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단월검제-127화 (127/141)

#127화.

“대단하군. 어떻게 찾아냈지?”

종무헌의 물음에 두 장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종무헌은 그들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장로들이 무능력한 것인지, 아니면 두 장로가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며 종무헌은 두 사람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 장로와 삼 장로의 앞에 선 종무헌이 나직이 물었다.

“혹, 두 사람이 첩자는 아니겠지?”

“문주님, 그게 무슨…….”

이 장로가 당황한 듯 입을 열었지만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다. 어느새 종무헌이 그의 아혈을 제압한 탓이었다.

“삼 장로.”

“네.”

“내가 아까 물었을 텐데. 어떻게 찾아냈느냐고.”

종무헌의 기세가 점차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장로와 삼 장로뿐만 아니라 대전에 모인 모든 장로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석 장로.”

“예.”

“그대는 얼마나 무능하기에 세작을 찾지 못했소?”

“그, 그것이…….”

“대답하시오.”

이 장로와 삼 장로에게 말할 때와 달리 종무헌은 수석 장로에게 조금 부드러워진 어투로 물었다.

“의심이 가는 사람은 있었으나 열두 시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는 확신할 수 없었기에 아무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장로들은?”

수석 장로의 대답을 들은 종무헌이 다른 장로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수석 장로와 비슷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정상이다.”

장로들의 대답을 들은 종무헌이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이 장로와 삼 장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라도 마음먹고 신분을 속인 채 잠입한 세작을 무슨 수로 골라내겠는가? 열두 시진이라는 짧은 시간에.”

종무헌의 말에 이 장로와 삼 장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사청의 머리에서인지 종무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를 계책이 완벽히 속아 넘어간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각각 세 명의 세작을 골라내었다. 물론 그 여섯 명이 천중도문에 잠입해 있는 세작의 전부는 아니겠지.”

그렇게 말한 종무헌이 이 장로와 삼 장로를 제압하며 무릎을 꿇렸다.

“장로들에게 진짜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두 사람에게 자백을 받아내 남은 세작을 처리 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악마가 되어도 좋다. 체면, 명예, 도의 같은 것은 따지지 마라. 그런 것은 평화가 유지될 때에나 차리는 것이니.”

그렇게 말한 종무헌이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머지 장로들이 이 장로와 삼 장로를 둘러싸는 모습과 함께 대전의 문이 닫혔다.

날이 밝을 때까지 장로들의 손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세작이 더 목숨을 잃었다. 물론 천중도문이 큰 문파라고는 하지만 서른 명에 가까운 머릿수는 상당한 숫자였다.

게다가 장로들이 잡아낸 세작이 끝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굉장히 많은 수의 세작이 천중도문뿐만 아니라 사도련 전체에 잠입해 있었고 그 덕분에 군마성이 지금까지 비교적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정리가 됐겠지.”

종무헌이 대전 앞에 쌓인 시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시체 더미 속에는 이 장로와 삼 장로로 변장한 세작의 시체도 섞여 있었다.

“나머지 장로들은 내부 단속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수석 장로와 일 장로는 나와 함께 간다.”

“어디를…….”

수석 장로의 물음에 종무헌이 답답하다는 듯 수석 장로를 바라보았다.

“어디겠소? 은남도문이지.”

그렇게 말한 종무헌이 자리를 벗어나며 말했다.

“반 시진 후에 채비를 마치고 정문으로 오도록.”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한 수석장로와 일 장로는 종무헌의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서둘러 채비를 위해 처소로 향했다.

***

호남성 소양(邵陽)현은 비교적 평온했다.

약간의 긴장감은 감돌긴 했지만 아직 호남성에서는 군마성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기 때문인 듯했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농사를 짓고 물건을 사고팔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시끄러운 시전의 한 객잔에 군마성주와 서기종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시전은 난리가 나겠지만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지금은 그저 객잔에서 식사하는 노인과 중년인일 뿐이었다.

“음식 맛이 좋구나.”

군마성주가 만족스러운 듯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서기종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사도련 내에서 벌어진 잔혹무도한 일의 주동자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과거 자신을 아끼던 사부의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았다.

“왜, 음식이 입에 안 맞느냐?”

“아닙니다. 맛있습니다.”

군마성주의 물음에 서기종이 고개를 저으며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이야.”

“네?”

음식을 먹던 군마성주가 지나가던 점소이를 불렀다.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서 며칠 묵을 예정이란다. 남는 방 있느냐?”

“아니요. 여기는 없어요. 이 근방에서 제일 유명한 집이거든요!”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군마성주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럼 근처에 방이 있는 곳을 알아봐 줄 수 있겠느냐?”

“주인 아저씨가 혼내실 텐데…….”

아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갓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귀엽게만 보였다.

그 모습에 더 온화한 미소를 지은 군마성주가 품에서 당과 하나를 꺼내 건네며 말했다.

