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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899화 (998/1,000)

1899화. 새로운 시대의 탄생

“콜록, 콜록……!”

몇 번 기침을 한 나소안이 천천히 자리에 앉아 입가의 피를 닦아내는데, 갑자기 시야에 누군가의 발이 비쳤다. 고개를 드니, 딱딱하게 굳은 남약정의 얼굴이 보였다. 나소안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약정이 즉각 비틀거리는 나소안을 부축했다.

똑바로 선 나소안은 일단 뒤로 물러나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선생님.”

남약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대안에게 두들겨 맞았구나?”

나소안의 얼굴에 자조가 비쳤다.

“제자가 순간 돈에 눈이 멀어, 형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남약정이 냉소 지었다.

“돈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너를 모를까? 네가 겨우 그런 돈에 손 뻗을 사람이더냐? 소안, 난 네게서 낙 사부님의 풍모가 보인다고 칭찬했었다. 참으로 마음에 들었지. 또 네게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오늘 난 네게 크게 실망했다! 네게 가르친 것들을 올바르게 쓰지 않고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정말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이미 들켰음을 깨닫고, 나소안은 잠시 침묵하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천하를 얻기는 쉬워도, 천하를 경영하는 건 어렵지요. 선생님, 왕야께선 이제 천하에 군림하실 겁니다. 군주를 모시는 건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지요. 선부의 업적으로 왕야께선 형님을 중히 쓰고 계십니다. 무장 중엔 분명 형님께 중임을 맡기겠지요. 앞으로 형님의 지위는 계속 오르실 겁니다.

만약 우리 형제가 문무로 조정에 나선다면, 저는 선생님 세력을 등에 업을 것이고, 형님은 병권을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천하가 안정된다면, 왕야께서 그 상황을 달가워하실까요? 저는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러니 우리 형제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서로에게 짐이 될 것입니다. 제가 물러나면 왕야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으니, 형님의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나소안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용서해달라는 모습이었다.

남약정은 그런 나소안을 빤히 응시하다가, 냉소를 보였다.

“그럼 어디 평생 이 뇌옥에서 썩어 보아라!”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얻어먹은 것으론 절 오래 가두지 못할 겁니다. 몽 사령관님이 분명 아버지 체면을 생각해 나서주실 것이고, 왕야께서도 분명 저에게 과하게는 못하실 겁니다.

헤헤, 제 사부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형님 손에 병력이 있지요. 누가 감히 제 면을 세워주지 않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저는 그저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선생님, 힘들이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런 삶을, 과연 세상에 몇이나 누릴 수 있겠습니까?”

나소안이 허리를 펴며 웃었다.

남약정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뒤돌아 서글픈 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망나니 같은 놈! 고견성은 늙고 교활하고, 너도 여기서 꾀를 부리고, 심지어 그 자평휴조차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 만만한 이가 하나도 없어.”

나소안이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 자평휴는 점잖고 꾀가 적은 사람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오히려 그 가무군이라는 사람이 보통이 아닙니다. 반드시 조심하셔야 합니다.

또 선생님께선 아랫사람들을 자중시켜, 한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천하는 하나로 통일됐습니다.

여기서 만약 한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게 된다면……. 선생님께서 천하가 통일되자 좌우 승상을 밀어낸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왕야께서 거리낌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지금 자부로 가서 그들을 다독여야 합니다.”

남약정은 감옥을 등지고 잠시 서 있다가, 뒤돌아 제자를 바라보았다. 두 눈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동안 제자를 바라보던 남약정은 잠시 후에야 천천히 밖으로 떠났다.

남약정이 떠나고, 옥졸이 다가와 옥문을 닫았다.

이제 제5 영역으로 이주하는 일도 끝이 보였다. 동시에 새로운 황좌의 주인을 맞을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탄생이었다. 더 이상 천하에 전쟁은 없었다. 최소한 백성들에겐 그리 선전했다.

확실히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식이었다. 설령 눈앞의 생활이 아무리 어렵다고 한들, 언젠가 살기 좋은 날이 오리라 희망하며 오늘을 버텨갈 힘이 생겼다. 그렇게 한순간 온 세상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 *

도화원.

저녁노을처럼 찬란한 도화 나무 아래, 상숙청이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눈앞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가득했다. 상숙청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는 꽃잎을 하나 받아 들었다.

우유도가 돌아왔다. 5년간 머물다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던 바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젠 상숙청 곁에서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 또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이군요.”

상숙청은 우유도를 보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운 눈빛엔 그와 처음 만난 그날이 떠올랐다. 도화 나무 아래, 느긋하게 잠을 자던 우유도…….

다시 고개를 들어 찬란하게 빛나는 도화를 바라보던 상숙청이 마치 꿈속에 있는 듯 황홀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름다워요!”

