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5화 (5/141)

#005화.

다음날부터 상천의 하루 일과에 새로운 것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규화공 수련을 하고, 그런 다음에 삭풍 수련을 하는 것까지는 지금까지와 똑같았다.

거기에 추가된 것이 바로 잡초 베기였다.

종삼이 시킨 것도 있었지만 베는 느낌을 좀 더 확실하게 느끼고자 했던 상천의 자발적인 면이 더 컸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어, 낮이면 대부분 홀로 지내는 상천에게 이만한 일도 없었다.

“그래, 이거야! 이렇게 쉬운걸. 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운지 상천은 풀을 베면서 신이 나 있었다.

그런 상천의 모습을 처마 밑 그늘에 앉아 지켜보며 종삼이 혀를 찼다.

“쯧쯧쯧! 저놈이 이제 점점 미쳐 가는구나.”

“안 미쳤거든!”

규화공의 성취가 이성에 오르고 삼성에 거의 다다르게 되자 상천의 청력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져 있었다.

“그놈 참 귀도 참 밝다.”

“내가 한 귀 해. 하하하!”

상천의 대꾸에 종삼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한 귀 하는 건 또 뭐야?”

“대충 알아들으면 되지 그걸 또 꼬치꼬치 캐물어요. 어른이 돼가지고는.”

“그러는 넌 애가 돼가지고는 어른이 하는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냐?”

“쳇!”

종삼의 반격에 상천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었다.

“삭풍 수련은 잘돼가냐?”

“아니.”

“얼른 익혀라.”

“나도 그러고 싶거든? 아〜 빨리 다음 거 배우고 싶다!”

“아〜 나도 빨리 다음 초식 가르치고 싶다!”

상천의 말에 종삼도 탄식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그 말에 입만 빼쭉 내밀 뿐 조용히 풀을 베던 상천이 낫을 내려놓고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끝!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외친 상천이 낫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는 종삼의 옆에 와 앉았다.

“땀 냄새 난다. 떨어져라.”

인상 찌푸리며 내뱉는 한마디에 상천이 종삼과 거리를 벌리며 엉덩이를 옆으로 슬쩍 밀었다.

“아저씨.”

“왜?”

“아저씨는 바람을 느껴봤어?”

“…그건 왜 물어?”

상천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종삼이 되물었다.

“아니, 그냥… 문득 궁금해서.”

“느껴봤지.”

“어땠어?”

‘이놈이 이런 걸 물을 정도가 됐나? 어떡하지?’

상천의 물음에 조금 당황한 종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느껴보긴 했는데,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어. 느낌은 사람마다 다른 거야. 내가 느낀 걸 알려줘 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거다. 네가 직접 느껴야 네 것이 되는 거지.”

“그렇군.”

그렇게 대답한 상천이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너 진짜 오늘 뭐 이상한 거 주워 먹었냐? 잡초 사이에 뭐 떨어져 있디? 내가 전에 먹다 남은 떡 하나 저쪽에 던져 놨던 것 같기도 하고. 뭔데? 왜 이래?”

“뭐가?”

“이상한 소리를 하질 않나, 쓸데없이 진지하질 않나. 하던 대로 해라. 안 어울려.”

종삼의 한마디에 상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답답해?”

“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니까 엄청 답답하네.”

대답한 상천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보인 종삼이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이 녀석한테만 맡겨뒀나?’

종삼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삭풍을 가르쳐 주고 수련하는 것을 보며 잔소리 몇 번 늘어놓기는 했지만 자신이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상천 혼자 어찌어찌 잘해왔지만 어린 상천에게는 처음 찾아온 벽이 엄청 높게 느껴질 수 있었다.

자신이라고 왜 열과 성을 다해서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이 참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

상천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 이러다가 심마(心魔)에 빠지는 거 아니야?’

그 생각에 눈동자가 흔들렸던 종삼은 다음에 이어진 상천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다음 초식을 배우면 뭔가 실마리가 생길 것 같은데…….”

‘결국, 그거였냐?’

상천은 지금 삭풍에 진척이 없어 답답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다음 초식인 뇌우(雷雨)를 익히고 싶어서 연기하는 중이었다.

쾅!

“으악! 왜 때려!”

괘씸한 마음에 종삼이 상천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고, 갑작스러운 통증에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천이 소리쳤다.

“연기 그만하고 가서 수련해라. 안 통한다.”

“쳇! 다 넘어왔는데…….”

“다 넘어오기는, 얼어 죽을. 그런 것에 속을 사람이 어디 있냐!”

퉁명스럽게 중얼거린 상천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목검을 집었다.

그러고는 슬쩍 종삼을 한번 흘겨보고는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똑바로 해! 안 그러면 밥 안 준다!”

