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화. 인간계와 호선경의 통로가 끊기다
물가 정자에 있는 우유도를 발견한 진관과 가정걸은 크게 흥분한 얼굴로 이동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제자, 장로님을 뵙습니다!”
우유도는 미소를 짓다가 이내 탄식했다.
“여기서 시간 끌 필요 없이 이대로 돌아가라. 자금동으로 돌아가거라.”
둘은 시선을 교환하다, 진관이 먼저 나섰다.
“장로님, 저희 둘은 앞으로도 장로님을 따르겠습니다.”
우유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너희 둘이 할 일이 없다. 지위도 높지 않아 복을 누리기도 어렵지. 그러니 자금동으로 돌아가거라. 앞으로 자금동은 너희를 통해 초려산장과 교류하려 할 테니, 너희에게 합당한 지위를 내리고 우대할 것이다. 이 또한 너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답이겠지. 그러니 가거라.”
우유도는 곧 단호에게 이 둘을 위한 날짐승 한 마리를 안배하라 명했다. 그렇게 둘은 우유도와 작별 인사를 했다.
왠지 그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우유도와의 관계만으로도 이제 둘은 자금동에서의 앞날이 탄탄대로일 게 분명했다.
“도야.”
화봉황이 도착했다. 그녀 또한 우유도에게 예를 올렸다.
“자기 사내가 보고 싶어 조급하겠지. 난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 봐.”
우유도가 놀리듯 이야기하곤 오삼양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오삼양이 화봉황을 데리고 정자를 벗어났다.
우유도는 오삼양에게 화봉황이 곤림수의 금제를 풀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오삼양도 우유도의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 다음에야 흑운이 크게 웃으며 호족 장로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인간계에 처음 와본 이들은 모두 크게 흥분한 얼굴이었다.
긴 대화를 나눈 우유도는 원강의 손에서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금속 자를 받아 흑운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원 진국의 진국 신기 양천척이오. 이걸 가지고 호선경으로 돌아가시오. 황택사지에 솟아난 탑 꼭대기에 움푹 파인 곳이 있을 것이오. 그곳에 양천척을 끼워 넣으면 호선경과 인간계 통로가 자연스럽게 단절될 것이오. 이제 앞으로 호선경은 호족의 것이 될 것이오. 이는 노족장과 한 약조요.”
노족장의 언급에, 흑운 일행은 다소 침울해졌다.
이에 우유도가 즉시 화제를 돌렸다.
“물론 아직은 두 세계를 끊으면 안 되오. 안에 있는 인간계 수행자들이 모두 철수한 후에 끊어야 할 것이오.
그대들은 돌아가 즉시 모든 호족을 동원해 호선경 각지로 가서 살펴보시오. 만약 인간 수행자의 흔적을 발견하면 즉시 보고하시오. 우리 쪽에서 사람을 보내 모두 쓸어 버릴 것이오.
나중에 두 세계의 통로를 끊어 버린 후에도, 그대들은 경계하고 방비해야 하오. 숨어있는 인간 수행자가 하나도 없다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소.”
흑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야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흑운의 말투는 아주 정중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고도 뭔가 망설이는 얼굴이었다. 우유도는 바로 그 표정을 알아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하시오.”
흑운은 좌우를 한번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번에 급히 오느라, 호선경에서 이곳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저희는 아직 인간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인간계의 북적거림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돌아가 호족에게 들려줄 말도 있으니 말입니다. 또 인간계의 물건도 좀 가지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유도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시오. 어차피 각 세력이 전부 호선경에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니, 이번 기회에 인간계를 제대로 경험해 보시오. 하지만 한가지 약속해야 할 것은, 구경한 후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인간계 수행자는 호선경에 남지 않을 것이오. 마찬가지로 호족도 인간계에 남아서는 안 되오.”
흑운 일행은 크게 흥분했다.
“좋습니다. 그냥 구경만 하는 겁니다. 반드시 돌아갈 것입니다.”
