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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901화 (완결) (1,000/1,000)

1901화. 종장 (에필로그)

호선경.

성경의 본래 이름은 호선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멀고 먼 시간을 돌아온 끝에 원래의 그 이름, 호선경을 되찾았다.

무량원 역시 과거의 이름이 되었다. 이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일부 요호족의 거주지가 되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빗줄기로는 호족들의 숨바꼭질을 막을 수 없었다. 수풀 속을 오가며 뒹구느라 온몸이 물과 진흙으로 더러워졌지만, 기쁘기 그지없었다.

누각 위엔 이곳을 지키는 한 호족 장로가 뒷짐을 지고 내리는 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황택사지에 숨어 살던 지난날과 비교하자면, 지금은 완벽한 자유가 도래했다. 더 이상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바람도 좋고, 비도 좋고, 지금은 그저 유유자적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호선경과 외부 세계가 단절돼 영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됐기 때문일까. 호선경의 기후가 좀 비정상적으로 변한 듯했다.

장로를 포함한 다른 호족들은 호선경에 번개와 비가 점차 많아지고, 수시로 내리치는 천둥 벼락에 두려움에 떨었다. 호족의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예전의 호선경은 바로 이처럼 뇌우가 많았다고 했던가.

쾅!

별안간 천둥소리가 울리고, 빗속에서 뛰어놀던 호족들이 깜짝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건물로 피신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들 하늘의 천둥 벼락에 본능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천둥 벼락이 옅어지고, 비가 그쳤다. 곧바로 하늘도 맑아졌다.

호족은 다시금 사방으로 달려가 뛰어놀았다.

그중, 다른 호족에게서 도망치던 한 여우가 시냇물이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안에 있는 구멍에 몸을 숨긴 것이다.

그 순간, 여우가 멈칫했다. 구멍 안쪽 파괴된 나무뿌리가 있던 곳에, 작은 싹이 자라나 있었다. 새싹 위엔 이파리도 조금 돋아나 있었다.

비취 같은 색에, 영기가 자욱한 것 같은 기묘한 분위기였다.

여우의 눈이 서서히 커지더니, 구멍을 구르듯 빠져나갔다.

“아우~ 아우~”

여우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주위에 뛰어놀던 호족들은 하나둘 여우가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곧이어 천천히 달려온 호족들이 여우가 있던 구멍을 에워쌌다. 안엔 벽녹색 새싹이 선명하게 돋아나 있었다.

곧이어 그곳을 지키던 호족 장로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그도 구멍에 들어가 허리를 숙이곤 조심스럽게, 또 자세히 새싹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다른 식물이 아니었다. 이건 호선과수 뿌리에서 새롭게 자라난 새로운 가지였다. 호족 장로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무릎을 꿇은 그가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하늘이시여!”

* * *

방비각, 대나성지.

비단이 사방으로 몸을 늘어뜨리고,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는 곳에 한 여인이 고요히 누워있었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방비였다.

그녀가 내내 깊은 잠에 빠져있어도 호족은 늘 그녀를 세심히 보살폈다.

이리저리 고민하던 호족은 결국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여긴 나방비가 자란 곳으로, 그녀에게 익숙한 환경이었다. 어쩌면 이곳의 환경과 분위기가 나방비를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기댄 선택이었다.

호족에게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남은 길이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 시각, 나방비가 누워있는 곳 바깥의 계단에선 족장 흑운이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무량원에 있는 호족 장로가 소식을 전해왔다. 과거 호선과수가 수없이 자랐던 곳이자, 구성이 호선과수를 대대적으로 훼손한 그곳에, 하룻밤 새 호선과수 새싹이 땅을 뚫고 돋아났다고 했다. 심지어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었다.

“갑시다. 가서 한번 봅시다.”

흑운이 크게 흥분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쾅!

그런데 흑운의 손짓이 마치 하늘을 화나게 한 것처럼 별안간 한줄기 벼락이 하늘을 뚫고 내리꽂혔다.

흑운을 포함해 현장에 있는 호족들이 깜짝 놀라 분분히 고개를 들었다. 산 아래 뛰어놀던 호족들은 두려운 마음에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연이어 몇 번의 벼락이 쳤는지 몰랐다. 벼락은 서로 교차하며 정광을 번득였고, 어두운 대지를 밝게 비췄다. 꼭 요호족을 겁주려는 위협 같았다.