다시 수련을 시작하려는 상천을 바라보던 종삼이 대뜸 소리쳤다. 그러자 상천이 거의 울상이 되어 그에게 소리쳤다.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저녁때가 되어 종삼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에 들어가 있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부터 노을이 걷히기 시작한 지금까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 상천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이 없어 그대로 연무장 바닥에 드러누운 상천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더럽게 힘드네. 하아! 하아!”

헉헉대며 중얼거리는 상천의 얼굴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좋다!”

시원한 느낌에 미소를 지은 상천이 기분 좋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상천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으흠…….”

방금 전에 가만히 누워 바람을 느끼던 상천이 뭔가 실마리를 잡은 듯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놈은 다 끝냈으면 씻기라도 하지 뭐 하는 거야? 야! 얼른 씻어! 땀 냄새 풍기면서 밥 먹을 생각이냐?! 내가 더러운 거 제일 싫어한다고 했지!”

주방에서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외친 종삼은 상천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자 밖으로 나왔다.

“자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까이 다가간 종삼은 상천이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것을 보며 불현듯 뭔가 스쳐 갔다.

‘가만히 놔둬야겠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종삼은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주방으로 돌아가 조금 전처럼 고개만 살짝 빼고 상천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뚱멀뚱 누워 생각에 잠겨 있던 상천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가만히 누워 있더니 이내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 목검을 들고 섰다.

목검을 들어 올려 정신을 집중한 상천이 삭풍의 초식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것을 본 종삼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 더 완숙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형(形)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풍기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정말로 바람을 벨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정도의 예리함이 강하게 전달되었다.

자신이 펼쳤던 삭풍과 달리, 지금 상천이 펼친 것은 제대로 된 삭풍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삭풍을 펼쳐 낸 상천은 그 상태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상천 자신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 상태였다.

자신이 펼쳐 낸 삭풍이 진정한 삭풍인지 머리로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짜릿한 전율은 확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렇게 고생했던 삭풍을 익혔다는 확신이 선 순간, 상천은 황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놈아! 뭐하고 서 있냐! 삭풍 하나 익혀놓고 온갖 멋은 다 부릴 생각이냐? 퍼뜩 들어와서 밥 먹어!”

종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상천이 여전히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내가 펼친 게 삭풍 맞아?”

“그럼 그게 무슨 춘풍(春風)이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들어와서 밥 먹어!”

심드렁하게 대꾸한 종삼이 밥상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짜 삭풍 맞는 거지?”

“맞다니까!”

종삼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속마음은 너무나 감격스럽고 대견하고 뿌듯해서 버선발로 달려가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상천 성격에 같이 호들갑 떨면 하늘로 승천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자!! 드디어, 드디어! 이 빌어먹을 초식을 익혔구나!”

종삼의 말에 상천이 두 손 번쩍 들고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잠시 흐뭇하게 보고 있던 종삼이 다시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얼른 안 들어오면 나 혼자 다 먹는다.”

“알았어! 금방 들어갈게! 이히히! 해냈다, 해냈어!”

굶긴다는 종삼의 협박에도 상천은 솟구쳐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저러다가 검법 끝까지 다 익히면 아주 날개 달고 날아가겠구만. 몰라! 맘대로 해라! 나 혼자 먹는다!”

쾅!

그렇게 말한 종삼이 문을 힘껏 닫고는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방방 뛰던 상천은 식사를 마친 종삼이 밥상을 치울 때가 돼서야 부리나케 달려 들어갔다.

그래도 상천을 생각한 종삼이 제법 먹을 것을 남겨 놓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밥 먹는 중에도, 그리고 밥을 먹은 후에도 상천은 한참 동안 기쁨을 만끽하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종삼의 잔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삭풍을 익힌 상천은 몇 날 며칠을 들뜬 마음으로 지냈다.

연신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너무 들뜬 나머지 무공 수련도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를 보며 종삼이 잔소리를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결국 종삼도 며칠 더 놔두고 들뜬 기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삭풍을 익히고 사흘째 되는 날.

그날도 상천은 아침 일찍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눈을 떴다. 종삼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벌써 나가?”

“항상 이 시간에 나가는데 무슨.”

상천의 물음에 종삼이 외출 준비를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랬나?”

그렇게 대꾸한 상천은 누운 채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에효, 오늘은 수련 좀 해라. 나갔다 오마. 그렇게 게으름 피우다가는 익힌 것도 까먹는다.”

“알았어!”

나가면서 종삼이 한 말에 성의 없이 대꾸한 상천은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았다.

“우히히!”

그러더니 뭐가 좋은지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상천이었다.

“심심해.”

상천이 중얼거렸다.

수련해야 할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심심하다고만 하는 상천이었다.

삭풍의 수련을 끝마치고 나니 왠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다음 초식 수련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아니,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처음처럼 간절하지 않았고, 그냥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놀다 와야겠다. 히히!”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룡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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