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화. 토사구팽이지, 그래서?
그 시각, 산장 물가 정자.
귀모 오설군이 검은 포대를 열고, 탁자에 죽은 까마귀 몇 마리를 올렸다.
“우리가 오상에게 붙잡힌 후부터, 오상은 함음산에서 이걸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아마 까마귀 장군이겠지?”
우유도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네, 까마귀 장군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련 초기라 할 수 있군요. 다만 아직 완벽하게 음기가 스며들지 않은 듯합니다. 음기가 완전히 스며들었다면 죽은 후 연기가 되어 사라지지 지금처럼 시신이 남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쪽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른다. 그냥 이 까마귀 장군들 몸에서 갑자기 연기가 나더니 순간 다 죽어버렸다.”
“오상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까마귀들에 심어져 있던 영령들은 모두 성불했을 것입니다.”
귀모가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
그때, 한쪽에 있던 운희가 말했다.
“흑석이 도망쳤어. 그쪽을 찾아가지 않고, 이렇게 자유를 줬단 말이야?”
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쪽에서 우리를 감시하던 인원을 철수시켰을 뿐, 우릴 어쩌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흑석이 거기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는데. 수많은 인원을 동원해 한참 뒤지더니, 그걸 찾은 후 떠났어. 대체 뭘 찾는 거였을까.”
우유도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중요한 건 아닙니다. 과연 오상을 잘 아는 사람이군요. 결국 찾아냈어요.”
운희가 멈칫했다.
“설마 저번에 기운종에서 찾으라고 했던 탄천환을 말하는 거야?”
“맞을 겁니다.”
운희는 더욱 의아해졌다.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아? 그럼 뭐하러 흑석에게 그걸 찾게 한 거지?”
“당시 오상과 결전을 벌이게 될 걸 알고 있었어요. 만약 오상이 죽고, 그 세력이 계속 두려움에 숨어 지내면 앞으로 골치가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탄천환은 구실입니다. 저들에게 활로를 하나 만들어 줘야 안심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어요? 흑석은 아직 관망 중일 겁니다. 더 이상 대세를 바꾸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오면, 알아서 먼저 연락해올 겁니다.”
운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우유도는 대체 얼마나 먼 후날을 내다보고 있단 말인가. 그렇게 아주 잠깐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에게도 수작을 부려놓았다. 그야말로 막으려야 막을 수도 없는 수법이었다.
그때, 단호가 다가와 밀서를 진상했다.
“도야, 소평파가 음독 자진을 했습니다.”
우유도가 순간 멈칫하며 서신을 받아들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끝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정말로 이토록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니, 오상도 자진하더니, 이 사람도 자진했군. 이럴 필요가 있단 말인가.”
운희도 손을 뻗어 서신을 한번 살펴보았다.
“혹시 도야 때문에 벼랑 끝에 몰려 자진한 건 아니고?”
“난 죽일 생각 없었어요. 그러나 소평파가 얼마나 많은 수작질을 부리고, 얼마나 악독한 수를 썼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버려 둘 순 없었어요. 어느 정도 시련을 줘서 그 날카로운 칼끝을 다듬을 필요가 있었지요.
일전에 원숭이가 잊지 못하는 소조의 죽음도 그와 연관 있지요. 원숭이가 평소 원수를 얼마나 악같이 여기는지 알잖아요. 원숭이는 절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죽였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이자는 너무 자존심이 강합니다. 처음부터 모욕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사실 소평파를 살려 둔다면,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수법은 너무 악독하거든요. 소평파가 이분을 참을 수 있을지, 나와 평화롭게 앉아 악연을 풀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나도 그를 살릴지, 죽일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결국 이렇게 살 기회를 줘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자진했군요. 됐습니다. 이는 곧 진국의 손에 죽은 것과 다름없게 됐어요. 왕야도 더는 곤란할 필요 없게 됐습니다. 어쨌든 소등운 쪽에 할 말이 생겼으니까요. 만약 소등운이 이해하지 못하고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하세요.”
내내 검병 위에 올린 손을 튕기던 우유도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됐던지 뒤돌아 단호를 찾았다.
“단호, 소평파가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해 봐라. 살았다면 사람을 찾아내고, 죽었다 해도 시신을 확인해야겠다. 거짓 죽음으로 숨어들 기회를 주지 말아야지. 만약 죽음을 가장한 것이라면, 그건 지금 상황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니 분명 후환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단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우유도도 몸을 일으켰다.
“아마 각 문파에서는 궁임책 등을 미친 듯 찾고 있을 겁니다. 슬슬 시작해도 될 것 같군요. 홍랑이 돌아오면 내게 연락해 주세요.”
* * *
며칠 후, 성경 쪽에서 소식을 보냈고, 원강과 관방의도 하나둘 돌아왔다.
둘 다 지도를 가지고 돌아왔다. 우유도는 석대 꼭대기 단상에 움푹 파인 홈의 형태를 확인하곤 확실히 석대를 찾았다는 걸 확신했다.
이윽고 우유도가 초려산장에 가둬둔 원영기 고수들을 마루에 모았다. 다들 온몸에 수많은 은침을 꽂은 탓에 법력을 운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유도가 입구에 나타난 것을 보고, 분분히 고개를 돌렸다.
우유도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빤한 시선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색이 좋습니다. 다들 어느 정도 다들 부상을 회복하신 것 같군요.”
그렇게 우유도는 상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종곡자를 보고, 왠지 상석에 앉기가 껄끄러워진 그는 앉지 않고 그곳에 섰다.
