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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2화 (2/350)

2화

* * *

산속 어느 곳.

그 위치를 가늠하기도 힘든 산천초목의 중간에서 당유혼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좋아, 시작해 볼까.”

그리고 그의 앞에는 너른 이파리 여러 개와 그 위로 기이한 풀뿌리와 열매, 그리고 버섯 등이 놓여 있었다.

가지각색이 짙은 색채를 자랑하는 그것들, 당연하게도 전부 다 독초와 독버섯이었다

‘운이 좋았어.’

아무래도 이곳이 산간벽지이기는 진짜 막막한 산간벽지인 듯했다.

인적이 가까운 곳이면 구제사업이니, 뭐니, 해서 국가의 관청들이 약초꾼들을 동원해 독초와 독버섯은 전부 제거해 놓는다. 혹시 산에 오른 꼬마 아이들이나 길잃은 이들이 실수로라도 먹지 말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래서 인적이 가까운 산에서는 독초와 독버섯을 구하기 힘들지만, 이곳에는 그런 이들의 발길이 흔치 않은지 지천에 독초와 독버섯이 가득했다.

‘물론, 진짜 고급스러운 것은 없지만.’

다만 그것들 중에 값진 것은 없었다. 갈아내면 한 방울만으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은 없지만, 전부 복용하면 일반적인 사람을 죽일 만한 것은 있었다.

그만큼 인간이란 동물이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강한 자극이 도움이 될 때이다.

“후우, 그럼…….”

크게 숨을 들이쉰 당유혼은 손에 쥔 뾰족한 나뭇가지를 그대로 내리 휘둘렀다.

푸욱!

살가죽이 꿰뚫리고 짜릿한 통증과 함께 피가 솟구쳐 올랐다.

‘큽!’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이제 시작이다. 고통에 흔들려서 이성의 끈을 놓으면 이 짓을 다시 해야 할 뿐 아니라 극히 위험해진다.

‘억울하네……. 제대로 된 도구만 있었어도.’

지금 당유혼이 내지른 곳은 혈도였다. 인체를 흐르는 경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으로,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즉사할 수도 있는, 그런 인간의 급소 중 하나였다.

원래라면 바늘로 정확히 꿰뚫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우격다짐으로 뾰족한 나뭇가지로 행하는 것!

누가 봐도 ‘저 새끼 정신 나갔구나!’라고 탄사를 내지를 미친 짓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으니… 처음의 짜릿한 고통에 어느 정도 적응되자 그의 손은 이전과 달리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푹― 푹, 푹!

연신 자해에 가까운 행위가 이어지고 팔뚝과 다리, 옆구리 허벅지 등에 구멍이 연이어 뚫렸다.

숨풍숨풍 핏물이 튀어 오르기 시작하자 당유혼은 곧바로 미리 짓이겨 뭉쳐 놨던 독초의 즙을 그곳에 흩뿌렸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당유혼!’

스스로에게 집중을 되뇌며 당유혼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 하는 것은 독을 약(藥)으로써 사용하는 것.

영약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섭취를 통해 그 효과를 흡수하는 것이지만, 지금의 당유혼에게는 그럴 만한 장비도, 설비도 없었다.

내공이라도 있다면 복용하며 운기를 통해 그 효과를 이끌겠지만, 내공은 쥐꼬리만큼도 없고, 혈도마저 막힌 상태에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약효를 필요한 곳에 운반하는가.

그건 간단했다.

‘혈류(血流)를 통해 독효를 옮긴다…….’

인간의 체내에서 스스로 유동하는 유일한 액체 성분. 바로 혈액의 흐름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성분을 전달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미친 짓이지. 내가 아니면 절대 못 하는.’

독액이 혈도를 통해 스며들며 혈관에 흡수되었다.

언뜻 보면 미친 짓이지만, 아니, 눈 씻고 제대로 봐도 정신 나간 짓이지만 당유혼에게 있어 이게 가장 정확한 방법인 이유는 간단했다.

‘…시작됐군. 충문이 검게 물들었다.’

그건 바로 피부 바로 아래에 있는 혈관을 타고 독액이 흐르게 되면, 그에 의한 증세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운기로 체내를 관조할 수 없다면, 육안으로 독에 의한 중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 작업을 시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독의 대가이자 의선에 이르렀다는 평을 들었던 당유혼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그 자신감과 자존감은 곧바로 신속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당유혼은 곧바로 다른 부위에 독액을 흩뿌렸다. 그곳도 구멍이 뚫려 숨풍숨풍 핏물이 치솟고 있었다.

