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홍연(紅蓮).
어느 순간 이곳 황산현 일대를 시작으로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괴질이다.
전신에 붉은 연꽃과 같은 반점이 피어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괴질로, 그것 말고는 이렇다 할 게 없어서 임시로 붙은 이름이 그것이었다.
‘비슷한 것은 많지만, 정확히 이유는 모르는 그런 질병.’
그 홍연의 해독을 위해 감숙의 여러 젊은 유생들이 전부 광형상단에 모였다.
‘인망이 좋다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유를 알아보니 그게 다 광형상단 덕분이었다.
‘보통 자기네들 인망 좋다는 애들은 다 거짓말이었는데, 광형상단은 진짜였더라고.’
황산현에는 광형상단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광형상단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상단원과 마을 사람들을 괴질로부터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그런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자 감숙에서 광형상단에 은혜를 입었다는 유생들이 모두 물밀듯 밀려왔다.
‘그렇게 세워진 게 입의당이고.’
확실히, 보통 인망으로는 세워질 수 없는 집단이다.
하지만 암만 머리 좋다는 이들 전부 그러모아 만들어도, 그 결과까지 시원 통쾌한 건 또 아니었다.
‘벌써 몇 달째 결과는 지지부진하다. 게다가…….’
가장 큰 일이 얼마 전에 벌어졌으니…….
‘이건 진짜 좀 알아봐야겠는데?’
당유혼은 입의당까지 답사를 마치고서야 배정받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동안 누군가 방문한 흔적은 없는 듯했고, 탁자에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자니 곧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협, 계십니까?”
“옙. 들어오세요.”
드르륵―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광세운.
“죄송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렸어야 하는데…….”
“아휴, 전 잘 쉬었어요.”
여독을 풀 여유는 개뿔, 상행 때 입고 있던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광세운이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것보다, 마을에 무슨 소문이 도는 것 같던데요?”
흠칫―
광세운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디 갈 것까지라도 있나요. 오다가다 쉬고 있자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가득이더라구요.”
“아…….”
멀리 생각할 것도 없다. 홍연 괴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황산현, 개중에서도 터줏대감인 광형상단에서 홍연의 이야기를 못 듣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니까.
덕분에 붉으락푸르락해지며 신기한 안면 변화를 자랑하던 광세운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은 이곳 황산현 일대에는 괴질이 돌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역병이 돌고 있다고 시인한 것이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괴질은 상대적으로 가계 사정이 빈곤한 이들에게 발생되고 있기에 소협께서는 안심하셔도 되십니다.”
빈곤한 이들에게만 주로 걸리는 괴질이라.
‘흔한 이야기구만.’
대개 역병이 돌면 못사는 사람들부터 죽어난다.
뭘 못 먹어서나, 뭘 잘 못 먹어서나.
덕분에 근원을 알아내기는 어느 쪽이든 의원 입장에서는 골 아픈 게 역병이다.
다만,
“그거 저도 좀 봐도 될까요?”
그게 나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예?”
당황한 광세운이 눈을 껌벅거렸다.
“소, 소협. 혹여 잘못 들으신 듯한데, 지금 이 마을을 혼란케 하는 것은 한낱 도적떼나 사파의 악적들이 아닙니다. 이건…….”
“아이 참, 단주님.”
착각하시는 것은 제가 아니라 우리 상단주님 같으신데.
“저도 한낱 칼잡이나 낭인 나부랭이가 아니거든요. 우리 첫 만남을 잊으셨나요?”
“예? …아, 아!!”
잊을 리가 있나. 시간적으로도 며칠 되지 않았을뿐더러, 그 강렬한 첫 만남을.
“독(毒)을 다룬다는 것은 곧 약(藥)을 다룬다는 것.”
예로부터 당가제일의 독일은, 곧 천하제일의 신의(神醫)라고도 불리우고는 했으니,
“혹시 알아요? 제가 그 괴질을 고칠 수 있을지.”
일단 견적부터 내보자고.
입의당.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전엔 몰래몰래 양상군자(梁上君子)마냥 기어들어 왔다면, 지금은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입장했다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많이 바빠 보이네요.”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입의당은 밤이 새도록 북적북적했다.
의원들이건 문인들이건 눈덩이에 그림자가 새까맣게 지도록 뛰어다니거나 무언가를 분주히 확인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오래된 고서와 각종 두루마리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홍연과 관련된 것들이면 뭐든 찾아보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많아서 문제죠?”
붉은 열꽃이 증상인 괴질이라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수십 가지가 넘겠다.
