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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82화 (981/1,000)

1882화.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

한참을 기다려도 소평파는 나오지 않았다. 도략은 결국 사람들을 이끌고 서재로 밀고 들어갔다. 밖에서 태숙환아가 분노하며 도략을 막아섰지만, 결국 도략이 서재로 밀고 들어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안에선 소평파가 조용히 서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략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소평파가 먼저 담담히 말했다.

“도 총관 오셨습니까.”

도략은 소평파에게 예를 올리지 않고 그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인, 폐하의 어명입니다. 노신과 같이 도성으로 돌아가시지요.”

“소식을 전하면 그만인데, 어이하여 총관께서 직접 찾아오셨습니까?”

“무슨 일? 전방에서 장병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폐하께서 직접 친정을 가셨지요. 그때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렸습니다. 누가 배후에서 모략을 일삼았는진, 노신보다 소 대인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태숙환아는 바로 대경실색하며 분노했다.

“도 총관, 감히 누굴 모함하는 것인가요!”

소삼성도 대경실색했다. 그 일을 처리할 당시 소평파는 아주 신중했다. 일을 직접 처리하는 자와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건만, 도략이 어찌 알았을까.

곧이어 도략이 태숙환아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소신에게 직접 소 대인을 모셔오라고 하신 것은 그 일을 확실히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였다. 소평파를 보던 소삼성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소평파의 코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와 그의 몸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소삼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지체할 틈이 없었다. 소삼성은 그 즉시 다급히 달려가 서탁에 앉아 있는 소평파를 부축했다.

“공자님! 공자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머지 사람들도 소평파를 돌아보았다. 태숙환아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소리치며 자신도 모르게 소평파에게 달려갔다.

“여봐라, 여봐라!”

그러나 소평파는 그저 담담한 얼굴로 도략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누구도 나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미소 짓던 그 눈이 끝내 서서히 감겼다. 다시는 뜨고 싶지 않다는 듯.

“빨리!!!”

대경실색한 도략이 수행 법사들에게 빨리 소평파를 구하라 손짓했다.

수행자들은 빠르게 달려가 소평파를 살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소평파가 독을 복용한 것이었다. 구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소평파는 그렇게 어떠한 고통도 없이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났다.

태숙환아는 깨어나 울다가,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결국은 멍한 얼굴로 시신의 곁을 지키며, 혼이 다 빠져나간 얼굴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부황은 저를 제일 예뻐하신다고 하셨지요. 부황은 저를 제일 예뻐하신다고 하셨지요…….”

도략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평파가 죽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 거기에 공주는 정신이 나가버렸다. 자신이 직접 오고도 일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돌아가 태숙웅에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평파는 어째서 이처럼 단호하게 목숨을 끊었을까.

단서를 얻은 통로는 흑수대였다. 그 단서를 통해 조사한 결과 소평파가 진국을 배신하고 내부에서 각종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아직 심문도 하지 않은 단계였다. 목숨을 구할 기회도 마다하고, 도략을 만나자마자 자진하다니, 한낱 벌레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 않던가.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고자 하는 게 본능 아니던가.

소삼성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했다가 깨어난 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 공자는 평생 불굴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역경을 이겨왔는데, 어째서 이토록 허무하게 떠난단 말인가!

나중에, 한참의 시간이 흘러 우유도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삼성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소평파가 자진한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었다. 그는 자진하기 전, 이미 우유도가 살아있음을 확신한 것 같았다.

소평파는 배후에서 구성을 쓰러뜨린 이가 우유도라는 걸 깨달았고, 이 모든 걸 조종한 최후의 조종자가 바로 우유도였음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가무군은 허울에 불과했다. 소평파는 결국 그의 생사 대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소평파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심정이었을까.

우유도는 소평파를 이용해 진국 내부를 혼란스럽게 한 후, 끝내 그를 진국에게 팔아 버렸다. 도략이 직접 소평파를 찾아왔다는 건, 이미 많은 준비가 끝났음을 뜻했다. 결국은 소평파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

소평파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처럼 소평파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다. 그가 우유도에게 모욕을 당한 시간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소평파는 줄곧 우유도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었다. 그는 끝내 온갖 모욕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기보다 자진을 택했다.

소평파는 더 이상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소삼성은 그것이 못내 비통했다. 만약 소평파가 조금이라도 멍청했다면, 그렇게 모든 걸 알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지나치게 똑똑한 그 머리에 소평파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 미련 없이 생을 놓아버렸다. 누구에게도 그를 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 * *

진국 도성에 소평파의 부고가 전해졌다. 태숙환아가 미쳤다는 소식도 황궁에 닿았다. 태숙웅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그는 그리 빠르게 소평파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지금은 죽일 생각이 없었다. 소등운은 연국의 장군이었다. 소평파와 소유아를 손에 쥐고 있다면, 어쩌면 협상의 패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태숙웅은 결국 소평파의 학생들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그 학생들과 후방의 소란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해도, 그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반드시 일단 잡아들여 후환을 없애야 했다.

