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가유혼-3화 (3/350)

3화

* * *

광형 상단.

아슬아슬하게 중원에 소속된다 할 수 있는 변방, 청해 지역에서 누대를 걸쳐 이어져 온 이곳은 대대로 가업에 따라 상업을 행해 왔다.

크게 번창한 상단은 아니지만, 몇 세대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만큼이나 대단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어느 정도의 부유함은 갖춘 상태였고, 덕분에 상단 전용 호위 부대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요 몇 년간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상행을 성사시켜온 그들이었기에, 약간은 타성에 젖어있기도 했다.

이번 상행 역시 별 탈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음을 의심하는 이는 상단 내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하필, 맨날 가던 길에 갑자기 생겨 버린 신흥 산적채를 만나기 전까지는.

“으하하하! 멈춰라!! 어디 이 산왕님들의 영역을 침범하느냐!”

어디 산적 놈들 전용 홍보문구라도 되는 듯한 대사를 뱉으며 나타난 한편의 무리들.

실로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가죽옷을 입은 그들의 등장에 광형 상단의 단주이자, 이번 상행의 행수를 맡게 된 광세운은 어처구니가 없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아니, 이곳 태음산에 우리 광형 상단이 상행을 다닌 지 어언 다섯 해가 넘고, 그동안 산채의 주인이란 이들은 만나본 적이 없소. 그대들은 누구이기에 이리 산로를 막고 무도한 행태를 저지르는 것이오?”

자신이 행수를 맡게 된 횟수는 이번으로 고작 세 번뿐이라지만, 이곳 태음산을 오간 것은 몇십 번도 넘는다.

그때마다 주인이랍시고 설치는 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웬 처음 보는 놈이 저기서 배때기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크하하,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우리 태음채는 이곳 태음산에 이 주 전부터 자리를 잡고 영업을 개시했다. 그리고 네 녀석들은 그 첫 손님이, 특별히 할인가(割引價)에 통과를 허가해 주마.”

미친놈인가?

광세운과 그의 뒤편에 있던 광형 상단의 광운대주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떻게 합니까?’

‘미친놈 같은데, 그냥 재끼시지요?’

표행하다 보면 산적 놈들 한두 번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일일이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필요한 것은 상인의 감과 표사의 감.

저놈이 재낄 만한 놈인지 아닌지에 대한 그들의 촉이 빠르게 회전했고, 이내 둘의 의견이 합일되었다.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광운대주의 모습에 광세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외쳤다.

“어디서 놀던 잡배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가만히 길을 튼다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 않고 보내줄 테니 얌전히 떠나거라!”

아직은 어리지만, 한 상행을 이끄는 기개가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그에 앞으로 나선 자칭 산왕(山王)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쪽에 따라 나온 부채주, 임웅빈을 돌아보았다.

“뭐지, 왜 안 통할까?”

“우리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채주. 어떤 맛집도 타지에서 개업을 시작하면 입소문이 타기 전엔 손님들이 잘못 알아보는 법이잖습니까.”

“에잉, 진국은 그런 입소문 따위는 필요 없는 법이거늘.”

혀를 차는 태음채주 도철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거도를 뽑아 들었다.

스릉―

“안 되겠다, 얘들아. 손님이 곱게 가기 싫으시단다.”

“연장 챙겨라!”

“예이!”

스릉― 스릉!

도철의 외침에 부채주 임웅빈이 거들며 소리쳤고, 그에 각종 병기가 들어 올려졌다.

“기어코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는군. 모두 검을 뽑아라!”

“발검(拔劍)!”

“발검(拔劍)!”

“발검(拔劍)!”

마찬가지로, 광운대의 표사들 역시 마주 검을 뽑아 들었다.

“쳐라!!”

“와아아아아!!”

“우오오오!!”

한데, 덩치 하나하나가 집채만 한 산적들의 몸놀림이 생각보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 체구에도 비탈길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은 새처럼 비상하기 이를 데 없었고, 그 모습에 막 달려 나가려던 광운대주의 속내에 일순간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설마 저들이 예상외의 고수인 건가? …아니, 아니다.’