이어, 우유도가 흑운이 든 양천척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거. 만약 인간계를 둘러보고 싶다면, 일단 그 물건은 여기 두고 가시오. 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내주겠소. 인간계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소. 행여 이 양천척을 잃어버렸다간 두 세계의 통로를 끊을 수 없을 것이오. 나중에 인간계 수행자들이 호선경에 밀고 들어가 악행을 행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5 영역 외에 다른 세계의 통로를 끊어내지 않으면, 제5 영역과 인간계의 통로를 끊어낼 수 없었다. 대충 볼 일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흑운이 양천척을 두 손으로 내밀자, 원강이 나서서 거둬들였다. 그러다 흑운이 문득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수행자가 호선경에 들어와 악행을 할까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야께선 모든 수행자를 제5 영역으로 이주시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유도는 구체적인 내용을 건너뛰고 말했다.
“호선경과 마찬가지 상황이오. 인간계 수행자가 너무 많소. 당연히 숨어있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지. 그 모두를 다 데려가는 건 불가능할 것이오.”
흑운 일행도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하고, 당부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 * *
우유도는 날짐승 몇 마리를 준비시키고, 몇몇을 함께 보내 호족과 번화한 인간계 도시를 둘러보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떠난 흑운 일행은 대략 보름간 인간계를 둘러보았다.
이후 그들은 초려산장이 아닌, 인간계에서 구매한 수많은 물건을 등에 지고 곧장 성경으로 돌아갔다.
호족과 같이 움직이던 인원은 돌아와 우유도에게 흑운의 전언을 전했다. 우유도의 말이 일리가 있다며, 양천척은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물건이기에 일단은 우유도에게 맡겨두겠다고 했다. 호족이 먼저 호선경을 확실하게 수색한 후, 다시 양천척을 가져가도 늦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미 요호족이 총출동해 혹시 숨어있는 인간은 없는지 호선경을 샅샅이 뒤진 터라, 성경에 숨어든 성존의 여당들은 모두 철수한 상태였다.
이에 호족은 인간 수행자를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최소 성존의 여당들은 다 떠난 뒤였다.
곧이어 호족 쪽에선 통로를 끊어도 될 것 같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우유도도 호족을 다시 초려산장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 * *
성조, 성경으로 통하는 입구.
이곳은 이미 사해의 요수들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었다.
우유도는 성벽 안에서 다시 흑운 일행과 만났다. 호족 장로 대부분이 우유도를 보러 나온 상태였다.
이번에는 우유도가 직접 흑운의 손에 양천척을 쥐여주었다. 나름 호족과 진지하게 작별 인사를 청하는 것이었다.
흑운은 두 손으로 양천척을 받아들고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도야, 앞으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습니까?”
우유도가 미소 지었다.
“모르겠소. 다만 다시는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그러고 보니, 나방비는 어쩔 것이오? 인간계로 돌려보내지 않을 생각이오?”
나방비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었다.
흑운은 좌우의 호족 장로들을 돌아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호선경에 남아 있는 게 나을 듯합니다. 그녀의 몸에 호족의 피가 흐르고, 그 피는 노족장의 혈통입니다. 노족장의 전승은 이미 끊겼습니다. 우리 호족은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 있어, 쉽게 포기할 수가 없군요. 당연히 잘 보살필 것입니다. 그녀의 모친, 부친, 남편 모두 호선경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녀 홀로 인간계에 남겨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부탁하는 말투였다. 우유도도 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그럼 이만 헤어집시다. 가보시오!”
흑운은 양천척을 들고 뒷걸음질로 물러나더니 갑자기 그대로 무릎을 꿇고 우유도에게 3번 절을 올렸다. 이를 본 호족 장로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 다들 우유도에게 절을 올렸다.
우유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딱히 말은 보태지 않았다.
흑운 일행도 말이 없었다. 모든 건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흑운은 일행을 이끌고 뒤돌아 멀어져갔다.
