이를 보고 넋을 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