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화. 도야, 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원강의 거처에 귀여운 아이가 늘어났다. 덕분에 원강의 거처에서 웃음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여무쌍은 손을 잡고 두 걸음쯤 걸을 수 있는 아이가 귀여워 죽으려 했고, 풍관아의 얼굴에도 자주 미소가 비쳤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무렵, 산하정이 초려산장으로 배달되었다.
우유도는 물가 정자 안, 서탁에 앉아 산하정을 가지고 놀았다.
한국이 투항했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은 투항했다. 상조종은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 쪽 크고 작은 이익 단체들은 목숨 걸고 싸워도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상조종이 절대적인 우위였다. 그대로 계속 싸우다간 생고생만 하게 될 게 자명했다. 결국은 상조종에게 크게 양보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연국이 칠국을 모두 통일했다.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산하정을 받은 후, 우유도는 원강과 상숙청, 은아를 데리고 초려산장을 떠났다. 일행은 접몽환계로 향했다.
상숙청을 데려간 건 접몽환계의 환상적인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은아의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또 상숙청과 은아의 관계를 고려해 제대로 작별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도 있었다.
* * *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세계였다.
웅웅-
산 위에 솟아오른 석대가 소리를 내며 땅속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큰 소란이 일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접나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산 아래로 빨려 들어간 석대가 땅속 깊은 곳에서 난리를 치는 것 같았다. 주위의 산들이 무너져 내리며 굉음을 토해냈다.
산 아래, 반쯤 무너진 상찬 행궁은 천지가 개벽하는 듯 무너져 내리고, 결국은 동으로 만들어진 성나찰의 대전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궁전 내부에선 은아가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이 거대한 진동에 절로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우유도 때문에 기절해있던 상태였다.
이윽고 소란이 멈췄다. 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폐허가 된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피어오르는 먼지와 같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접나찰들뿐이었다. 은아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도!”
우유도를 찾던 은아는 갑자기 코를 벌름거리더니 다시 대전으로 들어가 바닥에 놓인 큰 자루를 열었다. 안에 구운 닭 다리가 가득했다.
은아는 닭 다리를 하나를 꺼내 크게 베어 물곤, 다시 킁킁거리며 다른 자루를 열어 보았다. 그곳에도 닭 다리가 가득했다.
그렇게 자루들을 모두 열어 보니, 닭 다리와 평소 은아가 자주 즐겨 먹던 간식들이 들어 있었다. 우유도는 은아에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주었다.
은아는 양손에 닭 다리 하나씩을 들고 대전을 나갔다. 입으론 연신 닭 다리를 오물오물 씹으며 폐허 속을 거닐었다.
“도도……, 청청…….”
찾을 수 없었다. 손에든 음식도 다 먹었다. 은아는 차마 멀리 갈 수 없었다. 다시 쪼르르, 대전으로 돌아온 은아는 먹을 것 옆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계속 두 사람을 찾았다.
“도도, 청청, 둘 다 못 찾겠어……. 도도, 청청, 은아 여기 있어……. 도도, 청청, 은아가 기다리고 있어…….”
* * *
접몽환계 밖에서도 굉음이 울렸다. 대지가 진동하고, 접곡 안에 있던 빛의 파동 또한 크게 흔들리다가 한 점으로 빠르게 수축해 사라졌다. 더 이상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이제 두 세계를 연결하던 통로는 철저하게 사라졌다.
그 모든 것을 목도한 상숙청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야, 이제 은아는……. 다시는 못 나오는 건가요?”
우유도가 담담히 말했다.
“군주는 이제 은아의 내력과 신분을 알지 않나요? 은아를 가여워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은아가 속한 세계가 아닙니다. 여긴 은아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지요. 저 세계야말로 진정 은아가 속한 세계입니다.
은아는 저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 있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은아를 우리 곁에만 두고 멍청한 먹보로 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상숙청은 그렇게까지 모든 걸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빛의 장막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유도도 상숙청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한쪽에 있는 원강에게로 향했다.
“대량의 인원이 제5 영역으로 이주하는 일은 네가 핵심이지. 이제 슬슬 무변사막으로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부터 옮겨. 홍랑도 보내줄게.”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뭔가 답답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인간계와 제5 영역의 통로를 끊을 건가요?”
“그럼! 당연한 것 아니야?”
“도야는 이향이 남긴 통로를 통해 돌아가려는 거죠?”
“그 통로 끝에 있는 곳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집이니까. 뭐야, 설마 돌아가기 싫은 거야?”
원강이 침묵했다. 입을 다물었다.
순간 눈빛이 변한 우유도가 굳은 얼굴로 뒤를 돌았다.
“무슨 뜻이야?”
원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도야, 전 돌아가기 싫어요.”
우유도는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원강을 쳐다보았다.