물결치는 빛의 파동으로 들어간 흑운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그가 뒤돌아서자, 장로들도 모두 멈춰서서 뒤돌아섰다.
일행은 마지막으로 허리를 깊이 숙여 우유도를 향해 존경을 표했다. 우유도는 고개를 끄덕였고, 흑운은 그제야 일행과 빛의 파동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후로 우유도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성벽에서 잠시 머물렀다.
* * *
이틀 후, 천지간에 굉음이 들리더니 성벽 내부 둥근 반원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빛의 파동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점차 빠르게 수축해 한 점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로써 수백 년을 존재한 인간계와 호선경의 통로가 끊겼다.
그곳을 지키던 요수들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크게 두려워했다. 그제야 다섯 세계가 모두 단절된다는 게 사실임을 절감한 것이다.
우유도는 천천히 빛무리가 사라진 곳을 거닐었다. 뒷짐을 지고, 끝없는 창공을 바라보다가 홀연히 손을 들고 손에 낀 지령을 흔들었다.
그 즉시 하늘에서 날짐승 한 마리가 땅으로 비행했다. 우유도는 은아의 팔을 잡고 함께 날아올라, 날짐승을 타고 저 하늘 너머로 사라져갔다.
* * *
초려산장.
우유도의 거처를 직접 지키고 있던 원강이 뒤돌아보았다. 마침 관방의와 운희도 잇따라 나오고 있었다.
원강이 즉시 뒤돌아 둘에게 적극적으로 물었다.
“어찌 되었소?”
두 여인이 웃으며 뒤를 돌았다. 원강은 그 시선을 따라가, 건물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상숙청을 보았다.
지금 상숙청은 그야말로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피부는 더욱더 부드러워졌고, 몇 살은 더 젊어진 듯했다.
“원야.”
상숙청이 원강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분명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도 원강은 두 사람에게 내내 갖었던 의문을 표했다.
“왜 이렇게 늦은 것이오?”
무량과로 육신을 재구축하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숙청은 족히 3달 만에야 성공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안에서 분명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여길 뻔한 시간이었다.
이내 관방의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둘이서 다른 사람의 육신을 느끼고, 신중하게 조금씩 진행했어. 군주를 위해서. 그게 얼마나 힘든데. 빨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상숙청은 매우 당황해, 두 사람 앞에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두 분께 폐를 끼쳤어요.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운희가 미소를 지었다.
“홍랑의 말은 흘려들으세요. 그것보다 지금 몸이 어떤지 한번 느껴보세요. 만약 이상한 부분이 있거나,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빨리 말해주세요. 아직 약효가 다 사라지기 전이니, 문제가 있다면 조정할 수 있을 거예요.”
상숙청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조심히 물었다.
“도야는 어디 계시나요?”
“일이 있어 나가셨습니다. 아마 곧 돌아오실 겁니다.”
원래 원강은 우유도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산장에 운희도, 관방의도 없으니 힘 있는 사람 누군가는 산장에 남아야 했다. 그렇게 우유도는 원강을 산장에 남겨두었다.
“군주님, 언니 말대로 한번 움직여 보세요. 혹시 뭔가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봐요. 몸의 느낌은 우리가 법력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상숙청이 대답과 함께 세 사람에게 예를 올리고 그곳을 떠나갔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마자, 관방의가 약간 짜증을 냈다.
“도야가 돌아오면, 반드시 우리에게 큰 보상을 해줘야 할 거야. 도야의 여인을 위해 우리 둘 다 힘들어 죽을 뻔했다고.”
원강이 차갑게 응수했다.
“도야의 희생이 두 사람보다 더 크오.”
관방의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
“무슨 희생? 고생은 우리가 하고, 도야는 미인과 행복할 날만 남았는데.”
원강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정말로 이 세상에 무량과가 더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원강은 그대로 성큼성큼 떠나버렸다. 관방의와 운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넋을 잃었어도, 원강의 말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관방의는 돌연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