가만히 그녀를 보던 우유도는 홀연 먼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곧 제5 영역으로 떠날 겁니다. 이 세계를 떠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요.”

상숙청이 깜짝 놀라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눈빛이 매우 복잡해 보였다. 그 안엔 두려움도 가득했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우유도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상숙청을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일전에 군주에게 물어본 질문에 아직 답을 듣지 못했군요. 오늘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와 평생을 함께해줄 수 있겠습니까?”

상숙청은 우유도가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줄 알았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에, 다시 상숙청의 볼이 발그스레하게 달아올랐다.

우유도가 다시 말을 바꿔 물었다.

“군주는 나와 같이 가길 원합니까?”

상숙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야만 괜찮으시다면요.”

우유도가 미소 지었다.

“이렇게 떠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군주는 여기에 남아있는 친족들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상숙청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차분히 이야기했다.

“저는 상 가의 딸로서 가문에 책임을 다했습니다. 오라버니는 곧 천하를 경영할 테니, 제가 여기 남는 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요.”

이내 우유도가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날짐승 한 마리가 날아와 절벽 아래쪽에서 맴돌았다.

우유도는 상숙청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숙청은 부끄러운 듯 우유도를 한번 보고, 그 부드러운 손으로 우유도의 손을 맞잡았다. 마치 어떠한 의식 같았다. 손과 손이 맞닿은 순간, 진정으로 평생을 함께할 길에 오른 듯했다.

상숙청의 손을 꼭 잡은 우유도는 법력을 펼쳐 절벽 밖으로 뛰어내렸다. 둘은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꽃잎처럼, 홀연히 날짐승 위에 내려섰다.

떠나기 전, 우유도는 상청종을 한번 돌아보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떠날 때군요.”

상숙청이 물었다.

“그냥 이렇게 가나요? 원방과 다른 사람들과 작별 인사는요?”

“와 봤으면 됐습니다.”

우유도가 다시 소매를 흔들자, 날짐승은 두 사람을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뒤로 수많은 까마귀 장군이 행렬을 이었다.

“도야! 도야…….”

원방이 날아올라 한 산봉우리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원방은 민머리만 긁적였다. 온다고 한마디 말도 없더니, 갈 때도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 * *

무변사막.

초려산장 사람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종곡자를 비롯해 연금되었던 사람들도 모두 모였다. 조웅가도 상청종 사람들을 이끌고 대기 중이었다.

원강은 그들에게 먼저 제5 영역에 들어가라고 했지만, 조웅가는 거절하고 상청종 사람들과 함께 기다림을 택했다.

대량의 갈황들도 조용히 사막에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원강은 삼후도와 봇짐을 하나 짊어지고, 주변에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위에 올라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관방의가 돌연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왔어.”

사람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새까만 먹구름이 가까워지더니 회오리바람처럼 지상에 내려앉았다.

우유도는 상숙청의 손을 잡고 날짐승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다 모였나?”

“다 모였습니다.”

상청종 사람들은 간절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문인 당희는 세월이 비껴간 듯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의 시선은 우유도와 상숙청의 꼭 잡은 손으로 향했다가, 다시 상숙청의 얼굴로 향했다.

소문은 들었다. 군주가 본 용모를 회복하고 아주 아름다워졌다고 했다. 과연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우유도는 상숙청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놓아 주었다.

상숙청은 뒤돌아 사막을 빼곡하게 덮은 까마귀 장군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듣기 좋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대장군이 여기 있다. 제장들을 명령을 받들라. 천하가 태평하니 모두 갑주를 벗고 돌아가라!”

펑! 펑!

사방에 무수한 까마귀 장군이 안개를 뿜으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게 사막 위에 거대한 군세가 나타났다.

웅웅-

까마귀 장군 수장을 시작으로 모두가 상숙청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른 사람은 누구도 이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상숙청만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흘렸다.

곧 까마귀 장군 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온몸이 안개처럼 빠르게 흩어지더니, 결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막엔 오직 그의 패검과 입고 있던 갑주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이어서 거대한 대군이 모두 안개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허공으로 서서히 사라지던 끝에, 어김없이 지상엔 병기와 갑주만이 남았다.

‘상’자 왕기가 바람에 멀리 날아갔다.

이를 본 사람들은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부분 이게 다 무슨 일인지도 몰랐지만, 그야말로 충격적인 장관이었다.

우유도는 다시 상숙청의 손을 잡고 원강을 돌아보았다.

“가자.”

원강이 뒤돌아 소리쳤다.

“출발!”

사람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 갈황의 등 위로 분분히 올라탔다.

곧이어 원강이 소리치자, 집단을 이룬 갈황이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더니, 돌연 사막에 머리를 박고 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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