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화. 내게 국사가 있으니, 천하무쌍이로다!
다시 사막에서 튀어나왔지만, 눈앞엔 여전히 사막이 있었다. 하지만 저 하늘의 태양이 이곳이 다른 세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온 사람들은 연신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하……!”
원강이 다시 소리치자, 갈황들이 다시 한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주한 갈황들은 과거 석대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다만 지금은 더 이상 석대를 볼 수 없었다.
원강은 저 멀리 있는 녹주를 기준으로 방위를 잡고 소리쳐 갈황들을 멈췄다. 갈황 대부분은 곧 땅을 파고 사라졌고, 모든 이가 갈황에서 내렸다.
그러나 원강과 우유도 등이 탄 갈황은 원래 자리에 남아있었다.
다들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대다수는 여기 멈춰선 이유도 알지 못했다.
이윽고 원강이 뒤돌아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풀어 우유도에게 건넸고, 우유도는 천천히 그 봇짐을 건네받았다.
“우리가 형제로 지낸 시간이 몇 년이야. 정말 다시 고민해보지도 않을 거냐? 지금이라도 아직 늦지 않았어.”
원강은 묵묵히 봇짐에서 꺼낸 보검을 허리에 달았다. 8개 진국신기 중 파공검이었다. 그의 태도를 확인한 우유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상숙청의 손을 잡고 갈황에서 뛰어내렸다.
“도야, 부디 몸조심하세요! 가자!”
원강이 소리치자, 발아래 갈황이 방향을 바꿔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그런 원강의 뒷모습을 지켜보았고, 원강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조웅가가 다가와 물었다.
“어딜 가는 것이냐?”
“인간계로 돌아가 통로를 끊을 것입니다!”
조웅가가 흠칫 놀랐다.
“그럼 돌아오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우유도는 덤덤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몇 년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그저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 * *
갈황은 사막을 미친 듯 달리고 있었다.
전방에 서서히 높게 솟은 석대가 보였다.
석대 아래 멈춰선 갈황 위에서 원강은 관성을 이용해 뛰어올라 석대 중턱에 내려섰다. 그 길로 빠르게 기어올라 꼭대기에 멈췄다.
이내 석대 위 모래를 열심히 쓸어 낸 그가 위로 뛰어올랐다.
챙!
파공검을 뽑아 든 원강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검 끝을 아래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온 힘을 양손에 응축시켰다.
하지만 원강은 숨을 헐떡거리기만 할 뿐 오랫동안 검을 내리꽂지 못했다. 석대 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모든 힘을 다 쓴 듯했다.
“으악……!”
한참이 지나, 거대한 고함과 함께 원강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마침내 석대 꼭대기 파인 곳에 보검을 꽂았다.
우르릉!
하늘에서 은은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눈 깜짝할 새 허공에서 먹구름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천둥 벼락같은 기세가 일어나자, 원강은 그대로 석대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꼭대기 3번째 계단에 내려섰다.
천지간 구름과 바람이 넘실거렸고, 원강의 옷이 바람을 따라 힘차게 펄럭였다. 이내 원강은 갈황을 타고 달려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석대 아래 있던 갈황은 이미 깜짝 놀라 사막으로 들어간 뒤였다.
쾅!
한줄기 벼락이 하늘을 가르고 내려와 파공검 손잡이에 적중했다.
쾅! 쾅! 쾅!
벼락이 연달아 내리꽂혔다.
원강의 뒤로 계속해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 빛줄기에 원강의 신체가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천신이 강림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굳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원강은 미동도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뢰 곁에 서 있었다.
대지가 진동하며 석대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꼭 누군가 원고 시대의 괴수 등에 올라타 천천히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 *
제5 영역 사막 한 곳에서도, 바람과 구름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허공에서 어마어마한 먹구름이 뿜어져 나와 모여들고, 천둥 벼락이 내리쳤다.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이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 내는 듯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대경실색했다.
“시작됐군.”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유도가 홀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곤 행여나 상숙청이 무서워하진 않을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당희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친 당희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내 우유도는 상숙청의 손을 놓고, 당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다들 고개가 우유도를 따라 움직였다. 상숙청의 시선도 눈앞의 사람을 쫓고 있었다. 상청종 사람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너무 많은 눈이 지켜보는 것을 보고, 당희가 다소 난감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우유도는 매우 감개무량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웃으며 이야기했다.
“당신이 날 미워할지 어떨지 모르겠군. 나는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싶지 않지만, 결국에는 일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어. 당희, 미안하군!”
당희는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상숙청의 곁으로 돌아간 후였다. 지금 우유도는 고개를 들고 회오리치는 먹구름을 보고 있었다.
운희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뭘 기다리는 거야?”
그 말이 끝났을 때, 회오리치던 먹구름 중앙에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검은 구멍 속엔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몹시도 기이한 느낌이었다.
우유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기다려보니, 하늘의 이상 현상이 고정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는 즉, 저 기이한 검은 구멍이 곧 통로라는 의미였다.
이에 우유도는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에, 상숙청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상숙청은 매우 부끄러웠지만, 그의 손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홍랑, 우릴 저기로 보내줘.”
우유도가 뒤돌아 말했다. 그러나 관방의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우물쭈물하고만 있자, 다시 크게 소리쳤다.
“빨리! 시간이 없어.”
방금 저것이 통로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지체했다.
관방의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우유도의 팔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라 회오리 중심으로 쏘아져 나갔다.
아래 있는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모든 걸 지켜보고 있어도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회오리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유도가 뒤를 돌았다.