과다출혈을 감수하고도 이걸 미리 뚫어둔 이유는 초를 다투는 이 급박한 상황에 한가롭게 구멍을 새로 뚫을 여유가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으갸… 그… 크으으읍!!”

처음에 뿌린 독초즙은 그나마 아프지라도 않았지, 이건 무슨, 살을 불로 지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뒤따랐다.

이를 악물며 비명을 삼킨 당유혼은 곧바로 눈을 부릅뜨며 다음 증상을 관찰했다.

‘황달이 생기며 피부가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독끼리 상충된다는 증거……. 즉, 성공했다는 뜻이군!’

당유혼은 일차적인 성공에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통해 세운 이론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쾌재를 질렀다.

비록 한 걸음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사실이 기쁨으로 이어지자 당유혼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타타탁!

‘정신 놓는 순간, 진짜 죽는다!’

기쁨이 차올랐지만 그에 젖어 들 순간은 없었다.

혈액을 타고 흐르는 독소가 점점 전신을 회전하며 그 비율을 높여갔고, 이후에는 마침내 전신의 혈류에 성분만 다를 뿐, 전부 독(毒)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함께 흐르기 시작했다.

“…크흐……! 후끈후끈한데?!”

독이란 곧 강력한 성분이며, 분류만 다를 뿐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氣)다. 그것들이 평범한 혈액에 더해지면 그 강력한 기운이 들끓어 올라 마치 보약처럼 양기가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크크, 장로놈들, 이거 보면 놀라자빠지겠군. 기다려라. 이 어르신께서 또 하나의 절예를 만들어 냈으니……!!”

당가의 문인은 어릴 적부터 독에 면역을 가지기 위해 독성이 약한 것부터 하나하나 음독(飮毒)하며 체내 면역력을 기른다.

그뿐 아니라 섭취한 독은 특수한 심법을 통해 비상시에 활용하는 혈독(血毒)으로까지 써먹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 단계가 있다.

가장 약한 독으로 시작해, 그것에 맞는 약초로 중화시키고 또한 특수한 내공심법으로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보관할 수 있게 만드는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그러나 지금 행하는 방법은 약초를 통한 중화도, 내공 심법을 통한 제어도 없는 순수한 의술(醫術)과 제독(制毒)의 영역!

하물며 의약품도 없이 오로지 독만으로 하는 행위이니, 천하제일 독인이었던 당유혼만이 할 수 있는 절대의 기예였다.

“크으으으……!”

그 행위의 끝에서 혈류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당유혼은 그 순간 재빨리 앞에 늘여놓은 독초를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가부좌를 튼 상태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건 진짜 실패하면 뒤가 없다.’

기회는 오로지 한 번.

유독 성분의 흡수로 일어난 강한 혈류의 흐름을 통해 기(氣)로써 기(氣)를 움직이는 진기도인의 대체.

그 속에서 당유혼의 눈이 부릅떠졌다.

쿠쿠쿵!

체내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그건 바로 막혀 있던 혈도가 강한 독 기운에 의해 부서지는 소리였고, 곧이어 목구멍을 역류해 쏟아졌다.

“쿠웨에에에엑!!”

검은 토사물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막혀 있던 노폐물들의 흔적이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웨에엑! 꾸에엑! 구아악, 구아아악!! 우에에에에엑!!”

거의 끓는 물에 살아있는 닭의 모가지를 잡아 처넣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우구에웩!”

‘…새, 생각보다 더 강렬한데?!’

당유혼의 예상을 웃도는 강렬한 약효!

무언가를 삼키는 구멍을 통해 온갖 노폐물이 역으로 치밀어 올라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런 노고가 의미가 있었는지 당유혼은 마침내 막혀 있던 기혈이 뚫리며 몇몇 기운들이 단전으로 치닫는 것을 느꼈다.

‘…이게, 필수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것……. 세상의 모든 기운을… 그러모으는……!’

독(毒)마저 다루는 당가의 무인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 모든 기운을 아울러 모아 스스로의 병기로 삼는 광기의 결정체.

즉각적으로 이어진 행위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와 같은 행위였으나, 그것은 이 인적없는 산중에서 마침내 결실을 거두었다.

‘…지금!’

결정적 순간에 당유혼은 사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했고, 마침내 무언가 치솟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우웨에에에엑!!”

산천초목이 떠나가라 외치는 시원한 고함과 함께, 당유혼은 눈 뜬 채로 기절해 버렸다.

* * *

“…끄으으…….”

