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화. 이주의 서막
우유도의 거처로 따라 들어온 관방의가 바로 분통을 터뜨렸다.
“도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우유도도 걸음을 멈추고, 웃으며 뒤를 돌았다.
“그래서 어쩌고 싶은데?”
관방의는 화를 그치지 않았다.
“뭘 어쩌려는 건 아니었어. 처음부터 과거의 잘못을 캐물을 생각도 없었어! 근데 사과는 했어야지. 이런 식으로 끝내는 법이 어딨어? 이러면 이제는 대충 끝내기 싫어져. 그 인간 따귀 한번 때리지 않곤 분을 못 풀겠는데? 걔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걔는 그럴 자격도 없지. 이건 도야 때문이야!”
우유도가 말했다.
“과거 문화에게 무량과를 줄 때, 홍랑의 원한을 갚겠다고 이야기했었지. 그때 요구한 게 바로 문심조를 홍랑 앞으로 데려와 따귀를 때리게 하는 거였어. 문화가 그 약조를 언급한 걸 들었을 거야. 그게 그걸 말하는 거였어.”
관방의가 멈칫했다.
“그럼 왜 막은 건데?”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지금 필요한 건 화해야. 안 그럼 문화도 꺼림칙하겠지. 지금 필요한 건 천행종이 최선을 다해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거야. 지금 원한을 맺어봤자 현명한 일이 아니지. 문심조가 천지 분간 못 하고 멍청한 짓을 한다고, 홍랑도 그러고 싶은 거야?
나도 홍랑이 따귀는 한 대 때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지금 문심조 모습을 보니 죽어도 생각을 바꿀 사람으로는 안 보이잖아? 그토록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기회가 생길 때마다 홍랑을 적대시할 거야.
얕은 도랑에서도 배가 뒤집힌다는 말이 있지. 문심조 때문에 홍랑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난 홍랑에게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아.
그래,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문심조를 살려 두고 싶지 않아. 이번 일이 끝나면 문심조를 죽여버려. 근데 그녀를 죽이면 문화와 원한이 생길 거야. 그러니 한꺼번에 해결하자. 문화와 두운상도 같이 죽여버려.
걱정하지 마, 내가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줄게. 홍랑이 나와 지낸 시간이 몇 년이야? 홍랑이 입은 거칠어도 마음이 약하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아마 직접 손을 쓰는 건 어렵겠지?”
그리고 우유도가 곁에 있는 남천무방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이일은 당신이 하면 되겠습니다!”
남천무방은 관방의를 한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관방의는 할 말을 잃었다.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혼자 뭔가 우물쭈물해졌다.
관방의는 그냥 문심조를 조금 혼내주고 싶을 뿐이었다. 죽일 생각까지는 추호도 없었다. 이미 과거 일을 잊었다. 문심조를 죽일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유도는 뜬금없이 문심조를 죽이고, 문화와 두운상까지 죽이라고 말했다. 관방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경, 초려산장, 그 어느 곳이든 무슨 서러운 일과 모욕을 당해도 관방의는 단 한 번도 독하게 보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두운상과 진정한 마음을 나눴었다. 옛일을 잊었다고 해도 두운상의 목숨을 취하는 건 차마 못할 짓이었다. 어쨌든 두운상은 그녀에게 진심을 보인 사람이었다.
“확실히 결론 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지. 이 일에서 홍랑은 손 떼.”
우유도는 마지막 한마디를 던진 채, 그대로 떠나버렸다.
관방의는 덩그러니 그 자리에 남았다. 그냥 화를 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야는 세 사람 모두 죽이라는 말을 남겼다.
마음은 본디 악귀와 부처를 넘나든다고 했던가. 우유도는 여전히 꼿꼿하고 사악한 그 도야였다. 변함이 없었다.
관방의는 뒤돌아 남천무방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운상을 위해 부탁을 하려다 멈칫했다. 남천무방에게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 *
초려산장을 찾아온 이들은 문파들만이 아니었다. 우유도가 아직 살아있다는 말에, 사해요왕도 우유도를 찾았다. 어떻게든 인연을 맺기 위해 과거 우유도와 의형제를 맺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화, 홍개천, 단무상, 낭량공은 영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우유도의 위상은 감히 전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우유도의 태도는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우유도는 직접 일행을 이끌고 초려산장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초려산장 일대의 풍경이 딱히 수려하지도 않았다.
우유도의 목적은 오직 제5 영역으로 이주하는 데 있었다.
우유도는 사해요왕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인간계 청소를 위해, 사해에 있는 요마귀괴 모두 제5 영역으로 이주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해요왕이 앞장서 처리해야 하며, 만약 불복하는 자가 있을 시 세력을 일으켜 소탕도 불사할 것이라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확실히 설명했다. 일단 다섯 세계의 영기 통로가 끊기면, 수행계는 반드시 몰락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인간계를 소탕할 것이기에, 숨고자 한다면 어디 평생 숨어 살라고 전했다. 과연 10만 까마귀 장군의 협공을 피하려 일생을 숨어만 지내는 삶이 재미가 있을까?
사해요왕 일행이 떠나고, 능소각 장문인 관극태가 우유도의 의형제 전태봉을 데리고 찾아왔다. 혈신전과 열천궁의 장문인도 동행하고 있었다.
우유도는 다시 그들과 주변을 거닐며, 제5 영역으로 이주하는 일 외에, 송국 3대 문파에게 상조종을 황위에 올리고 천하를 통일해 상 씨에게 천하를 돌려줄 것이라 전했다.