이내 종곡자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참모습을 드러냈구나. 이제 네게 기사멸조(*欺師滅祖: 스승을 기만하고 조상을 능멸함)의 죄를 지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손속이 악독하다고 칭찬해야 할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일시적인 조처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부님.”
그 즉시, 서해당이 분노를 드러냈다.
“우유도, 이건 토사구팽이다!”
우유도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토사구팽이지, 그래서? 살고 싶은 겁니까, 죽고 싶은 겁니까? 만약 죽고 싶으면 지금 당장 그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다들 화를 억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유도도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네놈……!”
서해당의 표정이 구겨졌다. 당연히 살고 싶었다. 그렇게 뭔가 반박을 하려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인 우유도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본디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일단 참을 때였다.
다른 이들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불만을 간신히 다시 씹어 삼켰다.
우유도는 천천히 검을 지팡이 삼아 가운데로 결음을 옮겼다.
“성질을 부리고, 기분 나빠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다들 그 똑똑한 머리로 조금만 생각해도 알 것입니다. 만약 내가 여러분을 죽이고자 했다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여기로 모신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구성이 쓰러졌습니다. 여러분을 이대로 풀어주면, 천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요. 당장 피바람이 몰아칠 것입니다. 진정 천하를 제패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자금동을 이길 수 있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유도는 주위를 둘러보며 힘있게 외쳤다.
그의 말에, 궁임책도 절로 좌우를 흘겨보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자금동 원경의 고수만 해도 2명이었다.
계속 우유도의 말이 이어졌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건, 내가 자금동 장로라는 것입니다. 우리 초려산장의 힘에 자금동의 힘을 더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정말로 천하를 제패할 생각이라면 내가 당신들을 풀어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이 기회에 죽이지 않으면 또 언제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다들 말이 없어졌다. 결국 그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목숨 걸고 오상과 싸운 것이 무엇을 위해서였나?
이젠 당연히 그들이 나서서 천하를 차지할 차례였다. 앞서 오상은 홀로 천하를 제패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생각이 다를까?
구성은 수하들 세력으로 천하를 통제해야 했다. 이들도 지금은 당연히 문파의 세력에 의지해야 했다.
현재 원영기 고수는 너무 많았고, 천하엔 오직 네 나라만 남았다. 진국은 제국과 위국 영역을 흡수했고, 만수문이 있는 송국이 오히려 제일 작은 영역이 되었다. 이제 이 이익 범위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아마 즉시 한차례 전쟁이 일어날 테고, 피바람이 몰아칠 게 분명했다. 싸워서 결과를 내지 않는 이상, 지금 있는 사람 중 또 여러명이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결코 멈출 리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고야 말 터였다.
실력을 보자면 우위는 확연했다. 누가 뭐래도 초려산장이 가장 강했다. 게다가 10만 까마귀 장군까지 있었다. 그다음은 자금동이었다.
정말로 또 전쟁이 일어난다면 다른 세력은 크게 힘에 부칠 것이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이들은 어느새 절로 화가 가라앉고 있었다.
우유도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다 왕존에게 다가갔다.
“그대에게 별다른 야심이 없다는 걸 아오. 이는 단지 내가 혹시 몰라서 한 조처에 불과하오. 당신을 이리 붙잡아 놓은 건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오. 정말 싸우게 되면, 본인 세력이 없는 당신이 가장 불리하오. 사여래가 당신을 내게 부탁했소. 나는 사여래의 부탁에 책임을 져야 하오.”
지금 왕존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우유도가 토사구팽하는 게 아님을 알고 안심했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환려는 어떻습니까?”
“이미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소. 돌아오는 길일 테니, 곧 만날 것이오.”
그리고 우유도가 잠시 공백을 두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껏 그녀에게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랐소. 차마 그녀를 만날 낯짝도 없었고. 그래서 여태 사여래의 일을 알리지 못했소. 그녀가 온다면, 사여래의 일을 계속 숨길 순 없을 것이오. 언젠간 마주해야 하는 진실이오.”
왕존은 무겁게 가라앉은 낯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도가 다시 곤림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넌 내가 못 믿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천화교를 걱정하는 것이지. 넌 결국 천화교를 버릴 수 없겠지. 천화교는 당연히 지금 네 힘을 보고 널 찾아올 것이다. 너 또한 이대로 천화교가 다른 이에게 멸망하는 걸 견딜 수 없겠지.
오늘날 천화교는 세력이 약하니, 다시 싸우는 건 네게도, 천화교에게도 좋을 게 없다. 아무튼 나는 이 천하가 다시 다툼에 휩싸이는 걸 원치 않는다. 이번 일을 모두 처리한 후, 화봉황을 불러올 것이니 잠시 참아라. 아니면 그냥 내가 화봉황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진심 어린 말이었다. 이에 대해 곤림수도 딱히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그렇게 곤림수 역시도 우유도를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유도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아마 다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겠지요. 답은 이들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난 다시 이 천하가 다툼에 휩싸이는 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아는 건 참으로 어렵지요.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익이 있다면 갈등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결국에는 또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되겠지요.”
문화가 입을 열었다.
“우유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그래서 우리를 이곳에 가둬 놓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우유도가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은 간단합니다. 수행계는 수행계로, 속세는 속세로 수행계와 속세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것입니다!”
안돈천이 말했다.
“수행계와 속세는 진즉에 하나로 융합됐어. 이제 와 나눌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천하의 수행자들을 모두 제5 영역으로 이주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나와 같이 각 문파를 이끌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놀라 시선을 교환했다. 우유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옆에 있던 원강과 운희, 관방의는 다른 의미로 깜짝 놀랐다. 이들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우유도의 최종 목적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