모자라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지금은 가벼우면서도 멧돼지들이 일제 돌격하듯 들이닥치는 게, 여간 무시무시한 게 아니다.

하나, 지금 와서 행동을 물릴 수는 없고, 전투는 곧 기세이니 선봉에 선 자신이 주눅 들었다가는 그 결과야 뻔한 노릇.

“받아쳐라!!”

애써 두려움을 내쫓으려 소리치는 광운대주가 가장 먼저 마주 달려들어 도철과 격돌했다.

“크하하하! 네놈이 우두머리구나!”

콰아앙!!

‘허억?!’

거도와 검이 부딪치는 순간, 광운대주는 헛숨을 들이켰다.

‘무슨 신력이……!’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못내 차오르는 불안감에 팔성 공력을 불어넣었건만, 격돌의 결과는 자신의 약세. 우스꽝스레 뒤로 넘어지지 않게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크흐흐, 생긴 것보다 약골이구나?”

그런 광운대주에게 도철의 조롱이 들려 왔고, 피가 몰려 얼굴을 붉힌 광운대주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이놈! 닥치거라!”

카캇―

세차게 검을 비틀어 튕겨낸 광운대주가 공간을 만들어 냈고, 장기전은 답이 없다 싶어 곧장 비장의 절초를 전개했다.

광호맹검(狂虎猛劍). 발골조(發骨爪).

푸르스름한 검기가 검날에 맺혔다.

그의 오랜 노력을 증명하듯 일류고수를 상징하는 검기는 대기를 가르며 나아갔지만,

카앙―

“호오?”

이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히 막혔다.

‘카앙이라고?’

울려 퍼진 소리가 믿을 수 없어 광운대주의 눈이 크게 뜨일 때, 도철의 입술 끝이 재밌다는 듯 말려 올라갔다.

“크하하, 이런 벽지의 작은 상단에 일류검수가 있을 수 있나? 좋다, 이것도 받아봐라!”

콰아앙!!

그러고는 별다른 초식도 없는 검격이 이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히는 무식하다 싶은 도격.

하지만,

‘큭, 크허억?!’

그걸 받아내는 광운대주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무슨 신력이!!’

단순하지만 그만큼 무식하게 강하다.

아무리 상대방의 손에 들린 게 거대한 중병기라지만, 한 방, 한 방이 묵직한 망치로 때려 박는 듯한 일격, 일격에 광운대주의 신형이 점점 땅으로 처박혀 갔다.

“대주님!!”

“대주!!”

순식간에 그들의 대주가 패색이 짙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광운대와 광세운이 안타깝게 그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두 세력의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태음채의 산적들은 채주만은 못해도 하나같이 광운대를 압박해 오고 있었다.

카앙!!

얼마 안 있어 표사들의 검이 버티지 못해 날아갔고, 그런 이들을 향해 날아든 발길질이 복부에 작렬했다.

퍼억!

“커억!!”

“으허억!!”

쿠당탕!!

바닥을 나뒹구는 표사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자연스레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뭐야, 완전 약골들뿐이잖아?”

“손님들이 다들 허약하시구만? 남의 업장에 와서는 드러눕고 말이지, 흐흐흐.”

승기를 잡은 산적들이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여유롭게 다가왔고, 광세운의 안색은 침중하게 썩었다.

“이, 이게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산적들에게!!”

비현실적인 결과.

아득한 기분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그때,

“잠까아아아아아안!!”

누군가의 외침이 산중에 울려 퍼졌다.

‘뭐, 뭐지? 설마……!’

이 산중에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구원인가 싶어 광세운의 시선이 돌아갔다.

조금씩 안색이 살아나던 광세운, 그의 시선에 마침 난입자의 모습이 담겼고,

“…….”

광세운은 생각했다.

“…뭐야, 저 새끼는?”

* * *

“잠까아아아아아안!!”