“…일단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입의당은 전각 하나만 쓰는 게 아닌지, 또 다른 전각으로 넘어갔다.
다른 전각들 안에도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는 게 보였는데, 그 사이사이를 지나가서 멈춘 곳은 어느 문풍지 밖이었다.
“아이고… 아버지…….”
서러운 울음소리가 꺼이꺼이 들려오고 있었고, 그걸 들은 광세운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곳에는 홍연을 앓고 있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흠, 여기 있을 정도라면 못사는 사람은 아닐 텐데요?”
입의당은 광형상단 내에서도 심처에 있다. 괴질에 걸린 이가 한둘이 아닐 텐데 특히나 이곳에 있을 정도라면 못사는 사람일 리는 없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분은… 역병을 고치기 위해 환자들과 함께 지내다 전염되신 분이십니다.”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광세운이 말했다.
“지금 소협께서 지나오신 곳과 이곳은 입의당이라 불리웁니다. 의를 바로 세우는 곳이라 이름 붙였으며, 우리 광형상단에 은혜를 입었다는 이들이 들불과 같이 모여 홍연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의원 아닌 이들도 꽤 많던데요?”
“그들은 원래 재야에서 학문을 닦으며 여생을 보냈을 이들입니다. 하지만 홍연과 관련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서책을 읽을 줄 아는 이들이 필요하다 하니 이리 자원들을 하였지요.”
아하.
‘하긴, 의약과 관련된 서책이 좀 어려워야지.’
의약서를 읽으려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의술을 익힌 이라면 글을 읽을 줄 앎과 동시에 약학 지식 역시 통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붉은 열꽃을 띄는 증상과 관련된 서적이 어디 한두 개일까. 그것들을 다 읽어 들이고 정보를 교류하려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도 해야 되겠지.’
대충 모여든 이들의 면면이 이해가 됬다.
“쉽지 않습니다. 광형삼의께서도 노력하고는 계시지만…….”
“그건 또 뉘신대요?”
“아. 저희 상단에서 오랜 기간 힘써주시는 세 분의 의원분들이십니다. 그분들은…….”
그들에 대한 소개를 하려 할 때였다.
“혁수야, 이놈 혁수야! 여기 있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오느냐!!”
늙수그레하지만 아직 정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전각을 잇는 복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명의 노인.
생김새는 각각 달랐지만, 짙은 눈썹이나 두툼한 입술들을 보자니, 하나 같이 ‘나 한 고집 한다고’라고 말하는 듯한 관상이었다.
‘저 양반들이구만?’
보무도 당당하게 안으로 복도를 가로지르던 세 명의 노인은 도중 광세운을 발견하더니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하나, 그건 아주 일순간에 불과했으니,
“아니, 단주님!!”
“여기가 어디라고 계십니까!!”
“저희가 이곳에 오지 마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후다닥 뛰어오더니 그대로 광세운을 둘러쌌다.
‘완벽한 합격진이구만?’
“하, 하하… 삼의, 여기서 뵙습니다.”
“삼의?”
“여기서?”
“뵙습니다?”
오기 전에 합의라도 했을까.
적절한 단어 배분으로 하나의 문장을 만든 노인네들이 두 눈에서 광선을 뿜어냈다.
“단주님!!”
“아이고…….”
“저희 노신들이 그리도 못 미더우셨습니까!!”
어지럽다.
벌써부터 어지럽다.
당유혼은 이미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고, 세 명의 가신들은 광세운을 가운데 놔두고 곡소리를 늘어놓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지는 간단하구만.’
“괴질이 도는 역병 환자가 여기 있는데, 어찌 단주가 여기 있냐. 그러다 감염되면 어쩌려고?”
처음에는 방역 대책을 철저히 하겠다거나, 밖에서 들여다볼 뿐이라고 해도 반박이 불가한 무적 논리에 입은 꾹 다물렸다.
어찌나 극성이 심했는지, 손님인 당유혼의 존재는 소개조차 하지 못했다.
“흠, 일단 하나는 알겠네요. 그 가족 같은 상단이라는 것은 진짜라는 거.”
“…하하.”
젊은 가주에게 그보다 연배가 높은 장로들이 충절을 무기로 소리치는 것은 뿌리 깊은 가문들의 공통점.
결국 큰 결심을 하고 나온 것 치고는 아무것도 못 하고 나온 광세운은 부끄러움과 무안함으로 물든 얼굴을 손부채로 부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마음이 급해 많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필요하시다면 다른 자료들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른 자료들이라면?”
