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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유혼-5화 (5/350)

5화

한 번의 상행이 진행될 때는 수백 명의 인원이 움직인다. 그렇기에 광세운은 아직 자신이 오롯이 홀로 하나의 상행을 이끌기에는 이르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광세운은 자신의 아비의 대에서부터 함께 해온 광운대주에게 조언을 구해 왔다. 그는 분명 좋은 스승이었고, 인생의 조언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캬, 밥맛이 쥑이네! 아저씨, 거기 술 좀 줘요!”

“아, 예. 소협!”

꿀꺽꿀꺽꿀꺽.

“크흐!”

저건… 대체 뭘까?

전라의 모습으로 등장한 괴인.

그는 위기에 처한 광형 상단을 구해 주었고, 광형 상단은 그에 대한 대가… 아니, 보답으로 일단 괴인이 당장 걸칠 옷가지를 건네주었다.

이후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이니, 뭐니, 하며 먹을 것까지 요구해 왔는데, 목숨까지 구해 준 마당에 밥 한 끼 대접하는 게 어렵겠나 싶었고, 안 그래도 저녁때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흔쾌히 함께 식사 준비를 하기로 했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표사들과 쟁자수들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를 틈도 필요하다 싶었으니까.

다만, 지금 이 모습을 보니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을 것만 같았다.

“광호대주… 저자는 대체 무엇일까요?”

“글쎄… 단주님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때는 그냥 거지 새… 아, 아니… 크흠, 걸신(乞神)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걸신이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말이긴 했다.

“캬아~ 술맛이 쥑이네요! 아저씨! 아니지, 누구 시라고 했죠?”

“…광형 상단의 재경각 부각주 하동파입니다.”

“아하, 하 대협이셨군요. 여기 광형 상단은 밥이 되게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훗, 그게 저희 광형 상단의 자랑이죠. 저희 광형 상단은 감숙성 황산현에서 오랜 유지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때문에, 현의 사람들은 대게 장성하면 상단원이 되는 게 전통이었고 상단원들은 결국 다 한 가족처과 같기에 식사 배급 하나는 확실하게 챙깁니다.”

“키야, 과연! 어쩐지 밥맛이 꿀맛이라더니! 한 그릇 더 주십쇼!”

어느 새부터인가 재경각 부각주와 죽이 맞아서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식량을 축내고 있다.

이건 거진 밥을 씹어먹는 게 아니라 흡입하다 싶은 수준인지라, 보고 있노라면 진짜 사흘 밤낮 굶은 거지새끼가 아닐까 싶었다.

“단주님의 생각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기실, 그에게서 고수의 기도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솔직히, 대주님께서 제게 저분을 각별히 대해야 한다 언질해 주시지 않았다면 가급적 빠르게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가 검이나 도, 창의 고수였다면 모를까… 그는 독인(毒人)이지 않습니까.”

그냥 가까이 얽히기가 싫다는 기색을 대놓고 팍팍 표현하는 광세운의 모습에 광운대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해합니다. 다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더욱 그와 쉽게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독인이기 때문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광운대주는 생각했다.

그가 다른 것이었다면 몰라도, 오히려 독인이기 때문에 첫 만남보다 마지막 이별이 더욱 중요하다고.

“독인은 분명 무인(武人)으로 취급되지만, 그 무인이 모인 무림(武林)에서도 별격의 존재로 취급됩니다. 그 이유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진중한 광운대주의 모습. 대개 이런 모습을 광운대주가 보이는 경우, 그것은 경험과 연륜이 일천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함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광세운은 자세를 바로 하고 질문을 던졌다.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명목상 하급자이지만, 광세운에게 있어 광운대주는 항상 배움을 구하는 인생의 조언자이며 스승이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독인의 경지가, 일반적인 무인이 밟는 경지와는 다른 체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체계?”

“그렇습니다. 보통 무인은 삼류, 이류, 일류를 거쳐 절정 고수의 단계로 향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독인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도 분명 일반적인 무공의 경지와 비슷한 길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단계를 말도 안 되게 앞세워줄 수단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독이군요.”

“맞습니다.”

마치 당유혼의 눈치를 보듯, 몸을 낮춘 광운대주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사실, 저 역시 저 괴인의 무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예? 그럼, 왜…….”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저 역시, 그 무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당황해하는 광세운에 광운대주는 연이어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면 그가 강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를 습격해 왔던 도철은 여기서 어느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활동하기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명성만큼은 그가 활동하는 일대 어느 중견 상단도 그에게 상납금을 바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했습니다. 그런 이가 일수에 쓰러진 것입니다.”

“그런…….”

실제로도 일수에 도철을 제압하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광세운이었기에 그가 가진 위험성만은 함부로 평가절하하지 못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 더욱 중한 이유가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

“예, 그건 바로…….”

한 번 눈치를 본 후에 다시 한번 당유혼의 모습을 흘깃 일견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가 광인(狂人)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 광인? 확실히……!”

“쉿! 목소리를 낮추셔야 합니다, 단주님.”

“아, 죄, 죄송합니다.”

광운대주의 말에 심히 동조하는 이유는 그 이전 것보다 일리가 있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실히… 저 모습은 제정신 박힌 모습이 아니기는 합니다.”

“키야, 한 그릇 더!”

“예이!”

이곳이 과연 산적에게 습격을 받았던 인적 드문 산중인지, 아니면 잘나가는 대도(大都)의 번화가 맛집에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광경.

사람이라면 누구나 꺼림칙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 광경 속에서 광운대주는 미래 자신의 주인이 될 광세운에게 다시 한번 다짐했다.