누군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물론 멈추란다고 다 멈추는 게 세상 이치는 아닐뿐더러, 하물며 전투 도중에는 그러는 것이 더더욱 힘들 것이다.

하지만 도철은 전투 중 강우세를 점하고 있었기에 마침 그 소리에 반응할 수 있었고, 뭔가 싶어 돌아봤을 때 그의 표정 역시 광세운 못지않게 떨떠름하게 굳었다.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야?”

그곳에는 한 청년…이라 하기에는 좀 어린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완전한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덜렁덜렁.

심히 신경 쓰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고, 그 어린 외양과 달리 무척이나 훌륭한, 묵직함을 자랑하는 남자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헉… 허억……. 싯팔, 이 나이 처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래.”

그 관성이 끝나지 않아 아래쪽에선 반복운동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강탈당한 도철은 생후 얼마 겪지 못한 경험에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언제나 난처한 법.

갑작스레 등장한 난입자를 바라보며 도철이 외치자 전라의 청년과 소년 사이의 사내, 당유혼은 헐떡거리는 숨을 내쉬며 간신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야, 잠깐만 기다려 봐. 나 진짜 무리해서 뛰었으니까.”

혼원신공이고 나발이고, 소리를 듣자마자 죽어라 뛰었다.

육체 성능보다 감각이 더욱 발전한 까닭에 미처 거리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보법으로 숨이 찰 때까지 뛰었더니,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우욱… 진짜 올라오는데?’

느글느글한 감각이 속을 가득 채웠고, 자연히 전라의 소년의 정수리만 바라보게 된 도철의 심경이 뒤틀렸다.

“이놈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시건방을!”

“자, 잠깐… 소리 지르지 마, 나 속 울려…….”

사나운 외침에도 겁을 먹기는커녕 되레 내민 손을 까딱이기까지 하는 모습에 도철은 마침내 폭발 직전까지 이르렀다.

딱 봐도 업장에 지불할 땡전 한 푼 없어 보이는 이 무전취식의 손님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손놈이었기 때문.

“뭐라? 감히!! 진짜 죽고 싶…….”

“알겠어, 알겠다고. 네가 누군데?”

거기다 한 번 더 말을 끊기까지 하자 마침내 도철의 정수리에서 수직상승으로 김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바로 태음채의 채주, 전직 선산채의 채주, 광선산군(狂琁山君) 도철 님이시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 나오는 외침에 경악성은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과, 광선산군?!”

이름도 모를 무명 산적에게 패퇴해 이 지경까지 몰렸다는 것에 침울해하던 광운대주는 들려온 별호가 이곳에서 꽤 거리가 있지만서도 흉흉한 악명을 떨치는 산적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몸서리쳤다.

광선산군이 활동하는 선산을 지날 때는 어떤 표국도 한 수 접어주고 통과세를 내준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 녹림 칠십이 채의……!”

그의 소속이 소속이라는 것.

중원 대륙 넓디넓은 산중에 자리한 수많은 산적채들 중에서도, 가장 흉악하기로 소문나 관에서도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칠십이 개의 산적채!

상대가 개중 하나인 선산채의 채주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제야 자신이 범의 아가리에 고개를 들이밀었음을 깨달은 광운대주의 두 눈에 절망이 차올랐다.

그런데,

“…어?”

그 순간. 그 절망이 차오르는 두 눈에 비추어진 광경에 광운대주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 그가 고개를 든 것과 비슷한 시기에 고개를 든 청년의 입이 쩍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두려움에 의한, 자신과 같은 경악에 의한 입이 벌어짐이냐고?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저 행위는 결코 다른 것임을.

“오호, 입이 벌어지는 걸 보니 이제야 네놈도 내가 누군지를…….”

다만 그걸 깨닫지 못한 도철만이 의기양양하게 씨익 미소를 짓고 있을 때, 그 행위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건 바로,

“꺼어어어어어억!”

위에서 가득 찬 무언가가 구강(口腔)을 통해 역류하는 거대한 용트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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