“입의정의 문인들이 그동안 괴질을 겪은 환자들에게 나타난 증세와 그들에게 투여한 약재. 그리고 그에 따른 경과들을 기록한 서책들이 있습니다.”
그걸 다 기록했다고?
‘이건 이것대로 대단하네.’
새삼스레 쌓여 있던 서책들의 숫자가 이해가 갈 지경이다.
“그럼, 그것부터 좀 볼까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구경 좀 해보자고.
광세운이 가져다준 서책은 한 그득이었다.
입의정 문사들은 혹시 몰라 같은 내용일지라도 여러 본을 필사해 두었다. 한 명이 보면 몰라도, 여럿이 보면 뭔가 답이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라고 한다.
‘무섭다, 무서워. 이쯤 되면 광기잖아?’
어쨌거나 그 광기 덕에 다량의 자료를 획득하게 된 당유혼은 그 자리에서 내용을 훑었다.
‘보자… 증상은 대개 비슷한가?’
괴질에 걸린 이들은 피부 전반에 열꽃이 생겨나며 고열과 어지럼증에 시달린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에 이르는데, 그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다만, 하나 이상한 건,
“이 정도로까지 다양한 해결책을 도입했으면… 뭐라도 나와야 정상일 텐데.”
당유혼이 보기에도 광형상단과 입의정은 할 만큼 했다고 봐야 했다.
‘어지간한 관아에서 나서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주셨네.’
이렇게 민초의 난에 발 벗고 나서는 집단은 태어나서 딱 하나 봤다.
‘우리 집.’
인근 지역에 역병이라도 돌았다 하면 발 벗고 나서서 해결책을 알아보려 하던 가주 녀석.
거진 그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답이 안 나왔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겠지. 고치지 못할 병이거나, 고치지 않은 병이거나.”
어쨌든 간 불치병(不治病)이라는 말.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하나.
‘직접 가봐야겠잖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낯선 손님이 초대받은 집을 제집 안마당마냥 활보할 동안, 집주인 되는 사람은 모두가 잠들 깊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다리고 있던 선객이 하나 있었으니,
“이제야 오셨군요, 단주님.”
“대, 대주?”
흠칫―
광형삼의에게서 해방됐으니 잔소리 세례는 이제 끝이겠거니 했건만, ‘진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또, 격리당에 방문하시려다 삼의분들에게 제지를 당하셨다구요?”
“아니…….”
그게 벌써 소문이 났다고?
광세운은 누가 이리도 빨리 소문을 퍼트렸나 싶어 범인색출에 대한 욕구를 활활 태웠으나,
“단주님.”
“…큼큼.”
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눈빛에 얌전히 헛기침을 했다.
“대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전 공자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비는 한때 제 수하였던 이였지요.”
“으음…….”
할 말이 궁했다.
“…후우.”
그에 광운대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 모셔오신 손님께도 도움을 구하셨습니까?”
“그, 그건 어찌 아셨소?”
그건 들은 사람이 없을 텐데?
하다못해 광형삼의에게 소개하기도 전에 쫓겨났었는데…….
“그와 함께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단주님이시라면 그의 도움이라도 받지 않을 리가 없지요.”
오랫동안 봐온 광세운의 횡보는 이미 광운대주의 눈에 훤히 읽혔다.
“위험합니다, 단주님. 어쨌거나, 그는 아직 정체를 모르는 외인입니다.”
혹시나 마찰을 일으키면 괜한 화를 입을까 초대까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잘 구슬려서 최대한 빨리 떠나보내자는 것이지, 이렇게 깊게 관계를 형성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쯤 되니 광세운도 할 말은 있었다.
“하나, 대주. 그분이 독인(毒人)이며 동시에 기인(奇人)이라 한 것은 대주입니다.”
그런 그에게 도움을 받는 게 무엇이 대수냐고, 따져 묻는 광세운의 모습에 광운대주는 속이 답답해졌다.
“저희 형편이라면 그런 도움도 급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입의정의 의기 있는 이들과 광형삼의가 밤낮으로 괴질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몇 주야를 고생하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언 발에 오줌 누기라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는 광세운. 그에 광운대주는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단주님.”
그리고는 착잡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이유를 대셔도, 저는 단주님께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대주……!”
“단주님.”
끓는 듯한 외침을 자르며, 광운대주는 슬픔을 머금은 눈빛으로 말했다.
“부디, 제게 두 번 주인을 잃는 불충(不忠)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
만일 그렇게 될 위험이 있다면 자신은 무력조차 동원하리라고.
단호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슬픈 어조로 말하는 모습에 차마 광세운을 말을 잃지 못했다.