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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4화 (4/350)

4화

화려하다 못해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전라 소년의 등장에 장내의 모든 전투는 일순간 중지되었고 그들의 관심은 도철과 소년의 대치에 이끌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년의 행색은 그 화려한 등장이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고, 그 이후에 이어진 대화도 모든 관심과 집중을 한 몸에 받기에 적합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소년을 상대하는 도철의 언성이 점점 커져 갈 때, 다들 도철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단칼에 검을 휘둘러 소년을 응징할 것인가? 혹은 맹수 같은 외침으로 소년의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지게 하여 땅바닥에 주저앉혀 버릴까.

사실 이 산중에 옷 다 홀딱 벗은 소년이 뛰쳐나온다는 것부터가 예상이 불가능한 사건의 전조지만, 어쨌거나 인간이란 동물은 알게 모르게 미래에 대한 예측을 본능적으로 행하기에 그다음의 과정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예상 결과는 곧 오답으로 결론을 맞이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들 모두가 도철의 행동만을 예상할 때, 현실에서는 소년의 무지성 용트림이 퍼부어졌으니까.

“꺼어어어어어어어어억!”

저, 저 미친……!

거의 용이 포효를 하는 듯한 트림 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고,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쯤 되면 산적들마저 소년의 명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는 수준! 진짜 당장에라도 도철이 소년을 단매에 쳐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노릇!

보라, 당장 그들 우두머리의 안색이 검게 죽지 않…….

“…채주?”

“끄어어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신흥 산적채, 태음채의 부채주 임웅빈이 황급히 도철을 불렀을 때, 도철은 얼굴이 검게 죽은 채로 땅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쿠당탕!

거구의 몸뚱이가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리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굉음에 경악이 장내를 강타해 침묵의 색으로 물들일 때, 그 사이를 유려한 붓필이 궤적을 갈기듯 소년의 목소리가 그려졌다.

“끄으으……. 시원…하다!”

검게 죽은 도철의 안색과는 대조적으로, 진심으로 쾌적하다는 듯 낄낄 웃음을 터트린 당유혼이 배때기를 텅텅 두들겼다.

“죽어라 뛰었더니, 아까 먹은 독초들이 다 역류해서 속 다 뒤집히는 줄 알았네.”

실제로도 그랬다.

죽어라 뛰면 위산이 역류해 신물이 오르는 게 당연한 일이듯, 당유혼의 내장에서도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다만, 그게 일반적인 음식물이 아닌 독극물이라 문제일 뿐.

“채, 채주님!!”

그리고, 하필 그 독 찌꺼기를 안면으로 얻어맞고 쓰러져 버린 도철을 향해 부채주 임웅빈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게 무슨……!! 이, 이 비겁한 놈! 설마 독을 쓴 것이냐?!”

독. 칼붙이를 휘두르는 무림에서도 사특하며 비겁한 수법으로 취급되는 그것.

일단 갑작스럽게 아군이 쓰러지면 내뱉고 보는 말이지만, 그에 뱉는 당유혼의 대답은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아, 그렇네? 딱히 노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됐네.”

“뭐… 뭐?”

“야, 야, 비켜. 그거 당장 치료 안 하면 한참 골골거릴걸. 너도 가까이 있으면 중독된다?”

“허어억?!”

대쪽 같던 충성심이 그대로 반쪽이 났다.

쓰러진 도철의 고개를 받쳐 들던 임웅빈은 독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덕분에 도철은 바닥에 뒤통수를 찍으며 골골거리다 억 소리를 터트렸다.

“도, 독이라고? 그렇다면 조금 전 그 수법은……!”

설마 그 얼간이 같던 등장이 다 노린 것인가?

흠칫!

임웅빈의 목 뒤로 닭살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날 선 경계심이 일었다.

“네 녀석… 어디서 왔느냐?”

“어디서 왔냐고?”

십만대산이요.

눈떠보니 그곳인지라 순간 그렇게 답할 뻔했지만, 대개 이런 질문은 곧 소속과 출신을 묻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당유혼은 자신의 소속과 출신이라 할 수 있는 그곳의 지명을 입에 담았다.

“사천(四川).”

“사천……!!”

그 대답에 임웅빈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사천에… 독을 쓰는 집단이라면……. 설마!”

“아아, 알고 있군.”

무엇을 숨길 것인가. 무림에 수많은 문파가 있지만, 사천에 존재하며 독을 사용하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문파는 하나뿐.

그건 바로…….

“용독문(用毒門)?!”

“그래, 사천… 뭐, 병신아?”

당당히 자신의 출신성분을 밝히려던 당유혼이었지만, 임웅빈의 입에서 내뱉어진 대답은 뇌 기능을 고장 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아무리 무림에 수많은 문파가 존재한다 해도, 사천에 존재하며 자신이 당당히 독을 사용한다 밝힐 수 있는 문파는 하나뿐. 오로지 용독문이겠지……!”

자신의 추리가 옳다 믿어 의심치 않는 임웅빈의 모습에 당유혼은 대략 뇌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라는 거야, 이 모질이 놈이?’

설마 벌써 도철인가 뭔가 하는 놈에게서 독이 옮아가기라도 한 것일까?

어이가 없어 뭐라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용독문!”

“사천의 그 문파란 말인가?!”

“아니, 그런데 사천에 있는 문파의 소속원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중간중간 들려오는 잡음들이 어처구니가 없다.

“이 모자란 녀석. 그럼, 저렇게 속옷 하나 안 걸치고도 독을 사용할 수 있는 문파가 존재하겠는가? 그것도 저 어린 나이에?”