“날 밀어 넣어주고, 홍랑은 돌아가.”
관방의는 뭐라 말도 보태지 않고, 습관적으로 명령에 따랐다. 날아오르는 기세로 최대한 힘을 내 두 사람을 앞으로 밀어냈다.
순간 세 사람은 양쪽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우유도는 그 힘을 빌려 법력으로 비행하며, 마치 전설 속 대붕처럼 상숙청을 껴안고 빠르게 날아올랐다.
두 사람이 그 기이한 형상의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진 후, 관방의는 다시 땅에 내려섰다. 운희는 바로 가까이 다가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꿍꿍이인 거야?”
공중에 나타난 기이한 형상의 검은 구멍이 갑자기 또 사라졌다. 더 이상 천둥 벼락도 치지 않았다. 꿈틀거리던 먹구름도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고, 당연히 허공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 대부분 얼굴이 급변했다.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남천무방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화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 * *
새로운 도성에 성대한 즉위식이 열렸다.
몽산명은 현재 성루 위, 륜의에 앉아있었다.
그는 이미 기력이 크게 쇠한 상태였다. 전쟁이 없으니, 긴장도 풀렸고, 심신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졌다. 당연히 그 번잡한 즉위식 절차를 버티기 힘든 체력이었다.
몽산명은 혹시나 추태를 보일까, 즉위식 참석을 사양했다. 하여 지금 성루에 올라 멀리서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즉위식을 보던 몽산명은 천천히 잠이 들었다. 륜의 등받이에 사선으로 기댄 몸은 너무도 여위어 보였다.
잠시 후, 누군가 조심스럽게 잠든 그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흰 머리칼을 흩뜨렸다. 몽산명은 잠꼬대를 하는지 눈가에 작은 눈물이 서리며 누군가의 이름을 하나하나 입에 담았다.
“대두야, 용보야…….”
즉위식에 조금씩 어색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 * *
황궁, 대전 내부.
상조종은 황제의 의복을, 봉약남은 황후의 의복을 입고 나란히 상석에 앉아 백관의 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대전은 매우 조용했다. 두 부부는 상석에 조용히 앉아있었고, 아래 있는 백관들도 마찬가지로 조용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대전 밖에서도 환관들이 조용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뭔가를 살피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들 우유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이쪽에서 즉위식 길시(吉時)를 알려주었고, 우유도 또한 알았다는 대답을 보내왔었다.
우유도를 아는 이들은 중언부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우유도가 알겠다면 아는 것이니 더는 귀찮게 할 필요가 없었다. 본디 우유도는 줄곧 그처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들 우유도의 참여로, 상조종의 즉위에 명분을 분명히 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유도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오지 않는다는 답도 없었으니, 이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행여 기다리지 않았다가, 우유도가 뒤늦게 방문한다면 그를 두고 즉위식을 마음대로 끝내버린다는 것이 적절하진 않았다. 또 우유도가 상조종에게 명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누군가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때, 대전 밖의 환관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더니, 한 한관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와 옥좌 옆으로 올랐다. 그가 상조종에게 조용히 고했다.
“폐하, 원야께서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도야께서 이미 제5 영역으로 가셨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실 거라고 합니다.”
이미 제5 영역으로 갔다고? 함께 들은 봉약남이 아연실색했다. 상조종도 잠시 말이 없어졌다.
잠시 후, 상조종이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간절한 백관들의 얼굴을 보았다. 상조종은 환관을 손짓으로 물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조종은 단전에 힘을 주고 모두의 앞에 선포했다.
“내게 국사가 있으니, 천하무쌍이로다!”
백관은 손을 모아 온 마음을 다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 * *
복잡한 예식이 끝나고, 참여할 모든 절차를 치른 뒤 봉약남은 후궁으로 향했다. 또 백관의 부인들을 만나, 황후가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한 환관이 다급히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마마, 도야께서 사람을 시켜 선물을 보내오셨습니다.”
봉약남이 깜짝 놀랐다.
“어디 있느냐?”
“이미 마마의 궁전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봉약남은 즉시 목적지를 궁전으로 수정했다. 지금 당장 백관의 가족들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났다.
* * *
궁전으로 든 봉약남이 앞에 놓인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어서 열어 보아라!”
봉약남의 손짓에, 두 궁녀가 상자를 열었다.
안엔 빛나는 금화들이 가득했다. 봉약남은 깜짝 놀랐다. 우유도가 이처럼 세속적인 선물을 보내올 줄이야.
상자엔 서신도 하나 들어있었다. 봉약남은 망설임 없이 서신을 펼쳤다.
「청이는 내가 데려갑니다. 천하를 왕야께 드렸으니, 나는 왕야께 빚진 것이 없습니다. 왕비께 빌린 금화 1만 냥도 오늘 모두 다 갚았습니다. 부디 잘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창할 것 없는 몇 글자였다. 당황하던 봉약남은 우유도가 빚을 진 그 금화 1만 냥이 무엇이었는지, 서서히 그 기억이 떠올랐다.
옛일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쳤다. 강 위의 뗏목, 사기당한 혼인, 칼과 검의 그림자, 부부의 반목, 도움을 받고 이겨낸 고난…….
참으로 어렵게 지나온 세월이었다. 봉약남은 다시금 황후의 옷차림을 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끝끝내 과거의 빚을 잊지 않고 모두 갚은 후, 홀연히 떠나버렸다.
빛나는 차림의 봉약남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터진 눈물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은 오래 묵은 세월처럼, 그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