이 비정상적인 천둥 벼락에 현장에 있는 모두가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너무도 놀란 이들은 허둥지둥 거북이처럼 숨어들었다. 하늘이 왜 갑자기 이리도 진노했단 말인가.

콰광!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맹한 벼락이 분노한 거룡처럼 하늘을 스쳐 지났다. 그 순간, 하늘은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눈이 다 부실 정도였다. 그리고 굉음의 여파는 아직도 산천과 대지를 뒤흔들고 있었다.

“헉!”

그때였다. 누각 안에서 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흑운 등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가, 누각 안 침상 위의 한 인영이 몸을 일으키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잠시 멍한 얼굴을 한 흑운 일행은 시선을 교환하다가, 거의 날듯이 비단을 젖히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고, 만연한 기쁨이 온 얼굴로 퍼졌다.

침상 위, 깨어난 나방비가 앉아서 큰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한 것이, 얼핏 보기에 악몽을 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밖에선 계속해서 천둥 벼락이 끊이질 않았다. 그 덕분에 나방비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 흑운 일행이 비쳤다.

그렇게 천지의 아득한 위엄이 잠들어 있는 모든 걸 깨우고 있는 듯했다.

* * *

현세의 중국, 충칭.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이 청명한 공기를 가르고 택시 한 대가 언덕을 올라와 한 저택 앞에 멈췄다.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담벼락을 타고 오른 잇꽃이 담장 위를 가득 메우고 있어, 매우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곧이어 차 문이 열리고, 검은 손잡이의 지팡이부터 내렸다. 그 뒤로 한 남자가 땅을 딛고 섰다. 올백으로 올린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다소 좀 화려한 반팔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잠시 가만히 서서 눈앞의 별장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운동화에 청바지, 흰 민소매 상의를 입은 여자가 내렸다. 그녀 역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택시가 떠나며, 여자의 머리카락이 잠시 바람결에 흩날렸다.

여자는 드러난 어깨가 어색한지 계속해서 손을 들어 어깨를 가렸다. 선글라스도 만만치 않게 어색한 모양이었다. 행여 선글라스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수시로 선글라스를 받쳐 드느라 손이 분주했다.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팡이를 짚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저택을 빤히 살피고 있는 것을 보고, 여자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도야, 어기가 어디예요?”

남자는 우유도, 여자는 바로 상숙청이었다.

상숙청은 하늘에 있는 그 검은 구멍을 지날 때만 해도 이 기이한 세계로 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우유도는 이내 상숙청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집이지, 우리 집 중 한 곳이야.”

이윽고 우유도는 대문으로 다가가, 지팡이로 문을 두드렸다.

통통-

문 안에서 바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대문 옆 작은 문이 살짝 열리더니, 짧은 소매의 중국 전통 복장을 한 백발노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우유도를 한번 살펴보았다.

“선생님은 누굴 찾으시는 겁니까?”

우유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옅게 미소 지었다.

“노방(老方), 벌써 20년이 지났네. 당신도 많이 늙었어. 백발이 다 됐네.”

노방이라 불린 남자는 다시 우유도를 위아래로 살폈다. 이 낯선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얼떨떨한 마음에, 그가 다시 신기한 얼굴로 물었다.

“절 아십니까? 전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유도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상숙청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작은 문으로 들어온 그가 상숙청의 선글라스를 살짝 잡고 벗겨주었다.

노방은 순간 상숙청의 얼굴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거의 넋이 나가, 상숙청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다……, 당신…….”

우유도는 다시 지팡이를 들고 입구를 막아선 노방의 가슴을 짚었다. 그렇게 그를 옆으로 살짝 밀어낸 뒤, 상숙청과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옆으로 밀려난 노방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곧 어렵게 정신을 차린 그가 다급히 두 사람을 따라오며 소리쳤다.

“이보십시오, 두 분은 누구십니까! 누굴 찾아오신 겁니까?”

우유도는 이 저택에 아주 익숙하다는 듯, 상숙청의 손을 잡고 정원 사이 작은 지름길을 따라 거침없이 마루로 향했다.

그러다 도중에 우유도가 돌연 지팡이로, 본채 옆 작은 정원을 가리켰다.

“노방, 내가 심어둔 죽림은 어떻게 하고 이런 꽃을 걸 심어 놓은 거야? 나중에 다시 원상복구 해놔.”