송국 3대 문파가 송국을 설득해 연국에 투항할 것인지, 일전을 벌일 지는 그들 몫이지만, 결과 역시 알아서 감당해야 할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천하 각 대 문파에선 분분히 사람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 3대 문파도 마찬가지였다. 우유도는 송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항복을 권했다. 결국 기운종조차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태숙비화는 직접 초려산장을 찾았다. 우유도는 역시 또 항복을 권했다.
태숙비화는 물가 정자에서 한참을 침묵했다. 초려산장이 아직 움직이기도 전에 진국은 이미 연군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고 해도 진국에겐 아무 승산이 없었다. 손실과 사상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억지로 버텨봤자 종국엔 기운종 모두가 죽게 될 것이었다.
장고 끝에, 태숙비화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진국은 항복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대가를 흥정하는 게 아니라, 진국 속세에 태숙 가문 아이들 가족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그들과 함께 제5 영역으로 이주해도 되겠습니까?”
“수행자들이 모두 이주합니다. 그중엔 가족이 있는 수행자도 적지 않지요. 우리 초려산장이 그 수많은 가족을 갈라놓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인심도 잃고, 분명 반항하는 이도 생길 테고, 수행자들의 이주에도 악영향이지요.
가족을 데려가고 싶다면 데려갈 수 있습니다. 속세의 벗과 같이 가도 좋습니다. 속세의 범인 중 가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수행자들은 이미 속세에 너무 큰 피해를 끼쳤습니다. 천하가 통일된 후, 난 대 사면을 내려 천하의 뇌옥을 깨끗이 비울 겁니다. 그 뇌옥에 갇힌 각종 범죄자 역시 모두 제5 영역으로 이주시킬 겁니다. 이 모든 이주의 전제조건은 단 하나뿐입니다. 수행자는 범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지요.”
“하아!”
우유도의 이야기를 듣고, 태숙비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세는 확실히 기울었다. 기운종은 이 대세를 뒤집을 힘이 없었다.
* * *
끝없는 사막, 10여 마리의 사갈이 모래를 뚫고 튀어나왔다. 저 멀리 하늘을 맴돌던 수십 마리 날짐승도 즉시 날아왔고, 100여 명의 사람이 사갈의 등에서 날아올라 날짐승에 올라탔다.
원강은 그중 날짐승 몇 마리만 이끌고 초려산장으로 귀환했다.
천하 각지의 수행자들을 제5 영역으로 이주시키려면 결국 각 세력에게 제5 영역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정말 제5 영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우유도는 당연히 그들이 확실하게 확인하도록 도와주었다.
만약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면, 우유도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우유도와 싸우려 할 것이었다.
제5 영역을 보여주는 일은 당연하게도 원강이 맡았다.
이번에 데리고 들어간 인원은 이들이 다는 아니었다. 각 세력 중 일부분은 벌써 제5 영역에 남아 내부 지형을 살피고, 곧 들어올 종문을 위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지금 원강과 같이 나온 이들은 돌아가 상황을 알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원강과 초려산장으로 돌아온 이들은 연금된 각 문파 원영기 수행자들에게 보고했다. 영기도 충만하고, 생존에 적합한 세계란 결론이었다.
사실 확인 절차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대 이주의 서막이 올랐다.
* * *
소요궁.
초려산장에서 보내온 문서를 확인한 용휴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한쪽에 있던 제자 이서는 이상할 정도로 불만을 내비치며 중얼거렸다.
“소인배가 명성을 얻더니 오만하게 설치는 것일 뿐입니다.”
쾅!
용휴는 바로 차갑게 이서를 노려보며 서탁을 내리쳤다. 게다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까지 했지만, 결국 소매만 내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도 당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제5 영역으로 이주한다면 누구의 세력이 가장 강할 것 같더냐? 우유도의 세력이다. 반면, 우리 소요궁은 원영기 고수가 단 하나도 없지. 제5 영역으로 가면 이류 문파로 영락하게 될 것이다! 저 궁임책을 봐라,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더냐. 하지만 이젠 나조차 그자의 안색을 살펴야 한다.”
이서가 다시 중얼거렸다.
“왜 꼭 우유도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용휴가 호통쳤다.
“이놈! 지금 우유도는 아마 손에 칼을 들고 주위를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눈 시퍼렇게 뜨고, 일벌백계의 대상을 찾고 있단 말이다. 지금 누가 주제도 모르고 뛰쳐나온다면, 그자에게 진노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제가 소인배가 명성을 얻어 오만하게 설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후안무치한 자가 천하를 가지고 노는 걸 보면 뒤에서 나쁜 짓을 얼마나 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언젠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용휴는 이제 이서와 말싸움 하는 것도 지겨웠다. 이에 그저 수염을 쓰다듬으며 제자를 살펴보았다. 용모를 보면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용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대로 제5 영역에 들어가 제자더러 우유도에게 사과한 뒤, 뭔가 이유를 만들어 견마지로 (*犬馬之勞: 나라, 제왕, 윗사람 등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노력을 겸손히 비유한 말) 를 다하게 한다면…….
결심을 굳힌 용휴는 다시 자리에 앉아 소요궁을 대표해 문서에 서명했다.
* * *
초려산장은 천하에 이같은 말을 공표했다.
「금일 이후, 천하 수행자들이 속세의 다툼에 참여하는 것을 금한다.」
이는 10만 까마귀 장군을 거머쥔 상조종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가장 먼저 송국 3대 문파가 손을 놓자, 자평휴의 수작 아래 송국이 첫 번째로 투항했다. 송국은 별다른 소란 없이 정식으로 연국에 편입되었다.
그 후, 진국과의 전쟁도 멈췄다. 진군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진국 황제 태숙웅이 직접 상조종에 항서(降書)를 진상함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항복을 받아낸 상조종은 즉시 나대안이 이끄는 대군을 진국 각지로 보내 지역을 장악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