“하긴……. 그런데, 왜 속옷 하나 안 걸치고 있는 거지?”

“그거야 모르지. 어린 나이에 독을 사용하다 반쯤 미쳐 버린 건지.”

“헉? 그럼 우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 아닌가?”

“어… 그런가?”

뭐라는 걸까, 저 병신들은.

당유혼의 시선이 순간 그쪽으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왜냐면, 그사이 다가온, 아니, 바닥을 기어서 온 광운대주 때문이었다.

“소, 소협! 소협이 진정 용독문 소속의 고수이십니까?!”

‘…이 새끼도 이러네?’

할 게 없어서 산적 놈한테 처맞기는 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이놈이 이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그런데 그런 이가 자신에게 사천당문이 아닌, 용독문의 소속이냐 물으니 당유혼의 입꼬리는 자연스레 비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잔뜩 휜 대답이 흘러나왔다.

“후후, 잘 보셨습니다. 제가 바로 용독문의 소속입니다.”

“오오오, 역시!!”

“허어억!”

내뱉어진 대답에 돌아오는 희비가 엇갈리는 반응들.

소속에 대한 사명감 따위는 개나 줘버린 당유혼이기에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빛살과 같은 구라였다.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용독문인가 나발인가가 끗발이 먹히는 것 같으니까.’

원래 무림은 끗발이다. 암만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뒷배를 최고로 쳐준다.

‘그건 당장 천마도 증명했잖아? 그 새끼가 진짜 제 무력에 자신이 넘쳤으면 마교도 새끼들 우르르 끌고 내려오지 않고 혼자 뛰쳐나왔겠지.’

그 무공이 하늘에 닿았다는 천마조차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무림 침공을 시행했고, 이후 죽었다.

진짜 죽었는지는 꿈자리가 사나울 정도로 뒤숭숭하기는 하지만,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어쨌거나 무림 연합군 쪽 끗발이 더 좋았으니까.’

모든 것은 결과가 증명하는 법.

미친놈 널뛰기하듯 달려온 마교도와 천마지만, 결국 무림 연합군에 의해 전략적 패배를 경험했다.

사지가 녹아내려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유언 남기고 뒈진 것이 천하제일인 천마의 최후이니, 그게 안 되는 현재의 비루한 당유혼으로서는 당연히 이게 최선의 판단이었다.

“자, 어때. 계속 덤빌 테냐?”

“큭……. 젠장, 재수 옴 붙었군! 얘들아, 후퇴다!!”

당유혼의 등장에 임웅빈과 태음채는 차마 버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무공의 고수라면 모르지만, 독을 쓰는 놈이 낀다면 결코 이겨도 몸이 성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했고 그에 대한 확신을 당장 자신들의 채주가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도망쳐!!”

“젠장!!”

그렇게 태음채의 산적들은 우르르 몰려온 것과 같이 사라졌고, 난데없이 위기에 처했다가 구함을 받은 광형 상단의 이들만이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게 대체…….’

그중에서도 특히, 상행을 책임지고 있는 단주 광세운은 반쯤 넋이 나가 눈만 껌벅거렸다.

비록 아직 자신의 경험이 일천하다지만, 어떤 상행도 이런 경우를 겪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에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파팟―

“흐어억?!”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일더니 자신의 눈앞에 인형 하나가 들이밀어 졌다.

“허허, 왜 그리 놀라십니까.”

“다, 당신은…….”

인형의 주인은 바로 조금 전 난입하여 상행을 위기에서 구해 준 의문의 전라인(全裸人).

그 등장이 실로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그래도 상대는 분명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은인인바, 최선을 다해 안색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다만, 그전에 상대가 먼저 히죽 웃어서 그렇지.

“별것 아닙니다. 흔한 생명의 은인이지요.”

“새, 생명의 은인?”

“아닙니까? 위험한 상황 같으시던데.”

“…그렇지요.”

확실히, 이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상행은 순식간에 파탄이 났을 것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 사실을 한 번 더 인지하게 되자 광세운은 짐짓 진중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광형 상단의 단주 광세운, 소협의 은(恩)에 예를 표합니다.”

‘…단주.’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광운대주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잘… 성장하셨군요.’

광운대주는 광세운과 거의 당숙뻘이다.

그가 어릴 때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봐온 그는 사정상 예정보다 일찍, 어린 나이에 단주의 중책을 역임한 광세운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대처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뿐만이었다면.

“말 뿐만요?”

불쑥―

다시 한번 고개를 들이민 당유혼이 씨익 웃어 보였다.

“예, 예?”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대(大) 광형 상단의 단주님께서 말로만 ‘은’을 갚으실 것은 아니시죠?”

‘대… 광형 상단?’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자긍심은 높을수록 좋다지만, 암만 그래도 광세운은 자신의 상단에 대(大)자가 붙을 만한 것은 아님을 잘 알았다.

다만 상단을 대표하는 단주로서 자신의 상단을 깍아내릴 수도 없는 노릇. 알 수 없는 찜찜함 속에서 광세운이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 원하시는 게 있으신지…….”

“아아, 당연히 있죠.”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당유혼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일단은…….”

일단은?

꿀꺽.

왠지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광세운이 이 기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뱉어질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당유혼은 더더욱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옷 좀 주세요.”

“옷이요?”

“예. 보다시피.”

그의 손가락이 아래를 가리켰다.

덜렁덜렁.

진중한 무게감을 가진 것이 확연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그곳.

“이 상태거든요.”

“아…….”

아무래도 일단 이것부터 조치하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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