* * *

뇌옥 안.

어둡고 습한 감옥의 너저분한 볏짚 위에 소유아와 호진, 그리고 세 아이들이 눕거나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들은 심지어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소유아는 그저 철창 곁에서 멍청한 얼굴로 벽면에 달린 유등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송국 황궁.

화려한 금침 위에 발가벗은 남녀가 한창 정사를 치르고 있었다.

“꺅!”

그러다 여인이 돌연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가렸다. 순간 뭔가를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니 분명 침상 앞에 한 궁녀가 서서 싸늘한 얼굴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 정신이 다 멍해졌다.

한창 힘을 쓰던 사내도 뒤를 돌며 크게 분노했다.

“무엄…….”

하지만 사내는 하던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혼비백산해 한쪽으로 굴러갔다. 몸을 가린 사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혜……, 청평!”

사내는 바로 오공령, 그와 함께 침상에 있는 여인은 아작이었다.

오공령은 즉시 소리쳐 사람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궁녀의 복장을 한 혜청평이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소리칠 수 없는 그가 크게 두려워하며 무기력하게 말했다.

“평평, 내 말을 들어보시오. 당시 내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소!”

아작도 옆으로 몸을 말아 숨어들었다.

그때, 혜청평이 손을 뻗어 오공령의 패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오공령이 뒤집어쓴 이불을 날려 버리더니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아…….”

오공령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는 침상에 쓰러져 두 손으로 하체를 움켜잡았다.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혜청평은 침상으로 다가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한 번, 또 한 번……. 오공령의 손을 자르고, 나머지 손도 잘랐다. 그 후로 오공령의 다리 하나씩, 마지막에는 그 혀를 도려냈다.

더 기함할 것은, 혜청평이 손가락으로 오공령의 눈을 직접 파냈다는 것이었다. 눈 역시 양쪽 모두 파내는 걸 잊지 않았다.

모든 일을 마치고, 혜청평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친 것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분통을 터트린 여파였다.

이것도 성이 차지 않았다. 혜청평은 오공령을 갈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유도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우유도는 이미 초려산장 사람들에게 속세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규칙을 세운 바 있었다. 속세의 일은 오직 속세 사람들끼리 해결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유도는 수행계와 속세의 관계를 완전히 끊으려는 것 같았다.

혜청평도 우유도에게 오공령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오공령을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우유도는 혜청평이 원한을 갚지 않고는 도저히 그 울분을 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그녀가 안전하게 송국 황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일은 자평휴가 나서서 처리했다.

자평휴가 나서지 않았다면, 혜청평은 오공령에게 접근도 불가했고 송국 황궁에 들어와 오공령에게 분을 풀 수도 없었다.

이윽고 침상에서 내려선 혜청평이 아작을 싸늘히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선 오공령과 같이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유도와 다시는 속세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기에, 간신히 충동을 참았다.

혜청평은 그대로 검을 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침상 위 아작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것도 모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금처럼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장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오공령은 이미 진작에 고통으로 혼절한 상태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송국 황궁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신하들은 다급히 입궁했다가,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로 폐인이 되어 치료 중인 오공령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밤을 지새우며 대책을 논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송국 3대 문파 수행자들은 크게 진노해 철저한 조사에 나섰다.

다음날, 송국과 한국은 연국 사신의 통보를 받았다. 그는 두 나라에 당당히 투항을 권고했다. 그 태도는 아주 막무가내였다.

* * *

풍관아 거처 입구에 여무쌍이 나타났다. 풍관아는 마침 안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 여무쌍이 물었다.

“어딜 가려는 거지?”

풍관아는 슬프고 처량했다.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계속 짐을 꾸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들을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여무쌍이 담담히 말했다.

“떠나는 건 괜찮아. 하지만 그건 원강이 돌아온 후 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가 돌아왔을 때 네가 사라진 걸 설명할 길이 없잖아. 아마도 내가 널 강제로 쫓아냈다고 오해하지 않겠어? 그 불같은 성미에 내가 설명한들 들어 먹지도 않을 것이고.”

풍관아가 봇짐을 들고 다가왔다.

“아무도 저한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비켜주세요.”

여무쌍이 입구를 막아섰다.

“그러고 보니 말하지 않은 게 있네. 지금 연국은 파죽지세로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어. 진국 군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쓰러지고 있지. 결국은 투항할 것이 뻔해. 나조가 투항한 후에, 난 어찌 처리해야 할까? 만약 네가 오늘 내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내가 내일 상조종에게 귀띔 한마디 할 것이고, 나조는 붙잡힌 후에 곧바로 목숨을 잃어버리겠지?”

풍관아가 이를 악물고 여무쌍을 노려보았다.

“나조의 죽음을 택할 건지, 내 하인이 될 건지, 둘 중 하나만 택해.”

여무쌍은 이 말만 남긴 채 그대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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