그러자 아이의 시선이 당과에 고정되었다.

“주인에게는 내가 일러둘 터이니 이 당과 받고 좀 알아봐 다오.”

아이는 군마성주가 건네는 당과를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품에 넣은 뒤 객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야, 이놈아! 어디가!”

아이가 객잔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것을 본 객잔 주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따라 나가려 했다.

[주인장, 내가 심부름을 좀 보냈네.]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객잔 주인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전음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직접 겪어본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방 좀 알아보라고 시켰으니 곧 올 걸세.]

군마성주의 전음에 객잔 주인은 고개 몇 차례 끄덕이고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아, 그리고. 괜히 돌아온 아이한테 뭐라 하지 마시게. 내가 귀가 좀 밝은 늙은이라네.]

협박 아닌 협박에 객잔 주인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일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허허허.”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군마성주가 소리 내어 웃고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군마성주는 소양현에 칠일을 머물렀다.

당장이라도 천중도문으로 향할 것 같던 그가 소양현에 계속 머물자 서기종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묻지 않았다.

칠일 째가 지나고 팔 일째 되는 날 아침.

군마성주와 서기종은 일찍부터 예의 그 객잔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객잔을 찾은 손님은 없었다.

간단하게 음식을 주문한 두 사람은 별 대화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기종아.”

“예.”

“아무 말 않고 있지만 궁금한 게 많을 게다.”

“…….”

군마성주의 말에 서기종은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군마성주의 그 어떤 이야기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서기종이지만 이어진 군마성주의 이야기에는 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곧 이곳으로 종무헌이 올 것이다. 네가 맡도록 해라.”

‘종무헌을? 천중도문주를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당연한 것이 사도련의 문주들은 자신과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와 검을 겨룬다고?

서기종은 멍하니 군마성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느냐? 겁나느냐?”

“아, 아닙니다.”

“겁도 나겠지. 그 전까지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존재 같았을 테니까. 하지만 궁금하지 않느냐? 지금의 네 실력이?”

군마성주의 물음에 서기종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실 다시 그를 만나고 군마성의 힘을 얻은 후 가장 궁금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과연 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절정에 올랐다는 상천을 뛰어 넘을 정도일까?

사도련의 문주들과 견줄 정도까지 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자와의 결전.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사도련의 일익인 천중도문의 종무헌과 대결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서기종이었다.

“생사결이다. 두렵지는 않느냐?”

군마성주의 물음에 서기종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그의 눈빛은 호승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이미 과거 사부가 죽었다고 믿었던 그날, 어렵게 몸을 피했던 그날 자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밀어내고 있었다.

“주인장.”

“예!”

군마성주의 부름에 객잔 주인이 서둘러 달려왔다. 첫날의 그 일 이후로 객잔 주인은 군마성주의 말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은 하루 종일 손님 받지 말게.”

“예?”

장사꾼에게 손님을 받지 말라니. 객잔 주인이 당황한 듯 군마성주를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괜히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이르게.”

“그게 무슨…….”

객잔 주인이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군마성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 말 안 듣고 밖에 나돌아 다녔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니 꼭 그리 하라 전하게나.”

“예? 아, 예.”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한 객잔 주인이 머뭇거리다가 서둘러 객잔 밖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에 군마성주가 더욱 진한, 그러면서도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종무헌이 천중도문 전력의 구 할을 이끌고 소양현에 들어섰다.

은남도문까지 가는 길목 중 제법 큰 현에 속하는 곳이기에 무리해서 진격하기보다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상하군.”

소양현에 들어선 종무헌이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보이질 않는군요.”

“기척은 느껴지지만 밖으로 나오질 않고 있소.”

“적의 매복일까요?

수석장로의 물음에 종무헌이 고개를 저었다. 매복이라면 기척을 숨기는 것이 기본.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인기척은 일반인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때 나는 것과 같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한 종무헌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천중도문의 무사들을 이끌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종무헌은 다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앞쪽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기운 때문이었다.

종무헌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정면을 응시했고, 오른쪽에 있던 객잔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군마성주와 서기종이었다.

“누구지?”

종무헌이 적대감을 가득 담아 물었다. 그러자 군마성주는 여유롭게 뒷짐을 진 채 말했다.

“딱 봐도 내가 어른일진대 말이 짧구나.”

“딱 보니 적인데 말을 높일 이유가 있나.”

“허허허!”

종무헌의 대답에 군마성주가 지금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었다. 잠시 후 군마성주가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사도련의 버러지 네 명이 우물 안에서 왕 노릇을 하더니만 천하의 주인인 것처럼 기고만장하구나. 감히 내 앞에서.”

군마성주가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기운을 살짝 내뿜었을 뿐인데도 엄청난 기도가 느껴지자 종무헌을 비롯한 천중도문의 무사들이 얼굴을 굳혔다.

“군마성주인가.”

“그래, 내가 군마성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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