노방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앞서가는 우유도를 보는 그의 눈빛이 언뜻 달라진 것도 같았다.

* * *

우유도는 상숙청을 마루로 데려갔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우유도가 벽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꽤 많은 사진이 걸린 곳이었다.

곧 뒤따라온 노방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누구십니까? 이러면 저도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유도는 설명하는 것도 귀찮은지, 노방을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상숙청을 데리고 사진이 가득한 그 벽으로 향했다.

그러나 상숙청은 노방의 반응이 신경 쓰였는지, 조용히 속삭였다.

“도야, 뭐 하시려고요?”

“내가 전에 만족스러운 답을 해줄 거라고 했던 거, 기억해? 내가 돌아온 이유 중에 이것도 포함돼 있어.”

우유도가 상숙청을 벽 앞으로 데려와 크게 인화한 사진을 짚었다.

한 고 사찰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가운데엔 자비로운 승려와 함께 있는 한 여자가 있고, 왼쪽엔 올백 머리를 하고 지팡이를 짚은 남자, 오른쪽엔 작고 말랐지만, 눈빛이 빛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아마 40년 정도 전에 찍은 사진일 거야.”

막 경고하려던 노방이, 정확한 시간을 짚은 우유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유도는 다시 지팡이를 들어 중앙에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다시 한번 잘 봐봐. 누군지 알겠어?”

그대로 굳어버린 상숙청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졌다.

“40년 전, 이 사람들은 한 고분에서 벽화 하나를 발견했어. 벽화엔 이 고 사찰이 언급돼 있었고, 이 사람들은 그대로 그곳을 찾았지…….”

우유도는 담담히 과거의 일을 풀어 놓았다. 승려의 예언에 대해, 또 사진 속 여자의 불행에 대해 차분히 과거를 회고했다.

승려의 예언이 이루어진 후, 지팡이를 짚은 남자는 가장 먼저 그 사찰에 가서 승려를 찾았고, 마침 입적하기 전의 승려에게 가타(*伽陀: 부처님의 공덕, 가르침을 찬미하는 노래 글귀)를 들었다.

옛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상숙청도 진지하게 경청했고, 옆에 있던 노방은 이미 넋을 잃은 채 이야기에 취해있었다.

승려의 가타를 듣고, 지팡이를 짚은 남자는 인과 윤회를 믿게 되고, 피안에 핀 꽃을 찾기 시작했다. 윤회를 끊어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한 고분에서 위험에 빠지고, 한 소년의 몸에서 깨어났다.

이후 소년은 상청종의 동곽호연을 만나고, 그의 부탁으로 상청종으로 향했다. 그리고 5년간 연금돼 있다가 상숙청을 만나 하산했고, 도중에 마을로 돌아가, 같은 마을의 소년이 된 원숭이와도 재회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우유도가 상숙청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다음 일은 너도 대강 알고 있으니, 내가 다 설명할 필요 없겠지?”

상숙청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편에 있던 노방은 언제부턴가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도야! 제가 꿈을 꾸는 겁니까. 정말 도야십니까? 정말 도야이십니까?”

“뭘 그렇게 펑펑 우는 거야. 길 막지 말고 저리 비켜 봐.”

우유도는 지팡이로 노방을 간단히 밀어내고, 다시 상숙청을 데리고 또 다른 사진 앞에 섰다. 여자의 독사진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어깨엔 스카프를 걸친 채 바닷가에 앉아있었다. 너무도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상숙청은 얼굴을 붉혔다. 생긴 게 비슷해서인지, 마치 자신이 그렇게 입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우유도가 사진 속 여자의 가슴 부위를 지팡이로 가리켰다.

“이건 이 사람 몸에 있는 태반이야. 봐봐.”

상숙청이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곳에 반쪽짜리 꽃잎 같은 분홍색 태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우유도는 선글라스를 벗어 옆에 있는 노방에게 건네고, 상숙청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노방 역시 자신도 모르게 선글라스를 받아들고 있었다.

곧이어 우유도가 상숙청 상의 어깨끈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녀의 어깨에, 사진 속 여자의 가슴에 있는 것과 똑같은 태반이 있었다.

“네 얼굴의 반점이 사라지고,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10만 까마귀 장군을 불러낸 그날 밤, 미안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네 가슴을 확인해봤어. 근데 태반은 없더라고, 난 크게 실망했었지.

