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화. 큰 이익
그 후, 상조종은 급히 남주로 돌아갔다. 송국과 진국의 투항을 처리하는 건 부차적인 일이었다. 상조종이 돌아온 진짜 목적은 최대한 빨리 초려산장에 가서 우유도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연국의 상대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아도, 결코 쉽게 승복하지 못했다.
돈줄을 끊는다는 건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리 이익을 포기하려 하겠는가?
천하 수행자들은 더 이상 속세의 다툼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이 틈을 타, 한국 일부 단체는 소란을 일으켜 이익을 쟁취하려 했고, 설혹 투항한다고 해도 한 지역의 제후가 되는 등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발버둥 쳤다.
무나라 붕괴 이후 수백 년 만에 일어난 대변화였다.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거대한 혼란이 일었다. 당연히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이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천하 백성들 인심은 흉흉해졌고, 상조종도 다소 불안해졌다. 이제 상조종에게 있어 앞으로의 정세는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못했다. 결국은 그 대가가 크냐, 적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우유도 쪽이었다. 물론 우유도가 그에게 천하를 주겠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날이 이처럼 빨리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직 다른 나라와 정식으로 개전을 하기도 전에 이 결정적인 날이 도래했다.
상조종도 매우 당황했다. 지금 그가 손에 쥔 세력은 각국 중 가장 강대했지만, 마지막 우유도의 태도 한 번이면 모든 걸 뒤집을 수 있었다.
만약 우유도에게 다른 생각이 있다면, 국면은 빠르게 뒤바뀔 터였다. 지금 천하에 우유도의 진짜 의중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유도는 천하의 소유권을 쥔 자였다. 지금 상조종에게 우유도가 있는 초려산장으로 향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이는 몽산명과 남약정의 뜻인 동시에 상 씨 일파 모든 문무 대신들의 뜻이기도 했다. 다들 상조종이 빨리 우유도의 마음을 꽉 붙들길 원했다. 상당수가 중매인을 자청하며 우유도와 상숙청의 혼사를 추진하겠다 나섰다.
지금 상숙청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했던가. 중매인을 자청하는 자도 자못 당당했다. 유일하게 좀 걸리는 부분은 상숙청의 나이랄까. 그래서 일부는 지금 대국을 안정시키고 완전히 틀어쥘 수만 있다면, 상숙청을 첩실로 보내는 것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중매에 관한 일은 결국 몽산명과 남약정이 끊어냈다. 이 방법은 우유도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의도가 분명하니, 우유도가 상조종 일파를 경멸하고, 역효과를 낼 우려가 있었다.
어쨌든 눈앞의 이 거대한 이익에 상조종은 좀처럼 침착할 수 없었다. 흥분했고, 안절부절못하며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각국 세력이 끊이지 않고 초려산장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긴장은 배가 되었다. 그야말로 입맛도 없고, 밤새 누워도 잠 못 드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 * *
일행은 오후 늦게야 남주에 도착했다.
무수한 까마귀들도 왕부의 각 지붕 위에 앉아 여독을 풀었다.
먼저 왕비 봉약남이 마중을 나와 상숙청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상조종이 웃으며 상숙청을 반겼다.
“청아, 오늘은 일찍 쉬어라. 내일 나와 같이 초려산장으로 가자.”
“네.”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하루라도 빨리 초려산장으로 가고 싶었다.
상숙청이 떠난 후, 상조종은 즉시 봉약남과 거처에서 한참 뭔가를 논의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봉약남이 상숙청을 찾았다. 그녀는 상숙청을 만나자마자 칭찬부터 늘어놓았다.
“와, 이제 진짜 선녀처럼 아름답네.”
상숙청은 귀까지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그만 하세요. 설마 절 놀리려고 오신 건가요.”
봉약남이 가까이 다가가 상숙청의 손을 잡았다.
“정말 소문대로 도야하고 서로 마음을 통한 거야?”
상숙청은 더욱 부끄러워졌다.
“그런 소문 믿지 마세요. 그런 거 아니에요.”
봉약남이 정색했다.
“청아, 이런 일 가지고 농담하면 안 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너와 도야가 서로 아끼는 걸 봤는데. 우리 상 씨는 참으로 깨끗한 사람들이고, 연국 백성들의 모범이 돼야 해.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소문이 나면 안 돼.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이제 슬슬 밝힐 때도 되지 않았나? 언니한테만이라도 얼른 알려줘. 대체 도야는 무슨 생각이신 거야?”