“……장난해? 돌아가지 않고 제5 영역에 남아 뭘 하려고?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잘 들어. 내가 저 수행자들을 모두 죽여버리지 않는 이상, 저들은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제5 영역이 아니에요. 인간계에 남고 싶어요. 도야. 전 이곳에 남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의미 있는 일은 개뿔! 네 그 이상을 말하는 거라면 당장 입 다물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어! 한 사람이 모든 걸 할 순 없어. 그 누구도 그럴 능력이 없다고!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주제를 모르는 거야!”
원강이 고개를 숙였다.
“도야는 돌아가요. 저는 남겠어요.”
우유도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지금까지의 형제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도야,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돌아간다면 제가 뭘 할 수 있죠? 그래봤자 원래 하던 그 일 아닌가요? 그것도 아니면 먹고 싸면서 죽길 기다리는 건가요? 그 세계는 이런 모습의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우유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세계도 네가 필요하지 않아! 천하를 얻기는 쉬워도, 천하를 경영하는 건 어렵지. 원숭아, 잘 들어라. 인간계는 통일됐어. 이제 남은 건 이익을 분배하는 거야. 그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보다 훨씬 더 위험해! 네가 가진 완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알겠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평생 돌아갈 수 없어, 내 말 알아들어?”
원강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우유도를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도야,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그런 이익분쟁에 뛰어들지 않을 거예요. 저는 단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도야는 돌아가세요. 앞으로의 길은 제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우유도는 이제 거의 넋이 나간 듯 원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우유도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애썼는지 너도 다 알 거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어렵게 맞이했는데. 네가 정말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도야, 전에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했었죠. 결국 자신의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거라고.”
“좋아, 내가 했던 말로 내 입을 막으려고 한다 이거지. 정말로 확고하게 결심을 내린 것 같네.”
“도야!”
원강은 진심을 담아 우유도를 불렀지만, 우유도는 고개를 돌린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상숙청에게 걸어가, 담담히 위로했다.
“군주, 은아는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우리 형편엔 보살피기 어려워요.”
우유도의 실없는 농담에, 울고 있던 상숙청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 * *
일행이 다시 초려산장으로 돌아온 후, 우유도는 즉시 관방의와 남천무방을 찾아, 제5 영역 이주를 맡은 원강을 돕도록 했다.
여무쌍도 원강 혼자선 힘들 수도 있으니, 두 제자 안유아와 유비성을 보냈다. 그렇게 무쌍성지의 사람들도 원강의 힘이 되어 주었다.
다들 무변사막으로 떠난 뒤, 우유도는 여무쌍을 불렀다. 둘은 함께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 * *
“무슨 일이지요?”
여무쌍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우유도는 두 손으로 검을 지팡이 삼아 짚고, 천천히 입을 뗐다.
“원숭이가 제게 제5 영역에 가지 않겠답니다. 인간계에 남겠다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무쌍은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그는 줄곧 도야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이었어요. 도야조차 그를 설득할 수 없다면, 제가 뭐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설득할 생각이 없습니까?”
여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들 고민이 없을까요. 결국 어디를 가든 똑같겠지요. 그가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도야가 했던 말이지요. 마음이 편한 곳이 바로 고향이다!”
“마음이 편한 곳이 바로 고향이다…….”
탄식 같은 중얼거림을 내뱉던 우유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깊은숨을 들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풍관아는, 계속 곁에 하인으로 놔둘 겁니까?”
“그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도야는 신경 쓰지 마세요. 청백리도 자신의 집안일은 어쩔 수 없는 법이지요. 풍관아 일은 그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예요. 그렇게 자연스러워지면, 문제 될 게 없지요. 아직도 그 사람 성정을 모르나요? 제 손에 인질이 없다면, 절대 쉽게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제기랄, 그 자식이 여기 남으려는 게 설마 두 번, 세 번씩 결혼하고 싶어 그런 건 아니겠지!”
우유도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너무 작은 소리에 아무것도 듣지 못한 여무쌍이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우유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됐습니다. 당신이 곁에 있으니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경 써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신경을 안 쓸 리가 없지 않겠어요? 그런 사내를 만났는데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요.”
* * *
여무쌍이 떠나고도, 우유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원래부터 그는 인간계에 남겨놓을 사람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의심할 것도 없이, 분명 놓친 물고기가 있을 터였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들어 인간계에 남아있는 수행자들이 있을 텐데, 어쩌면 그 수가 꽤 될 수도 있었다.
혼란을 방지하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바로 누굴 남기느냐는 것이었다.
이제 원강이 알아서 남겠다고 했다. 문제는 단번에 불식되었다. 원강의 힘이라면 은거한 수행자들도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할 터였다. 거기에 조정 세력이 천라지망을 펼친다면 상당한 시간 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
“거기서 혼자 뭐 하는 거야?”
홀연히 운희가 나타났다.
우유도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원방에게 지금 즉시 날 만나러 오라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