하지만 나중에 이곳에 오고, 그제 우리 밤을 같이 보냈을 때, 네 어깨에 있는 태반을 발견했어. 그걸 보자마자 널 여기로 데려온 거야.”

상숙청은 눈물을 흘리며 우유도를 쳐다보았다.

“그랬어……, 그랬던 거야……. 내가 도야의 머리를 빗겨준 그 긴 시간 동안, 항상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된 게 있다고 느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우유도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내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널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거야. 울지 마. 자, 이리 와.”

우유도는 상숙청의 손을 잡고 조금 전 처음으로 보았던 사진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가 사진 속 작고 마른 남자를 가리켰다.

“원숭이, 이게 바로 원래 원숭이 모습이야. 믿어져? 그 커다란 덩치가 원래는 이런 모습이었어. 그래서 원숭이라고 별명을 붙여줬었는데.”

상숙청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웃다가, 뒤돌아 우유도의 품에 꼭 안겼다.

우유도도 상숙청을 가만히 토닥여주다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방.”

“네! 도야!”

노방이 빠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몇 가지 물건을 찾았는데, 하마터면 압수당할 뻔했지 뭐야. 물건은 전에 네가 물건을 가지러 가던 곳에 뒀고, 암호도 원래 그 암호야. 빨리 가서 가져와.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해 줄게. 그리고 말이야, 저 죽림은 당장 원상복구 시켜놔.”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서 처리하겠습니다.”

노방이 허리를 깊게 숙인 후, 눈물을 닦아내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 * *

깊은 밤, 이슬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으론 시원한 바람도 가만히 고개를 내밀고 방 안 곳곳을 간지럽혔다.

플로어 램프 아래, 상숙청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민소매에, 핫팬츠 차림의 그녀는 소파에 길게 누워 사과를 먹으며 일기를 읽고 있었다.

한 여자의 세월이 담긴 일기였다. 하지만 중간쯤부턴 기록이 끊겨있었다. 천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상숙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진 알 수 없지만, 눈빛은 매우 서글퍼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엔, 우유도가 큰 테이블 옆에 앉아 오래돼 보이는 동경을 살펴보고 있었다. 우유도는 동경에 빛을 비춰보더니, 투과돼 보이는 문자를 다른 손으로 빠르게 필사했다.

그때, 테이블 위로 따뜻한 차 한 잔이 놓였다. 상숙청은 우유도 등 뒤로 돌아가 살포시 몸을 기댄 후, 우유도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포근히 목을 껴안고, 상숙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금 갑자기 은아가 떠올랐어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우유도는 만지던 것을 내려놓고 침묵했다. 우유도는 은아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상숙청의 머리를 잔잔히 쓸어 주었다.

이내 상숙청이 우유도의 손을 잡고, 가벼운 키스를 했다.

“최근에 이걸 가지고 계속 뭔가 하던 것 같던데. 이게 뭐예요?”

우유도는 상숙청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다른 세계야. 더 거대한 세계. 만약 어느 날 이런 생활이 질리면 말해줘. 언제든 같이 놀러 가자.”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유도의 귓가에 달콤히 속삭였다.

“밤이 깊었어요. 이젠 나랑 같이 있어 줘요.”

< 완 결 >

[작가 인사말]

매번 소설을 완결 지을 때마다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 복잡한 감정입니다. 슬픈 건지, 허탈한 건지, 한 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방금 첫권의 도입 부분을 펼쳐봤습니다. 잠시 정신이 멍해졌어요. 그러다 전보다 훨씬 통통해진 얼굴을 만져봤습니다. 이 빌어먹을 세월…….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를 되돌아본다면, 정말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여러분께 허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중간에 절필의 유혹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사람답게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결점이 가득합니다. 첫째는 부족한 제 필력을 꼽을 수 있겠지요. 더 좋은 클라이맥스를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적지 않은 지적을 받았지만, 전 아둔한 사람이라 고견을 들어도 능숙하게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겨우겨우 어둠을 더듬어야, 그나마 짧은 경험에 기대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이제 모두 다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어느 날, 너무도 한가한 나머지 조금 더 재미있게 수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뭐, 큰 의미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젠 내일로 돌아서야 할 때입니다.

늘 이렇게 이야기를 끝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독자님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어 정말로 좋았습니다. 물론 회를 거듭할 때마다 떠나가신 독자님들도 계셨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 도군(道君) >을 구독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작가 跃千愁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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