세상 살다 보면 많은 미친 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단연코, 이만큼 미친 짓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

“…생 독으로 혈독을 만들고, 그걸로 독공을 운용하다니……. 흐흐……. 이건 진짜 나 아니면 안 된다…….”

핏속에 스며드는 독액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희열.

그 속에서 자존감 넘치다 못해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당유혼의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지만, 이건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당가의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사명이 녀석, 이걸 보면 아주 눈이 빠져나갈 거다. 크흐흐……. 내 몸이 이 꼴이 된 것보다 더 놀랄 게야.”

비릿하게 웃은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다려라. 이 형님께서 만들어 낸 혼원신공(混元神功)을 당장 전수해 주러 갈 테니.”

혼원(混元).

태초에 존재했다는 근원에서 이름을 따온 이것은 세상 모든 기운을 다룰 수 있는 신공이다.

그리고,

꿈틀―

그 태초의 근원 속에서 맥동하는, 아직은 미약하나 분명한 존재감.

‘이 녀석만 제대로 키울 수 있다면…….’

환원 속에 존재하는 그것이 똬리를 트는 걸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가볼까.”

타탓!

그 이름값을 하듯, 지금도 혈류에 흐르는 독액을 연료로 부족한 내공을 대신하며 작동하는 그것은 두 다리에 충만한 힘을 선사했다.

비록 아까 시도했던 보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땅을 박찰 때마다 넘치는 힘은 비할 데가 없다.

그리고,

‘아사할 걱정도 없고!’

길 가다가 쓰러질 위험이 가득했지만, 챙겨온 독초와 독버섯 등을 씹어먹으면 당장 쓰러지진 않을 테니, 그런 걱정도 덜었다.

지금도 혼원신공을 개통하기 위해 잔뜩 처먹은 독초와 독버섯 등으로 배가 부른 상태였으니 못해도 한나절은 든든할 듯했다.

타타탓!!

힘이 넘치는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리자 주변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주변 풍경도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빠르게 변화했다.

그렇게 당유혼은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고 달렸으며 그렇게 달리다 멈췄다.

타탁.

“…끄아, 으아아악!!”

퍼억!

발꿈치에 채여 날아간 흙더미가 앞쪽의 나무 기둥에 부딪혀 거칠게 흩날렸다.

“이 거지 같은 십만대산. 넓기는 더럽게 넓네!”

새삼스레 정신이 아늑해진다.

십만대산이 괜히 십만대산이 아니라고.

실제로도 당유혼이 아는 십만대산은 근본의 신강 지역 천산산맥 일대로부터 시작해 청해를 넘어 광서, 광동 경계까지 이어져 있다.

마지막 결사대가 향한 곳이 신강과 청해 사이의 어디인가로 향하는 길목이었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눈을 떠보니, 주변 환경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이상 여기가 어디인지 아득해지는 게 현실이다.

“빌어 처먹을 마교도 새끼들. 누가 음흉한 놈들 아니랄까 봐, 더럽게 오지에도 처박혀 있었네.”

무림 기준으로 한참 끝단이니, 궁벽한 산지라는 것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난번 결사대에 소속되어 오를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오지라고는 느끼지 못했다.

“당연했지. 다 죽으러 가는데 주변이 지독한 산간오지의 산천초목인지, 황도의 최신 번화가인지, 눈에 들어오겠냐……. 하, 젠장.”

풀썩.

걷다 걷다 지쳐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혼원신공의 신묘한 위용으로 흡수한 독초와 독버섯을 연료로 삼아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육체 자체가 폐급이다.

‘고통은 참으면 되는데, 삐걱거리는 건 못 참겠어.’

“끄응……. 나도 늙었나…….”

비 오는 날 팔순에 이른 노인네가 허리통에 시달리듯 몸을 뒤튼 남자의 입이 댓 발로 튀어나와 불평불만을 흘려댔다.

“이럴 때 어디 산적이라도 없나? 녹림 새끼들은 산이면 산마다 다 있던데, 왜 여기는 없…….”

그리고 그 신경질이 하늘에 이르렀을 때,

“…응?”

평화로운 산천초목의 사이로 오솔오솔 흘러들어 오는 저편의 무언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멈춰 서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그 소음에 당유혼의 귀가 쫑긋거리며 반응했고, 이후에는…….

“…칼 소리? 이 세련됨이란 정파놈들 양심만큼도 없고, 오로지 힘만으로 무식하게 두들겨 패는 칼 소리……! 그래, 녹림 산적새끼들의 칼 소리구나!!”

쪼그라들었던 몸이 활처럼 튀어 오르며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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