“독을 다루는 이들은 대개 그 독기가 골수까지 뻗어 미쳐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놈들은 죄다 미친놈들이 확률이 높지요. 그 괴팍한 성질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어쩌다 수틀리면, 헤어지는 길에 몰래 독을 하독해 버리고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과연… 주의하겠습니다.”

큰 가르침을 얻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광세운과 그를 보며 흡족해하는 광운대주.

둘만의 대화가 한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동안 또 한쪽에서는 그 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한 대화를 듣고 있는 이도 있었다.

‘…미친놈들.’

연신 입 안에 음식물을 흡입하기 바쁜 와중에도 당유혼은 저편에서 광세운과 광운대주가 자신을 주제로 쑥덕거리는 것을 듣고 있었다.

‘무슨, 사람을 질병 취급하는 거야? 두들겨 맞으려고.’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감히 독천(毒天)의 면전에서 독천의 흉을 본다?

그건 그냥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게 죽여달라는 유언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근데 뭐… 지금은 들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눈대중으로 어렴풋이 저들과 자신과의 거리를 재보면 스무 장도 넘는다.

그 덕에 광세운은 자기들끼리의 대화가 당유혼에게는 안 들릴 것이라 생각했나 본데…….

‘이상하게, 나는 참 잘 들린다는 말이지.’

“신기하게도 말이야.”

우물.

“예? 뭐가 말입니까?”

“산중에서도 밥맛이 끝내준다구요, 히히.”

“허허, 그만 금칠해 주셔도 됩니다, 낄낄낄.”

어째 무공 경지 칭찬하는 것보다 밥 짓는 솜씨 칭찬하는 걸 더 기분 좋아라 하는 재경각 부각주를 뒤로 하고, 스스로 생각해도 기묘한 자신의 신체 능력에 집중했다.

‘이상해, 내 몸뚱이는 내가 봐도 약해빠졌는데.’

각종 약물과 독물, 무공적 경지 상승으로 신체 능력만 따진다면 천하무림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었던 전성기 시절의 그 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감히 그때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라 고사하고서도 지금의 육신은 너무나 야들야들하고 절정은커녕, 일류만도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오감을 비롯한 전반적인 신체 능력은 절정 고수 수준이야.’

절정이라 해봐야 당유혼의 입장에서는 고만고만하지만, 지금 보일 수 있는 나이대의 성장을 훨씬 앞지른 것은 분명했다.

‘이 경지를 밟았던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그때 몸뚱이 상태가 영 기억이 안 나네.’

이것저것 연구해 봐야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너무나 많다.

하지만 당장 그것을 연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재료와 설비도 부족했거니와, 저쪽에서 마침내 작당 모의가 끝난 것인지 광세운과 광운대주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기 때문.

“은인. 밥은 입에 잘 맞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휴, 덕분에 살았네요. 이 근방에 지독하기 짝이 없다는 독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걸 얻으러 와 폐관 수련하다가 잘못돼서 죽을 뻔했지, 뭐예요, 히히히.”

웃으면서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미친 모습에 오히려 납득이 간 광세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하, 그래서 이 멀고 먼 청해 끝자락까지 오셨군요. 허허, 사천까지 가시려면 꽤 먼 길을 향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청해.

지명 상으로야 사천과는 옆 동네라 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청해의 넓이가 서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 소림사가 있는 하남, 하북팽가가 있는 하북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내가 있던 곳이 맞긴 하네.’

마지막 결사대가 향했던 곳이 십만대산에서도 청해와 맞닿아 있는 끝자락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인근에서 눈을 뜬 것은 분명했다.

“그야 뭐, 길은 가면 되니까요. 아, 그런데 사천은 요즘 별일 있답니까?”

“거기야 워낙 먼 곳이라 저희는 잘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 몇 년간 딱히 이렇다 할 이야기가 들리는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사천삼주(四川三柱)의 아미, 점창, 청성이 전쟁 후 혼란에 빠졌던 사천을 완벽히 수습해 안정을 구가하고 있고, 이제는 신흥 세력이라 부를 수 없는… 용독문이 나날이 명성을 떨치고 있지요. 허허허.”

마지막 말에서 은근한 눈빛을 보내오는 광세운과 시선을 마주하며 당유혼은 역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아, 그래요? 아, 그런데 혹시 지금이 몇 년도일까요?”

“연도 말입니까?”

뜬금없는 걸 묻는다는 듯 눈을 껌뻑인 광세운이 잠깐 광호대주를 돌아보더니 답했다.

“그야… 명락제 치하 21년이지요?”

“아이고, 21년이요? 벌써 삼 년이나 지나 버렸네.”

“삼 년? 허, 그럼 실제나이가…….”

“아아, 제가 액면가로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좀 있는 편이지요. 수련 때문에 하도 음독을 행하다 보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둘 앞에서 낄낄 웃은 당유혼이 슬며시 기억이 안 난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말이에요. 혹시, 이전에는 누구의 치하였는지 아시나요?

“명락제 이전에 말입니까?”

“예, 예, 기억이 흐릿해서 말입니다.”

“그야 뭐…….”

광세운은 잠깐 생각하더니 곧 답을 떠올리고는 답했다.

“명유제 아닙니까? 41년의 치하를 임기로 승하한 것이 제가 태어나고 얼마 후의 일이니까요.”

허허 웃으며 어릴 적의 이야기를 해오는 광세운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당유혼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나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년, 벌써 30년이 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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