상숙청은 민망하고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도리도리 흔들었다.
“몰라요.”
“까마귀, 까마귀!”
문밖의 은아가 지붕 위로 닭 다리뼈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어휴, 저 먹보.”
봉약남은 잠시 은아에게 시선을 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청아, 정말 도야가 네게 아무런 말도 안 해준 거야?”
상조종의 이야기를 듣고, 봉약남도 크게 긴장했다. 이건 천하의 소유권이 걸린 문제였다. 걸린 이익이 너무도 컸다. 남주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의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봉약남조차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숙청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봉약남의 마음도 급해졌다.
“언니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네게 불리한 한 일을 한 적 있었니? 그냥 우리끼리 하는 얘기야. 걱정하지 마. 누구한테도 말 안 해.”
잠시 망설이던 상숙청이 조용히 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나중에 다 설명해 주실 거라 했어요.”
“뭘?”
상숙청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라요.”
봉약남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청아, 언니한테 네 생각 좀 알려줘. 넌 도야를 따르고 싶은 거야?”
상숙청은 다시금 부끄러움이 피어올랐다.
“새언니, 먼 길을 와서 피곤해요. 쉬고 싶어요.”
그렇게 쫓겨난 봉약남은 입구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곧바로 상조종을 찾아갔다. 둘은 또 밤을 지새우며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초려산장.
우유도는 원강, 관방의, 운희를 모두 불렀다.
뭔가 그럴듯한 모습에 관방의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했다.
“무슨 일이야?”
우유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일부터 한두 달 폐관에 들어갈 거야. 지금 처리하는 일들은 세 사람이 내가 사전에 당부한 대로 처리하면 될 거야.”
한두 달 폐관? 원강과 운희는 그저 조금 의아해했지만, 관방의는 달랐다.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드디어 원영기에 오르려는 거야?”
우유도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원강과 운희도 그제야 우유도의 의도를 깨달았다. 원영기에 오르기 위한 폐관이었다. 세 사람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돌아가며 우유도의 호법을 서는 등의 일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때, 네 사람이 돌연 뒤돌아 저 먼 하늘을 응시했다. 산장으로 날아오는 거무스름한 먹구름이 보였다.
관방의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군주님이 왔나 봐.”
관방의의 말이 맞았다. 상숙청을 비롯해 조웅가, 상조종, 봉약남 등이 날짐승을 타고 이곳으로 비행 중이었다. 일행엔 상조민도 포함돼 있었다.
양측이 마주했을 때 조웅가를 제외한 나머지는 다들 극진한 예를 올렸다.
아, 물론 은아는 당연히 예의랄 게 없었다. 그저 망설임 없이 달려 나와 우유도의 소매를 꼭 붙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토로했다.
“도도, 배고파!”
우유도는 크게 웃더니, 잠시 상숙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상숙청은 조금 부끄러워 볼이 달아올랐다.
은아와 상숙청의 얼굴을 보니, 우유도는 이향의 환상을 만난 그날이 떠올랐다. 우유도가 마지막에 묻고 싶었던 건, 은아와 관련된 일이었다. 혹시 은아의 눈에 특수한 기능이 있는 건지 묻고 싶었었다.
그래도 일단 이향의 얼굴을 보고 나니, 은아가 어째서 그처럼 상숙청에게 친근하게 대했던 건지 해답을 얻었다.
원강 역시 상숙청을 빤히 보며 이향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유도도 이제 그 생각을 멈추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맞았다.
“한참 공무가 바쁠 때 아닙니까. 일이 있으면 전서를 보내면 그만이지, 뭐하러 이리 직접 오셨습니까.”
상조종이 다급히 말했다.
“도야께서 천하 수행자들을 이주시키려 한다는 이야기가 천하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제가 무슨 도움을 드려야 할지 몰라, 직접 여쭈러 왔습니다.”
이왕 왔으니 우유도도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내 우유도의 시선이 상조민에게 향했다.
“소왕야도 왔군요.”
봉약남이 미소 지었다.
“이 아이가 사람의 얼굴을 분별할 수 있을 때 도야께서는 은거에 드셨지요. 덕분에 아직도 도야의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오늘 이렇게 도야께 인사를 올리려 데려왔습니다.”
봉약남은 바로 아들의 등을 살짝 밀었다.
“민아, 이분이 도야시다. 네 이름은 도야께서 지어주신 거야. 도야께선 장차 네가 큰일을 하길 바라며 그 이름을 지어주셨다. 어서 인사드리렴.”
상조민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민아, 도야를 뵙습니다. 제게 이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도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커서 백성을 위해 살겠습니다.”
우유도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참으로 속이 깊은 아이 같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군요.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우유도는 기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유도가 상조민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고, 상조종과 봉약남도 남몰래 시선을 맞추며 기뻐했다.
이윽고 상조민은 원강 등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언행도 예의 바르고, 말하는 모습도 참으로 야무졌다. 그 똘똘하고 귀여운 모습에 주위 어른들 모두가 칭찬하기 바빴다.
사실 지금 상조민이 하는 말은, 이곳에 오기 전 상조종 부부가 몇 번이고 미리 거듭해 가르친 말이었다.
그렇게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조웅가가 옆에서 헛기침했다. 따로 우유도와 할 말이 있다는 신호였다. 우유도는 관방의 등에게 손님 대접을 시키곤, 조웅가와 한편으로 멀어졌다.
상조종 부부는 하고 싶은 말이 가슴께까지 차올랐지만,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고 일단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 * *
산장을 떠난 두 상청종 제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기슭으로 향했다.
조웅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천하 수행자들을 제5 영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에 상청종도 포함이냐?”
우유도 역시 조웅가가 이 말을 꺼내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예, 포함입니다. 사숙과 저도 모두 가야 합니다.”
조웅가가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상청종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냐?”
“소문을 들었겠지만, 내버려 두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섯 세계 사이로 통하던 영기 통로가 막히면, 인간계에 남은 상청종은 결국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사숙은 줄곧 상청종을 부흥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계를 벗어나면, 상청종을 부흥시킨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반드시 그리해야겠느냐? 혹시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냐?”
우유도가 정색하며 조웅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보십시오. 조 사숙. 과거 영왕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동곽 사부와 당목이 암중에 도운 게 무엇 때문입니까? 저는 지금 동곽 사부가 남긴 숙원을 이루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상청종이 보기엔 딱해도 만약 인간계에 남은 유일한 수행계 세력이 된다면, 그 마음이 바뀌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까?”
“내가 있는 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 농담하는 것이지요? 정말 사숙이 천하무적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내가 구성을 죽일 수 있듯, 누군가는 사숙을 죽일 수 있습니다. 밤낮으로 경계한들 상청종 내부는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숙을 탓하는 건 아니나, 사숙이 비밀을 지키는 건 대단할지 몰라도, 이익에 눈먼 천하 사람들을 통제하는 건 사숙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조 사숙, 사심을 위해 이러지 마십시오. 이건 스스로와 주변을 해칠 뿐입니다. 성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동곽 사부와 당목이 어찌 죽었는지도요. 전란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억울하게 죽은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중에 또 누군가 상청종을 남김없이 다 죽이길 바라는 겁니까?”
“…….”
조웅가는 침묵했다.
“상청종을 데리고 제5 영역으로 가십시오. 부흥시키고 싶다면, 그곳에 가서 부흥시키십시오. 제5 영역에 간다면, 사숙과 우리 초려산장이 있는 한, 상청종도 빠르게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한 지역을 제패하는 것으로 부족합니까? 상청종 홀로 다섯 세계를 다 제패하기라도 하겠단 겁니까? 너무 욕심부리지 마십시오.
제5 영역에 가면 당신들끼리 서로 싸우든, 죽이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인간계의 천하 창생을 말려들게 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구역을 정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노십시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조웅가가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리끼리? 여전히 상청종을 배척하는 것이냐?”
“저 때문에 무수한 이가 죽었습니다. 제 손에 핏물이 가득합니다. 씻을 수도 없지요.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전 인과응보를 믿습니다. 상청종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저는 그저 방관만 할 뿐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 수많은 시시비비에서 멀어질 겁니다.”
조웅가가 웃었다.
“강호를 거니는데, 그런 것들이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더냐. 제5 영역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더냐. 어디 그때 가서 시시비비를 피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꾸나.”
조웅가는 그대로 뒤돌아섰다.
이내 우유도는 빙그레 웃으며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